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비평] 복지언론의 부재 : 피상적인 문제제기, 단편적인 해법
월간 복지동향/2004 :
2004/03/10 00:00
언론의 역할과 기능의 중요성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 언론의 역사와 현황을 보면 참으로 답답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필자가 언론학자는 아니니 대충 각설한다 하더라도, 일단 우리 언론은 지나치게 정치, 경제에 편향되어 있다. 최근에는 문화에 대한 강조도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사회 분야에 대하여는 아직도 여전히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분야에 대한 언론의 행태는 과거 19세기식의 머크레이커(muckraker) 수준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저명인사들의 추문을 들춰냈던 머크레이커들은 사회에 충격과 경각심을 주었고,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나치게 지엽적인 문제에 집착하고 사회의 어두운 면만을 부각시켜 폐해도 컸다. 이제까지 언론은 이런 역할을 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현대의 언론은 문제해결 능력을 가져야 한다. 문제를 들춰내는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언론(solution journalism)으로서 역할을 해 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 언론들은 정치, 경제 등의 영역에 대하여는 나름대로 입장을 피력하고 집요하게 해결책을 주장하고 있지만,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단편적이거나 간헐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대개는 매우 엽기적인 사회현상과 문제를 보도하고 들춰내지만, 정작 이에 대해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문제해결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다. 그 중에서도 사회복지 분야는 더욱 심각하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지배 이후 빈부격차, 생활고 비관으로 인한 자살, 생존을 위한 범죄 등이 급증하고 있는데, 언론은 이에 대해 현상적인 부분에 집착하면서 현상의 흉폭한 부분을 그대로 드러내어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주는 방법을 즐기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점차 이러한 잔혹성에 내성이 생기게 되고, 웬만큼 충격적인 일이 아니면, 이제 매우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거나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것 같다.
또한 최근에도 국민연금법 개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건강가정기본법 제정, 학교폭력예방및대책에관한법률 제정, 참여복지5개년 계획, 장기요양보장제도 도입, 공동모금회의 모금 결산 등 여러 가지 제도와 실천에 대한 쟁점들이 쏟아져 나왔다. 과연 언론이 이에 대해 민감하고 민첩하게 반응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행했는가? 결코 좋았다고 말할 수 없다.
2004년에 들어 와 2월말까지, 주요 일간지들이 사설을 통해 주장한 내용들이 대개 130여 건 내외가 된다. 한 신문이 사설을 대개 3~4개 꼭지를 내보낸다고 볼 때 이런 계산이 나온다. 그 중에서 사회복지문제나 사회복지제도에 대해 언론사의 주장을 피력한 것은 극히 미약하다. 일자리 창출과 정년제 연장 문제는 주로 경제적 사안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그것을 제외한다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의 사설에서는 사회복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고, 동아일보가 “복지는 좋으나, 재정조달은 어떻게”(1월 12일자), “퍼주기 공약으로 경제 살리나?”(1월 21일자)는 제하의 사설을 내보냈다. 여기에서 후자의 사설은 참여복지5개년계획을 선심성 총선공약 수준으로 몰아 부쳤다. 참여복지의 철학과 비전이 부재하다든지, 서로 상이한 이념을 담고 있다든지 하는 비판은 없고, 재정마련에 대한 의견 제시와는 전혀 거리가 먼 사설이었다.
다른 신문들의 경우, 한겨레는 “영유아 공교육법 통과 늦출 수 없다”(1월 7일자), “목포 장애인시설 조례 전국에 확산돼야”(1월 16일자)라는 사설을 게재했다. 전자는 사회복지계와 입장을 달리 하는 내용이었고, 후자는 지방의 개혁적인 조례를 중앙지의 사설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주기도 하였다. 한국일보는 “아동학대, 벌칙 강화하라”(2월 5일자), “노인요양보장은 투자다”(2월 19일자)라는 사설을 실었다. 전자는 사회복지적 예방이나 대책보다는 형사처벌의 절차와 집행을 철저하게 할 것을 주문하였고, 후자는 정부의 계획안에 대해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내용 중에서 공적부조와 사회보험, 서비스 등을 구별하지 못하는 무지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서울신문은 “아동학대 대처가 이리 허술해서야”(2월 5일자), “정부, 국민연금 운용개입 지나치다”(2월 12일자)는 사설을 게재하였다. 국민연금기금이 주식시장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실업문제와 관련하여 문화일보와 국민일보는 1월 7일자 신문에서 각각 “다섯 집에 한 집이 무직 가구”와 “절대빈곤 탈출 공동노력을”이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근로능력이 없는 대상들에게는 복지를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할 의지를 전제로 하는 복지를 강조하였고, 문화일보는 일자리 창출은 쉽게 되는 일이 아니므로 당장 어려운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 복지예산을 지속적으로 늘려가야 한다는 주문을 하였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지금 “우리 이웃을 생각하는 나눔 네트워크(약칭 「우리 이웃 네트워크」)”사업을 지면을 통해 추진하고 있다. 평소 반공주의와 경제성장주의 이데올로기의 첨병 역할을 해 온 조선일보는 반복지적인 사설을 종종 게재해 왔는데, 난 데 없이 나눔 캠페인과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니 흥미롭다. 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보다 민간의 자선활동을 촉구하면서 자신들의 실체를 포장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두고 볼 일이다. 공동모금 실적이나 경향에 대해 분석하고 방향 또는 대안을 제시하는 사설은 찾아 볼 수 없는 조선일보가 민간자원을 동원하고 연결하는 사업을 수행한다니 참으로 그 속을 알기 어렵다.
