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복지다처(福祉多處) 시대이다. 여성부는 작년에 보건복지부로부터 보육업무를 넘겨받았고, 그에 이어서 아동, 노인, 청소년 복지업무도 인수하여 본격적으로 복지업무에 뛰어들 작정이어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여성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예전에 보건사회부에서 분가한 노동부나 보훈처는 이미 상당한 정도의 복지성격 업무를 가지고 있다. 나아가 행자부는 공무원복지, 국방부는 군인복지, 문화관광부는 청소년 복지, 농림부는 농어업인 복지와 관련된 업무를 부분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최근, 건설교통부는 주택국 산하에 주거복지과를,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육복지심의관 산하에 교육복지정책과를 신설하여 복지업무에 뛰어들었다. 정보통신부는 아직 전담부서는 두지 않고 있지만 정보격차 해소 및 정보복지 등을 새로운 과제로 채택하고 있다. 요컨대 이제 사회복지업무에 관한 한 보건복지부 독점시대는 거하고, 정부의 거의 모든 부처가 한발씩 걸치는 복지다처 시대가 도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복지다처 현상은 사회적 욕구가 다양화, 다변화되면서 사회복지업무를 어느 한 부서에서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는 것일텐데,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먼저 긍정적인 면으로는 다양한 부처들이 복지업무에 참여하면서, 복지영역이 넓어짐은 물론, 복지인식의 보편적 확산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점이다. 나아가 복지가 어느 한 영역이기 보다는 정부정책 전체를 규율하는 하나의 시각(perspective)으로 발전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이러한 변화가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사회복지의 체계적인 발전이 아니라, 무분별하고 전문성이 결여된 혼란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여성부의 복지업무 확대에 대해 적극 반발하고 있는 사회복지계의 반응이 바로 그러하다. 분명 이러한 변화가 의도적인 계획이나 조정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변화의 과정도 그러했지만,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조정기능도 결여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각 부처에서 진행되는 복지업무를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기획, 조정하는 사령탑이 결여된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복지욕구가 확대되는 사회적 변화에 대해 정부의 각 부처가 각개전투식 대응을 펼치고 있고, 복지부 등은 손을 놓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그 원인을 각 부처간 파워게임의 결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에 대한 복잡한 방정식을 고심하기 보다는 사회적 변화에 무심(무지?) 했던 복지부와 복지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더욱 유익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필자가 보기에 그동안 우리 사회는 급격하게 변화했고, 이에 따라 삶의 질이나 복지문제에 대한 관심이 크게 성장했지만, 복지부는 놀랄 정도로 왜소화된 복지개념에 집착해왔다고 생각한다. 현재 복지부의 업무는 보건분야를 제외하면 사회보험 일부(국민연금, 건강보험)와 공공부조 및 사회복지서비스(노인, 아동, 장애인 등)로 구성된다. 일부나마 사회보험에 대한 관할권을 지키고 있는 것이 대견하긴 하지만, 공공부조와 사회복지서비스는 지극히 선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몇 년 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확립되기는 하였지만, 기초생활보장보다는 생존유지 정도의 지원에 불과하다는 평가이다. 가난한 사람들도 생존 외에 주거의 질이나 교육 그리고 정보통신 등 보통사람들과 비슷한 삶을 누리고 싶은 다양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애써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 아동,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다양한 복지욕구에 대응하는 사회복지서비스 영역은 사회보험이나 공공부조 등 덩치 큰 영역에 밀려서 찬밥이라는 인식이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보건 영역 역시 전국민적인 건강증진을 위한 예방의학의 발전이나 공공의료의 발전을 도모하지 못하고, 시장중심 의료체계의 뒤치다꺼리에 여념이 없는 실정이다.

결국 복지부는 국민대다수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시대적 과제는 외면하고, 거의 노동무능력자나 극빈층의 생존유지를 지원하는 부서로 스스로 위축되었다. 무능일까, 배짱일까? 그렇다면 세계적으로 개방되고, 경제적으로 성장한 시민들이 요구하는 삶의 질, 복지욕구는 어디에서 채워야하는지?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는 일은 각 부처에 온전히 맡겨져 왔다. 이와 더불어 고령화 사회와 출생율 저하에 따른 사회적 위기의식이 부각되면서 보건복지부에 대한 불신이 강화되고 그 결과 중의 하나가 곧 행정부처 개편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즉자적인 반발보다 자기반성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사회복지 교육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양하게 발전하는 복지욕구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을 쏟고 또 교육에 반영시켜왔는지 반성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 교육은 전문성을 추구한다는 미명하에 사회복지를 점점 더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두지는 않았는지? 이러한 근본적인 반성이 없다면, 왜소화된 복지영역의 밥그릇 지키기에 골몰하는 모양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나아가 큰 추세를 인식하지 못하고 우리 것만 지키자고 해서 제대로 지켜질 것인지도 의문이다.

행정개편의 문제는 정답이 없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군인들의 복지는 국방부와 복지부 중 어느 쪽이 담당해야 할지, 또 노동자들의 복지는 노동부와 복지부 중 어느 쪽이 담당해야 할지 선험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상 기존 체계를 개혁할 필요성이 공유될 경우에도, 기존에 형성된 전문성과 노우하우, 전달체계 등을 무시하기 어렵고, 그에 따라 점증적인 변화를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업무에 대한 파격적인 행정개편이 줄기차게 시도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인데, 이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보다는 그 이유에 대한 신중한 숙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이익단체적 집착으로 오해받을 소지도 없어질 것이라고 본다.
이영환 /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004/08/10 00:00 2004/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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