사회적 협약기구, 쟁점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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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6 11:11
한국판 사회협약 논의 아직은 '동상이몽'
한국판 계급 대타협은 가능할 것인가? 사회협약의 성립은 그 동안 계급계층간, 국가와 시민사회간 끊임없는 갈등을 상당 부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제도의 수립을 의미하며, 운영의 묘에 따라서는 국민 일반의 삶의 질과 국가 경쟁력 제고의 결정적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등 정치권 중심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노사정 대타협' 논의는 '대타협'의 주체마다 각기 다른 구상을 품고 있어 자칫 말만 요란한 일회성 해프닝으로 귀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특히 협약의 프로그램과 내용에 대한 정부의 구상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정당이 주도하는 논의에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의심의 눈초리를 감추지 않고 있어 기구 출범까지는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협약 의제와 내용에 대한 시각차
지금 정치권에서 노사정 대타협의 모델유형으로 거론되는 것은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첫 거론했던 네덜란드 모델이다. 1980년대 초반 국내외적인 상황으로 인해 극심한 경제위기에 몰린 네덜란드는 사회경제협의회(SER)로 불리는 노사정 합의틀을 만들어 양보와 타협을 이끌어 상당기간 고도의 성장과 안정을 이뤄냈다. 노조는 임금동결 또는 삭감,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받은 대신 기업은 노조의 경영참가를 수용하고, 고용안정과 일자리창출 의무가 부과됐다. 정부는 사회복지제도를 재정비하고, SER의 노사정 합의사항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에서 추진하는 사회협약은 네덜란드라는 특정 모델을 염두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 환경노동위 소속 이목희 의원실 관계자는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나 이정우 위원장이 네덜란드 모델을 얘기했지만 그것은 하나의 논의 모델이지 꼭 네덜란드 식으로 가자는 것 아니다"면서 "ILO와 같은 단체도 한국에서 새로운 사회협약 모델이 탄생할지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환경노동위 관계자 역시 "대기업 중심 노동계가 고임금을 포기하고 기업은 자체 비정규직 축소로 화답하고, 정부는 세제개편을 통해 기업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라며 "꼭 네덜란드 모델이 아니라 네덜란드 모델에 한국식을 접목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정치권에서 말하는 '한국식'이 노동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으로 작용할 것이란 노동계의 불신이다. 대표적인 것이 사회복지제도의 확충, 비정규적 차별철폐 등 유럽식 사회협약에서 보편적으로 실시된 정책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의지는 없고, 노동 유연성 확대와 임금 억제만 도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상훈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연구위원은 "네덜란드 모델 얘기하는데, 결론부터 얘기하면 출발점이 다르다"면서 현재 정치권의 사회협약 논의에 부정적인 뜻을 피력했다. 사회임금, 사회보장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 유연성을 확대하면 노동계급의 전반적인 삶의 질 하락이 불가피하고, 네덜란드가 비정규직에게 노동기본권, 임금 등에서 차별을 없앤 것에 대한 인식은 없는 것 아니냐는 것. 민주노총 역시 지난해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이 네덜란드 모델을 언급했을 때 대체로 민주노동당과 같은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이 같은 노동계의 우려에 대해 한나라당 관계자는 "사회복지 부문의 취약성에 대해서는 동감하지만 정부여당과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이 이 부분에 대한 정책을 가진 것은 아니다"고 답변했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현재는 협약기구의 출범이 우선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정책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사용자측 역시 사회협약 논의가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와 일자리 창출 등의 논의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 사회복지에 대한 기업부담 증가로 의제가 확대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이동음 한국경총 상무는 "네덜란드가 아니라 우리 실정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면서 "노동계가 어떤 전제조건을 내거는 것은 양보보다는 얻어내겠다는 의식을 반영한 것"이라며, 사실상 사회협약의 쟁점을 고용 유연성 증대와 일자리 창출 등으로 한정했다. 황용연 경총 정책본부 전문위원은 "노동계가 말하는 비정규직 차별은 차별인지 차이인지가 불분명하다"면서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 정체돼 있는 상황에서 기업이 노동자 복지나 사회복지에 필요한 부담을 수용할 여력이 없고, 그것은 국가의 몫"이라는 입장이다.
각 정당과 사용자 측이 구상하는 사회협약의 내용에 대한 노동계의 우려는 이상훈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위원의 얘기 속에 압축돼 있다. 이상훈 위원은 "네덜란드 모델이 경영참가 모델이 아니라는 것을 알만한 이정우 위원장 같은 분이 지난해 네덜란드 모델의 핵심이 경영참가에 있다고 얘기했다"면서 "결국 정부여당이 사회협약을 위한 나름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고임금 노동자라는 민주노총의 약한 고리에 대한 압박수단으로 이를 제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균 교수는 "민주노동당의 경우 정부여당에 대해 그런 우려를 충분히 가질 만하다"면서 "그러나 민주노총은 장기적 관점에서 논의해야 할 사회협약기구 구성을 현재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대응전략과 연계시키는 측면이 있다"면서 민주노총의 참여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결국 협약기구가 다뤄야 할 의제의 범위와 내용에 대한 각 주체의 시각차는 어렵사리 협약기구가 출범하더라도 내부 논의가 첨예하게 대립할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이와 관련 김균 교수는 "현재까지 노사정위 논의는 협약기구가 다뤄야 할 의제를 고용과 임금 문제와 더불어 복지정책, 사회정책 등으로 의제를 확대하겠다는 방향으로 합의해 가고 있다"면서 "다만 경제정책까지 포함되느냐 안되느냐는 공감대가 아직 없는데, 경제정책 중 장기적 과제, 일반 서민과 노동자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 한정해 다루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밝혔다.
