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최소한 10년간 보험료를 납부해야 연금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보험료 납부기간이 10년을 초과할수록 더 많은 연금을 받게 되며, 60세까지 10년을 채우지 못하면 원금에 이자를 더해 보험료를 돌려받는다. 따라서 최저 가입기간 10년을 채우지 못해 연금을 못 받는 사람들이 바로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라 할 수 있다.

보통 20대 중후반에 직장에 들어가 40대 중반에 직장을 그만두고, 60세 전후까지 자영업을 한다면 소득 활동에 종사하는 기간은 30년이 약간 넘을 것이다. 물론 중간에 실직을 한다던가 혹은 사업에 실패하면 ‘무소득’ 기간이 길어진다. 이런 점을 감안해도 은퇴하기까지 약 30년이 넘는 기간 중에 10년간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하여 연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600만명은 연금 받지 못할수도 있다

2003년말로 국민연금 가입자는 약 1718만명인데, 이중 직장가입자가 696만명, 도시지역 가입자가 790만명, 그리고 농어촌지역 가입자가 206만명 정도 된다. 직장가입자는 연금 보험료를 ‘원천징수’당하기 때문에 원하지 않아도(!) 보험료를 내게 되고 대부분 10년의 최저가입기간을 채울 수 있다. 따라서 직장가입자는 거의 연금을 받게 된다. 반면 지역가입자 996만명 중 아예 소득이 없어서 보험료를 낼 수 없다고 신고한 사람들이 460만명이다(소위 납부예외자). 소득이 있다고 신고한 536만명 중에도 사정이 어려워 보험료를 못내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대략 134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따라서 최저 가입기간 10년을 채우지 못해 연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각지대에 빠진 사람들이 약 6백만명으로 전체 연금가입자의 35%가 된다.

물론 600만명 중에 상당수가 앞으로 연금 보험료를 내고 최저가입기간 10년을 채울 가능성이 있다면 이들은 연금혜택을 받게 되고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로 부를 수 없다. 그러나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고,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보험료를 내지 않는 사람들이 앞으로 자발적으로 보험료를 낼 것이라는 전망은 극히 비관적이다. 따라서 이 상태가 계속 지속되면 노인인구의 1/3은 연금을 못 받게 되며 이들 대부분이 노후빈곤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사각지대 해소 안되면, 연금제도가 빈익빈 부익부 확대재생산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규모의 사각지대가 해소되지 않으면 국민연금제도를 통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확대 재생산된다는 점이다. 현재 국민연금에 가입되어 할 수 없이(!) 보험료를 납부하는 사람들은 보험료를 원천징수 당하는 직장인, 그리고 국세청에 사업자 등록을 한 자영자 중에 어느 정도의 소득이 있는 사람들로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는 비교적 안정된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사각지대에 놓여져 있는 사람들은 정부를 불신하여 고의로 연금을 회피하는 일부 ‘숨은 부자’들을 제외하면 소득이 매우 낮거나 불안정한 비정규직근로자, 일용직 근로자, 영세사업장 근로자나 생계형 자영업자들이다. 가령 비정규직근로자의 80%정도는 임금근로자임에도 직장가입자에서 제외되어 있다. 한마디로 웬만큼 먹고 살수 있는 계층은 연금에 가입되어 있고, 서민계층은 대부분 연금에서 제외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제4회 ‘미래세대가 연금을 더 많이 내야하는 이유’에서 설명했듯이 국민연금은 평균적으로 납부한 보험료 총액의 2배에 달하는 연금을 받게 되는데, 이는 후세대의 보험료로 충당되며 이를 ‘미래세대의 보조금’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국민연금에 가입되어 있는 먹고 살만한 계층들은 나중에 연금을 받으므로 미래세대의 보조금을 받게 된다는 것이며, 반대로 연금의 사각지대에 놓여져 있는 사람들은 연금을 못 받게 되므로 미래세대의 보조금을 받을 기회마저 원천적으로 박탈당하는 것이다.

