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한국사회구조의 질적 전환과 더불어 복지의 지평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감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복지재정의 의미는 매우 각별하다. 아직도 국가책임 하에서 이루어져야할 많은 복지부문이 생략되거나 저수준 상태에서 구현되는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현주소를 생각할 때 복지재정의 확충은 가장 절실한 과제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참여연대는 이러한 복지발전의 관건 중 하나인 복지재정의 확충에 대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참여연대의 창립 초기에 국민기본선 확보 운동과 함께 이루어진 "복지예산 GDP 5% 확보 운동"이 보여 주듯 복지재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추동하고 이를 통해 예산 편성 상 사회복지분야의 예산이 실질적으로 증액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의 전술을 구사하여 왔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얼마마한 실질적 성과를 거두었는 지를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즉, 이러한 복지재정확충 운동이 얼마나 예산 상 증액 효과를 거두었는지, 그리고 정부의 예산 편성 기조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아울러 국민의 복지재정 확충에 대한 정서적 방어벽을 얼마나 낮추어 놓았는지.... 등등에 대해 객관적 평가 수치를 제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동안 한국사회의 다양한 운동주체가 있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복지재정에 대해 10년 가까이 지속적이고도 적극적으로 운동 소재로 삼아온 거의 유일한 시민사회단체인 참여연대가 그간 복지재정 운동의 일환으로 행한 다양한 노력과 내용들을 이 시점에서 분석하고 정리하는 것은 나름대로 적지않은 의의가 있다.

특히 90년대 후반들어 한국 사회·경제적 조건이 세계화의 진전과 그에 대응하는 과정 속에서 매우 악화되어 온 것의 반사작용으로 복지재정의 확대 속도가 빨라져 왔기에, 이를 우려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견제하려는 세력과 이러한 추세를 더욱 연장하여 차제에 복지재정의 확대 기조를 국가재정운영의 원리로 고착시키려는 세력 사이에 이후 복지재정을 둘러싸고 더욱 거센 사회적 논란이 유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간의 복지재정확충 운동을 반성적으로 고찰하고 향후의 주효한 운동전략을 수립·구사하는 데에 활용할 수 있다면 매우 값진 의의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의의를 염두에 두고 1994년 9월 참여연대가 발족된 이후 현재까지 복지재정확충 운동이라 불리 울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정리하고 그 주요 특징을 분석하면서 나름대로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도출해 보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할 것이다.

2. 참여연대 복지재정확충운동의 경과와 특징

참여연대는 1995년 3월 185인의 사회복지관련 교수들의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사회복지예산의 GDP 5% 확보를 천명함으로써 전격적으로 복지예산확충을 촉구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하여 거의 매년 빠짐없이 복지예산에 대한 논평과 기자회견, 토론회 개최, 청원, 항의집회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이 사업을 주된 사업의 하나로 이어가게 된다. 그 궤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 아래 <표 1>이다.

그렇다면 그 주요한 내용이 무엇이었는 지 연도별로 살펴보기로 한자.

<표 1> 참여연대의 복지재정확충운동과 관련된 제시도

표없음

1) 1995년 : 복지예산운동의 서곡이 시작되다

1995년 3월 17일 이후 215명으로 늘어났지만 185명의 사회복지관련교수가 서명한 성명서를 발표하기 위해 세실레스토랑에 다수의 사회복지관련교수들이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

복지개혁을 촉구한다 - 획기적인 사회복지 예산 증액과 제도개혁을 요구하며 -"라는 제목의 성명서 발표를 통해 김영삼 정부하에서의 WTO 가입과 이로인한 세계적 차원의 경쟁격화가 몰고 올 파고를 예감하며 적어도 '사회개발을 위한 세계정상회담'의 핵심의제를 지켜 나갈 것을 권고하며 "이제 경제성장 제일주의는 바뀌어야 한다"는 선언과 함께 5가지의 요구사항을 내걸었는데 이 중

"다섯째, 복지개혁을 위한 사회복지비 지출수준을 최소한 GDP 대비 5% 수준으로 증가시켜야 한다."고 제시함으로써 이후 본격화될 참여연대의 복지예산운동의 서곡을 울렸다.

2) 1996년 : 「복지예산 GDP 5% 확보 공대위」를 결성하다

예산에 대한 본격적인 사회운동 차원의 사업을 전개한 것은 1996년 말이다. 이미 이해 봄 8개 시민사회단체가 복지예산 5% 확보를 제기한 바 있었지만, 1996년 10월 30일 「사회복지예산 GDP 5%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발족식과 토론회」를 주최하여 당시의 복지예산의 저열성을 폭로하고 시민사회단체의 연대와 각종 사업을 통하여 이를 타파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선언하게 된 것이다.

