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 113개 여성, 시민, 노동 단체 중심의 ‘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연대’를 구성하여 호주제 폐지 청원과 위헌소송, 대국민 캠페인을 전개해 왔다. 이처럼 긴호흡으로 국민의 동의를 구하며 시작한 호주제 폐지운동은 이제 중요한 시점에 놓여 있다.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호주제 폐지를 합법화해야 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지난 5월 27일 이미경 의원외 51명의 의원발의로 제출된 민법중개정법률안과 지난 9월 4일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민법중개정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본격적인 심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지난 8월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의원발의된 민법중개정법률안에 대한 제안 설명과 대체토론이 있었는데 법사위원들의 질의내용을 보면 보수적인 수준을 넘어 과거회귀적인 모습을 보였다. 호주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부족하고 호주제 폐지가 남녀불평등과 아무 관계가 없고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계질서가 무너진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일부 법사위원들의 성차별적이고 봉건적인 사고가 매우 뿌리깊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제 호주제 폐지운동은 가장 완고하고 보수적인 정치집단과 한판 힘겨운 싸움을 전개해야 할 때이다.

호주제 폐지의 필요성

위헌성 : 호주제도는 헌법에 보장된 모든 인간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있다.

먼저 평등권 침해를 보면 우리 헌법은 제 11조 1항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적으로 남녀평등을 선언하고, 제36조 제1항에서 다시 혼인과 가족생활에서의 양성평등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호주제는 혼인시 아내가 남편이나 시아버지가 호주인 호적에 家의 구성원으로 입적되어 家제도상으로 아내는 남편보다 열등한 위치에 있게 되어 부부평등을 실현할 수 없다. 또 자녀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르고 부가에 입적하게 하여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별하고 어머니의 부모로서의 권리에 대한 불평등을 발생시킨다. 또한 아들-딸(미혼)-처-어머니-며느리 순으로 정해진 남성우선의 호주승계는 가족질서와 무관하게 남성이 모든 여성보다 우선하게 하여 여성과 남성을 차별하고 있다.

다음으로 행복추구권에 위배되는 내용을 보면, 호주제가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각 개인을 지배와 복종관계인 호주 또는 가족의 신분을 강제적으로 규율한다는 점에서 호주와 가족 모두의 인격권을 침해한다. 또한 호주제는 가족의 구성원을 호주와 가족으로 구별짓고 호주승계 순위를 매긴다는 점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법률관계 형성을 지향하는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

비역사성 : 호주제는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아니라 청산해야 할 일제의 잔재이다.

호주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를 들어보면 호주제가 우리 고유의 전통인 가족제도이고 미풍양속이므로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호주제는 보수적인 입법자들이 1958년 민법을 제정하면서 가부장제 호주제를 근간으로 하는 일제시대의 가족제도를 전통적인 가족제도로 잘못 확신하면서 호주제를 도입한 것이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강점한 후 조선의 가족제도를 일본 천황제의 하부구조로 만들기 위하여 일본무사계급내의 상속제도였던 가독상속제를 호주제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강제이식하여 효과적인 식민지 통치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일제의 조선에 대한 가족정책의 핵심은 일본식 ‘가’제도의 이식이었다. 일제가 가족단위로 신분등록제를 실시한 것은 징세, 징병, 치안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조선조까지 ‘가’의 관념은 없었고, 세원 확보와 요역 징수 등 호구의 조사파악을 위해 호적제도만 있었을 뿐이다. 조선조 호적은 실제 거주 중심으로 편제되어 동거노비의 경우는 동일 호적에 편제되었지만 별거하는 자녀는 별개의 호적을 편성하였다. 또한 호의 대표는 있었지만 호의 대표인 아버지가 사망하면 어머니가 그 뒤를 잇는 일이 조선 후기까지 일반적이었으며 조선 중기까지는 딸, 아들이 똑같이 재산을 상속받고 제사도 형제자매들이 나누어 지냈다. 고려시대의 호적은 부모 양계의 친족관계와 현실의 생활공동체를 그대로 반영하였으며 호의 대표자인 남편이 사망하였을 때 아들이 있더라도 그 배우자인 여성이 대표자가 됨으로 오늘날의 호주제도와는 다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 호주제를 이식한 일본은 1948년 호주제를 폐지했고 중국도 호주제는 없다. 따라서 호주제는 우리의 전통이 아니라 일제가 식민지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강제 이식한 외래적인 제도이다.

