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경제위기의 산물로 표현되는 ‘노숙자’는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사람에서 잘못된 삶을 대표하는 명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지만 약자의 모습을 넘어 부정적인-범죄와 관련되는- 대상으로 등장하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특정한 집단으로 묘사된다. 과거에 ‘거지’로 부리던 사람들이 빈부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21세기 한국에 ‘노숙자’로 다시 등장한 것이다. 이제는 우리 주위에 항상 존재하기에 이들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지 않다. 국가 경제정책의 실패로 등장한 ‘노숙자’가 동정은 고사하고 사회의 희생양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과장일까? 역사적으로 사회의 약자는 늘 있어 왔다. 그리고 권력은 그 구조의 중심 역할을 해 왔다. 인도의 달릿(불가촉 천민), 일본의 부락민, 우리 역사의 백정, 사당패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가난한 백성들이 자신들보다 못한 사람들을 보며 상대적인 우월감을 느끼도록…. 사회의 약자들은 주거, 의료, 노동, 교육의 권리에서 소외되어 악순환을 거듭하며 세습된다. 이렇게 약자는 항상 밑바닥에서 이중의 차별에 고통받는다.

21세기에 처음으로 국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성숙한 사회를 꿈꾸는 21세기에 우리 나라 정치문화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자신들을 포함한 소수의 부를 위해 국민이 준 명예와 책임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정치가들이 오늘 한국정치의 모습이 아니던가? 왕이 누구인지 국민이 모르는 것이 가장 훌륭한 정치라고 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를 숨기려고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좀처럼 사회적인 약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바뀌지 않는다. 오로지 정치적인 부담의 유무에 달려있을 뿐이다.

최근에 자주 노숙자와 범죄의 연관이 일상화되고 있다. ‘노숙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다는 언론의 시각이 이들을 사회에서 배제시키고 있다. 여전히 노숙자를 집이 없는 우리와 같은 이웃인 홈리스(Homelessness)로 보지 않으며, 일하지 않고 역이나 거리에서 술에 취해 있는 우리와 다른 위험한 사람들로 바라본다. 단지 신분을 범죄에 제공하는 악역을 하고 있는 좋지 않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거처할 집이 없고, 집을 유지할 수 없어서 노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처하는 근본적인 접근은 하지 않는다. 정치는 여전히 그들의 문제를 당사자들의 책임 또는 운명(또는 죄과)으로 치부하고 그들의 인권에는 별 관심이 없다.

선거를 바라보며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 정치에 요구한다. 국민의 대표이기 때문에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함을 말해서 무엇하랴마는, 차별 받는 가장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해주기 바란다. 경제파탄으로 인한 신분의 말소, 단신 생활자를 위한 고시원과 독서실의 비정상적인 증가, 주거(주소지)가 없어서 가장 가난한 사람임에도 실제로 적용 받지 못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모순, 실제로 도움이 되지도 않지만 대한민국의 국민이라고 생각하기에 ‘설마’하며 가지고 있는 신분 도용을 통한 범죄 대상화 등 현재 한국의 홈리스들이 당하는 모든 이중적인 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기 바란다.

가난이라는 원인으로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 때문에 사회적으로 차별 받는 것 뿐 아니라,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다는 제도에서조차 제외되는 모순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 총선이 그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홈리스도 모든 사람들처럼 희망을 꿈꿀 권리가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며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당사자’이다.
정은일 목사 / 전국실직노숙자대책종교시민단체협의회 사무국장
2004/03/10 00:00 2004/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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