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법 개정의 배경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의 제정은 우리 나라 사회복지 역사에 있어서 한 획을 긋는 커다란 사건이었음에는 분명하지만 설계상의 하자를 안고 출발 할 수밖에 없었다. 기초법이 아래로부터의 입법이었기에 1999년 9월 그 법이 제정되는데는 무수히 많은 반대와 난관이 있었고, 그 결과 기초법은 법제정 추진세력과 반대세력간의 타협의 산물로 설계상의 일부 결함을 지닌 누더기법이 된 것이다. 따라서 법 제정을 추진했던 사람들 중 일부는 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법에 정해져 있는 시행일인 2000년 10월 1일에 시행되지 못하는 일이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적이 있다. 기초법이라는 큰 배를 일단 출항시키는게 중요한 상황이었기에 어느 정도의 하자는 감수해야 했었고, 기초법의 그러한 불안한 출발이 그 배의 설계상 결함을 빨리 고치고자 하는 노력을 지연시켜 온 요인이 되기도 했다.



기초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일부에서 기초법을 “퍼주는 복지”, “놀고먹는 복지”라고 주장하며 ‘근로능력자 가구에게는 보충급여 방식의 생계급여를 주지 말고 정액급여를 주자’는 주장과 심지어 ‘과거의 생활보호법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있어 왔고,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법 개정을 주장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경제난과 그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인 대책으로 인해 기초법의 설계상 결함을 여러 사람이 알게 되었고, 일정 부분 설계 변경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기초법에 주어진 역할은 최후의 안전망인데, 현행법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왔고 그로 인해 여러 주체에 의해 법 개정을 추진하게 만든 것이다.



2003년 7월 인천 손모씨 가족 4명의 동반자살(혹은 타살) 등 일련의 생계형 자살 사건의 발생은 우리 사회에 빈곤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었고, 참여연대가 중심이 된 시민사회단체의 정부에 대한 빈곤대책 요구로 이어졌고, 이러한 것들이 기초법 개정의 움직임을 만들어 낸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기초법 개정은 3명의 여야 국회의원과 참여연대에서 추진하였는데, 김황식 의원(한나라당)이 가장 먼저(8월 20일) 개정안을 발의하였고, 이어 9월 15일에 이원형 의원(한나라당)이 발의하였는데, 이 두 개정안의 경우 법안의 내용이나 법개정 작업이 나머지 두 개정안과 별도로 독립적으로 이루어 졌다. 참여연대는 9월 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국회의원과 보좌관을 대상으로 하는 정기국회 정책 브리핑을 실시할 때 ‘기초법 개정의 필요성과 방향’을 한 주제로 삼아 참여연대의 기초법 개정(안)을 소개하였고, 10월 29일 개정안을 청원하였다. 참고로 김명섭 의원(열린우리당)의 법 개정작업은 참여연대의 입법청원안의 내용을 주로 참고로 하여 이루어 졌다.

2. 법 개정의 내용 및 쟁점

가장 먼저 발의한 김황식 의원의 개정안은 차상위계층까지를 수급권자로 하는, 다시 말해서 수급자를 확대하는 내용만 포함되어 있고, 이원형 의원의 개정안에는 부양의무자의 범위를 축소하는 안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최저생계비의 결정을 좀 더 합리적으로 할 수 있도록 주거유형별, 가구유형별로 최저생계비가 계측되고 적용될 수 있도록 하고, 다음연도 예산에 구애받지 않고 최저생계비가 결정될 수 있도록 발표일을 9월 1일로 변경하며, 계측 주기는 현행 5년에서 3년으로 변경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실제 생활은 수급자와 비슷하지만 정부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차상위계층(비수급 빈곤층 포함)에 대한 지원으로서 의료급여의 50% 수준의 지원을 시행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네 가지 개정안중에서 참여연대의 개정안이 가장 많은 내용의 개정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부양의무자 범위의 경우는 이원형 의원과 동일하지만, 간주부양비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실제 부양하지 않아도 부양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여 수급신청자를 탈락시키고 있는 현행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도이고, 실제 부양하는 금액만을 파악하여 수급신청자가구의 소득에 포함시키는 안이다. 둘째 불합리한 재산기준의 개선을 위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 일정수준이상의 재산의 경우 소득으로 환산하여 소득에 합산하게 되어 있는데, 재산에 포함시키지 않는 대상을 확대하고, 환산율을 현실화하는 내용이다. 셋째, 최저생계비를 합리화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원형 의원안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최저생계비의 발표일을 7월 1일로 하고, 계측주기를 2년마다 하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넷째, 참여연대의 개정안에는 다른 안과 달리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인원과 구성을 변경하자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현행 중생보위 구성이 정부와 민간이 동수(5:5)로 구성되어 실제로 정부측의 의도대로, 혹은 예산에 따른 정책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인원을 12인으로 늘리고 구성도 정부 4인, 단체 4인, 전문가 4인으로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법 개정을 통해 수급자 선정기준을 합리화하여도 여전히 비수급빈곤층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여 비수급빈곤층을 포함한 차상위계층에 대한 개별급여가 실시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의료급여의 경우 전면 실시하고, 교육, 자활, 주거급여의 경우 해당되는 대상이 있는 경우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되었으며, 다른 개정안과 달리 주거급여의 내용 변경이 있다. 김명섭 의원의 개정안은 참여연대안중 일부를 수용하고 약간 변경된 수준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커다란 차이점은 부양능력판별기준을 유지하되 현행 안보다는 대폭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고, 차상위계층에 대한 개별급여를 일부만 시행하는 것이 약간 다른 점이다.



