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제도가 논란거리가 될 때마다 해묵은 의심이 매번 수면위로 떠오른다. 정부가 그동안 기금을 적립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몰래 다른데 썼기 때문에 기금이 고갈된다는 의심 말이다. 이 의심은 사실과 반드시 부합되는 것은 아니지만 막대한 규모의 국민연금기금이 관리되고 운용되는 방식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 하기도 어렵다.

많은 일간신문들이 연금기금 고갈을 정부의 중대한 관리실책인 것처럼 보도해 왔지만, 이는 우리 연금의 재원조달방식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기사를 써왔기 때문이다. 연금의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근거로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기금 고갈되면, 연금 못 받는 것 아닌가?

하나는 부과방식으로 지금 현재 거둬들인 보험료로 지금 현재 연금생활자의 급여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하면 막대한 기금을 적립하거나 그 돈을 굴릴 필요가 없다. 다른 하나는 적립방식인데, 이는 가입자가 보험료를 납부하여 기금을 조성하고 나중에 그 기금에서 연금을 받게 되는 방식을 말한다. 완전적립방식의 경우 가입자에게 지급할 연금 부채 전액이 기금으로 적립되어 있어야 하고, 특정 시점에서 연금제도를 폐지할 경우 모아 둔 기금으로 가입자 전원에게 연금을 지급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연금제도의 재원조달방식은 부분적립방식 또는 수정적립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적립해 둔 기금을 연금급여 지급에 소진되는 시점에서 부과방식으로 전환한다는 것, 즉 고갈 시점부터는 피보험자의 보험료를 걷어서 은퇴한 연금생활자의 급여를 위한 재원을 조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항간에서 떠도는 불신 중 한 가지, 즉 기금고갈이 되면 연금을 못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은 부분적립방식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국민연금제도를 도입하던 당시 대부분 선진국이 취하는 부과방식 대신 부분적립방식을 택한 이유는 보험료율의 상승을 완화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유자금을 기금으로 적립하고 운용하여 여기서 발생한 수익을 연금급여에 활용하면 인구구조의 고령화로 인한 보험료율의 상승을 일정 정도 둔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걱정해야 할 것

연금기금에 대해 국민들이 진정으로 걱정해야 하는 사안은 기금고갈이 아니라 기금 적립의 속도와 규모이다. 국민연금은 2008년이 되어야 정상적인 노령연금 수급자가 생겨나기 때문에 연금기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불어나는 돈을 굴릴 곳이 마땅치 않다는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기금고갈을 걱정하기 앞서 적립되는 기금을 제대로 운용하고 관리하기 위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고 했는데, 과연 어느 정도일까? 국민연금 시행 첫해인 1988년에 보험료 수입이 5069억원이었고, 이중 연금급여로 3억원을 지출했으며, 운용수익 212억원이 더해져 적립기금은 5279억원이었다. 88년 이후 연금 가입자가 증가하고 운용수익금도 늘어나 2004년 5월말 현재 총 141조원의 기금이 조성되었다. 141조원 중 약 20조원이 연금 지급에 사용되었고, 남아있는 적립금은 121조원으로 우리 나라 GDP의 16%에 달하고 있다. 현재 적립되어 있는 121조원 중 약 41조원은 국민들이 낸 보험료를 투자해서 올린 투자수익금이다. 항간의 소문과는 달리 꾸준히 연금급여를 지급하고도 약 41조원의 운용수익금을 남겼으니 투자를 잘못해서 원금도 까먹었다는 소문은 사실 근거가 없는 것이다.

121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 적립금은 세부문으로 나누어 운용되고 있다. 121조원 중 현재 정부에 빌려준 돈이 12조원 정도 되며(이를 공공부문투자라 한다), 어린이집이나 노인요양시설 건축에 약 4천억원을 대여해주었다.

