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사람] 시설장애인의 선택과 입장의 동일함
월간 복지동향/2004 :
2004/07/10 00:00
“머리 좋은 것이 마음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형태입니다.” 1)
성공회대학교 신영복 선생님의 글 중에서 일부분을 발췌한 것이지만, 사회사업실천현장에서도 마땅히 적용되어야 할 원칙이라는 생각이 든다. 꽤나 오랫동안 장애인들의 권리와 그들이 누려야 할 원칙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오래 전에 읽었던 글귀가 떠올라 되짚어 보았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은 입소욕구를 가진 장애인의 17-21%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다시말해 수요보다는 공급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주어지는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대로 본인의 의지에 상관없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소비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중심의 서비스가 여전히 복지현장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OO사회복지법인에서 운영하는 “OO의집”에는 OOO씨가 소그룹공동체에서 생활하다가 최근 체중문제로 인하여 다시 장애인복지시설의 생활관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정신지체1급의 중증장애인이지만 본인의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편이다. 그녀는 다시 시설의 생활관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먹거리를 보면 충동적 식욕을 참지 못해 끊임없이 냉장고 문을 열곤 했던 것이다.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시설의 생활관에 되돌려 체중조절을 시도하는 시설종사자의 입장이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지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관리중심의 서비스가 되어버린 것이다. 본래 장애인복지의 원칙은 당사자주의에 입각한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목적전치(Goal Displacement)가 되어 버린 것이다.
시설서비스를 극복하고자 많은 사회복지시설들이 소그룹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곳에서 만난 또다른 OOO씨는 생활재활교사로부터 늘 이런 저런 지시와 잔소리를 듣게 된다. “실내화 바로 놓으세요”, “옷 예쁘게 정리하세요”, “이젠 주무셔야죠?”, “밥은 흘리지 말고 드세요” 등등..... 그래도 이 정도는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심한 경우에는 반말이나 막말로 대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아주 가끔은 욕설과 물리적 폭력을 동원해 통제를 가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독재자가 따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과 규칙이라는 올가미에 갇혀서 생활인들은 마치 기계처럼 하루의 일과를 반복하게 된다. 식사를 거르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고, 늦잠을 자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목욕탕이나 미용실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봉사자들에 의해 자원봉사대상자로 전락하게 된다. 나이에 상관없이 “엄마”나 “선생님”의 동일하지 못한 관계설정으로 한번 입소하면 죽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시설생활인이 되는 것이다.
OOO씨는 아버지가 공무원이지만, 호적을 위조하여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어 사회복지시설에 입소하였다. 그는 언제나 집에 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를 반겨 줄 가족들이 아니다. 늘 시설의 생활재활교사와 갈등이다. 부모가 시설을 방문하는 것도 외부에서 만나 잠시 식사하고 다시 시설로 들어와 그리움만 더 키우게 된다. 시간이 흘러 부모가 사망하게 되면 그 마저 남은 가족관계도 끊어져 세상에서는 완전히 잊혀진 존재로 남게 되는 것이다.
시설생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입장의 동일함을 확보할 수가 없는 삶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비정상적 관계의 확대로 시설에 고착되어지게 되는 것이다. 선택과 의사전달이 행정적 과정의 보고체계를 통해 왜곡되어지거나 묵살되는 경우가 많다. 법과 제도를 통해 시설장애인들의 인권이나 권리의 보장이 확충되고 있지만, 서비스를 전달하는 시설종사자들의 문화가 변화하지 않으면 그들의 선택이 존중되어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젠 시설생활인들과 입장의 동일함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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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돌베개, 1998년 8월)
마음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형태입니다.” 1)
성공회대학교 신영복 선생님의 글 중에서 일부분을 발췌한 것이지만, 사회사업실천현장에서도 마땅히 적용되어야 할 원칙이라는 생각이 든다. 꽤나 오랫동안 장애인들의 권리와 그들이 누려야 할 원칙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오래 전에 읽었던 글귀가 떠올라 되짚어 보았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은 입소욕구를 가진 장애인의 17-21%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다시말해 수요보다는 공급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주어지는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대로 본인의 의지에 상관없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소비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중심의 서비스가 여전히 복지현장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OO사회복지법인에서 운영하는 “OO의집”에는 OOO씨가 소그룹공동체에서 생활하다가 최근 체중문제로 인하여 다시 장애인복지시설의 생활관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정신지체1급의 중증장애인이지만 본인의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편이다. 그녀는 다시 시설의 생활관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먹거리를 보면 충동적 식욕을 참지 못해 끊임없이 냉장고 문을 열곤 했던 것이다.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시설의 생활관에 되돌려 체중조절을 시도하는 시설종사자의 입장이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지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관리중심의 서비스가 되어버린 것이다. 본래 장애인복지의 원칙은 당사자주의에 입각한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목적전치(Goal Displacement)가 되어 버린 것이다.
시설서비스를 극복하고자 많은 사회복지시설들이 소그룹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곳에서 만난 또다른 OOO씨는 생활재활교사로부터 늘 이런 저런 지시와 잔소리를 듣게 된다. “실내화 바로 놓으세요”, “옷 예쁘게 정리하세요”, “이젠 주무셔야죠?”, “밥은 흘리지 말고 드세요” 등등..... 그래도 이 정도는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심한 경우에는 반말이나 막말로 대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아주 가끔은 욕설과 물리적 폭력을 동원해 통제를 가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독재자가 따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과 규칙이라는 올가미에 갇혀서 생활인들은 마치 기계처럼 하루의 일과를 반복하게 된다. 식사를 거르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고, 늦잠을 자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목욕탕이나 미용실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봉사자들에 의해 자원봉사대상자로 전락하게 된다. 나이에 상관없이 “엄마”나 “선생님”의 동일하지 못한 관계설정으로 한번 입소하면 죽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시설생활인이 되는 것이다.
OOO씨는 아버지가 공무원이지만, 호적을 위조하여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어 사회복지시설에 입소하였다. 그는 언제나 집에 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를 반겨 줄 가족들이 아니다. 늘 시설의 생활재활교사와 갈등이다. 부모가 시설을 방문하는 것도 외부에서 만나 잠시 식사하고 다시 시설로 들어와 그리움만 더 키우게 된다. 시간이 흘러 부모가 사망하게 되면 그 마저 남은 가족관계도 끊어져 세상에서는 완전히 잊혀진 존재로 남게 되는 것이다.
시설생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입장의 동일함을 확보할 수가 없는 삶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비정상적 관계의 확대로 시설에 고착되어지게 되는 것이다. 선택과 의사전달이 행정적 과정의 보고체계를 통해 왜곡되어지거나 묵살되는 경우가 많다. 법과 제도를 통해 시설장애인들의 인권이나 권리의 보장이 확충되고 있지만, 서비스를 전달하는 시설종사자들의 문화가 변화하지 않으면 그들의 선택이 존중되어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젠 시설생활인들과 입장의 동일함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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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돌베개,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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