보건복지상임위에서는 이상과 같은 4개의 개정법률안을 통합하여 단일안을 마련하였는데, 그 내용은 이원형 안과 유사하다. 차상위계층에 대한 지원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참여연대와 김명섭 의원의 안중에서는 중생보위와 관련된 내용을 받아 들였을 뿐이다. 결국 현행 기초법의 문제인 최후의 안전망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기 어렵게 만드는 수급자 선정의 불합리한 점들을 전면 개정하는 것을 택하지 않고, 극히 일부의 문제만을 완화(부양의무자 범위의 완화)하는 수준에서 법안심사소위로 넘겨지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매우 미흡한 수준의 법개정 대안이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3년 12월 29일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제2소위가 열려 국민기초생활보장법개정안에 대한 심의를 보류하는 결정을 내렸다. 기초법 개정을 저지한 국회 법사위의 이와 같은 결정은 빈곤층의 최소한의 생계보장을 무시한 행위이며, 법사위 역할의 기본도 모르는 월권이다. 부양의무자 범위의 축소는 빈곤의 사각지대에 있는 약 9만9천명의 빈곤층(보사연 추계)에게 최저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현실적인 조치이다. 전문가와 시민단체, 복지부도 부양의무자 범위 축소를 통한 기준 합리화가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기획예산처는 3천억원 가량의 추가예산이 소요된다며 개정에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하였다. 이러한 보류 결정에 대해 참여연대의 반대와 일부 언론에서 그 내용이 기사화되면서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는데, 실제 내용은 보류 결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04년 1월 7일 열린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당초 개정안보다 부양의무자 범위를 축소하는 자구수정이 이루어졌다. 법사위 법안심사2소위에서는 부양의무자 범위를 ‘1촌 이내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로 축소하고자 하였던 개정안에 ‘생계를 같이 하는 2촌 이내의 혈족’을 추가하였고, 그 시행시기도 2004년 7월에서 2005년 7월로 1년을 연기하도록 한 것이다.



법사위 수정안은 개정이 아니라 개악이다. 현재 제도상의 허점으로 인해 무소득, 무능력자인 노인과 아동도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하고 있는 바, 이와 같은 ‘안타까운 탈락자’들을 구제하자는데 법 개정의 목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정안은 문제의 축소는커녕 오히려 가족의 해체를 촉진할 가능성이 높다. 수정안에 따르면 생계를 같이 할 경우에는 부양의무를 부과하고, 생계를 같이 하지 않을 경우에는 부양의무가 없으므로 오히려 조부모와 손자녀, 형제자매간에 가구분리를 촉진시킬 것이 분명하다. 법사위의 수정안은 문제의 깊이와 시급성을 이해하지 못한 미봉책일뿐더러 ‘남의 다리 긁기’에 불과하다. 예산을 이유로 시행시기를 늦춘 것도 문제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최저생계 이하의 생활을 하나 수급자가 되지 못한 빈곤층이 203만명 가량이고, 이 중 25.7%가 부양의무자 기준만으로 수급자에서 탈락하였다고 한다. 더욱 중요한 점은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탈락한 가구의 60.8%가 실제 부양을 받고 있지 못하며, 이 중 24% 가량이 최저생계비의 50%에도 못 미치는 소득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실정을 외면한 채 시행시기를 1년씩이나 연기하는 것은 빈곤층의 문제를 방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뿐이다. 다음 임시국회에서는 최소한 법사위에 상정된 개정안대로 법사위 및 본회의의 심의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표1>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의 비교

