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서

2002년 상영된 영화 ‘오아시스’는 중증의 뇌성마비 장애여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장애여성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인터넷 및 영화 잡지 등 각종 매체에서는 장애여성에 대한 묘사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오아시스’는 영화 그 자체를 떠나, 사람들에게 그 이상의 해석을 갖고 오게끔 만든 영화가 되었다. ‘오아시스’에 대한 장애여성 논쟁을 통해, 이 땅에 존재하는 200만 명의 장애여성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인지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오아시스’를 통해 본 장애여성

이전의 매스미디어에서는 장애여성을 성적인 관계를 접해 본 적이 없는 순결한 천사, 무성적인 어린이, 혹은 미친 여자 등으로만 그려냈으며, 만약 출연한다 하더라도 엑스트라 정도의 역할에 그치는 경향을 보였다. 간혹 조연 및 주연으로 등장했다 하더라도, 보여지는 신체적 손상이 없고 미화된 수화를 사용하는 청각 장애여성이거나 얼굴은 아름답지만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타는 정도의 장애여성만 보여주었다. 하지만 ‘오아시스’는 성적 욕망 및 삶의 욕망을 가진 주체로 장애여성을 표현했다는 점, 그것도 온몸이 뒤틀리는 장애여성을 통해 보여주었다는 점 등에서 이전과는 사뭇 다른 형태를 띤 영화였다.

이러한 영화가 제작되어 대중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은, 90년대를 거치면서 성해방 담론의 확산으로 개개인(특히 여성)이 가지고 있는 사적 욕망을 긍정적으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고, 인권담론의 성장으로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전에 비해 장애여성을 묘사하는 방식이 훨씬 세련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오아시스’는 몇 가지 장면으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다.

‘오아시스’의 초기 장면 중, 남주인공인 ‘종두’가 혼자 살고 있는 장애여성 ‘공주’의 집에 들어가 성폭행하려던 장면과 ‘공주’가 자신을 성폭행하려한 ‘종두’에게 전화해서 집으로 초대한 장면을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즉 ‘오아시스’가 장애여성의 성적 욕망을 드러낸 영화였다고는 하나, 성적 욕망을 가진 주체로 성장하는 중간 매개물로 강간이라는 메타포를 사용함으로서 문제가 된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항상 남성에 의해서만 여성의 성적 욕망이 발현될 수 있다는 믿음, 즉 남성에 의한 강간을 통해 여성이 성적 욕망에 눈떠간다는 설정은 페미니즘 시각에서 꾸준히 문제제기가 이루어지던 것이었다. 특히 장애여성 단체마다 성폭력상담소가 개설될 정도로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오아시스’가 휴머니즘 영화라는 호평을 받으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 장면이 미화될 소지가 있었다.

이에 대해 ‘오아시스’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장애여성을 성폭행하려 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녀를 여성으로 보았다는 증거이며, 사회부적응자인 ‘종두’의 서투른 사랑 표현 방식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공주’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자신을 여성으로 보아 준 ‘종두’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오아시스’와 관련된 장애여성에 대한 논쟁은 성폭력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더욱 확대되었다. 확대된 논쟁은 주로 두 가지에 초점이 맞추어졌는데, 그것은 ‘수동적인 장애여성의 모습’과 ‘비장애 판타지’에 대한 것이었다.

첫째, ‘종두’가 강간범으로 몰려 경찰서에 갔을 때 ‘공주’가 경찰서에서 보인 행동과 이후 대처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여성과 소통하지 않는 현실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 상황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공주’의 장애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심한 것은 아니며, 이후 감옥에 간 ‘종두’를 위해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는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여성으로 장애여성이 그려졌다고 비판받기도 하였다.

둘째, ‘공주’가 사랑할 때 보여지는 비장애 판타지에 대한 문제이다. 사람들은 ‘공주’의 비장애 판타지는 관객과의 공감을 위해서 꼭 필요했던 장면이었으며, 비장애 판타지는 ‘공주’의 바램으로, 보통의 사람들처럼 연애하고픈 심정을 묘사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반면 이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은 ‘공주’가 사랑할 때 비장애를 꿈꿀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장애인들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있는 것이며, 비장애만을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비장애 중심주의를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장애여성들에 관한 논쟁은 영화의 종영과 함께 더 이상 발전되지 못하고 소멸하게 된다. 이는 인터넷 논쟁의 특성상 논의를 지속적으로 이끌어갈 주체가 없었다는 점, 논의가 다양하게 확대되지 못하고 강간 논쟁에만 얽매였다는 점, 장애여성문제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화두가 될 만큼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장애여성 문제는 사회에서 배제되어 있는 문제로 이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주변화될 수밖에 없던 것이다.

