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문제가, 빈곤의 문제가 사회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언론에 알려지건 알려지지 않건 계속되는 생계형 자살과, 360만의 신용불량자라는 수치의 어마어마함을 가늠해보기 이전에 하루하루 고통의 생활을 지속해야하는 이들의 절박함, 500만에 이른다는 빈곤규모로는 나타나지 않는 수많은 공동체의 해체와 이를 강요하는 사회적 배제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최저생계도 보장받지 못한 채 '너의 생활이 최저생계'라고 강요받고 있는 134만의 수급자와 그나마 수급권에서도 탈락된 400만에 이르는 사각지대 빈곤계층, 360만의 신용불량자, 서울에만 3만 가구가 넘는 단전단수가구와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해 병원조차 가지 못하는 체납자들, 52만원의 최저임금으로 점점 더 가난해지는 상황 속에서도 항상 해고의 위협에 놓여있는 불안정노동자들…. 이들 중 몇 명이나 17대 총선에 관심이 있을까?

빈곤문제를 심심지 않게(그러나 심각하게) 거론하는 언론과 정치권의 태도에는 이야기만 무성할 뿐 어떠한 실천도 존재하지 않는다.

얼마 전 정부는 ‘참여복지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총선용 선심정책이라는 언론의 비난에 대해 ‘준비된’ 계획이었다고 주장하는 정부의 5개년 계획은 구차하기까지 하다. 빈곤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임기응변 식으로 제출되었던 졸속대책들을 이름만 바꿔 하나로 묶어놓은 것이 5개년 계획이기 때문이다. 참여복지 5개년 계획은 빈곤원인에 대한 최소한의 접근이나 빈곤규모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근거도 없이 제출되었다. 누가 어떻게 가난한지도 알지 못한 채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그나마 ‘선심적’이지 않은 계획에 이를 추진할만한 예산확보의 내용은 상실되어 있다.

그러나 ‘계획’이 앞으로 얻을 효과는 적지 않을 것이다. ‘참여’라는 기치아래 다양한 NGO의 포섭과, 그 참여에서 배제되어 있는 빈곤대중의 막연한 ‘기대’와 그 기대에 대한 절망으로 표출되는 분노를 ‘관리’하는 효과가 그것이다. 한 달을 30만원으로(혹은 그것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생계를 유지해야하는 수급자와 한 달에 50만원으로 만족해야하는 노동자들이 선뜻 그것을 포기할 수 없게 하거나 혹은 그만큼이라도 주어지지 않을까 하는 절박한 기대들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편 정부는 개인의 무능력으로 인해 국가경제가 성장하지 못한다는 이데올로기 유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장기적인 복지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계획은 '노동하거나 노동하지 않거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즉,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소외되지 않는' 삶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최소한의 생존적 의미를 넘어 인간다운 삶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은 ‘관리’로서의 복지도, 배제를 전제로 한 ‘참여’로의 복지도 아니다. 이러저러한 정책으로 치환되지 않는 권리로서의 복지는 가난한 이들 스스로가 주체로 나설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총선시기가 되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공약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의 정책제안과 평가가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의 공약 속에도,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의 제안 속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이 빈민대중의 주체적인 요구이다. 여기에 모든 운동진영이 자유롭지 않으며 외면할 수 없는 과제가 존재한다. 하나의 지역과 현장에 국한되지 않는 광범위한 빈민대중을 어떻게 만나고 투쟁을 조직할 것인가, 그 공동의 모색과 실천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총선 이후가 두려운 빈곤계층에게 근거 없는 기대가 아닌 '권리로서의 요구'를 표출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한 계획과 실천이 필요하다.

이제 곧 2주기를 맞게 되는 최옥란열사와 그녀의 투쟁을 다시 기억하며 빈곤을 양산하는 구조에 맞선 투쟁을, 빈곤대중 스스로가 주체로 나서는 투쟁을 조직해야 할 때이다.
유의선 / 민중복지연대 사무국장
2004/03/10 00:00 2004/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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