비현실성 : 호주제도는 실질적인 가족관계와 다양한 가족형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호주제란 호주를 중심으로 가(家)를 구성하는 제도이고, 호주제 폐지는 호주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가(家)’를 폐지하자는 것이다. 현행 민법에 따르면 ‘가’에 입적한 자만 가족의 범위에 속하게 되어 있다(제 779조). 차남의 경우 자동 분가하도록 되어 있는데 분가한 차남은 독자적인 호주라고 해서 가족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게 된다. 결혼한 딸도 사위의 호적으로 들어갔다 해서 호적상 가족이 아니게 된다. 반대로 남편이 외도하여 아이를 낳은 경우 이 아이는 아내의 의사와 관계없이 남편의 家에 입적하여 가족이 된다. 이때 아이를 낳은 친어머니는 아이를 양육해도 동거인일 뿐 가족이 아니게 된다. 여기서 민법상의 ‘가’와 일반적인 가족의 관념과 상당한 차이가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호주제 폐지는 현실과 유리되어 있던 관념적이고 형식적인 가족 대신 실질적인 가족공동체를 법체계안으로 수용하자는 것이다.

국민들이 우려하는 가족해체는 실질적인 가족공동체가 붕괴되는 것인데 호주제 속의 가족이 삭제된다고 해서 실질적인 가족이 해체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의 실질적인 가족제도는 호주제도로 규율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에 의한 혼인과 가족생활에서의 양성평등, 민법의 친족편과 상속편 등에 근거한 실질적인 가족제도로 규율하고 있다. 따라서 ‘호주와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민법 제 2장을 삭제한다고 해서 실질적인 가족이 해체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부장적 호주제도로 인해 부부갈등이 야기되고 한부모․재혼가정 자녀의 복리가 침해받기 때문에 가족해체의 원인으로 작용해왔다. 따라서 호주제도는 평등하고 열린 가족관계를 저해하므로 폐지해야 한다.

배타성 : 자녀의 부성 강제조항은 재혼 가정 자녀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여성의 부모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제도이다.

민법 781조 제 1항에 따르면 자녀는 출생하면서 호주인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의 호적에 입적하게 되고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되어 있다. 반드시 아버지 성을 따르도록 강제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외국에서는 아버지 성을 따르는 관습이 있지만 일본, 미국, 중국, 북유럽 국가 등에서는 부부 협의에 의해 자녀의 성을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자녀 출산은 부모 모두의 노력에 의한 것이고 여성의 부모로서의 권리를 인정한다면, 자녀의 성씨는 최소한 부모 협의로 선택할 수 있도록 강제조항은 풀어야 한다.

최근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고 이혼 후 자녀를 데리고 재혼하는 여성의 경우 자녀의 호적, 성씨 등을 재혼한 남편의 것으로 변경할 수 없어 의료보험, 사보험 등에서 자녀로 인정받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해야 한다. 가족형태가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자녀의 성을 변경해야 하는 경우 자녀의 복리를 위해 성을 변경할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

공허성 : 호주의 권한과 의무는 약화되었고 호적 필두자의 역할도 호적이 전산화되어 큰 의미가 없다.

