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보건복지부는 보험료율은 단계적으로 올리고 급여 수준은 삭감하겠다는 것과 기금운용위원회 상설화, 그리고 분할연금이나 여타 조기노령연금 등 제도의 부분적 수정을 내용으로 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연금제도가 언론의 도마에 오르면 항시 그렇듯이 국민연금제도를 둘러싼 가입자들의 해묵은 불신이 다시 표면화되고 있다. 88년 도입 이후 국민연금제도의 역사적 전개과정에서 기금운용에 대한 불신, 자영자 소득파악에 대한 불신 등을 해소할 수 있는 투명하고 획기적인 방안들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시 급여삭감이 거론되니 가뜩이나 모든 계층과 연령층에서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느끼는 판국에 모닥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연금제도는 안정적인 노후보장의 근간을 이루어야 한다. 저출산 및 초고속 고령화 사회에서 특히 노인부양을 사회적으로 분담하도록 구성된 연금제도의 의미는 지대한 것이라 하겠다. 도대체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어느 만큼이나 노후보장제도로서 국민연금의 의미에 충실한 것인지, 또 변화하는 사회경제구조를 고려할 때 현재의 국민연금제도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 살펴보고 앞으로의 개선방안에 대해 논의해보자.

정부 입법예고안의 문제점과 노후 소득보장제도로서 국민연금의 과제

노후소득보장제도로서의 의미 상실

현재의 국민연금은 전체 가입자 중 평균소득을 가진 사람이 40년 동안 보험료를 납부할 경우 자기 소득의 60%를 매달 사망할 때까지 연금으로 받게 되어 있는 구조이다. 정부의 이번 개정안은 소득대체율을 50%로 하향조정하면서 보험료율은 2030년 15.9%까지 단계적으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가입자의 평균소득은 136만원인데 40년 가입했을 경우 개정안대로 50%를 받는다면 68만원이 된다. 이 정도로도 벌써 펄쩍 뛸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는 40년 동안 지속적으로 가입했을 경우 받을 수 있는 급여수준이다. 현실적으로 40년이라는 가입기간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입자는 매우 적으며, 정부추계에서 전체 가입자의 평균가입기간은 21.7년이다. 연금급여가 가입기간에 비례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실제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약 36~7만원 정도가 되며, 이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1인 최저생계비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취업해서 소득이 있는 동안에 열심히 보험료를 납부해도 공공부조 수준의 연금을 받게 된다면 차라리 연금보험료를 내지 않고 나중에 공공부조를 받겠다고 주장해도 할 말이 없어진다.

차세대 부담과 세대간 계약

정부가 이렇듯 급여의 삭감을 단행하고자 하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전세계적으로 유래 없이 빠르기 때문에 차세대가 떠안게 되는 노인부양의 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것이다. 우리 연금제도의 급여산식은 모든 소득계층의 가입자가 자기가 부담한 보험료 총액보다 지급 받는 연금 총액이 높게 설계되어 있으며, 그 차액은 우리 세대가 아닌 우리의 후세대가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현세대 노인의 부양비용을 미래세대가 부담한다는 세대간 소득재분배를 의미한다.

현행 국민연금제도가 미래세대의 부담이 과중하게 설계되어 있고, 이는 후세대의 자원을 ‘아무런 사전 동의 없이’ 현세대가 끌어다 쓰는 무책임한 것이라는 것이 이번 급여삭감의 배경이 되는 주장이다. 출산율이 급속도로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2030년을 전후로 베이비붐 세대가 속속 은퇴할 시점에서의 노인부양 부담이 제도도입 초창기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커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세대의 부담 문제는 현세대의 ‘이중 딜레마’ 즉, 부모들의 부양도 해야하고 자신의 노후준비도 준비해야 하는 현세대(대략 40대-50대)의 입장을 동시에 고려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적어도 미래세대는 연금혜택을 받는 부모를 부양할 의무로부터 벗어나므로 이중적 부담을 하는 현세대의 부담을 후세대가 덜어줄 필요가 있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세대간 계약의 의미인 것이다.

기금고갈에 대한 공포분위기 조성보다 적립기금 누적에 대한 대책 마련이 더 중요

차세대의 부담의 견딜 수 없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주장과 동시에 언급되는 것이 바로 2047년이 되면 적립기금이 고갈된다는 이야기다. 많은 가입자들이 기금이 고갈되면 연금제도가 정지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패닉상태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급여를 줄이더라도 기금이 고갈되는 것은 시점의 문제이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기금이 고갈된다고 해도 연금급여가 중지되는 것은 아니며 기금이 고갈되는 시점에서 연금의 운용방식이 수정적립방식에서 부과방식, 즉 그 시기의 가입자들에게서 돈을 걷어서 연금생활자에게 급여를 주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뿐이다.

기금고갈보다 먼저 온 국민이 관심을 집중해야 되는 사실은 기금이 앞으로 2035년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사실이다. 국민연금기금은 올해로 100조를 넘어 일반예산과 규모가 같을 정도이다. 2010년에는 330조, 2030년에는 1천580조, 2035년 경에는 1천700조 정도로 최고 규모에 달하게 된다. 혹자는 돈을 많이 쌓아두면 좋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국채를 사거나 복지사업을 하는 데에도 한도가 있기 때문에 보험료 급여준비금을 제외한 막대한 기금이 2035년까지는 금융시장으로 쏟아져 들어가게 된다. 문제는 그 이후로 연금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급격하게 늘어난다는 점에 있다. 이론상으로는 적립기금을 국내와 국외의 주식 및 채권 시장 등에 골고루 분산시켜 놓고 시기적절하게 환급하여 급여를 주면 될 것 같지만, 2035년이면 적립기금의 규모가 GDP의 대략 60%에 달하게 되고, 국내 총생산의 반 이상을 갑자기 유동성 자금으로 바꾸어서 연금급여로 지급하여야 한다는 말인데, 국민경제 전체가 연금지급을 위해 총동원되는 사태가 벌어지면 과연 그 사태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고령화 위기에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기금 누적에 대한 대처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것이다.