참여 주체의 범위
사회협약기구 출범과 관련해 또 하나의 쟁점은 참여단체나 조직의 범위 문제다. 우선 사회협약의 논의 주체로 정당이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도 있다.
현재 사회협약 논의를 정부가 아닌 정당이 주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양대노총 모두 못마땅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성호 민주노총 정책연구위원은 "당사자 빼고 자기들끼리 무슨 얘기를 한다는 건지 배경을 모르겠다"면서 "지금까지 정부여당의 대 노동 행태를 보면 느닷없는 일이고, 한나라당이 당사자 빼놓고 민주노동당으로 얘기하는 것도 웃기는 모양새"라고 논의절차에 불만을 표시했다. 이민우 한국노총 정책국장 역시 "정치권의 논의는 사전에 전혀 제안이 없다가 일방적으로 몰고 가고 있다"면서 "주체를 빼고, 더구나 정부가 아닌 정당에서 먼저 치고 나오는 것은 잘못된 것"이란 입장이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여당이 직접 사회협약기구를 구성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노사정 대표자회의 불참으로 당사자 논의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여당이 나서서 중재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유럽의 경우 대부분 의원내각제 형태라서 여당안이 곧 정부안이기 때문에 정당 참여가 불필요하지만 우리는 이와 다르다"면서 정당 참여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균 고려대 교수는 "정당 참여가 협약 사항의 이행속도, 집행력 측면에서 장점도 있지만 정치 수준이 낮은 우리의 경우 정치적 이해에 따라 합리적 논의를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정당 참여에 대해 기대보다는 우려를 더 강하게 표시했다.
아직은 문제되지 않고 있지만 협약기구가 구성될 경우 또 하나 불거질 문제가 학계, 시민단체, 농민단체 등의 참여 여부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는 지난 6월 "기존 노사정위원회를 발전적으로 해체하여 정당, 농민단체, 시민단체 등 주요 사회세력을 포함시켜 사회적 대표성을 제고한 새로운 사회적 협약기구로 '경제사회협의회'(가칭) 건설"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계의 분위기는 시민사회단체의 참여에 대해 내켜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김균 교수는 "우리의 경우 정부도 그렇고 노동계도 그렇고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그러나 유럽에서 사회협약은 계급문제가 상대적으로 희석되면서 사회 전체의 갈등을 다루는 것으로 확대돼 왔기 때문에, 현재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는 공익위원을 확대하는 범위에서 타협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민주노총 참여할까?
일단 사회협약기구 구성 논의가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현재 노사정위에 불참하고 있는 민주노총의 선택이 중요한 변수로 남았다. 정당 중에서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데다, 사용자단체와 한국노총 등 다른 주체들도 "대화채널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동음 한국경총 상무는 "사회적 대화 채널의 필요성은 공감하고,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민주노총과 함께 노동계를 대표하는 또 다른 축인 한국노총의 이민우 정책국장 역시 "어떤 내용이 되느냐가 문제이긴 하지만 논의 자체를 거부한 적도 없고, 거부할 이유도 없다"고 밝혔다.
협약기구 구성에 관한 논의는 노사정위원회 기구의 재편과 맞물려 있다. 지난 6월말 청와대에서 민주노총까지 참여하는 노사정 지도자회의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향후 명칭을 노사정대표자회의로 하자고 합의한 이후 몇차례 회의가 열렸으나 하반기투쟁과 맞물린 민주노총의 불참으로 유예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대표자회의는 노사정위 위상을 재정립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고, 현재 얘기되는 사회협약기구와 같은 별도의 합의기구의 구성에 대한 논의도 진행됐다.
사회협약 참여와 관련 민주노총 관계자는 "한가지 확실한 것은 기존 노사정위원회는 안들어간다"면서 "노사정위원회다, 아니다가 아니고 사회적 교섭틀에 참여 할거냐를 놓고 논의를 하고 있으며, 결정되면 어떤 형태의 사회적 협약이냐를 놓고 추가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관계자들은 민주노총의 참여 쪽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이수호 집행부가 대화 틀에 들어가겠다고 하면서 당선됐기 때문에 향후 기구 참여에 대한 전제는 깔아놓은 상태"라면서 "다만 그것에 반발하는 내부 조직 문제도 있어서 가긴 가는데 어떤 모양새가 될 거냐 가지고 고민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김균 교수는 "노동부장관,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 민주노총·한국노총 위원장,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등 각 단위 참여인사의 인적 구성에서 지금보다 더 우호적인 노동정책진영이 짜여지기는 힘들다고 본다"면서 민주노총의 참여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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