1989년 가족법이 개정될 때, 호주의 가족통솔권과 상속의 우선권 등은 삭제되어 호주의 권한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상 호주를 중심으로 가제도를 유지해온 이유는 호적제도 기술상 ‘호주’를 중심으로 다른 가족구성원을 편제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국민이 호주가 있는 하나의 가에 속하고 호주를 검색하면 가의 구성원을 일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4월 호적이 전산화되면서 호적을 검색할 때 기준인이던 ‘호주’를 찾지 않아도 주민번호만 있으면 전국 어디서나 호적서류를 뗄 수 있게 되었다. 즉 ‘호주’는 호적 편제기준으로서도 큰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이미 형해화된 호주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호주제 폐지를 둘러싼 쟁점에 대해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족해체, 집안말살이 된다는 주장에 대해

☞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현재 가족생활의 실체는 가구주, 세대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호주는 호적상의 필두자로서 관념적 존재에 불과하다. 따라서 가족간의 법률관계도 부부, 친자 간의 권리의무로 규율하면 족하고 따로 호주제도를 둘 필요가 없다. 실제 가족생활과 관계없이 법률상의 형식적인 기준을 가지고 가족제도를 파악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 다른나라에는 호주제가 존재하지 않지만 가족과 가족제도가 유지되고 있으며 가족을 유지하는 것은 호주제도 아니다. 호주제도 폐지는 형식적, 법률상 家제도 폐지이지 혈연, 혼인, 입양 등에 의한 가족관계가 해체되는 것은 아니다. 법정 분가한 차남, 결혼한 딸이 다른 호적에 있다고 해서 가족의 범위에 속하지 않는 현행 민법의 비현실성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호주제 폐지는 가부장제 가족관계를 평등하게 변화시켜 부부갈등을 줄일 수 있으므로 가족해체를 예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법률상 민법 친족편과 상속편에 부모와 자녀, 혼인, 친족간 부양의무, 상속 등의 규정은 계속 유지되고 있으므로 가족이 해체된다는 주장은 법률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성씨를 변경하고 일인일적제가 되면 근친혼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 근친혼은 현행 민법에서 부계, 모계 8촌까지 금지되고 있다. 금지하는 방식은 법률적으로 결혼한 부부가 동성동본인 경우 친족회와 주변 가족의 확인을 통해 8촌이내 근친이 아니라는 증명을 하도록 하고 있다. 개인별 신분등록제가 도입되면 개인을 중심으로 부모, 배우자, 자녀가 기재되고 개인의 신분변동사항을 기록하게 된다. 형제자매는 이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자녀성이 아버지 성과 다르더라도 부, 모(양부, 양모) 양쪽으로 8촌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면 된다. 따라서 호적이 전산화되어 기술적인 시스템을 갖추면 근친혼을 방지할 수 있게 된다.

호주제가 폐지된 이후엔 무엇이 달라지나

1) 호주를 기준으로 한 입적, 복적, 일가창립, 분가에 관한 규정이 삭제된다.

2) 여성이 혼인하면 남편의 호적으로 입적되어 본적이 갑자기 달라졌는데 호주제가 폐지되면 夫家 입적조항이 삭제된다.

3) 개인의 사생활이 보장될 수 있는 새로운 신분등록제도가 마련된다. 가족의 신분사항이 과도하게 노출되어 심적인 불편함을 겪는 일이 사라지고 양성평등한 신분등록부가 만들어진다.

4) 자녀의 성은 아버지의 성과 본을 원칙적으로 따르되, 부모의 합의하에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도록 바뀐다. 다만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버지 성을 따르게 된다.

5) 자녀의 행복추구권을 위해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자녀의 성을 어머니 또는 계부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하였다.

호주제도에 기반한 호적제도는 법적으로 한번만 혼인하고 아이를 출산하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 나아가 선택권도 없이 운명적으로 그런 처지에 놓인 아이들에게는 심리적 피해와 현실적인 피해를 주는 제도이다. 이런 점에서 특정한 형태의 가족만을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와 법, 제도는 시정되어야 한다.
남윤인순/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
2003/10/10 00:00 2003/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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