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을 비판하는 이른 바 안티연금사태가 지난 5월부터 6월 초반까지 우리 사회를 휩쓸고 지나갔다. 지난 6월 중순 경에는 충청도의 한 일식집 주인이 연금체납으로 인해 자살하는 사태가 일어났으나 다른 여러 사회적 쟁점에 묻혀 안티연금사태는 잦아드는 듯 하다. 하지만 국민연금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여전히 우리 국민들 사이에 강고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그 불만과 불신은 언제든 다시 터질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안티연금사태는 왜 발생했으며 그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번 사태를 통해 국민연금에 대한 비판으로 제기된 논거는 사회보험으로서 국민연금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의 거의 모든 측면에 관련되어 있다. 즉, 그것은 강제가입문제와 이와 연관된 것으로 체납처분문제, 혜택과 관련된 것으로 병급조정문제와 급여수준문제, 그리고 재정과 관련된 것으로 연금기금고갈문제 등이다. 그리고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와 관련하여 국민들의 불만이 나타난 원인에는 정부의 운영상의 잘못도 있지만 국민들의 인식의 부족도 있고 또 보다 근본적인 정부관리능력과 분배구조악화와 같은 원인도 있다.



정부의 운영상의 잘못으로 가장 중대한 것은 1994년 공공자금관리기금법에 의해 국민연금기금을 강제예탁해서 끌어다 쓴 일이다. 당시 이 법을 시행한 김영삼 정부는 이른 바 문민정부로서 민주화를 이룬 정당성은 부여받았는지 몰라도 그 민주화는 정치영역에서의 민주화였지 사회영역에서의 민주화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정부는 정치민주화로부터 부여받았다고 스스로 생각한 정당성을 아무런 합의도 없이 사회영역에 강제로 부과하였다(이런 점에서 김영삼 정권은 정치적 문민정부였을지 모르나 사회적 독재정권이었다). 그 법에 의해 정부가 1999년까지 강제예탁해간 국민연금기금은 무려 34조원에 이르며 그렇게 강제로 끌어다 쓴 과정에서 이자율 차이로 인해 발생한 이차손실은 2조원에 이른다. 이 과정을 세세하게 알고 있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지만 이 일로 인해 국민들은 국민연금은 일종의 세금이며 일단 내고 나면 정부가 마음대로 써버린다는 인식을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일부 보수언론들은 강제예탁에 대한 시민단체의 비판을 김영삼 정권의 개혁드라이브를 저지하는 한 수단으로 활용하여 연금기금이 곧 고갈되며 기금고갈은 연금파탄이라는 식으로 선정적인 보도를 하여 국민들의 불만과 불신을 더욱 크게 조장했다. 이런 ‘기금고갈=연금파탄’이라는 주관적 등식은 연금에 대한 불신은 말할 것도 없고 연금재정에 대한 건전한 토론과 사회적 합의도출의 토대를 크게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처럼 ‘기금고갈=연금파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연금에의 강제가입도 항상 불만요인이 된다. 게다가 연금제도 시행 초기에 정부는 소득의 3%만 기여하면 노후에 소득의 70%를 보장한다고 공언해 왔었기 때문에, 강제가입하여 납부한 기여금으로 쌓인 기금이 고갈되고 그러면 연금이 파탄된다고 생각하게 될 때 그 배신감은 엄청나게 커진다. 미래의 수익이 제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현재 소득의 일부를 납부하라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 것이며 그것도 강제로 납부하라고 하는 것은 강탈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따라서 국민들은 연금기여금을 체납한 데 대해 강제징수하는 것에 엄청난 불만을 토로하며 연금을 폐지하자는 주장을 펴는 보통사람들의 근거에 적극 동의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운영상의 잘못과 그에 대한 언론의 부정확하고 선정적인 보도로 인해 자리잡은 ‘기금고갈=연금파탄’이라는 주관적 등식은 사회보험으로서의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부족을 초래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정부가 애초에 내걸었던 ‘3%기여-70%혜택’이라는 구호는 그간 정부로부터 사회복지적 혜택을 별반 받아본 적이 없던 국민들로 하여금 연금을 일종의 적금으로 생각하게 하였으며, 또 실제로 우리 국민들은 연금을 적금처럼 생각하지 그것을 사회보장제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간적금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연금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출자하여 형성하는 공동재산이며 미래세대 역시 그에 기여할 것이라는 세대간 합의를 필요로 하는 미래의 공동재산이라는 생각은 별로 강하지 않다. 