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사람] 쉼표
월간 복지동향/2004 :
2004/06/10 00:00
아주 흔한 이야기지만 또 실제 일어나기는 힘든 일들이 많다. 아마 김영순(가명)씨의 이야기도 그런 경우일 것이다. 처음 김영순씨를 만난 것은 대학을 졸업하기전 안양의 여성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중 수급자인 그녀가 우리기관에 의뢰되어 왔을 때이다. 사회복지사와 상담을 하는 김영순씨는 조그마한 체구의 여성이었는데 슬피 흐느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중에 전해들은 이야기는 사업가이던 남편이 회사가 망한 이후 실의에 빠져 살다가 병으로 죽으면서 졸지에 사장님 사모님에서 수급자가 되었으며, 더구나 작은 아들은 암으로 투병중이라는 것이다. 짧은 기간 동안 겪은 큰 변화로 충격이 매우 컸던 것이다.
이후 우리 기관에서 공공근로를 하게 되면서 직접 대면하게 된 김영순씨는 보통 사람들과는 사뭇 달랐다. 직원들보다 먼저 출근을 해서 문 앞에서 기다리지를 않나, 조카뻘이나 될 듯한 어린 직원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하고, 괜찮다고 말리는 데도 사무실 청소까지 하면서 우리 직원들이 민망할 정도로 너무나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었다. 대개의 공공근로가 그러하듯이 본인이나 기관이나 그리 크게 신명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항상 자신의 힘든 사연은 내색도 않고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들을 보면, 가진 것도 하나 없는 작은 체구의 아줌마가 무슨 힘으로 그 어려운 상황을 버티는 것일까 하고 직원들끼리 놀라며 이야기를 하곤 하였다
언젠가 힘들지 않냐는 내 물음에 김영순씨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이야기하였다.“돈도 남편도 잃고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들마저도 언제 보내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더 잃고 슬퍼할 일이 없어지자 사는 것이 더 이상 힘들지 않다" 더구나 "아프지만 그런 아들이 자신과 하루하루 또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주변에서 자기를 돕는 손길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된다” 물론 마음은 살다가도 문득 울화가 치밀 수도 있겠지만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삶을 사는 김영순씨에게서 직원 모두가 감동을 받고 우리가 하는 일들이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위안이 될 수 있는지 실례로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아는 한 끝 이야기는 그나마 해피엔딩이다. 공공근로가 끝나기 전에 새로운 직장에 취업이 되어 우리 기관을 떠나게 되었다. 어떻게 연락이 되어 결혼 전 다니던 금융기관에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시 취업을 하게 된 것이다. 오히려 취업으로 인해 소득이 늘어 수급자에서 제외되고 의료보호를 못 받게 되면 아픈 아들의 치료가 힘들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담당직원의 우려를 웃음으로 달래며 떠나갔다.
TV의 교양프로에서 매주 볼 수 있는 역경에 처한 인간승리의 이야기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TV속에서나 있는 일이 되겠지만 내 주위에는 힘들고 지쳐 쓰러져 있는 사람들만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한다는 지원활동이라는 것이 그들에게는 너무 미약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고는 한다. 어떤 사람들은 복지라는 것이 사람들을 의존적으로 만들어 자기 힘으로 살아갈 자력을 퇴화시킨다고도 말한다. 그리고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사회복지가 우리 사회의 제도적 병폐들로부터 사람들의 눈을 가려 간접적으로라도 사회 변화를 막는 마약이라고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맞고 또 어떤 경우에는 틀린 말들이다. 사람들이 너무 큰 것들만 보고 정치니 제도니 하는 것들에 매달리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명, 한 명 대상자들의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지 알게 되고, 그들이 당장 필요로 하는 것은 쓸데없는 충고도 아니고, 우리 사회의 제도의 변화를 기다릴 여력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들 속에는 항상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한숨을 쉬며 같이 걱정해줄 때 그들은 마치 지푸리가라도 잡은 심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 내면에 있는 고유의 생명력으로 다시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이다. 참 삶의 신비다! 작은 쉼표만 있다면 사람들은 숨을 돌리고 다시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이다.
