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을 통해 보이고, 들리는 세상은 ‘억’소리가 절로 난다. 카드 빚에 아파트 벼랑으로 내몰리는 아이들과 엄마의 이야기가 기사화되어 무너져 내리는 서민생활에 대해 조금이나마 관심이 가는가 했더니, 정치권의 대선자금으로 수백 억원이 회자되면서 단돈 몇 만원에도 가슴 졸일 수밖에 없는 서민들의 마음을 허망하게 만들고 있다.

한정된 생활자금에 허덕이다 현금서비스로 근근히 돌려 막던 생활도 카드회사의 긴축재정으로 신용불량자가 되기 허다하고, 설마 아직까지 존재할까 하는 산동네, 달동네에서의 삶은 막바지 주택개발정책으로 길바닥으로 내몰리고, 유일한 생활 기반이었던 노점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공무원들의 책임감 넘치는 발길에 채이고 있다.

한편에서는 아파트 프리미엄만으로도 몇 달만에 수억원을 벌어들이고, 서울 어느 곳의 아파트는 평당 수천만원으로 우리 서민들의 집한 채 값이라 한다. 서민들의 생활에 빛이 되는 것이라고는 당첨률이 몇 억분의 일이라는 로또복권 뿐인 것 같고, 그러한 속에서도 희망을 얘기하는 것은 어쩌면 알맹이 없는 호두알을 던져주는 것이 아닐까.

헌법에 엄연히 존재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진정한 행복추구권으로 만들려면 가장 먼저 바닥으로 내몰리고 있는 서민들의 정서를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서민들이 마음 놓고 휴식을 취하고 가족들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집을 마련해야 한다. 서민들이 바라는 집은 수십 층의 시설 좋은 아파트가 아니어도 좋다. 그저 추운 겨울 가족들과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는 곳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택공사 같은 공공기관에서 먼저 나서서 서민들을 위한 임대아파트 제공 물량을 늘려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물가가 안정되어야 한다. 국내소비량은 사상 최저인데 비해 해외소비량은 오히려 늘어나 소비량에서 사상 최대의 적자폭을 나타낼 수밖에 없는 상황은 늘어날 줄 모르는 서민들의 호주머니와 줄어드는 법을 모르는 부자들의 값비싼 지갑에서 시작된 결과이다. 만 원짜리 한 장이 제 값을 치르지 못하는 시장에서는 서민들의 생활이 나아질 수 없다. 싱싱하고 맛좋은 국산 농산물과 해산물 대신 값싼 농약과 방부제로 무게가 더해진 수입산 농산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서민들의 상황에서는 시장물가 안정이 필수적인 것이다.

세 번째로 필요한 것이 빈곤세습을 방지하기 위한 교육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부자들은 자녀들의 대학입학을 위해 수천만원짜리 과외도 없어서 못하는 정도이고,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기부입학 등으로 이제는 돈만 있으면 대학도 마음대로 갈 수 있게 되려나 보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자리가 뒤집혀 서민들의 자녀는 사교육을 받지 못해 대학에 가지 못하는 사회이다. 이제는 이렇게 뒤집힌 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 자녀 교육 때문에 가족들을 이민 보내고 쓸쓸히 죽어 가는 기러기 아빠들의 애환까지 담아낼 때만 교육정책이 제대로 서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실업과 빈곤에 대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30, 40대의 명예퇴직자와 졸업 후 바로 실업자의 이름으로 아까운 시간을 버려야 하는 청년들을 위한 실업정책과 저소득빈곤층을 위한 자활정책, 그리고 노인과 여성에 대한 종합적인 사회복지정책을 보다 현실적이고 실천적으로 개선, 발전시켜야 한다.

2004년은 초반부터 총선으로 술렁거릴 것은 불 보듯 뻔하지만 이번에야말로 정당하고, 깨끗하게, 그래서 이후에 내 손으로 당선시킨 지도자가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그런 선거를 치뤘으면 한다. 더 이상 서민들이 선거에 당선되기 위한 하나의 도구나 기획상품으로 놀아나는 것은 막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선거가 지나면 지날수록 서민들의 마음속에도 정치인이 따뜻한 한 켠을 차지할 수 있어야 한다. 2004년에는 더 이상의 ‘억’소리가 없어야 한다. 새해 서민, 가난한 사람들의 고향 가는 길이 양적으로 풍성해지지는 못하더라도 마음만은 푸근하고, 넉넉한 살맛 나는 길,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영준 / 한국자활후견기관협회장
2004/01/10 00:00 2004/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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