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의 허와 실

금년 여름은 유난히도 무더웠다. 이 무더위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생존을 위해 도망 다닌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들은 우리와 다른 언어와 모습을 지닌 이주노동자들이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땅에는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숨어 다니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현대판 노예제’인 이주노동자 산업연수생 제도를 보완하고, 업체에 안정된 외국 인력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8월17일부터 시행된 고용허가제 때문이다.

고용허가제 하에서 이주노동자는 기본적으로 3년의 비자를 받으며, 노동자로서 노동3권과 건강보험의 혜택도 받게 되지만 이에 따른 문제도 많다. 사업장 이동의 제한, 1년마다의 재계약 장치는 노동자의 권리를 사실상 행사하지 못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이주노동자는 재계약의 권한이 없으므로 기업주가 1년마다 재계약을 해 주지 않으면 회사를 그만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자로서의 권리주장을 한 이주노동자의 경우 재계약의 대상에서 탈락될 것은 뻔하다. 또한 고용허가 대상 국가는 노동부가 2년마다 재평가를 통하여 대상국가의 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에 송출국가에 의한 이주노동자 이탈 방지활동에 따른 인권문제가 대두될 가능성도 높다. 뿐만 아니라 예치금제도로 인하여 이주노동자와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도 많다. 아무리 고용허가제라지만 송출국가 정부기관과 송출브로커의 밀착관계를 근원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정부의 단속에도 증가하는 불법체류자의 수

2004년 7월 현재, 법무부는 불법체류자의 수를 16만 8천여 명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국내 체류 이주노동자수를 대략 38만 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산업연수생은 17개 국가에서 들어왔으나 2004년 8월부터 실시되고 있는 고용허가제 대상 국가는 현재 필리핀, 태국, 몽골, 카자흐스탄, 스리랑카, 베트남 등 6개 국가에 불과하다. 중국과 인도네시아는 준비가 덜 되어 고용허가 대상 국가에서 보류된 상태이다.

고용허가제는 한 달 동안 구인 노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인력을 구하지 못한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게 하는 그럴듯한 제도이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로 인해 최대로 혜택을 봐야 할 사업주들의 반응은 썩 좋지 않다. 왜냐하면 지난해부터 정부가 4년 이상 국내에 체류한 이주노동자들을 모두 내보내겠다며 단속을 벌이는 사이, 한국말을 잘하고 일 잘하던 불법 체류 이주노동자들은 어디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합법적인 체류 허가를 받은 이주노동자라 해도 단속 당시 등록증이 없으면 일단 걸리게 되므로 인권침해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합동단속 기간 중에 잡혔던 1,483명 가운데 190명이 풀려난 것으로 집계됐으며, 246명에 대해서는 체류심사 중이라고 밝혀 억울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부의 과도한 단속에도 노력에도 불법체류자의 수는 줄지 않고 있다. 2004년 2월말까지 자진 출국한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고용허가제 구직자 풀에 포함되도록 노동부가 송출국가에 요구할 예정이지만 5배수 추첨에 의해 선택적으로 들어오게 됨에 따라 자진출국자들의 입국은 매우 힘든 상황이다. 이렇게 이주노동자들은 재입국 보장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출국을 기피하고, 숙련된 노동자가 필요한 고용주들은 계속적으로 이들을 고용하고 싶어하는 상호 입장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불법 체류자의 수는 결코 줄어들 까닭이 없다. 현장에 일할 사람이 없는 영세업체들을 도와주겠다는 고용허가제가 오히려 영세업체의 발목을 잡는 꼴이 되고 있다.

고용허가제의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기체류자들을 불법체류 상태로 방치 할 것이 아니라 영주권제도를 개방하여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과도기적 조처가 필요하다. 아울러 일시거주자와 장기거주자 및 영구거주자를 고려하면서 각종 사회보장제도와 국민최저생활 수준정도라도 되는 교육, 의료, 주거, 사회복지서비스의 제공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회복지운동을 우리 국민의 복지문제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소외되고 차별 받는 이주노동자들의 복지문제에게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이주노동자 전문단체와 지역운동단체, 그리고 사회복지운동단체들은 상호 연대하여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을 지역사회복지의 틀로 인식하여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국경 없는 마을’과 같은 지역복지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1960년대, 70년대의 수많은 독일 광부와 간호사의 눈물과 한숨을 진정 잊지 않는다면 지금 대한민국에 들어와 일하고 있는 외국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절박한 생존권을 보장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주노동자 복지 문제를 좀더 현실적으로 검토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책무가 이 땅의 사회복지를 이루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
조흥식 /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004/09/10 00:00 2004/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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