무늬만 전국민 연금제도 - 광범위한 사각지대에 대한 대책 부재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가입자는 1천650만명에 달하며 이는 전체 경제활동 가능연령대 인구 약 3300만 명의 약 50% 정도에 해당한다. 15년간 가입자 수가 4배 정도 늘었으니 제도 확대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아직도 가입대상자 중에서도 납부예외자가 약 430만 명, 보험료 미납자가 약 120만 명이나 된다. 1천650만명중 실제로 보험료를 내고 있는 사람은 1,100만 명에 불과한 것이다. 납부예외자의 77%는 실직 및 휴직상태이고 주소불명도 50만 명이나 된다.

납부 예외자들이 일시적으로 보험료 납부를 하지 않는 경우는 큰 문제가 없으나 지속적으로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 연금수급 최소 가입기간(10년)을 채우지 못하거나 혹은 가입기간이 짧아질 경우 아예 연금급여를 받지 못하는 그래서 세대간계약에서 배제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납부예외자의 상당수가 5인미만 사업장 근로자, 비정규직 근로자, 실업자, 영세 자영자 등 우리 사회의 서민계층임을 고려할 때 노후 보장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연금제도의 혜택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있는데 우리의 연금제도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아무런 대비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신뢰받는 노후 소득보장 제도 정착을 위한 제언

사각지대 축소를 위한 제도개선과 징수ㆍ부과 체계의 정비

전업주부처럼 국민연금의 실질적 가입이 어렵거나 납부예외자나 보험료미납자 같이 형식적으로는 제도의 우산 아래 들어와 있지만 노후에 급여를 받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의 규모를 축소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고령화 위기를 축소시키기 위한 연금제도의 과제이다.

우선 국민연금을 납부하지 않는 사람 중 실제소득이 없는 계층과 소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득자료가 노출되지 않고 연금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가입을 회피하는 사람에 대한 대응책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소득이 있는 계층에 대해서는 정부의 소득파악 능력을 강화시켜 보험료 징수를 높여나가는 한다. 유소득 계층의 보험료 징수, 특히 자영자의 사각지대 규모를 축소하기 위해서는 보험료 부과징수 기능을 연금관리공단에서 국세청으로 이관시켜야 할 것이다.

반면 보험료 납부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 혹은 실업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 일정 수준 이하의 계층에 대해서는 보험료에 대한 국고지원이 필요하며, 출산이나 실업을 당할 경우 일정 기간동안 납부를 인정하는 credit 제도 도입, 혹은 실업자의 경우 고용보험 기금에서 일정기간 동안 연금보험료를 대납하는 등의 보완적 조치가 시행되어야 저소득층의 사각지대 규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종국적으로는 사회보험방식은 보험료 납부를 전제로 하므로 일정한 규모의 사각지대는 존재할 수밖에 없으므로 사각지대의 규모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연금재원을 조세로 충당하여 기초적인 생활수준을 보장해주는 방식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금운용위원회 상설화

기금이 고갈되어도 문제이고 엄청난 규모로 적립되어도 문제이기 때문에 가장 시급한 조치가 바로 기금운용위원회를 독립성과 전문성이 담보되도록 상설화하는 것이다.

98년 국민연금법 개정 이후 최근까지 이루어진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민주화, 공공자금관리기금법의 개정, 기금운용본부의 발족과 조직 재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금운용 관리감독체계에 대한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투자규모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투자대상도 다변화되면서 운용조직의 규모도 비대해질 뿐 아니라, 그 미치는 사회경제적 영향력도 커지는 반면, 관리감독은 산만하고 비상시적인 체계에 의존하여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금운용위원회를 상설화하는 것은 관리감독 체계를 정비하여 기금운용 나아가 연금제도에 대한 가입자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필수적인 조치이다. 98년 연금법 개정으로 기금운용위원회에 가입자대표의 수를 늘리고 의결기능을 부여함으로써 기금운용의 민주성, 투명성 확보라는 상징적 조치가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늘어가는 기금규모와 그것이 국민경제와 가입자의 노후보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민주성과 투명성에 더하여 독립성과 전문성이 겸비된 관리감독기구로 위상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금운용은 국민들의 불신이 많은 부분이기 때문에 최대한 중립적인 기구로 만들 필요 있으며, 정부로부터의 중립성이란 원칙을 살리기 위해 복지부와 경제부처에서 벗어나 독립된 국가행정기구(합의제 행정기관)로 기금운용위원회를 둘 필요가 있다. 예컨대 어느 부처에도 소속되지 않는 ‘방송위원회’ 혹은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형태로 설치하고 자체적인 예산편성권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장 추천권은 복지부장관이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는 연금제도 전반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이 복지부에 있으며, 기금운용이 가입자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반영하여 안정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은 공적연금으로서 그 막대한 영향 때문에 사회적 합의에 의한 운용이 중요하고 수익률 제고가 최고의 목표가 아니며 ‘안정성’이 더 중요하다. 사회적 대표성과 전문성을 조화시키는 위원 구성이 필요하며, 특히 사회적 합의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가입자 대표와 가입자 단체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위원으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
엄규숙 / 경희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03/10/10 00:00 2003/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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