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제약회사의 횡포에 백혈병 환자가 맞서다

작년 1월 설 연휴를 앞둔 어느 날 오후, 백혈병 환자 십수명이 시청앞 네거리에 모였다. 이들은 일사분란하게 국가인권위원회 강당을 기습적으로 점거하여 농성에 돌입했다. 긴장감이 묻어있던 이들의 얼굴은 인권위원회 강당을 점거하는데 성공한 이후에서야 안도의 표정이 돌았다.

이렇게 시작된 백혈병 환자들의 투쟁은 3주일이 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에게는 목숨과도 같았던 혁신적 신약 ‘글리벡’의 본인부담금 인하와 적용범위의 확대라는 성과를 쟁취하여 농성을 풀었다. 비록 이러한 혁신적 신약의 약가를 결정하는 방식1)을 변경시키는데는 성공하지 못하지 못했지만, 한달에 약값으로만 3,4백만원을 부담해야 했던 ‘그림의 떡’을 사실상 10분의 1 수준으로 부담을 낮출 수 있었다.

이러한 백혈병 환자들의 투쟁은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치유할 수 있는 약제를 인류가 산업의 시각으로 접근하여 발생한 대표적인 사례다. 사실 환자가 제약회사를 상대로 싸우게 된 것은 인류가 '제약‘을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개발에 성공하면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영역으로 여기게 되면서 발생한 일이다. 자본가들은 ’약을 개발하기 위하여 투자한 비용을 회수해야 하지 않느냐‘며 약이 고가인 이유를 설명하지만, 이미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은 상당한 이윤을 남기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인류의 건강과 생명을 치유하는 필수적 영역이 ‘산업’으로 판단되면서 전세계의 많은 환자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동남아 국민들에게 말라리아 치료제가 공급되지 않는 것, 아프리카의 에이즈 환자들에게 에이즈 치료제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것 역시 이윤의 동기가 있다는 것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 이런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횡포는 신자유주의의 바람을 타고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의료를 산업으로 이해하자?

지난 5월 중앙일보는 ‘의료를 산업으로 바라보자’는 주제로 연재를 실었다. 핵심을 요약해 보면 ‘의료’를 더 이상 공공서비스의 영역으로 바라보지 말고 ‘이윤의 획득이 가능한 산업의 영역’으로 이해하자고 하면서 자유로운 경쟁을 방해하는 의료관련법상 여러 규제를 풀고,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화를 허용하며, 민간보험을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특히 한국의 의술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기 때문에 전세계를 상대로 이윤을 획득할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다른 나라의 환자를 유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먹을 수 없는 약은 약이 아니다’며 약가 인하를 위해 추운 겨울날 환자의 몸으로 싸워야만 했던 초췌한 백혈병 환자들의 모습과 ‘의료를 산업으로 바라보자’며 넥타이를 맨 전문가들이 안정된 사무실에 모여 토론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겹쳐놓고 글을 쓰자니 현기증이 날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극단적인 가치가 대립하는 또 하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의료 = 공공서비스’가 고정관념일까?

정말 ‘의료는 공공서비스’라는 것은 낡은 개념이며, 고정관념일까? 그래서 연재에 실린 전문가 토론에 참석했던 한 복지부 관료의 말처럼 ‘보건의료를 개방하고 세계 일류화’로 가야만 하는 것일까?

우선 국가적으로 보건의료의 1차적 목표가 무엇인지 따져보자면 모든 국민들의 건강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며, 건강 형평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가 뭐라해도 부정할 수 있는 국가가 보건의료를 담당해야 할 근본이 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에서 ‘건강’수준이 ‘부’의 수준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고 있으며, 나아가 ‘부’의 수준에 따라 ‘건강수준’도 다음 세대로 세습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계속해서 보고되고 있다. 이런 점은 현재 국가적 차원에서 보건의료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보건의료’는 오히려 더욱 확대ㆍ강화되어야 할 ‘공공사회서비스’이어야 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면 보건복지부가 ‘공공보건의료 확충’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할 것 같다. ‘공공보건의료 확충’과 ‘의료시장 개방’을 함께 추진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혀 관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반된 두 개의 가치와 지향을 갖고 있는 정책을 하나로 묶어서 말하고 싶은 ‘비논리적인 억지’일 뿐이다. ‘약을 먹을 수 있게 해달라’는 백혈병 환자의 모습과 의료를 산업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전문가’들의 모습이 잘 조화될 수 있겠는가?

결국 복지부는 혼란에 쌓여있는 듯하다. 자기 철학도 없다. 현 정부의 화두가 ‘시장개방’이고 ‘경제특구’이다 보니 보건복지부는 왠지 소외감이라도 느낀 듯 한 꼭지 넣고 싶어서 ‘의료시장 개방’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찜찜한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공공의료 확충’이 덧붙여져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비논리적인 억지’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환상을 버려라

‘의료, 이제는 산업이다’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내용에는 외국의 사례가 많이 언급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뛰고 있는데 우리 나라만 처져있다’는 것을 부각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인용된 외국의 사례는 일일이 확인하지 않았지만 사실일 것으로 믿어도 될 것 같다. 그러나 마치 인용된 외국의 사례가 그 나라의 전부가 그런 것처럼 과장되어 설명된 점이 있어 환상을 줄 위험이 있다.

