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국민연금법 개정과 소위 ‘국민연금 파동’으로 불리는 99년 4월 도시지역 자영자 연금 확대시기에 연금문제는 언론의 핫 이슈 중의 하나이었다. 당시 국민연금법 개정과 관련된 언론 보도는 심하게 표현하면 ‘의도적인 국민연금 때리기’로 오해받을 수 있을 정도의 상당한 ‘오보’가 존재하고 있었다.1) 그러나 2003년의 국민연금법 개정과정을 둘러싼 언론보도에서 나타난 긍정적인 측면은 적어도 98-99년의 오보 투성이 기사가 대부분 사라졌다는 것이다. 대신 2003년에 나타난 특징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각 언론사별로 연금개혁의 방향에 대한 입장이 확실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며, 관련 기사들도 대체적으로 그런 입장을 반영하여 배치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2003년 정부가 발표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의 골자는 첫째 급여수준 인하와 보험료율 인상 방안, 둘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상설화 문제이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상설화 문제는 위원회의 관할권을 놓고 복지부와 경제부처가 줄다리기를 하는 가운데 대부분의 언론의 논조는 어느 한쪽 편을 들기보다는 주로 부처간 ‘밥그릇 싸움’이라는 측면에서 비판이 이루어졌다(예를 들어 조선일보 2003년 9월 4일자 사설, ‘국민연금관리 안정성 앞세워야’). 따라서 이 쟁점에 대해서는 언론사간에 특별한 입장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고 주로 정부의 정책혼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주류를 이루었다.

2003년의 연금관련 보도에서 가장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더 내고 덜 받는다’는 연금법 개정안을 상징하는 각 언론사들의 표제어이었다. 이 표제는 보수와 개혁, 신문과 방송을 불문하고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국민연금법 개정의 핵심을 담는 것으로 사용한 용어이다. 연금액을 인하하고 보험료율을 인상한다는 정부의 연금법 개정안의 내용을 ‘더 내고 덜 받는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과연 이 용어가 공적연금으로서의 국민연금의 본질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용어인가에 대해서는 상당한 비판의 소지가 있다. 오히려 국민들에게 공적연금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이 높은 용어이다. 우리 나라의 국민연금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시행되는 공적연금제도의 본질은 ‘노인의 세대간 부양’에 있다. 즉 공적연금은 젊은 세대가 만든 경제잉여가 비경제활동 인구인 노인에게 이전되는 소득이전 메커니즘이다. 공적연금이 없었다면 자식이 노인에게 용돈을 주는 방식을 통해 당연히 가족단위를 통한 소득의 세대간 이전이 일어났을 것이다. 현재의 노인들이 젊었을 때 부모들을 부양한 것처럼 현재의 젊은 세대는 노인들을 부양할 의무가 있다고 볼 때 국민연금 보험료는 당연히 노인부양비를 다른 방식으로 부담하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더 내고 덜 받는다’는 표현은 노인부양에 대한 ‘세대간 연대’라는 공적연금의 본질을 개인이 낸 보험료와 앞으로 타게 될 보험료를 단순하게 비교하여 세대간 연대를 개인주의적 차원으로 바꾸어 놓게 된다. 결국 공적연금제도에 대한 본질을 상당히 왜곡시키는 역작용이 발생하는 용어이다. 따라서 ‘더 내고 덜 받는다’는 표현은 공적연금의 개혁 방향을 포착하는 용어로서는 적절치 않은 용어라고 볼 수 있다.