한국사회는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이다. 가부장제 사회의 특성상 성의 상품화는 여성에게 더욱 극명하게 구현되어,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보다 완벽한 몸과 외모를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장애여성의 경우, 무성적인 인간으로 비춰지면서도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성을 가지고 있기에, 이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적 기준이 요구되고 있었다. 그러나 장애여성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외모를 지닐 수 없는 여성이며, 따라서 성적 매력이 없는 여성으로, 그녀를 선택하고자 하는 남성은 있을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논쟁에서 사람들은 ‘공주’를 소외시키던 영화 속의 주변 사람들이 본인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음을 고백하면서, 장애여성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임을 드러냈다. 특히 영화에서 강간범으로 몰려 경찰서에 잡혀 온 ‘종두’에게 형사가 했던 대사(‘너 변태지?’, ‘인간으로서 이해가 안돼. 야 임마, 솔직히 성욕이 생기대?’)를 장애여성에게 성적 매력이 없다는 것에 대한 증거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성적 매력이 없다는 것은 곧 성적 욕망이나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질 수 없음으로도 연결되었으며, 성폭력의 대상이 되어도 이를 주체적으로 해소할 수 없음을 뜻하기도 했다. 이는 ‘오아시스’ 첫 부분에서 ‘종두’가 손쉽게 장애여성인 ‘공주’를 성폭력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면에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이며, 관객들도 그녀에 대한 성폭력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장애여성이니까, 외로우니까, 그녀를 인간으로 인정해 준거니까, 결국 그녀와 연애했으니까’ 등으로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 장면을 성폭력이 아닌 형태로, 데이트의 한 방법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장애여성들을 통해 본 ‘오아시스’

본 필자는 ‘오아시스’에 대한 논쟁 과정에 장애여성 당사자들의 입장이 배제되었다고 보고, 이러한 논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장애여성 당사자 10명과 인터뷰하였다. 장애여성들 대부분은 ‘오아시스’에서 보여주는 장애여성의 현실이 너무나 처절할 정도로 장애여성의 현실에 대해서 잘 묘사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왜곡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장애여성들은 가족들에게 무관심과 냉대를 받고 있으며, 사회의 1차적 지지망인 가족들에 쓸모 없는 짐으로 인식되어, 물리적 폭력에까지 노출되어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기에 혼자 고립되어 온 공주가 종두에게 성폭력을 당하고도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였다. 많은 장애여성의 경우, 실제로 성폭력을 당하고도 자신에 대한 관심의 표현으로 여기는 상황이 많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하였다.

또한 장애여성들은 사회 생활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라 할 수 있는 의사소통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해 관계 형성에 있어서도 어렵다고 이야기하였다. 가정 내에서 고립된 삶을 살았던 장애여성들의 경우, 사회적 관계 형성에도 당연히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장애여성들은 ‘장애’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해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무시를 당하고 있으며,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음도 지적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찰서에서도 제대로 소통을 할 수 없었던 공주의 모습을 이해한다고 하였다. 반면, 공주의 상황은 결국 장애여성을 끝까지 바보로 밖에 인식하지 못한 감독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도 이야기하였다.

장애여성들은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정상적인 몸을 지니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성적인 여성으로 취급을 당하며, 이로 인해 성역할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 속에서 결혼생활에 있어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가부장제 사회의 이중적 잣대로 인해, 비장애여성보다는 몇 배로 더 헌신하면서 가정일을 하는 장애여성이 많다고 하였다. 공주의 경우도 신체적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무성적일 것이라는 사람들의 판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하였다2).

나오면서

‘오아시스’에 대한 논쟁들은 장애여성 문제를 가시화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우리나라의 장애여성은 ‘장애차별’과 함께 ‘여성차별’이라는 이중차별을 받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장애인에 관한 연구들은 장애인을 하나의 집단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대부분이었기에, ‘장애’를 가진 ‘여성’의 특수성을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즉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기존의 통념을 반영한 연구로서는 장애여성의 특수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사회복지의 목적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면, 장애여성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입장이 견지되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 문제 역시 장애 남성만의 문제가 되지 않으려면 여성에 관한 부분을 함께 포함시켜야 할 것이며, 이럴 때 비로소 양성이 평등한 복지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앞으로 장애인 정책에 성인지적 관점이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장애계와 여성계에서 장애여성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며, 앞으로는 장애여성 당사자들이 저항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장애여성 임파워먼트를 위한 프로그램의 개발 및 장애여성 커뮤니티에 대한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은정. 1999. 《장애여성의 몸의 정치학 :직업경험을 중심으로 한 생애사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김용득. 2003. “한국 장애인 복지의 전개와 장애담론의 변천”. 《통합과 배제의 사회정책과 담론》. 나눔의 집.

오혜경ㆍ김정애. 2000. 《여성장애인과 이중차별》. 학지사.

한국여성장애인연합. 2000. 《여성장애인의 인권과 복지》. 한국여성장애인연합.

Waltrus Posch. 2001. 《몸 숭배와 광기》. 조원규 역. 여성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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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본 필자는 2003년도에 성공회대학교에서 ‘한국장애여성담론분석-영화 ‘오아시스’에 대한 논쟁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졸업 논문을 쓴 바 있다. 본 글은 필자가 쓴 논문을 요약ㆍ수정한 것이다.

2) 본 필자의 논문에서는, 이를 통해 한국의 장애여성 담론을 ‘부재의 담론’, ‘몸의 담론’, ‘허구의 담론’으로 규정하였다. ‘부재의 담론’은 한국 사회 속에서 장애여성이 실제로 존재해 왔으나, 사회적으로 부재한 여성으로 보는 경향을 말한다. ‘몸의 담론’은 장애여성의 몸이 뒤틀려 있다는 이유로 인해, 이 사회가 요구하는 매력적인 여성의 몸을 가지지 못했다고 보는 시선을 말한다. ‘허구의 담론’은 장애여성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왜곡된 사실을 말한다.
장좌혜경 / 성공회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졸업
2004/04/10 00:00 2004/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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