사실 전세계의 어떤 나라도 의료기관의 자유로운 이윤추구 활동이 완전히 보장되는 나라는 없다. 사례로 언급된 미국, 영국, 싱가폴 등 어떤 나라에서도 의료기관의 완전한 이윤추구를 보장하지 않는다. 전체에서의 아주 일부에 해당되는 사례일 뿐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의 의료체계는 ‘계약’에 의하여 움직인다. ‘보험회사 - 의료기관 - 의사’의 3자 관계는 냉혹할만한 수준이다. 우리나라 의료계에서는 절대 수용하지 못할 수준의 평가를 수행하여 결과를 공개하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냉혹한 계약이 이루어진다. 또한 보험회사는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의료기관과 의사를 통제하고 간섭한다. 또한 저소득층이나 노인ㆍ장애인 등 일부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보장 이외에는 모두 개인의 선택에 맡겨두어 ‘무보험’인 사람이 미국 전국민의 10%를 넘는다. 그래서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의료비를 사용하면서도 건강수준과 건강형평성에서는 다른 선진국가들에 비해 낮게 평가되고 있다.

영국은 전국민 의료비의 90% 이상이 NHS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대부분 공공의료기관에서 서비스가 제공된다. 그리고 아주 일부의 서비스에 대하여 민간보험을 허용하고 있는 수준이다. 영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계층간 건강형평성을 달성하기 위하여 지금까지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이다.

싱가폴 역시 공공의료가 90%를 넘는다. 공공의료가 기본적인 틀을 구성하는 가운데 일부의 서비스가 상업화되어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인용된 외국의 사례는 오히려 그 국가적 의료체계에서 예외이거나 특수한 경우에 불과하다. 인용된 사례가 그 나라의 의료체계 전반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러한 예를 들어 우리 나라와 비교하여 ‘의료를 산업화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한 접근이 아니며 환상을 심어줄 뿐이다.

우리 나라는 이미 가장 자유시장에 가까운 의료체계를 갖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Hsiao 교수는 한국의 보건의료가 미국보다 더 자유시장이 지배하는 체계라고 평가한 바 있다. 우리 나라보다 더 시장에 가깝게 의료체계를 운영하는 나라,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 아닐까?

결국 의료의 산업화는 ‘일부’만을 위한 것이다

영리법인을 허용하고 민간보험을 도입하는 등을 통해 ‘의료의 산업화’를 추진하고 외국의 환자들을 유치할 수 있는 의료기관, 이는 결국 모든 의료기관에 해당되고 또 모든 의료인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산업화를 추진할 수 있는 일부 대형병원에 국한된 이야기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산업화된 의료서비스 2)’를 이용하여 ‘선택’에 따른 만족을 느낄 계층 역시 일부 고소득층에 불과할 것이다.

결국 의료의 산업화는 소수 의료기관에게 이윤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일 뿐이며, ‘의료를 산업으로 보자’는 주장은 이것이 마치 의료계 전체에게 이익인양 선동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무엇을 지향하는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공공의료 확충’과 ‘의료의 산업화’는 상호 어떤 연관성을 갖지도 않으며, 동시에 추진되어야 할 어떤 필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상반된 가치를 가진 두 정책일 뿐이다. 전자는 국민의 건강수준 향상과 건강형평을 달성하자는 것이고 후자는 의료가 이윤획득이 가능한 성장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겠다는 복지부의 계획은 철학이 없고, 정책이 없음을 실토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를 산업으로 보자는 연재에 복지부 관료가 참여하여 “의료산업 육성에 관심이 있고… 병원산업에 자본이 유입될 수 있도록 …” 운운하니 답답하고 한심하다. 언제부터 복지부는 의료의 산업화와 의료시장 개방에 관심을 가진 것인가? 혹시 “우리 국민의 건강수준이 모든 계층에 대하여 최소한의 형평에 도달했다”는 정책적 판단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래서 지금 복지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정책의 방향이 ‘의료시장 개방’과 ‘의료의 산업화’란 말인가? 왜 갑자기 지난해부터 복지부가 의료시장 개방에 적극적이 되었단 말인가?

지금이라도 복지부는 원칙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보건의료의 가장 우선적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국민의 건강수준 향상’과 ‘건강형평성의 달성’은 여전히 그 답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고정관념도 아니고 낡은 주장도 아니다. 이것은 한국사회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국민의 요구인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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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가를 결정할 때 참고할 수 있을 기존의 자료나 연구결과가 없는 ‘혁신적 신약’의 경우 우리나라는 선진 7개국(미국, 일본, 스위스, 이태리, 영국, 프랑스, 독일)의 평균 약가로 정하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보다 소득수준과 물가수준이 높은 나라들의 평균 가격을 우리나라에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혁신적 신약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당시 백혈병 환자들은 농성을 하면서 혁신적 신약에 대한 약가 결정구조를 바꾸라고 요구했다.

2) ‘산업화된 의료서비스’가 ‘의료의 질이 좋은 서비스’라고 볼 수는 없다. 어쩌면 ‘고가의 상품화된 의료서비스’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다.
김창보 / 건강세상네트워크 사무국장
2004/07/10 00:00 2004/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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