언론사간에 연금보도에 관한 입장의 차이가 나타난 것은 급여 및 보험료 수준 조정에 관한 쟁점이었다. 정부가 연금개혁안을 발표한 이후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났다. 주로 노동계와 시민단체에서 나온 반응은 연금액 인하가 국민연금을 ‘용돈 연금’으로 만들 것이라며 연금액 인하에 반대하는 것이었으며, 경영계와 경제부처 등은 미래에 닥칠 기금고갈을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며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정부 개혁안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 신문은 한겨레와 문화일보이었으며, 중앙일보, 조선일보는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한겨레의 경우는 정부 개혁안에는 ‘서민이 없다’는 사설을 통해(한겨레, 2003년 8월 18일) 국민연금이 서민층의 노후생활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비판하였으며, 문화일보 역시 정부개정안이 사회안전망의 시각이 없다는 점을 비판하였다(문화일보, 2003년 8월 19일 사설). 두 신문은 관련 기사에서도 대체적으로 이런 시각을 반영하였다. 즉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개혁’이 아닌 ‘개악’ 쪽에 가깝다는 시민단체와 노동계의 의견에 가까운 것이었다. 개혁성향의 신문으로 볼 수 있는 경향신문의 경우는 약간 다른 입장에서 정부의 연금개혁안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반면, 정부의 개정안을 ‘개혁’으로 평가하면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것은 중앙일보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중앙일보는 정부의 연금액 50% 인하 방안이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과의 협의에서 55%로 올라가자 ‘개혁의 후퇴 조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비판했으며, ‘국민연금 개혁 역행하지 말라’는 사설을 통해(2003년 7월 18일) 정부가 원안대로 연금개혁을 진행할 것을 요구하였다. 개혁의 논리로는 후세대 부담의 과중과 연금기금고갈이 미칠 영향을 언급하였다. 조선일보 역시 중앙일보와 동일한 논조를 견지하였다. 조선일보는 ‘국민연금 개혁은 정직하고 당당하게’라는 사설을 통해(2003년 7월 21일) 정부안이 정치적인 논리로 후퇴되어서는 안되며, 후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연금액 인하가 정당하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두 신문은 한겨레와 문화일보와는 달리 2003년 11월 경제학자 302인이 정부의 연금개혁안이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였을 때 이를 매우 비중 있게 보도하는 태도를 보였다.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심의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비판에서도 단연 중앙일보가 선두에 섰다. 중앙일보는 ‘파탄 뻔한 연금체계 왜 안고치나’(2003년 12월 24일 사설), ‘표 떨어질라 연금은 안고쳐’ 등의 기사와 기명 칼럼을 통해 연금개혁을 진행하지 않는 정치권을 질타하였다. 이런 입장은 ‘표계산에 연금법 개정도 밀려서야’(조선일보, 2003년 12월 25일), ‘표 얻자고 국민연금 위기 키워서야’(동아일보, 2003년 12월 25일) 등 두 신문에서도 유사한 논조로 나타났다. 경향신문도 ‘국민연금 우선 살려놔야 한다’는 사설을 통해(2003년 12월 25일) 연금법 개정 연기를 비판하였다. 그러나 한겨레와 문화일보는 이런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연금개혁에 대한 이러한 언론의 입장의 차이는 세계적으로도 연금개혁에 대한 방향이 신자유주의적 개혁 방향과 사회복지적 개혁방향이 대립되고 있는 상황에서 별로 놀라운 것이 아니다. 결국 국민연금을 세대간 부양이라는 공공제도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인가 아니면 사보험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입법안을 개혁으로 인식하는 언론들이 정부안이 가져올 노후소득보장의 약화라는 측면에서 대해서는 상당히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점은 비판의 소지가 충분하다. 정부안에 반대하는 논리와 근거에 대한 좀 더 충실한 소개가 있어야 했다.

최근에 국민연금관련 기사 중 가장 눈에 거슬리는 기사는 ‘국민연금 원금도 못받는다’는 조선일보의 2003년 8월 16일자 일면 톱기사이다. 조세연구원의 한 보고서를 인용한 이 기사는 대통령의 8ㆍ15 경축사를 몰아내고 일면 톱의 위치를 차지했는데, 누가 보아도 다분히 감정적인 대응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몇 가지 가정을 근거로 작성된 보고서의 내용이 타당한지에 대한 검토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당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제목을 톱으로 뽑는 것은 전문가들조차도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이었다.

98년 연금관련 보도와 비교할 때 매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 기사도 있었다. 일정한 편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앙일보가 3월부터 5월에 걸쳐 특집으로 기사화한 ‘국민연금 대해부’, 그리고 연합뉴스에 9월에 10여회의 특집으로 송고한 ‘세계의 연금개혁’은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들에게도 연금문제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동아일보에서 국민연금기금과 관련된 특집을 제공한 것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연금기금운용 문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기여하였다.

전반적으로 보면 2003년의 연금개혁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과거에 비해 보도의 질이 높아진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언론사별로 연금개혁 방향에 대한 입장의 차이를 뚜렷하게 나타난 것도 하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입장을 너무 강력히 반영하는 일부 신문의 지면배치는 공정성과 판단의 자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문제의 여전히 문제를 앉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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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연명, “위험수위를 넘어선 국민연금 오보”, 『복지동향』1999년 6월호
김연명 /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04/02/10 00:00 200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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