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7일 오후 2시 ‘조건부신고복지시설 생활자 인권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보건복지부 시설 담당자들과 면담을 가졌다. 이번 면담은 최근 문제가 되어온 성실정양원(경기도 양평군)과 은혜사랑의집(충북 연기군)에서 벌어져 온 생활자 인권유린에 대한 복지부 차원의 근본적이고 책임 있는 대처를 촉구하기 위한 것. 이날 면담에서 공대위는 『민관합동으로 조건부신고생활시설1)에 대한 실태조사를 심도 깊게 실시』하고 이를 토대로 『미신고시설 양성화 대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면담에 나온 문진웅서기관(정신보건과)과 김기남사무관(복지정책과)은 자신들이 정책결정권이 없으며 공대위의 요구사항을 수용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거부의사를 밝혔다. 공대위는 12월 22일 대책회의를 통해 이날 면담결과를 수용할 수 없으며 복지부장관면담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앞서 지난 11월 26일 공대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외부와의 철저한 단절 속에 두 개 시설에서 벌어져 온 폭력과 감금, 종교 강요, 치료 거부 및 강제투약, 사생활침해 등 참혹한 인권유린 현실을 고발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마련을 복지부에 촉구해왔다. 공대위의 요구에 대한 복지부의 입장은 이렇다.

"첫째, 보건복지부는 민간단체와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성실, 은혜 양 시설에 대해 정확한 조사를 실시하고 책임자 처벌 등 조속한 시일 내에 사후조치 할 것"

이에 대해 정신보건과 문진웅 서기관은 “이미 공대위의 실태조사를 통해 밝혀진 문제에 대해 수사의뢰를 했으니, 경찰의 수사 결과를 보고 추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또 성실정양원과 은혜기도원의 조치결과에 대해 “성실정양원은 11월 17일 대책회의를 통해 12월 20일까지 시설현황을 보고하고 생활자에 대한 정신과 전문의 진단서 제출을 요구했으며 보고내용에 따라 사후 조치할 것이다. 은혜기도원은 징벌방을 폐쇄하고 공중전화를 설치하는 등 시설환경을 개선하고 있다”고 밝혀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시설구조를 염두에 두지 않고 시설장의 보고에 의존하고 있는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에 대해 공대위는 “당사자는 의사 얼굴 한번 보지 못했는데 130여명이 넘는 시설생활자들에 대한 진단서가 일괄적으로 발부되는 상황이다. 시설장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한 것은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조치이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 정부차원에서 진단팀을 꾸려 책임 있는 진단을 실시하여야만 제대로 된 진단이 가능하며 무엇보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하루라도 빨리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방법”임을 거듭 강조했다. 또 “현지 경찰에 확인해보니 아직까지 수사방향을 잡고 있지 못하고 난감해하고 있으며 시설 인권침해 현장을 알려낸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시설 내 생활환경은 개선된 바 없고, 오히려 성실정양원측은 조사단 측에 내용증명을 보내와 법적조치를 하겠다며 잘못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차원에서 정책의지를 가지고 접근할 때라야 제대로 된 법집행이 가능하다.”고 복지부가 보다 책임 있게 임해줄 것을 촉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공대위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필요한 상황에서‘절차’만을 따지고 있는 복지부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둘째, 보건복지부는 2003년 12월에 실시예정인 조건부 사회복지시설 실태조사를 민간단체와 공동으로 조사할 것"

이에 대해 복지정책과 김기남사무관은 “이번 실태조사는 양 시설의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에 계획된 것으로 민간과 공동조사할 계획이 없다. 또 시ㆍ군ㆍ구로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내부지침을 하달했으며, 보건복지부의 별도 계획에 따라 지역별 조건부시설 샘플조사를 거의 마쳤다. 조건부 시설에 대한 전수 조사는 각 시군 담당자들이 해야 할 고유 업무다. 앞으로 시설발전위원회(가칭)를 민간의 참여하에 구성할 계획이므로 향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 공대위는 “이미 11월초부터 복지부에 공동조사를 제안했으나 아무런 답변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해오다 이제 와서 조사가 다 끝나가니 할 수 없다는 입장에 대해 의지가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복지부가 실시했다고 하는 샘플조사도 해당 시ㆍ도에서 추천한 시설을 다녀오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조건부신고시설의 열악한 현실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생활자들의 인권현실을 파악하기에는 부적절하며, 지역사회중심의 탈시설화가 필요한 상황에서‘시설발전위원회’를 구성하여 시설에 대한 지원을 늘리겠다는 의도도 이해할 수 없다.”며 아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시설이라도 공동으로 조사해보자는 수정제안을 했으나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셋째, 보건복지부는 미신고 사회복지시설 양성화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것"