88년 이후 연금의 누적 수익률 8.78%로 양호한 수준

나머지 90%에 달하는 108조원의 돈이 다양한 금융상품에 분산투자되고 있는데, 채권에 97조원, 주식에 약 8조5천억원의 돈이 투자되어 있다. 88년 이후 지금까지 국민연금기금 여유자금의 누적수익률은 8.78%으로 상당히 양호한 수익률을 보여주고 있다. 기금운용에서 98년 법개정 이후 지속적으로 제시된 원칙은 민주성, 투명성, 전문성이었다. 정부가 예탁금 증서라는 형식의 증서를 주고 연금기금을 강제로 빌어다 쓰는 것이 가능하도록 한 공공자금관리기금법이 98년 개정되면서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의결이 있어야만 차입의 규모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노동조합 및 참여연대를 비롯한 사회단체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온 결과 거둔 성과였다. 98년의 연금법의 개정으로 정부가 마음대로 돈을 차입할 수 없게 되었고, 돈을 빌려쓰고 싶을 경우에는 이자율을 5년 만기 국채수익률 이상의 수준에서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와 협의하여 정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정부가 돈을 빌려갈 때는 무조건 국채를 발행하여 인수하도록 법제화하여 기금상환의 책임성을 제고하고 시장원리에 입각한 차입이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즉, 연금기금운용에서 정치적 위험을 제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또한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수를 15인에서 20인으로 늘리고 노동조합, 농어민 단체 등 가입자 대표를 과반수 이상으로 구성되도록 하여, 가입자의 참여를 확대하였다.

또한 국민연금기금의 배분과 운용 규모를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서면회의를 금지시켰으며, 분기별 1회 이상 회의 개최를 의무화하고, 회의록을 작성·비치하고 공개를 의무화하는 등 기금운용의 투명성도 향상되었다.

연금 운용의 투명성은 확보됐지만 관리감독체계 혁신 필요성 제기

또한 기금운용에 관한 정보공개도 강화하여 운용내역과 사용내역을 공시하게 하였으며 운용내역을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하고 공시하도록 법에 명문화하여 기금운용의 투명성을 높였다. 아울러 기금운용 전문인력을 기금운용본부에 두어 기금운용의 전문성을 높인 것도 98년 연금법 개정에 따른 변화이다. 이같은 변화로 인해 국민연금 기금운용에 대한 가입자의 민주적 참여와 운용계획과 과정에서의 투명성이 확보되었지만, 지난 5년간의 경험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또 다른 차원의 문제를 노정시켜, 기금운용 관리감독체계의 일대 혁신의 필요성이 나타나게 되었다.

우선 기금운용의 의사결정체계가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위원회, 기획예산처, 국회 등으로 산만하게 퍼져있어 체계적이지 못하며, 민주적 절차의 상징인 기금운용위원회가 비상설위원회로서의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적립기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면서 투자대상도 다변화되고 운용조직도 비대해지고 있지만, 비상설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와 이를 보완하는 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는 기금운용조직에 대한 견제와 관리감독의 역할을 감당할수 없게 되었다. 즉, 비상설위원회가 기금운용계획의 수립부터 기금운용 성과의 평가에 이르는 방대한 소임을 실질적으로 수행해내기 어려운 한계가 드러났다. 아울러 현재 1년 단위로 수립되는 기금운용계획은 중장기적 전망에 따른 투자와 기금운용에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금의 규모가 커지면서 여유자금 투자가 가능한 영역을 늘려나가는 것도 큰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금융부문에 투자되어 있는 기금의 대부분이 채권에 몰려있다는 것이 단적인 증거이다. 매년 이루어지는 성과평가를 염두에 두고 자금운용계획이 세워지고 집행되면서 중장기 전망에 따른 투자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민주적 참여에 따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상설화 필요

아울러 주식과 채권 이외에 벤처부문, 위탁투자, 해외투자 및 대체투자 등 위험분산을 위한 투자 다변화가 지속되고 있지만, 중장기 전망에 의해 차근차근 진행되기 보다는 불어나는 적립기금을 분산시키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국민연금기금운용에 대한 신뢰 제고가 국민연금제도 전반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만큼 98년 법 개정으로 확보된 전문성, 민주성, 투명성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기금운용 관리체계를 다시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중에 핵심이 바로 오랜 기간 거론되어 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상설화이다. 정부부처 내에 상설화의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진정 '국민의' 연금으로 연금제도를 정착시키려면 몇가지 원칙이 준수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전문적 기금운용조직으로서 기금운용본부를 견제하고 투자결정의 큰 틀과 투자결과의 성과에 대한 평가 기능을 별도의 상설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기금운용위원회의 구성에서 여전히 민주적 참여의 원칙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위원회의 위원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가입자 단체의 대표, 정부의 관련부처 위원 등으로 구성하되, 가입자의 참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상설화되는 기금운용위원회는 정부 부처와 독립된 위원회 형식을 취함으로써 관련 부처의 영향력을 상호 견제하고 국민연금기금 운용의 중장기적 전망에 근거하여 여타의 사회경제적 요인과의 상관관계, 예컨대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대응이라든가 연금기금이 국민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하여 기금운용정책을 결정하는 사회적 합의기구의 성격을 띠어야 할 것이다.
엄규숙 / 경희대 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
2004/08/10 00:00 2004/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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