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동향칼럼 1] 송년회 단상
월간 복지동향/2004 :
2004/01/10 00:00
모처럼 만난 왕년의 ‘정의파’들. 마음은 아직 20대지만 백발은 성성하고 그나마 뭉텅 뭉텅 빠져나간 모습들이 영락없는 중년이다. 책을 들고는 눈 밑에 바로 갖다 대지 못하고 멀찍이 무릎 쪽으로 밀어내면서 초점을 맞추는 모습에 박장대소하면서 서로 웃는다. 속으로는 씁쓸하지만 아직은 사회 중견으로서의 자신감을 내보이기도 한다.
화제도 벌써 아이들 대학가는 문제가 중요한 주제이다. 수능이다, 내신이다 복잡해진 입시제도가 우선 원성의 대상이다. 이미 시작된 7차 교육과정은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도 수월치 않다. 당연히 부모로서의 지도력에 엄청난 손실을 감수하고들 산다. 옛날처럼 마지막 시험 한 방에 인생 역전하던 때가 그리워진다. 이렇게 어려운 관문을 뚫고 원하는 대학에 보내면 또 무엇하나? 문과든 이과든 철이 든(?) 아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 고시준비만 한다는데. 계열에 소속된 아이들이 학과를 선택할 때는 어느 학과를 선택해야 고시공부에 편한지가 첫째가는 기준이라나. 결국 고시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애꿎은 평준화정책도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고... 푸념은 끝이 없다.
정치에 대한 환멸이 폭넓게 공유되면서, 아직도 대통령을 잘 뽑았네, 못 뽑았네 열을 올릴 때도 있지만, 그리 오래 끌지는 않는다. 공범의식이 작용해서일까? 그 대신 언제부턴가 가족모임이나 동창모임에서 복지정책 논쟁이 정치적 화제를 능가하는 기현상이 생겨났다. 아마도 의약분업 파동이 그 분수령이었을 게다. 특히 福선생과 醫선생이 같이 있을 때는 예외 없이 의약분업의 후폭풍을 겪게 된다. “우리 나라에 맞지도 않고, 준비도 안된 의약분업을 시민단체들이 어거지로 밀어붙여 이 모양이 됐다”거나, “시민단체들은 왜 의사들을 도둑으로 모는가?” 등 고전적인 레퍼토리가 반복되고, “종이 아깝게 처방전을 왜 두 장씩 발급해야 하나?” “종업원들 사회보험료 부담 때문에 사업을 할 수가 없다. 비정규직만 쓰는 동네 미용실 아줌마가 부럽다”, “열심히 일해서 건강보험료 많이 낸 사람에게도 진료할 때 자부담을 물리는 것은 무슨 심보냐,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라는 정책적 비판과 대안제시를 거쳐, 급기야는 “힘든 외과의사를 기피하게 만드는 것은 건강보험 탓이다” “우리처럼 사회주의적인 보험제도를 가진 나라가 또 있냐?”는 등 미확인 주장까지 난무한다. 비단 의약분업이나 건강보험 문제만은 아니다. 국민연금도 믿기 어렵고, 일자리가 있어도 기피하는 노숙귀족(?) 문제 등 백가쟁명식 복지론이 만만치 않게 이어진다. 이쯤 되면, 자천 타천 貧者의 대변자로 필마단기 결사 항전을 벌이던 福선생은 중과부적, 빈사상태를 헤매게 된다(“아! 차라리 골프 얘기나 하자고 할 걸.... ”).
부동산과 교육문제에 이어 이제 복지정책도 전국민적 관심사가 된 걸까? 복지정책의 강화된 위상에 위안을 받으면서도, ‘입장(立場)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냉혹한 진리를 실감하는 福선생은 우울하다. 다양한 입장들을 감싸 안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텐데. 이를 위해 큰 방향과 틀을 제시해 줄 역사적 경험과 공감대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해방 50년, 겨우 형식적 민주주의 하나 건지자마자 한꺼번에 밀려든 세계화의 격랑 속에 허우적거리며 경쟁담론이라는 나무토막 하나 붙잡고 구명도생 혼자 살기도 바쁜 것이 진정 오늘 우리의 모습일까? 답답한 마음에 돌이켜보지만 금년에는 별로 신나는 기억이 없다. 작년에는 월드컵도 있었고,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 연말 대선 드라마도 있었는데... 비몽사몽 귀소본능에 몸을 맡긴 福선생 마음이 무겁다.