이때 참여한 단체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전국민간가정보육시설연합회, 민노총, 한국사회복지사협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장애인공동대책협의회, 참여연대

등 모두 9개단체에 이른다. 이들이 공대위를 결성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1997년도 예산을 책정함에 있어 국방비의 증액을 위해 사회복지예산을 삭감한 정부의 조치에 있었다. 그해 9월 4일 이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한 데에 이어 9월 11일 경실련, 여연 등 11개 단체가 이에 대한 규탄대회를 열게 된 것이다.

10월 30일 결성된 공대위는 당시로서는 사회복지예산에 대한 시민사회 진영의 대규모 의사표현으로서는 처음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비로서 시민진영에서 복지예산에 대한 적극적 관심의 계기가 되기도 한 매우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록 이후 공대위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된 사업계획이 착실히 실행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시민진영의 복지예산에 대한 관심 집중은 이후 복지예산 운동에 중대한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3) 1997년 : 대선후보의 복지예산 공약을 점검하다

1997년은 실로 정치의 계절이었다. 문민정부의 실정이 도마위에 오른 가운데 새로운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본 시민사회 진영은 각종 정치개혁의 기대를 대선정국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때 참여연대는 대선 후보의 정책 검증을 시작하여 이후 선거정국을 이용한 복지정책 확대와 복지예산 확충의 계기를 찾아나가는 전형적인 '복지정책의 정치쟁점화'를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주요 정당의 복지예산에 대해 참여연대 사회복지특별위원회가 내린 평가는 단적으로 아래와 같다.

한나라당 : 복지서비스 확대에 대한 언급만 있을 뿐, 복지예산 확대 언급은 없어 모순

국민회의 : 매년 30% 증액, 2000년대 GNP 5% 달성, 재원조달 방법 모호

국민신당 : 2010년 국제평균수준, 5년이내 OECD 수준 도달, 재원조달 방법 추상적

국민승리 21 : 2002년 정부예산 20%까지 확대, 군비축소, 세제개혁 국민합의 필요

이때 국민회의는 참여연대 등 시민진영에서 그간 주장하던 "GNP 5%" 주장을 수용한 흔적으로 보이고 있으며 한나라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도 복지예산의 확충을 국제 수준을 비교해 가며 제시하는 모습을 보여 그간의 복지재정 확충 운동이 정치권에서 수용되어 정책 agenda로 활용되는 성과를 엿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국민회의의 김대중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함으로써 복지예산 확대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리게 되었으며, 시민사회진영의 복지재정 확충 운동이 일정한 개가를 올렸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4) 1999년 : DJ 정부에 대한 실망, 생산적 복지예산의 허구성 폭로로 이어지다

1999년 8월 15일 DJ는 8·15 경축사를 통해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소위 '생산적 복지'를 펼치겠다고 천명한다. 이어 각 부처는 부랴부랴 생산적 복지에 걸맞는 구체적인 정책사업들을 제시하게 된다. 그러나 1999년 9월에 공개된 정부의 2000년 예산(안)을 분석한 참여연대에서는 DJ의 생산적 복지가 말의 성찬에 그쳤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며 그동안 누적되어온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계기를 잡게된다. 특히 복지예산에 대한 허구성을 폭로하는 성명서와 기자회견, 집회를 당시의 제시민사회단체를 망라하는 수준으로 시민사회진영 연대의 틀을 이끌어 내어 진행함으로써 1996년 이후 잠복되었던 복지예산의 연대 투쟁에 대한 닻을 재차 올린다.

이때 동참한 시민사회단체는

건강사회를 위한 보건의료단체대표자회의(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기독청년의료인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 평등사회를위한민중의료연합, 참된의료실현을위한청년한의사회)/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추진 연대회의/ 건강연대/대구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복지개혁시민연합/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전국의료보험노동조합/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사회복지사협회/ 한국사회복지협의회/

등 13개 단체였으나 보건의료단체 대표자회의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연대회의 등에 소속된 하부단체, 특히 지역운동단체 등을 생각할 때 동참한 시민사회단체는 그동안의 사회복지관련 시민사회진영의 움직임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연대세력을 과시한 것이 아닐 수 없었고 이는 그만큼 당시 DJ 정부의 신자유주의적인 정책 구사 조짐에 대한 실망이 컸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이어 그해 11월 26일 참여연대는 「2000년 복지예산에 대한 참여연대 의견서」를 제출하였는 데,

"IMF 경제위기 이후 빈곤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사회 안전망 구축을 위한 정부의 획기적 대책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예산편성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현재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보건복지 부문 예산안은 이러한 기대를 외면하였다"

며, 국회 심의과정에서 10대분야 총 6,463억원의 예산을 반영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러한 분석결과의 제시는 매우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평가되었으며, 이후 '복지재정 확충 운동의 구체성'을 확보하는 단초가 되기도 하였다.

