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강남구 자곡동의 김모씨. 여느 민원인과는 달리 일단 관련 자료를 보내겠다고 간단히 전화를 끊었다. 11월말일 경 등기우편이 도착하였고, 내 손에 우편물이 도착한 지 몇 분되지 않아 김씨에게서 재차 전화가 왔다. 자료를 검토해 보았냐는 것이다. 꼭 검토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이후 김씨는 내게 자주 전화를 한다. 본인이 제기한 민원의 처리결과를 계속 보고(?)해 주겠다고 한다.

솔직히 시민단체 간사로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경찰도 기자도, 공무원도 아닌 시민이다. 그 중에서도 민원인(?)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여러 기관을 전전하다 보니 분과 한이 쌓여있을 대로 쌓여 있고, 그러다보니 해결의 빌미를 찾기 어려운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두려움이 존재한다. 자료를 뒤적여 보았다. 그런데 김씨의 사연은 남달랐다.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민원은 거의 해결되어 가는 상황이었다. 남은 것은 제도개선. 제도개선의 요구도 본래의 민원에서 가지치기를 거듭하였고,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 전형적인 공익형이었다. 게다가 참여연대의 주장과 일치한다. 이 정도가 되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반가움마저 든다.

김씨가 문제제기를 시작한 것은 선택진료(특진)의 문제였다. 아주대병원에서 선택진료의사에게 진료를 받았으나 3회 차 진료부터는 선택진료 의사가 아닌 전공의가 시술하였음에도 선택진료에 해당하는 추가비용을 냈다는 것이다. 김씨는 우선 이 비용의 환불을 요구하였다. 이에 이어서 아주대병원의 해당과에는 선택진료를 하는 의사 단 한 사람만 있어 사실상 ‘선택’이 불가능한 선택진료였다는 점, 선택진료에 관한 규칙에는 병원측이 선택진료를 행하는 의사와 경력, 추가비용 등에 대해 환자들이 볼 수 있도록 게시하여야 하는데 이를 행하지 않은 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였다. 김씨는 일반적으로 환자들이 선택진료의 실상에 대해 잘 모르고 있고, 이를 복지부와 시민단체가 적극 홍보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선택진료를 하게되면 진찰비 뿐 아니라 입원료 20%, 검사료 50%, 마취료 100% 등 각종 검사와 처치에도 20~100%가량 추가비용이 청구된다는 것을 환자들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씨의 권리찾기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차트 및 영상자료 필름복사시 진찰료가 청구되었으나, 진료기록사본발급지침에 따르면 의사의 상담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 별도로 진찰료를 징수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으니, 병원측이 이를 환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선택진료 의사가 아닌 전공의가 행한 진료에 해당하는 비용 4만5,892원과 진료기록 사본 발급시 청구된 재진료 10,800원 중 본인부담금을 환급 받았다. 아주대 병원측의 사과도 받아내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이 얻어낸 것만큼 소중한 환자의 승리이다.

김씨가 이런 성과를 얻어내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김씨는 이를 “피 나는 노력”이라고 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민원을 제기하고, 심사평가원이 아주대병원이 정당하였다는 판단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물고늘어져 결국 4만5,892원을 환불받아 냈다. 피 나는 노력을 한 결과로는 결코 크지 않은 금액이고, 당연히 김씨의 목표도 환불만이 아니었다. 결국 김씨는 복지부에 민원을 냈고, 복지부가 2003년 7월 9일동안 아주대병원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하였다고 한다. 김씨는 병원측이 자신 뿐 아니라 다른 환자들에게도 부당한 청구를 하였을 개연성이 있는 만큼, 복지부의 조사결과에 관심을 갖고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서 전국의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복지부에 서한을 보내고 전화를 하는 등의 끈질긴 노력을 하고 있다. 이 정도가 되면 김씨에게 존경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선택진료제가 도입될 당시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지정진료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일어나자 과거 400병상 이상의 레지던트 수련이 가능한 병원에서만 특진이 가능하도록 하였던 ‘지정진료에 관한 규칙’을 폐지하고 2000년 7월부터 특진 의사의 요건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선택진료제도로 변경하였다. 그러나 환자가 실질적인 ‘선택’을 행사하지 못할 우려와 각종 검사와 관련한 추가비용의 지불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제도시행 초기부터 제기된 바 있었다.

김씨가 지적한 선택진료의 고지 문제 역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분명한 내용에 대한 이해 없이 ‘선택’은 불가능하며, 지불한 진료비가 적정한 것인지 역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료기록의 복사와 관련하여서도 의료기관간 협조의 부족이나 진찰료의 부과 등도 지적되어 온 바이다.

그러나 김씨의 경우처럼 문제점을 알게되고, 이를 해결해 가기 위해 규칙을 들춰보고 반박과 재반박을 통해 무장하기 이전에는 병원 측에서 내놓은 진료비계산서에 이의를 제기하기란 쉽지 않다. 문제점을 아는 단계에 접근하기조차 쉽지 않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 최소한 시민단체의 주목이 필요하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촌각의 시간이 아깝습니다. 국가든 시민단체이든 그 누구이든 빨리 국민들에게 사실을 알려 모름으로서 당하는 불이익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 병마에 피폐해진 환자들이 또 다른 피해에 시달리지 않게끔 도와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김씨의 말이다. 역시 시민단체가 가장 두려워하여야 할 존재는 시민이다. 시민들의 삶, 그들의 생각이 시민단체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기 때문이다.
문혜진 / 참여연대 사회인권팀장
2004/01/10 00:00 2004/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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