김영순씨에게 우리들이 그런 쉼표였나 보다. 숨을 돌리고 다시 거친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갈 힘을 주었던 작은 쉼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게 역시 김영순씨는 작은 쉼표였다. 어쩌면 많은 업무, 과중한 심리적 부담 그리고 배운 것과는 틀린 현실들에 주저앉고 싶고, 그렇게 휩쓸려 살아가 버려야지 하던 그런 때 “아! 저렇게 살아가는 구나”하며 내 마음을 환기시켜주고 계속해서 이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었던 쉼표였다. 이제 연락이 안되지만 아이가 아직도 건강하기를 빈다. 그리고 아직도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반드시 그렇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이후 우리 기관에서 공공근로를 하게 되면서 직접 대면하게 된 김영순씨는 보통 사람들과는 사뭇 달랐다. 직원들보다 먼저 출근을 해서 문 앞에서 기다리지를 않나, 조카뻘이나 될 듯한 어린 직원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하고, 괜찮다고 말리는 데도 사무실 청소까지 하면서 우리 직원들이 민망할 정도로 너무나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었다. 대개의 공공근로가 그러하듯이 본인이나 기관이나 그리 크게 신명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항상 자신의 힘든 사연은 내색도 않고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들을 보면, 가진 것도 하나 없는 작은 체구의 아줌마가 무슨 힘으로 그 어려운 상황을 버티는 것일까 하고 직원들끼리 놀라며 이야기를 하곤 하였다
언젠가 힘들지 않냐는 내 물음에 김영순씨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이야기하였다.“돈도 남편도 잃고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들마저도 언제 보내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더 잃고 슬퍼할 일이 없어지자 사는 것이 더 이상 힘들지 않다" 더구나 "아프지만 그런 아들이 자신과 하루하루 또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주변에서 자기를 돕는 손길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된다” 물론 마음은 살다가도 문득 울화가 치밀 수도 있겠지만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삶을 사는 김영순씨에게서 직원 모두가 감동을 받고 우리가 하는 일들이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위안이 될 수 있는지 실례로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아는 한 끝 이야기는 그나마 해피엔딩이다. 공공근로가 끝나기 전에 새로운 직장에 취업이 되어 우리 기관을 떠나게 되었다. 어떻게 연락이 되어 결혼 전 다니던 금융기관에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시 취업을 하게 된 것이다. 오히려 취업으로 인해 소득이 늘어 수급자에서 제외되고 의료보호를 못 받게 되면 아픈 아들의 치료가 힘들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담당직원의 우려를 웃음으로 달래며 떠나갔다.
TV의 교양프로에서 매주 볼 수 있는 역경에 처한 인간승리의 이야기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TV속에서나 있는 일이 되겠지만 내 주위에는 힘들고 지쳐 쓰러져 있는 사람들만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한다는 지원활동이라는 것이 그들에게는 너무 미약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고는 한다. 어떤 사람들은 복지라는 것이 사람들을 의존적으로 만들어 자기 힘으로 살아갈 자력을 퇴화시킨다고도 말한다. 그리고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사회복지가 우리 사회의 제도적 병폐들로부터 사람들의 눈을 가려 간접적으로라도 사회 변화를 막는 마약이라고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맞고 또 어떤 경우에는 틀린 말들이다. 사람들이 너무 큰 것들만 보고 정치니 제도니 하는 것들에 매달리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명, 한 명 대상자들의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지 알게 되고, 그들이 당장 필요로 하는 것은 쓸데없는 충고도 아니고, 우리 사회의 제도의 변화를 기다릴 여력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들 속에는 항상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한숨을 쉬며 같이 걱정해줄 때 그들은 마치 지푸리가라도 잡은 심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 내면에 있는 고유의 생명력으로 다시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이다. 참 삶의 신비다! 작은 쉼표만 있다면 사람들은 숨을 돌리고 다시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이다.
김영순씨에게 우리들이 그런 쉼표였나 보다. 숨을 돌리고 다시 거친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갈 힘을 주었던 작은 쉼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게 역시 김영순씨는 작은 쉼표였다. 어쩌면 많은 업무, 과중한 심리적 부담 그리고 배운 것과는 틀린 현실들에 주저앉고 싶고, 그렇게 휩쓸려 살아가 버려야지 하던 그런 때 “아! 저렇게 살아가는 구나”하며 내 마음을 환기시켜주고 계속해서 이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었던 쉼표였다. 이제 연락이 안되지만 아이가 아직도 건강하기를 빈다. 그리고 아직도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반드시 그렇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