5) 2000년 : 예산확보운동에 있어 연중투쟁방식과 의 국회 의견청원방식을 도입하다

1999년 구체적인 예산분석작업을 통하여 예산의 부분적 증액이란 성과를 얻어낸 참여연대는 2000년부터는 사회복지예산의 실질적 확대를 위한 연중 투쟁 방식을 채택하게 된다.

그러나 이해의 최대 성과는 예산이 책정되는 각각의 단계에 맞추어 적절한 대응방식을 구사하는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그림 1>과 같이 복지부대응시기, 예산처 대응시기, 당대응시기, 국회대응시기 등 4단계의 접근대상별 시기구분을 전제로 각기 단계마다 시민사회단체와의 공동대응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그림 1> 2000년 예산확보운동의 연간 일정

그림없음

이러한 투쟁방식 중 그해 9월 1일 국회에 2001년도 사회보장예산안 의견청원서를 제출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이는 국회법 제123조의 규정에 의한 것으로 이미경의원과 심재철의원을 소개의원으로 하여 총 54쪽에 달하는 예산청원서를 제출함으로써 시민사회내 예산확보운동방식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할 수 있다. 이 청원과정에 동참한 시민사회단체는 민노총, 한노총, 여연, 장총 등 모두 10개 단체였다.

특히 이러한 입법청원과정에서 각 분야마다 핵심단체들의 예산분석과 적절한 예산액 도출이라는 방식을 구사하여 복지재정 확대를 촉구하는 연대투쟁의 의미만이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의 예산분석 능력과 구체적인 예산액 산정 능력을 제고하는 성과도 거두게 된다.

6) 2001년 : 시민합의방식을 통한 복지예산안을 마련하다

2001년의 예산확보 운동방식에는 또 하나의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 보았다. 즉 다음과 같은 일정으로 통하여 시민합의제 방식을 구체화하여 5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시민이 바라는 복지예산"을 구체적으로 발표하게 된 것이다.

시민보건복지국을 구성하고 여기에서 전문가가 만든 예산안은 주부, 학생, 회사원 등 12명의 시민대표로 구성된 '시민패널'에 의해 격의없는 토론과 심의를 거쳤으며, 이로부터 "시민이 합의한 12대분야 16개 우선사업", 총 8조 9천억원의 주요예산액이 결정되었다.

이 해에도 2002년 정부 예산(안)이 9월 25일 공개되면서 "신기루로 끝난 '생산적 복지' 정책"이란 성명서를 발표하고 끝내 DJ 정부가 자신의 임기내에 편성하는 예산을 통해 생산적 복지 정책에서나마 주장한 사업들을 반영하지 못하는 점을 신랄히 비판하게 된다.

이어서 그해 11월 12일 2000년에 이어 국회에 의견청원의 형태로 「2002년 사회보장예산안 의견청원서」를 제출하였다. 김홍신, 김태홍의원을 소개의원으로 하여 총 82쪽에 달하며 민노총, 여연, 전국실직노숙자대책종교시민단체협의회 등 7개 단체가 모여 공동청원형태를 취했다.

7) 2002년 : 대선정국에서 복지예산에 대한 적극적 공약개발을 유도하다

2002년 12월, 전국을 뜨겁게 달구면서 진행된 대통령 선거의 과정에서 참여연대는 각 당에 사회복지예산과 관련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한다. 즉,"정부예산 중 사회보장 관련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IMF 기준)은 미국 49.1%, 영국 51.33%, 멕시코 27.9%, 말레이시아 17%인데 비해 우리 나라는 12∼13%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복지예산이 많이 늘었다고는 하나 장애인, 노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소득보장과 복지서비스에 필요한 예산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차기 정부가 목표해야 할 복지예산의 수준과 예산확보 방안을 제시해 주십시오"라는 질문을 통하여 4명의 대통령후보에게 질문한 결과 각인은 나름대로의 답변을 내놓기에 이른다. 이로써 대선정국을 통해 정부재정 중 20% 내외의 복지예산확보 또는 GDP의 12% 정도의 복지지출비 확보라는 공약을 확인하게 되었다. 특히 노무현후보의 이러한 공언은 참여정부의 복지예산 증액을 압박하는 주요한 근거가 됨은 물론이다.

