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04년도 예산으로 총 117조 5,429억원에 달하는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이다. 참여정부 들어 처음으로 편성된 이 예산안을 들여다보노라면 도대체 참여정부의 정책의지는 어디에 있는지 회의적 시각을 떨칠 수 없다. 적어도 참여정부에 있어서 만큼은 그 동안 우리나라의 재정구조를 지배하던 경제주의적 시각을 떨치고, 현재 한국사회에 합당한 사회정책을 구사하기 위한 대전환의 신호가 보이기를 간구하였다.

IMF 경제위기 이후 사회적 안전망과 그에 대한 예산이 확대되었다고는 하나, 급속히 확산되는 노동시장의 불안정성과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거한 시장경제의 침체는 우리가 그 동안 쌓아왔다고 생각한 ‘성장의 혜택’이 얼마나 취약한 것이었던가를 웅변으로 입증해주고 있는 지금이다. 최저생계비 이하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10%를 넘나들고 있고, 그중 약 300만명에게는 정부의 그 어떠한 지원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 결과로서 생계를 고민하여 자살하는 이들이 한해에 수천명, 빈곤이나 방임가운데 놓인 아동이 최소 100만명 이상을 넘고 있는 상태가 21세기 희망차게 시작한 한국사회의 분명한 현주소이다.

급기야 최근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노동단체가 이러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신빈곤(new poverty)'이라 명명하며 이에 대한 근본적이면서 철저한 대응을 촉구하기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즉, 노동시장에서 개개인의 생활이 보장된다는 것은 매우 환상이며, 아예 노동시장에 편입하지 못하여 노동능력이 있음에도 장기실업자에 빠지는 이들이 증대되고 있으며 혹 노동시장에 편입된다하여도 비정규직, 저임금노동자의 신분을 떨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하면서도 빈곤한 계층(working poor)'이 현재 우리 사회의 계층 변화에 있어 가장 주목할 부분이라는 점을 제기한 것이다. 여기에 사회보장제도마저 취약하고, 특히 이러한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거나 불안전하게 편입된 이들에 대한 사회보장책이 부실하여 거의 방임시켜두는 상황에서 이들은 급격히 최극빈계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로써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의 심화는 물론 유효수요의 감퇴로 인한 경기침체의 원인이 제공된다는 것이 신빈곤의 문제를 제기한 시민사회진영 주장의 핵심이었다.

이렇게 볼 때 2004년도 예산은 ‘과연 예산편성의 기조가 적절한가’와 ‘현재 한국사회의 최대관심사인 신빈곤에 대한 적절한 대응의지가 엿보이는가’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예산편성의 기조에 대한 적절성을 살펴보자. 이때 우선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것은 국방비예산의 두드러진 약진이며, 또 하나 경계해야 하는 것은 사회복지예산이 증가율에 있어서는 가장 높이 책정된 것이기에 정부는 현재 그 의지를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는 해명이다.

우선 국방비예산은 내년 1조 4천억원 정도의 순증을 통해 모두 18조 9천억원에 이르게 되어 정부예산의 16.2%에 달하는 비중상의 심대함을 가져오게 되었다. 정부가 말하는 자주국방의 중요성이 국민의 동의와 이해가 구해지기도 전에 정부가 스스로 강조하는 내년도 ‘열악한’ 세수환경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큰 폭의 증가를 가져오는 것은 경제주의에 입각한 예산편성과는 또 다른 우려점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총이냐? 빵이냐?(Gun or butter?)"라는 고전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군비팽창이라는 신냉전사고만에 주목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예산편성의 기본조건으로서 “균형예산”이란 기조가 전제되었다는 점이다. 바로 이점이 내년 예산이 경제주의적 시각을 탈피하지 못했음을 직감케하는 것이다. 물론 대책 없이 적자예산을 편성하여 국가부도를 방치하자는 무모한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산이란 경기 상황과 사회 상황에 맞게 운용되는 하나의 정책수단일 뿐이지, 경제주의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재정의 건전화’가 절대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균형예산을 위해 서민의 경제적 고통이 지속되고 경기의 침체가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악순환을 거듭하는 상황에서도 재정의 건전성만을 고수하겠다는 발상에 냉정한 경제논리의 진수가 엿보인다.

또한 부문별 예산의 평균증가율로 볼 때 복지분야가 가장 높다는 것이 정부의지를 확인해준다는 정부의 해명 논리 자체가 정부예산을 ‘점증주의(incrementalism)' 방식에 기초하여 생각한다는 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년대비 평균증가율만큼의 예산증대가 정상이고 이보다 상향조정되었을 때와 하향 조정되었을 때를 대비시키는 접근은 현실을 호도하기에 충분하다. 이는 국방비와 교육비가 각기 1조 4천억원씩 증대된 측면을 의도적으로 가리고 복지부문에 대해 위안거리를 제공하는 편법이 아니겠는가?

두 번째 신빈곤대책 예산 책정 정도를 살펴보자. 이른바 신빈곤의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법 및 대증적 해법 모두를 준비하고 있는가이다. 일단 복지부 예산 중 차상위계층 등 빈곤계층에게 적용폭이 확대되는 사업만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자활근로 차상위 계층 1만명 추가, 421억원

▷ 탈빈곤형 자활지원제도로서의 자활인큐베이터사업 12억원

▷ 희귀·난치성·만성질환자인 의료급여 대상에 차상위 22,000명 추가, 529억

▷ 영유아보육료 지원 대상 62천명 추가, 325억

이로써 인원상으로는 연인원 9만4천명, 예산상으로는 1,290억원 정도가 신빈곤을 위해 정부가 책정한 예산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예산의 책정은 현정부가 현재의 국민들의 빈곤에 대한 고통의 무게를 얼마나 경박하게 생각하고 있는 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보여진다.