화제도 벌써 아이들 대학가는 문제가 중요한 주제이다. 수능이다, 내신이다 복잡해진 입시제도가 우선 원성의 대상이다. 이미 시작된 7차 교육과정은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도 수월치 않다. 당연히 부모로서의 지도력에 엄청난 손실을 감수하고들 산다. 옛날처럼 마지막 시험 한 방에 인생 역전하던 때가 그리워진다. 이렇게 어려운 관문을 뚫고 원하는 대학에 보내면 또 무엇하나? 문과든 이과든 철이 든(?) 아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 고시준비만 한다는데. 계열에 소속된 아이들이 학과를 선택할 때는 어느 학과를 선택해야 고시공부에 편한지가 첫째가는 기준이라나. 결국 고시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애꿎은 평준화정책도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고... 푸념은 끝이 없다.
정치에 대한 환멸이 폭넓게 공유되면서, 아직도 대통령을 잘 뽑았네, 못 뽑았네 열을 올릴 때도 있지만, 그리 오래 끌지는 않는다. 공범의식이 작용해서일까? 그 대신 언제부턴가 가족모임이나 동창모임에서 복지정책 논쟁이 정치적 화제를 능가하는 기현상이 생겨났다. 아마도 의약분업 파동이 그 분수령이었을 게다. 특히 福선생과 醫선생이 같이 있을 때는 예외 없이 의약분업의 후폭풍을 겪게 된다. “우리 나라에 맞지도 않고, 준비도 안된 의약분업을 시민단체들이 어거지로 밀어붙여 이 모양이 됐다”거나, “시민단체들은 왜 의사들을 도둑으로 모는가?” 등 고전적인 레퍼토리가 반복되고, “종이 아깝게 처방전을 왜 두 장씩 발급해야 하나?” “종업원들 사회보험료 부담 때문에 사업을 할 수가 없다. 비정규직만 쓰는 동네 미용실 아줌마가 부럽다”, “열심히 일해서 건강보험료 많이 낸 사람에게도 진료할 때 자부담을 물리는 것은 무슨 심보냐,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라는 정책적 비판과 대안제시를 거쳐, 급기야는 “힘든 외과의사를 기피하게 만드는 것은 건강보험 탓이다” “우리처럼 사회주의적인 보험제도를 가진 나라가 또 있냐?”는 등 미확인 주장까지 난무한다. 비단 의약분업이나 건강보험 문제만은 아니다. 국민연금도 믿기 어렵고, 일자리가 있어도 기피하는 노숙귀족(?) 문제 등 백가쟁명식 복지론이 만만치 않게 이어진다. 이쯤 되면, 자천 타천 貧者의 대변자로 필마단기 결사 항전을 벌이던 福선생은 중과부적, 빈사상태를 헤매게 된다(“아! 차라리 골프 얘기나 하자고 할 걸.... ”).
부동산과 교육문제에 이어 이제 복지정책도 전국민적 관심사가 된 걸까? 복지정책의 강화된 위상에 위안을 받으면서도, ‘입장(立場)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냉혹한 진리를 실감하는 福선생은 우울하다. 다양한 입장들을 감싸 안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텐데. 이를 위해 큰 방향과 틀을 제시해 줄 역사적 경험과 공감대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해방 50년, 겨우 형식적 민주주의 하나 건지자마자 한꺼번에 밀려든 세계화의 격랑 속에 허우적거리며 경쟁담론이라는 나무토막 하나 붙잡고 구명도생 혼자 살기도 바쁜 것이 진정 오늘 우리의 모습일까? 답답한 마음에 돌이켜보지만 금년에는 별로 신나는 기억이 없다. 작년에는 월드컵도 있었고,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 연말 대선 드라마도 있었는데... 비몽사몽 귀소본능에 몸을 맡긴 福선생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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