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 심의가 국회에서 진행 중이다. 제대로 심의가 될지 항상 의심쩍지만, 한가지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사병들의 월급과 복지를 개선하겠다는 대목이다. 현재 월 35,000원 수준인 사병 봉급을 월 60,000원으로 파격적으로 인상하고, 피복은 전투화의 재질과 중량을 개선하고, 런닝팬티의 품질도 드디어(?) 시중 사용품 수준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내무반도 꾸준히 개선하여 25년(!) 이상 노후되고 15평 이하로 협소한 건물은 국민주택규모 수준으로 개선하겠다는 계획 등을 볼 수 있다.

사실 사병들은 현역복무라는 불이익에 대한 보상은 커녕 최소한의 인간다운 대접조차 받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비정상적인 보수수준은 물론이고 의식주와 같은 기본생활과 의료, 여가생활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문제가 발견된다. 사계절용 전투복, 땀을 흡수하지 못하는 나일론 양말과 통풍이 되지 않는 전투화, 10명 기준 침상에 16명이 취침하는 내무반, 칼잠은 물론이고 개인생활과 프라이버시는 꿈꾸기도 어렵다. 전방부대의 경우 위생문제도 취약하고, 의료시설이나 의료인력의 부족 또한 만만치 않은 문제이다. 매년 28,000명이 부상과 질병으로 입원하여 20여명이 사망하고, 3,500명이 의병전역한다. 폭행등 가혹행위도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고, 아직도 사망자 수가 매년 200여명(그 중 자살자가 40% 정도)에 가깝다.

사병들이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방치된다는 점도 심각하다. 사병들은 군인연금은 물론 국민연금에서도 배제되므로 생애통산 가입기간이 줄어들어 급여산정에서 손해를 본다. 혹은 제대 후 자신의 부담으로 보험료를 소급하여 불입할 수 있지만, 이러한 불이익은 정당하지 않다. 군인들도 적지만 보수를 받고 있기 때문에 연금 가입자격이 주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보험료를 부담할 만큼 보수를 인상하든지(국민연금 표준보수월액 최저기준인 월 22만원으로), 아니면 국가가 보험료를 부담하는 방식이 채택되어야 한다. 최근 휴가, 외출, 외박 군인들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개선된 것 외에 사병들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 제외, 불리하고 제한적인 재해보상제도 등도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사병들에 대한 불이익과 차별은 제대 후에도 이어진다. 제대군인지원에관한법률은 10년 이상 장기복무자만을 대상으로 하며, 사병들을 위한 배려는 병역법에 의한 복학보장과 복직보장, 복직시 근무기간 인정 등이 거의 유일하다. 공무원등 채용시험에 대한 가산점 제도는 1999년에 위헌판결을 받아서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였고, 지금은 ‘채용시 우대한다’는 정도의 내용으로 대체되어 큰 의미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같이 사병들의 생활이 열악하고(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는 점은 놀랍고도 가슴 아픈 사실이다. 형평성 차원에서도 장교나 직업군인 그리고 병역특례자(전체 병역대상자 중에 거의 절반에 이른다!) 등에 비해볼 때 왜 사병들만 이러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이다. 작년에 사병들의 복지문제를 검토하면서 기존연구와 관련자료를 찾으면서 두 번 놀라게 되었다. 우선, 군인들의 복지문제를 다룬 논문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이었고, 다음으로 그 논문들의 거의 전부가 장교나 하사관 등 직업군인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사병들에 관한 것은 천연기념물 발견하는 것보다도 어려웠다. 사병들의 생활이 아직도 이렇게 열악한가 하는 점도 놀라왔지만, 그에 대한 철저한 학문적 무관심은 더욱 놀랄만한 것이다.

이러한 놀라운 학문적 무관심과 대중적 불감증 속에서 사병들은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왔다. 군대는 누구나 겪어야 하는 고생스런 경험이라는 인식, 나아가 고생을 감내했다는 뿌듯한 경험, 그리고 비밀유지에 대한 강박관념 등이 집단최면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결국 곪을 대로 곪은 상처는 폭력과 자살, 의문사, 성폭행, 집단 따돌림, 탈영 등의 사회문제로 표출되기에 이르렀고, 사병들의 인격은 싸구려 인력으로 왜곡되고 말았다.

나아가 이러한 상황이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인 군사문화의 물질적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도 깊이 인식되어야 한다. 상황의 개선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지만, 정부의 계획은 아직도 너무 소극적이다. 상황의 개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수준’으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규모로 군대를 축소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일 것이다. 인구 4,700만의 우리나라가 68만 명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고, 인구 2.9억의 미국이 138만 명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사실만 보아도 규모가 크다고 질적으로 훌륭한 군대가 아닌 것은 자명하다.

다소 장황하지만, 사병들의 복지문제를 거론한 것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주장은 사실 기이하다. 사회복지는 전통적으로 소수자 문제를 다루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사회복지의 제도화가 진행되는 정도에 비례하여 학문적, 운동적 관심 또한 이러한 제도권 내의 문제로 집중되는 경향이다. 관심의 초점이 협소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수많은 소수자 집단들은 관심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이주노동자, 희귀별 환자들, 동성애자들, 오지의 주민들, 무주택자들 등등... 점점 심각해지는 양극화 시대에 사회복지운동이 다시 시작되어야 할 지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영환 /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04/12/10 00:00 2004/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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