따라서 내가 나의 적금을 들지 않겠다는데 왜 국가가 강제로 적금을 들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연금을 폐지하거나 민영화한다고 해서 늘어나는 노인인구가 늘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며 노후보장의 사회적 부담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데도 기금고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강제징수에 대한 불만이 그러한 주장을 가능케 하고 있다. 게다가 현행 연금제도가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병급조정과 제도간 조정의 결함(특히 특수직역연금과의 관계에서)은 국민연금을 민간적금처럼 생각하고 있는 국민들에게는 더욱 큰 불만의 요인이 되고 있다. 공유재산인 경우는 그 공유재산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본래의 목적인 생활보장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생활보장의 대상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거나 생활보장의 수단이 두 가지 이상 발생했을 때에는 일정한 조정이 필요하며 그것이 사실상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연금을 민간적금으로 받아들이고 따라서 이를 사유재산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병급조정은 사유재산침해이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국민연금을 민간적금=사유재산으로 생각하고 게다가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으로 미래의 기대수익이 제로인 상태에서 국민연금은 심리적 지지기반을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지지기반의 약화는 정부의 관리능력부족과 최근의 분배악화로 더욱 심각해지는 것 같다. 정부의 관리능력부족은 자영자 소득파악 부족과 영세규모사업장의 사실상의 적용배제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 문제는 우리나라 사회보장의 역사적 발전경로와 크게 관련이 있다. 우리의 사회보장은 관리가 가능한 계층부터 발전해 왔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회보장을 더욱 필요로 하지만 정부의 관리감독이 미치지 않는 계층은 오랜 세월 사회보장으로부터 배제되어 있었다. 심지어 이들 계층은 사회보장으로부터만 배제된 것이 아니라 근로조건의 감독이나 조세징수를 위한 기본적인 행정체계로부터도 배제되어 있었다. 이는 국세청이 가지고 있는 과세자료가 자영자의 경우 전체의 30%에도 미치지 않는 현실과 영세규모사업장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기본적인 고용기록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도 단적으로 나타난다. 이로 인해 전국민연금이 도입된 이후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국민연금 가입율은 1/5 밖에 되지 않으며 1999년 4월 당시 지역가입자 대상 중 50%에 가까운 납부예외자가 아직도 여전히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국민연금이 급속히 확대되었지만 국가의 행정적 관리능력과 조세행정상의 체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리행정과 조세행정상의 결함은 소득파악자와 소득미파악자 간의 부담의 불공평성 문제로 이어지며 나아가 국민연금의 소득보장기능 자체에도 손상을 가져오게 되어 연금의 존립타당성에 심각한 의문을 초래하게 할 수도 있다. 여기에 경제위기 이후 심각해진 분배구조가 더해져서 연금에 대한 불만을 더욱 고조되었다. 1990년대 중반 6% 가량이던 빈곤가구가 경제위기 이후 10% 이상으로 증가했으며, 0.29∼0.30 대에 있던 지니계수도 경제위기 이후 0.35∼0.37대로 증가하였다(유경준, 2003). 이와 같은 분배구조 악화는 연금기여금을 납부할 능력이 없는 계층이 크게 증가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복지제도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보건의료나 주택, 교육 등에 대한 개인적인 지출은 결코 감소하지 않고 있다1). 이러한 가운데 공적연금기여금이나 조세, 기타 사회보장지출인 비소비지출은 2000년 27만 5천원에서 2003년 35만 5천원으로 증가하였다(통계청, 2003; 2004b). 분배구조악화로 인한 부담능력의 감소와 개인적인 필요지출의 증가는 연금기여금의 부담을 크게 증가시켰으며, 게다가 현행 국민연금은 장기간의 기여를 요구하는데다 급여시점은 60세 이후이기 때문에 기여와 혜택 간의 연계가 사실상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어 연금의 우선순위는 더욱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추진하려는 연금재정개혁은 보건의료나 주택, 교육 등에 대한 개인적인 지출의 증가를 그대로 놓아둔 상태에서는 효과를 거두기가 어려우며 오히려 또 다른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연금에 대한 불만을 가중시킬 것이다.