앞으로 우리 언론의 사명이 복지언론 확립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것은 현상과 사물에 대한 이념과 철학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언론의 깊이와 성숙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의 노력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언론은 문제해결 능력을 가져야 한다. 문제를 들춰내는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언론(solution journalism)으로서 역할을 해 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 언론들은 정치, 경제 등의 영역에 대하여는 나름대로 입장을 피력하고 집요하게 해결책을 주장하고 있지만,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단편적이거나 간헐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대개는 매우 엽기적인 사회현상과 문제를 보도하고 들춰내지만, 정작 이에 대해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문제해결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다. 그 중에서도 사회복지 분야는 더욱 심각하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지배 이후 빈부격차, 생활고 비관으로 인한 자살, 생존을 위한 범죄 등이 급증하고 있는데, 언론은 이에 대해 현상적인 부분에 집착하면서 현상의 흉폭한 부분을 그대로 드러내어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주는 방법을 즐기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점차 이러한 잔혹성에 내성이 생기게 되고, 웬만큼 충격적인 일이 아니면, 이제 매우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거나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것 같다.
또한 최근에도 국민연금법 개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건강가정기본법 제정, 학교폭력예방및대책에관한법률 제정, 참여복지5개년 계획, 장기요양보장제도 도입, 공동모금회의 모금 결산 등 여러 가지 제도와 실천에 대한 쟁점들이 쏟아져 나왔다. 과연 언론이 이에 대해 민감하고 민첩하게 반응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행했는가? 결코 좋았다고 말할 수 없다.
2004년에 들어 와 2월말까지, 주요 일간지들이 사설을 통해 주장한 내용들이 대개 130여 건 내외가 된다. 한 신문이 사설을 대개 3~4개 꼭지를 내보낸다고 볼 때 이런 계산이 나온다. 그 중에서 사회복지문제나 사회복지제도에 대해 언론사의 주장을 피력한 것은 극히 미약하다. 일자리 창출과 정년제 연장 문제는 주로 경제적 사안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그것을 제외한다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의 사설에서는 사회복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고, 동아일보가 “복지는 좋으나, 재정조달은 어떻게”(1월 12일자), “퍼주기 공약으로 경제 살리나?”(1월 21일자)는 제하의 사설을 내보냈다. 여기에서 후자의 사설은 참여복지5개년계획을 선심성 총선공약 수준으로 몰아 부쳤다. 참여복지의 철학과 비전이 부재하다든지, 서로 상이한 이념을 담고 있다든지 하는 비판은 없고, 재정마련에 대한 의견 제시와는 전혀 거리가 먼 사설이었다.
다른 신문들의 경우, 한겨레는 “영유아 공교육법 통과 늦출 수 없다”(1월 7일자), “목포 장애인시설 조례 전국에 확산돼야”(1월 16일자)라는 사설을 게재했다. 전자는 사회복지계와 입장을 달리 하는 내용이었고, 후자는 지방의 개혁적인 조례를 중앙지의 사설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주기도 하였다. 한국일보는 “아동학대, 벌칙 강화하라”(2월 5일자), “노인요양보장은 투자다”(2월 19일자)라는 사설을 실었다. 전자는 사회복지적 예방이나 대책보다는 형사처벌의 절차와 집행을 철저하게 할 것을 주문하였고, 후자는 정부의 계획안에 대해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내용 중에서 공적부조와 사회보험, 서비스 등을 구별하지 못하는 무지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서울신문은 “아동학대 대처가 이리 허술해서야”(2월 5일자), “정부, 국민연금 운용개입 지나치다”(2월 12일자)는 사설을 게재하였다. 국민연금기금이 주식시장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실업문제와 관련하여 문화일보와 국민일보는 1월 7일자 신문에서 각각 “다섯 집에 한 집이 무직 가구”와 “절대빈곤 탈출 공동노력을”이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근로능력이 없는 대상들에게는 복지를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할 의지를 전제로 하는 복지를 강조하였고, 문화일보는 일자리 창출은 쉽게 되는 일이 아니므로 당장 어려운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 복지예산을 지속적으로 늘려가야 한다는 주문을 하였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지금 “우리 이웃을 생각하는 나눔 네트워크(약칭 「우리 이웃 네트워크」)”사업을 지면을 통해 추진하고 있다. 평소 반공주의와 경제성장주의 이데올로기의 첨병 역할을 해 온 조선일보는 반복지적인 사설을 종종 게재해 왔는데, 난 데 없이 나눔 캠페인과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니 흥미롭다. 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보다 민간의 자선활동을 촉구하면서 자신들의 실체를 포장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두고 볼 일이다. 공동모금 실적이나 경향에 대해 분석하고 방향 또는 대안을 제시하는 사설은 찾아 볼 수 없는 조선일보가 민간자원을 동원하고 연결하는 사업을 수행한다니 참으로 그 속을 알기 어렵다.
앞으로 우리 언론의 사명이 복지언론 확립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것은 현상과 사물에 대한 이념과 철학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언론의 깊이와 성숙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의 노력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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