이에 시민사회진영은 정부의 이러한 소극적 대책을 질타하고 대안제시를 통한 복지정책 발전의 구체적 추동력을 얻기 위해 6개중점추진분야, 14개 핵심추진사업을 ‘신빈곤대책사업’으로 확정하고 이를 국회에 의견청원 형태로 제출한 바있다. 구체적으로 각각의 분야와 사업 내역을 보면 아래와 같다.

1. 최저생계비 이하에 해당하는 빈곤층의 기초생활보장 충실화

현재 135만명에 달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권자에게 적용되는 각종 급여의 수준이 적정하지 않거나 아예 최저생계비 이하자로서 수급권자로서의 지원이 절실함에도 불구 수급권자 책정 기준상의 허점으로 인해 지원이 되지 않는 문제점을 개선하도록 함으로써 최저생계비 이하에 해당하는 빈곤층에게 기초생활만큼은 충실히 보장되도록 현행 제도를 개선 또는 보완한다.

(핵심추진사업)

○ 수급권자의 범위 확대

○ 자활사업의 현실화

○ 주거급여의 현실화

2. 차상위계층에 대한 부분급여 전면 실시

현재 차상위계층에 대한 지원이 전무한 상태에서, 이들 계층의 생활상의 곤란을 해소하고 최빈곤계층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함은 물론 나아가 자립기반을 강화하고 스스로의 자활능력을 고양함으로써 탈빈곤계층이 될 수 있도록 의료급여 등 필요한 부분에 대한 선택적 부분급여를 적극적으로 실시한다.

(핵심추진사업)

○ 차상위계층 부분급여 실시

○ 차상위계층에 대한 정기적 조사 실시

3. 빈곤가족에 대한 자립기반 확충 사업 전개

모부자가정 등 빈곤가족의 자립를 도모하는 동시에 아동의 양육부담을 사회화함으로써 저출산·여성경제활동율 저하 경향을 방지한다. 현재 세계적인 추세로 인정되고 있는 ‘빈곤의 여성화’를 억제하기 위하여 사별, 이혼, 가출 등으로 야기되는 모부자가정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대책을 강구한다. 또한 저출산 현상의 심화, 여성경제활동율의 저하, 노령사회로의 급속한 진전 등 우리사회의 인구구성에 있어 매우 심각한 불균형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는 점을 감안, 이들 가족 구성원의 부양 및 양육부담을 가족에게만 맡기는 기존의 정책방향을 탈피, 이러한 부담을 사회화하는 의미의 아동수당의 신설 및 서비스의 확대를 꾀한다.

(핵심추진사업)

○ 저소득모부자가정에 대한 지원 확대

○ 빈곤가족·아동을 위한 사회복지서비스 확대

○ 아동수당의 도입

○ 영유아보육비 지원대상의 확대

4. 공공보건의료 기반 조성을 통한 신빈곤의 예방

국민의 기초적인 보건과 의료보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고 공공보건의료체계를 선진적으로 구축한다. 보건의료 예산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낮은 상황에서 국민의 보건 및 의료의 공적 책임이 매우 약화되는 현실을 타개하고 국민건강권을 보장하도록 적절한 예산이 시급히 확보되어야 함은 물론 또한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도 정착을 위해 적절한 국가예산이 확보되어야 한다.

(구체적인 핵심추진사업)

○ 공공보건의료 기반확충 및 강화

○ 도시지역 보건지소 설치

5. 비정규직 및 실업자대책으로서의 사회적일자리 적극 창출

중장기실업자, 여성 등 노동시장 진입이 어려운 조건의 사람들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의 참여폭의 확대와 이 대한 예산확충이 필요하다. 자활사업의 참여대상자의 한계, 단기적 공공근로 사업의 한계를 뛰어 넘어 사회적 일자리로 안정화시킬 수 있도록 참여계층을 장기실업자와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일정비율의 일반노동자로 확대하는 한편, 이들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시행할 수 있는 인건비와 사업비 및 부대경비를 확대한다.

(중점추진사업)

○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 확대

6. 복지인프라의 강화를 통한 신빈곤정책의 충실한 이행 보장

복지제도와 정책 이행의 내실은 결국 복지전달체계와 인력의 전문화와 합리화에서 비롯되므로 복지인프라의 확대 및 충실화를 달성해야한다. 지역사회내 사회복지대상자의 적극적인 보호와 충실한 관리를 위해 사회복지사무소 등 공공 복지전달체계를 개편하는 한편, 민간 부문의 종사자들에 대한 현격한 저임금 구조를 해소하여 전문인력의 유입과 서비스 수준의 향상을 꾀한다.

(중점추신사업)

○ 공공복지전달체계 개선

○ 민간복지인력 보수의 현실화

위의 14개 핵심추진사업에 대해 <표>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모두 5조 1,706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며, 실제로는 4조 8,578억원의 추가예산배정이 요구되는 바이다.

이로써 신빈곤대책예산에 대한 공은 국회로 넘아갔다. 지금까지 국회는 예산의 편성기능은 상실한 채 심의기능에 안주하고 있으면서도 그 심의기능조차 당리당략과 지역구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용도로의 악용을 일삼아왔다.

그럼에도 총선을 앞둔 올해 정기국회에서 신빈곤대책예산의 반영에 대한 기대는 다른 해에 비해 조금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선심성예산 퍼주기가 아닌 민생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며 한국의 사회보장정책이 갖는 중요성을 인식한 결과이기를 바란다.

<표> 시민사회진영이 국회에 청원한 2004년 신빈곤대책 사업과 예산액

표없음
이태수 /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
2003/11/10 00:00 2003/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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