국민연금, 자칫 ‘있는 사람들의 노후 보장 제도’로 고착될수도

먹고 살기 힘들어 보험료를 못내 10년의 최저가입기간을 채울 수 없는 계층에게는 참으로 불공평한 것이다. 즉, 현재처럼 사각지대가 대규모로 존재하는 한 국민연금은 ‘있는 사람’들의 노후를 보장해주는 제도로 고착화되어 제도가 존재해야 하는 ‘도덕적 정당성’에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각지대 문제가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해소되지 않으면 국민연금은 복지를 증진시키기 보다는 ‘빈익빈 부익부’를 부추키는 제도라는 오명을 피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왜 대규모의 사각지대가 해소되지 않는가? 일부 국민들은 보험료를 납부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금제도를 근본적으로 불신하여 가입을 회피하거나, 일부는 불신에 더하여 보험료를 낼 능력이 없거나, 또 일부는 몇 십년 후에 받을 연금이 지금 무슨 소용이 있냐는 의문 때문에 안 낼 수도 있다. 즉 정부와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불신, 정부의 홍보 미흡, 기금고갈에 대한 언론의 부정확하고 선정적인 보도, 정부의 소득파악 능력과 제도 설계의 결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대규모 사각지대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역가입자의 임금노동자를 직장가입자로 전환시켜야

국민연금은 대기업 사업장 근로자부터 먼저 적용하여 단계적으로 중소기업으로 확대하는 정책을 취했다. 근로자는 소득이 정확히 드러나고 원천징수가 가능하기 때문에 5인이상 사업장에 근로자에게까지 국민연금을 쉽게 적용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그 다음 이었다. 사업주를 빼고 근로자가 1명 혹은 2-3명에 불과한 소규모 사업장들은 임금대장이 작성되지도 않고 워낙 직장이동이 빈번하여 연금 가입대상자 여부를 판단하기도 힘들고, 보험료를 징수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들은 당연히 직장가입자로 편입시켜야 마땅하나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지역가입자로 편입시켜 버렸다. 즉 지역가입자로 불리는 약 996만명 중에는 순수한 의미의 자영사업자와 농어민 외에 수백만명의 영세사업장 근로자, 비정규직, 일용직 근로자들이 뒤섞이게 되었다.

지역가입자에 포함되어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소득파악이 어렵다는 것이다. 영세사업장 근로자, 일용직근로자들은 조세행정을 개혁하지 않으면 공단이 아무리 노력해도 보험료를 매길 객관적 소득자료를 확보할 수가 없다. 때문에 이 집단에게서 끊임없는 보험료 관련 분쟁이 발생되며, 여기에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겹쳐지면서 사각지대가 줄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가입자에 속해 있는 임금근로자를 하루 빨리 직장가입자로 편입시켜야 대규모의 사각지대가 해소될 수 있다. 이들이 직장가입자로 편입되면 사업주가 보험료의 50%를 내주기 때문에 보험료 납부의 경제적 부담이 상당히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직장가입자로 편입되어야 마땅할 일용직이나 비정규직을 제외하면 순수하게 지역가입자로 남아야 할 사람들은 약 380만명으로 추산되는 자영사업자들이다. 그런데 국세청에 의해 소득이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 자영자가 약 180만명 정도인데, 이 사람들의 소득 내역이 실제 소득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머지 200만명 정도의 영세자영자들은 연간소득금액이 소득공제액에 미달하여 소득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연금관리공단이 보험료를 부과하는데 상당한 무리를 하여 국민들의 불만을 사거나 아니면 소득이 없는 납부예외자로 분류되어 사각지대로 편입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영자 소득파악이 개선되지 않으면 사각지대 규모를 축소하는데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자영자들의 소득발생과 보험료 부과시점의 시차문제

자영자들의 소득발생 시점과 보험료 부과시점의 시차 때문에도 국민들의 불만이 많이 발생된다. 예를 들어 종로에서 중국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이 사람이 2003년에 중국식당을 운영하면서 6개월에 한번씩 연간 2번 부가가치세를 납부하고 2004년 5월에 국세청에 종합소득세를 신고하여 소득이 확정된다.

이 자료는 2004년 10월에 공단으로 넘어가고, 공단은 2개월의 소득조정을 거쳐 2005년 3월경에 보험료 부과자료로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소득발생 시점과 보험료 부과시점이 1년 6개월에서 2년 이상의 차이가 발생한다. 따라서 2004년 3월에 폐업을 하거나, 혹은 경기가 나빠 소득이 줄어들어도 공단에서는 보험료를 조정하기가 힘들고 여기서 다양한 형태의 국민적 불만이 제기된다.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역가입자로 편입되어 있는 일용직, 비정규직을 직장가입자로 최대한 전환시키는 것이며, 자영자의 소득파악을 강화해야 한다. 이 업무는 조세행정을 개선해야 하는 문제와 연결되므로 국세청이 담당하는 것이 효율적이며, 효과적이다.

이미 영국, 미국, 스웨덴 등에서는 국세청이 연금보험료 징수를 담당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한다 하더라도 보험료 부담 능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계층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어 연금을 받게 하는 것 외에는 별 다른 방법이 없다.
김연명/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04/08/10 00:00 2004/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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