이번의 안티연금사태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운영상의 잘못으로 인한 불신과 불만, 기금고갈=연금파탄이라는 막연한 불안감, 연금을 적금처럼 생각하고 공유재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태도, 정부의 관리능력의 부족, 그리고 분배구조의 악화 등의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 것이다. 이런 요인들에 의해 크게 확산되었던 안티연금사태는 그 진행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연금의 본질적인 문제들, 즉 왜 연금이 필요한지, 왜 강제가입해야 하는지, 자영자의 소득파악은 왜 그처럼 안되고 있는지, 공무원과 일반시민은 왜 연금에서 서로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생활의 우선순위에서 연금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등의 다양한 질문을 제기하였다. 이 질문들이 갖는 본질적인 성격은 한마디로 시민들의 사회경제적인 일상생활에서 국가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것이었으며, 이에 대해 안티연금 측은 대부분 부정적인 답변 그리고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답변들을 쏟아내었다. 부정적이라는 것은 강제가입을 거부한다든지 연금 자체를 아예 폐지하자는 주장 등이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며, 서로 모순된다는 것은 자영자 소득파악을 제고하고 고소득층에 적용되는 소득상한제를 폐지해야 재분배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라든지 공무원이나 일반시민이나 다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 등이 앞의 강제가입거부나 연금폐지주장과 모순된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연금폐지주장이 나옴과 동시에 그와 모순되는 주장이 나왔다는 사실은 국민연금과 관련된 우리의 상황이 그만큼 복잡하다는 점과 안티연금사태를 통해 연금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계층이 사실상 사회경제적으로 동질적인 계층이 아니라는 점(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국민연금에 대한 불만이 다양한 계층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을 반영한 것이다. 연금에 대한 불만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현행 연금에 대한 통일된 대안제시를 어렵게 하였고 이것이 안티연금사태가 때 이르게 잦아들게 된 한 원인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연금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또 그러한 불만과 불신의 토양은 더욱 강해져가고 있다. 추후 이러한 불만과 불신은 다시 폭발적으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며 이 대책은 단순히 연금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는 차원에서 전개되어서는 안 되며 연금에 대한 오해가 자랄 수 있는 토양 자체를 바꾸어나가는 노력의 차원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사회경제적 삶에 있어서 국가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도출을 가능케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과거 연금제도 운영상의 잘못에 대해 국가가 진지하게 반성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비단 정치적인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일상생활에서도 국가가 공동체의 공정한 관리자라는 점을 보여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영자의 소득파악을 제고하도록 진정으로 노력해야 하고 영세규모사업장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국가의 관리감독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는 어렵지만 우선 국민연금의 부과징수기능을 국세청으로 이관함으로써 조세행정의 틀 내에서 연금의 부과징수가 함께 이루어지도록 하고 동시에 지난 정권 때 아무런 성과없이 폐지했던 자영자소득파악을 위한 특별기구 같은 것을 만들어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는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소득파악의 부담과 노동시장유연화의 부담이 아무런 여과장치없이 국민연금에 전가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일차분배과정에서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추진을 그대로 놔둔 채 복지정책으로만 그 모순을 시정하려고 하는 것은 전형적인 분화적 복지국가 전략이며 이런 전략의 비용은 매우 크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는 지난 날 경제논리를 앞세워 복지지출의 우선순위를 뒤로 미루어 왔던 결과가 오늘날 사회경제적 삶에서 국가가 갖는 의미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결여를 결과하였고 이것이 이번의 안티연금사태로 표출되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복지지출을 뒤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보건의료와 주택, 교육, 기타 복지서비스에 대한 정부지출을 늘리고 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야말로 사회경제적 삶에서의 국가가 갖는 의미에 대한 민주적 합의를 가능케 할 것이다.

참고문헌

유경준, 2003. “소득분배 국제비교를 통한 복지정책의 방향,” KDI 정책포럼, 제167호.

통계청, 2004a. 「사회통계조사결과(보건, 사회참여, 소득과 소비)」 http://www.nso.go.kr

통계청, 2004b, 「2003년 연간 및 4/4분기 도시근로자가구의 가계수지동향」 http://www.nso.go.kr

통계청, 2003, 「2002년 연간 및 4/4분기 도시근로자가구의 가계수지동향」 http://www.nso.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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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계청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저축을 하고 있다는 가구가 1999년 73.0%에서 2003년에는 68.2%로 감소했으며 부채가 있다는 가구는 1999년 48.0%에서 2003년 53.3%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부채사유로는 교육비가 6.7%(1999년)에서 8.9%(2003년)로 그리고 주택마련이 31.6%(1999년)에서 36.7%(2003년)로 증가하였다(통계청, 2004a). 또한 도시근로자가계조사 결과에 의하면 가구당 보건의료지출은 2000년 6만 7천원(총소비지출의 4.1%)에서 2003년 9만원(총소비지출의 4.6%)로 증가하였다(통계청, 2003; 2004b).
남찬섭 /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2004/07/10 00:00 2004/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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