8) 2003년 : '신빈곤' 예산에 대한 사회적 의제를 만들다

2003년은 참여정부의 복지정책을 전개과정을 예의주시한 한해이다. 참여복지를 내세운 참여정부가 도대체 얼마나 전향적인 복지정책을 구사하며 참여정부가 최초로 편성하는 2004년 예산의 규모나 기조가 어떠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던 한해였다. 그러는 가운데 2003년 중반에 참여연대에 의해 불거져 나온 '신빈곤' 에 대한 사회적 의제 설정은 2004년 복지예산 편성을 평가하는 주요한 기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정부의 예산안은 매우 실망스럽기 그지 없는 것이었고 10월 13일 의견청원의 형태로 국회에 2004년 예산 청원안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참여연대의 신빈곤예산안을 밝히게 된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함께 사회정책의 확대를 기대하였으나, 경제불황을 이유로 특별한 정책적 전개가 보이지 않는 시점에서 제기한 참여연대의 신빈곤문제와 이에 대한 예산안은 노무현 정부의 반성과 분발을 촉구한 일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3. 성과와 한계

지금까지 참여연대의 사회복지재정확충운동의 연도별 전개과정과 그 의미를 추출해 보았다. 이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성과를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지난 10년간 참여연대는 사회복지예산에 대한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사회운동으로서의 전개를 주도함으로써 한국사회에 있어 복지예산의 중요성과 그 확충의 당위성을 꾸준히 제기하게 되었다.

둘째, 예산확충운동을 전개함에 있어 시민사회노동단체와의 연대를 염두에 둠으로써 우리사회의 진보진영 내에서 사회복지예산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이는 아직까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향후 노동계 및 기층운동단체에서 더욱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사회복지운동을 전개해 나갈 수 있는 교두보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사회복지예산확충운동의 구체적인 전개방식을 발전시켰다. 단순한 성명서나 토론회의 방식을 뛰어 넘어, 의견청원서 제출과 시민합의제 방식, 예산편성단계마다의 접근 방식 등등 향후 구체적인 예산투쟁 방식에 밑거름이 될만한 다양한 방식을 시도해 본 것이다.

넷째, 정치적 시기를 활용하여 예산운동을 전개한 점이다. 대선시기는 물론, 정치적 동향에 면밀히 대응하여 그때 그때 복지예산의 확보를 위한 의견개진 및 입장촉구를 즉각적으로 행함으로써 예산확보운동에 있어서의 시의성(timing)을 잃지 않는 감각을 익히게 되었다.

다섯째, 무엇보다도 복지예산 확충 그 자체의 성과를 거둔 점이다. 이는 정확히 얼마만큼의 예산 증액으로 연결되었는 지에 대해 구체적인 근거와 그 수치를 제시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자칫 '자찬(自讚)'으로 비출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러한 예산확보운동이 없었을 때와 비교할 때 정부와 국회의 긴장 정도와 결단의 정도는 분명 엄청난 차이를 보였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다른 한편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많은 한계를 생각했을 때 크게 강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 한계란, 첫째, 아직도 사회복지예산의 확충에 필요한 거대 담론 상의 '진지구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그간 거대담론차원의 운동보다는 구체적인 예산 숫자상의 투쟁이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일 수 있다. 실용주의적 접근에 입각하여 익년도 예산액의 구체안을 제시하고 그 수치를 둘러싼 공방을 주고받음으로써 예산확충운동의 전선을 스스로 낮추어 버린 결과를 낳고 말았다.

둘째, 복지예산에 대한 대체안 구성 능력이 아직도 일천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예산분석 및 대안 제시란 주요사업 중심의 부분적 영역에 머물렀을 뿐, 전체 복지예산의 구도를 포괄한 수준은 아니었다. 따라서 복지재정 전체의 적절한 규모를 제시하고 이를 관철시키기기에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게 된다.

셋째, 복지예산 확충에 필요한 지원세력의 확보가 아직 미흡하다. 시민사회진영 중에서도 복지예산의 중요성은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사업의 우선순위를 높게 책정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복지진영을 넘어서서 정치계 및 학계, 범사회계 등에 복지예산 확충에 필요한 다양한 지지층이 구성되어있지 못하므로 제한적 범위내에서의 '닫힌' 주장으로 그치고 마는 단계에 머물렀다고 평가된다.

이제 참여연대 10년을 넘어 새로운 10년을 바라보노라면 사회복지예산운동의 중요성이 더욱 더 부각된다. 지난 10년동안 관철된 복지예산의 증대 추이가 더욱 거세게 연장되지 않는다면 복지국가의 실현에 걸맞는 복지재정의 확보는 영원히 불가능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여연대 복지예산확충 운동이 여기서 멈칫거릴 수 없는 가장 확실한 당위성을 바탕으로 또 다른 예산확보 투쟁의 깃발을 높여야 할 것이다.
이태수 /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
2004/10/10 00:00 2004/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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