이와 관련하여 공대위는 구체적으로 복지부가 양성화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기 위한 공청회 등을 개최하여 우선 그 동안 지적되어온 문제점과 대안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자리를 마련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복지부 김사무관은 향후 ‘시설발전위원회’가 구성되면 그 안에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올해 안에 이를 진행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넷째, 조건부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보다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

이날 면담에서는 ‘성실’과 ‘은혜’ 두 개 시설에 대한 대책과 조건부신고시설에 대한 공동조사 등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과제 중심으로 논의하면서 별다른 복지부 입장을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공대위가 생각하는 조건부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은 다음과 같다.

ㆍ 정신장애인의 의료비 경감대책은 공공의료체계에 의해서 세워져야 한다

ㆍ 알코올중독자의 치료와 재활을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ㆍ 알코올중독자와 정신장애인 그리고 정신지체인을 위한 사회복지시설은 반드시 분리, 운영되어야 한다

ㆍ 미신고 사회복지시설 양성화정책 속에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 종사자 그리고 운영자에 대한 인권교육 실시를 포함하는 등 인권침해 방지대책을 세워야 한다

ㆍ 대형화, 폐쇄형으로 가는 추세를 막기 위해 사회복지시설의 소규모화를 지향해야 한다

ㆍ 조건부 사회복지시설 양성화정책의 대상에 사회복귀시설(중간시설)을 포함하고, 적용 대상을 보다 확대되어야 한다

ㆍ 보건복지부는 시설운영자 중심에서 시설생활자 중심으로 정책방향을 전환해야한다

"성실과 은혜 두 개 시설의 인권유린은 구조적 문제, 강력한 정책결단 없이 해결 안돼"

이상의 면담결과에 대해 22일 공대위는 대책회의를 통해 보건복지부의 안일한 대응에 대해 전면적인 거부의사를 밝히고 복지부장관면담을 통해 보다 책임 있는 답변과 정책의지를 촉구하기로 하였다. 또 복지부차원에서 미신고시설 양성화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한 재검토 자리를 마련하지 않으나, 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공대위차원에서 『조건부신고생활시설에 대한 토론회(가칭)』를 조속한 시일내 개최하기로 하였다. 공대위는 두 개 시설의 최근진행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양평군과 연기군을 재방문하기로 결의하였다.

성실정양원과 은혜사랑의 집에서 벌어져온 생활자에 대한 인권침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누구도 그곳에 들어가서는 자유로운 인간임을 거부당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논하는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일이 아직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우려스럽게도 두 개 시설에서 벌어져온 ‘인권유린’은 그 동안 수없이 문제제기가 이루어졌으나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 부재와 무관심 속에 덮어져왔다. 공대위는 “이번 사안이 단지 두 개 시설에서의 문제만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이며 더 이상 시설에서의 참혹한 인권유린현실을 덮어둘 수 없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정부의 책임 있는 태도와 강력한 개선의지를 다시 한 번 촉구하는 바이다.

--------------------------------------------------

1) 보건복지부는 2001년 미신고복지시설의 열악한 운영실태와 인권 문제등을 개선하기 위해 『양성화정책』을 발표했다. 양성화정책은 사회복지사업법에 의한 신고기준에 미달하는 미신고복지시설에 대해 2005년 7월 31일까지 신고시설로 전환할 것을 약속하고 조건부로 신고를 받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조건부신고시설은 “미신고복지시설 양성화정책”에 의해 조건부 신고를 한 시설을 말하며 복지부의 관리지침에 의하면 신고시설에 준하여 관리감독을 받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복지부는 이들 조건부 시설에 대한 심층적인 실태파악을 하고 있지 못하며, 지원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에서도 수용인원과 시설면적 등 물리적 상황만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오히려 시설의 대형화를 부추기고 있고 실질적인 운영상황, 생활자 만족도 등을 고려하고 있지 않은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박숙경 /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팀장
2004/01/10 00:00 2004/01/10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Welfare/trackback/12643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