표없음

<참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관련 사항 일지

□ 2003년

- 7월 17일 인천 손모씨 일가족 4명의 투신 자살 등 일련의 생계형 자살 사건 발생

- 7월 23일 참여연대 「벼랑 끝 사회, 사회안전망을 점검하자」긴급토론회 개최

- 7월 31일 민주노총, 참여연대, 한국노총, 여연 「신빈곤 해소를 위한 10대 우선 과제 발표 기자회견」

- 8월 4일 보건복지부, '극빈층 긴급보호대책' 발표

- 8월 5일 민주노총, 참여연대, 한국노총, 여연, 「복지부 '긴급보호대책' 한심하기 짝이 없다」제목의 성명서 발표

- 8월 20일 김황식 의원(한나라당)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발의

- 9월 3일 보건복지부 국무총리 주재의 국정조정회의를 열고 차상위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 대책을 발표

- 9월 4일 기초법연석회의(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전국빈민연합, 보건복지민중연대, 사회진보연대, 장애인실업자종합지원센터, 최옥란열사추모사업회(준), 한국빈곤문제연구소), 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회의, 참여연대,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자활후견기관협회, 「복지부의 '빈곤한' 빈곤대책에 대해 청와대가 직접 답하라」성명서 발표

- 9월 15일 이원형 의원(한나라당)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발의

- 9월 19일 참여연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대상 정기국회 정책 브리핑 실시(제2주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의 필요성 및 방향)

- 10월 29일 참여연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아동복지법, 영유아보육법 개정청원」기자회견

- 10월 30일 보사연, 「부양의무자기준 개선방안 공청회」개최

- 11월 7일 김명섭 의원(열린우리당),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발의

- 11월 20일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세상네트워크, 경실련, 민주노총, 참여연대, 한국노총,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건복지 개혁을 촉구하는 연속공개서한의 첫 번째로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하십시오!」라는 제목의 공개서한 발송

- 12월 17일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 병합심의 --> 일부 수정ㆍ통과

- 12월 17일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 상정 --> 통과

- 12월 29일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 제2소위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에 대한 심의 보류를 결정.

- 12월 30일 참여연대, 「빈곤층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무시한 법사위 월권행위에 분노한다」제목의 성명서 발표

- 12월 30일 한겨레 신문, 기초생보법 개정안 법사위 ꡒ예산없다ꡓ 제동 기사

□ 2004년

- 1월 5일 조선일보, 「10만명 빈곤 노인ㆍ어린이 생계 지원 무산-예산당국ㆍ국회 반대로 부양의무자 축소안 폐기 "정당지원금ㆍ지역구 사업예산은 늘리면서…"」제목의 기사 게재

- 1월 7일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재심의. 당초 개정안보다 부양의무자 범위를 축소하는 자구수정이 이루어짐. 시행시기도 2004년 7월에서 2005년 7월로 1년을 연기.

- 1월 8일 예정되었던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가 열리지 않아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함.

- 1월 9일 참여연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필요성에 대한 국회의 몰이해 - 2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원안대로 통과시켜야.. 권한범위 넘어선 법사위 수정대안 인정할 수 없어」 제목의 성명서 발표

- 1월 9일 한겨레 신문, 법사위 기초생보법 개악 기사

- 1월 11일 조선일보, 「가족해체 조장하는 빈곤대책 - ꡒ손주와 따로 사는 조부모만 생계지원" 빈곤층 지원법 개정안 시행시기도 1년 미뤄」 제목의 기사 게재

- 1월 26일 중앙일보, 「황당한 의원입법…선심법안 쏟아져?」제목의 기사에서 김명섭 의원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선심성 법안에 포함시킴.
허 선/ 순천향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04/02/10 00:00 2004/02/10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Welfare/trackback/12657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