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 파산, 자살, 너무 익숙한 단어다.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손을 부려야 삶의 의욕이 생기기 마련인데 점점 좁아지는 취업의 문은 아예 굳게 닫힌 듯 하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정신없을 정도로 바쁘다. 분명 실업은 국가적 위기이고 정부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인데 서울의 한 귀퉁이 작은 지역단체의 실무자는 실업극복을 위해 너무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지역주민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시작했던 실업사업의 방향을 여러 번 전환하면서 결국 지난해부터 노동부가 시행하고 있는 ‘사회적일자리창출사업’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가 규정한 사회적 일자리창출사업은 ‘지역에 기반한 고용정책수단으로써 지역에서 민간 비영리단체를 통해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 취업취약계층 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사회적 일자리라 함은 사회적으로 유용하지만 수익성 때문에 시장에서 충분하게 공급되지 못하는 사회적 서비스 분야에서 민간 비영리단체에 의해 창출되는 일자리로 정의하고 있는데, 과연 노동부는 이 사업에 대해 어떠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노동부는 수익성 때문에 시장에서 충분하게 공급되지 못하는 사업을 발굴하라고 하면서도, 보건복지부와 차별화를 강조하면서 시장에서도 살아남으란다. 여하튼 우리단체는 공익형, 수익형을 포함한 도배사업 ‘주거지킴이’사업과 실버택배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실업단체와 실업재단, 노동부가 함께 사회적일자리창출에 대한 고민의 자리도 가졌던 터라 민-관 파트너쉽을 통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이 사업은 노동부 ‘하청’사업이라는 판단이 든다.

이유는 첫째, 예산의 문제이다. 서울 강동, 송파, 광진, 성동 4개구에서 총 338명을 신청했는데 결국 배정된 인원은 10개 사업 65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선정된 단체들도 인원이 적게 책정되어 사업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인 곳도 있다. 4개구에 65명을 채용하고 ‘사회적일자리’라는 폼나는 단어를 사용해도 되는 것인지. 지원금 또한(지원금이라는 단어도 맘에 안든다) 채용자에 대한 급여와 총 지원금의 8.5%(사회보험료, 작년에는 그나마도 없었다)정도다. 나머지는 단체가 알아서 하란다. 월급은 줄테니 알아서 일자리를 창출하여 수익도 내고, 자활도 하고, 서비스도 제공하라?

둘째, 민-관 파트너십의 문제이다. 파트너십을 헤치는 요소는 먼저 노동부가 일방적으로 만든 규정에 있다. 일자리 창출과 원활한 진행을 위한 논의구조는 없고 일방적인 보고수준이다. 사람 채용에 있어 자율권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일은 민간단체가 하는데 사람채용에 있어 부정수급의 가능성을 줄이고자 하는 규정 때문에 결국 노동부에서 정한 규정에 맞아떨어지는 사람만 채용 가능하다. 또 일의 특성과 맞지 않거나 마찰, 사업에 손해를 입혀도 이를 이유로 사퇴시킬 수 없다. 일단 채용하면 자발적인 퇴직 아니면 어떤 사유도 인정되지 않는다. 단체에서 참여자를 사퇴시키면 사업비 전액을 토해놔야 한다. 사업 진행하는데 큰 걸림돌이다. 부정수급에 대한 관리 및 제재는 더욱 가관이다. 주의, 경고, 시정조치, 약정해지... 등등의 규정이 있다. 예를 들어 외근이 많아 근로 상황부를 며칠 작성하지 못했을 경우 그건 경고 수준이다.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채용하면 시정조치이다. (실업자는 자원봉사도 못한단 말인가?). 일이 시작되기 전 미리 채용하여 일을 하면 단체근무자를 채용한 것으로 보고 지원대상자에서 제외다. 예외란 없다. 왜? 감사에서 걸리니까. 마치 단체가 노동부로부터 일방적인 감시감독을 받는 느낌이 든다(부정을 전제로 받은 작년의 당혹스러웠던 지도점검은 정말 잊을 수 없다). 일자리는 다양하고 일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일방적인 잣대로 잴 수 없다. 민-관이 파트너십을 갖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업이 순조롭지 못하면 노동부도 혐의가 있다. 따라서 부정수급을 막기 위한 고민에 앞서 사업수행주체들의 고민은 무엇인지, 참여자의 만족도는 어떠한지, 요구는 무엇인지 등을 듣고 이에 대한 지원-사회적일자리에 대한 우선수주, 정보제공 등-혹은 문제해결을 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매월 초 급여명세와 근무 상황부를 제출하고 급여를 지원 받는 수준을 넘어서야 노동부 하청사업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전달체계의 문제이다. 현재 사회적일자리담당자는 노동사무소당 1명이다. 4개구를 관할한다. 전화통화는 하늘의 별따기다. 사업을 논의하기는커녕, 주로 하는 대화는 규정에 맞느냐 안 맞느냐 정도, 사업진행에 어려움이 있어도 담당자가 융통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모든 사유를 들어줄 여유도, 권한도 없기 때문이다. 감사에 지적된 경험이 있는 담당자일 경우 사업수행단체의 이런저런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사업의 내용과 규모 앞에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이런저런 관리 및 제재에 관련한 ‘규정’이기 때문이다.

넷째, 수행단체의 능력의 문제이다. 솔직히 우린 버겁다(다른단체는 어떠한지 모르겠다). 15명 이상 채용할 때만 실무자를 채용할 수 있기에 우리는 두 가지 사업을 기존 실무자가 맡고 있다. 단체 본래의 사업과 함께 일자리창출사업을 함께 해야 한다. 무리 없이 진행하는 수준을 넘어 나랏님도 못 구하는 빈곤문제를 일자리를 통해 풀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프로그램 하나 더 진행하는 가벼운 수준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 힘들다. 참여자중 일부를 실무자수준으로 키워 행정업무를 맡겨도 안 된다. 그러면 바로 약정해지다(아무리 생각해도 무시무시한 규정). 지원금으로 직원을 채용할까봐 생긴 장치이다. 사회적일자리창출사업을 하려거든, 일단 노는 직원이 한 명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업비가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요건을 갖춘 비영리 민간단체가 있을까.

머리가 복잡하다. 월급날 밥한 끼 사겠다며 기뻐하는 참여자의 얼굴을 볼 때 착잡하다. 잘해보려고 하지만 사업 기간 중에 매끄럽지 못한 행정처리로 부정수급자 취급받는 것도 힘들고 참여자에게 희망 있는 직장을 만들어주지 못해 힘들다. 우린 회의 때 간혹 자조 어린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능력 없으면 일하지 말까요?”라고.

하지만 내일은 노동사무소에 가서 또 이야기 할거다. “노동부와 소통하고 싶어요”라고. 그리고 “파트너니까 규정 같은 것도 좀 같이 만들면 안될까요?”, “일방적으로 안돼 라는 말, 우리도 좀 해보고 싶군요. 안돼, 이 사람은 채용할거야. 안돼 이 사업은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진행할거야”라고 말이다.
최영선 / 위례지역복지센터 사무국장
2004/07/10 00:00 2004/07/10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Welfare/trackback/13060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