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한국 복지국가의 성과와 한계: 연대적 복지의 가능성
월간 복지동향/2005 :
2005/01/10 00:00
1. 서론
오늘의 한국 사회는 매우 큰 전환점을 통과하고 있으며 복지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화로 인한 여건 변화와 인구구조의 변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과 같은 내‧외부적 조건의 변화에 의한 것이다. 세계화의 경향은 지난 1997년 말 이후의 경제위기로 나타난 바 있고 이 경제위기의 극복과정에서 복지제도는 크게 확대되었으나 빈부격차 역시 크게 확대되었다. 빈곤으로 인한 ‘사회적 타살’ 사건의 발생, 생계형 범죄의 증가와 같은 사회현상의 이면에는 경쟁의 가속화와 경제구조의 양극화, 그리고 이에 따른 삶의 질 양극화가 놓여 있다.
경쟁이 치열해진다는 것은 사회구성원들의 삶이 서로 간에 무관해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경쟁의 치열은 서로 간의 삶이 더욱 더 강하게 연관됨을 의미한다. 문제는 상호연관의 성격이 상호 적대적인가 아니면 상호 의존적인가 하는 것이다. 삶의 연관이 상호 적대적인 것으로 구조화할 때 그것은 극심한 양극화를 결과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호 적대적 연관은 그만큼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누구도 시장경쟁에서 자립을 확신할 수 없게 만든다. 왜냐하면 시장은 의지를 가진 구조물이 아니며 누구에 대해서도 경쟁에서의 성공을 사전에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Plant, 1991). 시장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상호연관성을 증대하며 또 이러한 상호연관성 증대가 자립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상호연관성이 상호 적대가 아니라 상호의존관계로 구조화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연대적 복지(solidaristic welfare)는 바로 여기서 나온다. 연대적 복지는 누구도 자립을 확신할 수 없으며 따라서 모든 사람들 간의 상호의존이 모두에게 궁극적으로 이익이라는 잠재적 보편성을 그 기본전제로 한다(Baldwin, 1990). 자선은 일방적 의존(dependence)과 관련되지만 연대는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과 관련된다. 연대는 모두가 가진 자립에의 욕구가 경쟁이 아니라 서로 간의 의존을 구조화할 때 가장 잘 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승인할 때 가능하며 이런 점에서 연대는 곧 사회적 연대(social solidarity)이다. 이는 욕구의 측면에서 규정된 정의의 실현이다(Baldwin, 1990).
오늘 한국사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지만 이를 위한 조건이 충족되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은 것 같다. 한 사회가 가진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은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Baldwin, 1990). 상호의존성이 보편적인 것으로 승인되기 위해서는 상호의존성이 권리로 인정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욕구가 권리로 인식되어야 하지만, 욕구가 권리화하는 것은 선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 따라 사후적으로 승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사회가 가진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 역시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한국 복지국가의 전개과정상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고 그 성과와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연대적 복지의 사회적 토대에 대해 논의해본다. 한국 복지국가의 성과와 한계를 살펴보는 과정에서는 복지국가 발전요인에 관련된 비교연구의 흐름을 정리함으로써 이에 비추어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2. 복지국가 발전요인과 한국의 복지국가 발전과정
복지국가의 발전요인을 밝히려는 연구는 2차 대전 이후 복지국가가 확립되기 시작한 이후 본격적으로 시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복지국가의 발전요인을 규명하려는 비교연구는 대체로 세 가지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비교적 초기에 나타난 비교연구로서 복지국가의 발달요인으로 자원을 중시한 연구들이며, 둘째는 1970년대부터 등장한 것으로 복지국가 발전요인으로 이념을 중시한 연구들이고, 셋째는 1990년대 이후 등장한 것으로 제도를 중요시하는 연구들이다.
가. 복지국가의 발전요인에 관련된 비교연구
(1) 자원(resource) 중심적 접근
여기에 속하는 비교연구의 주된 결론은 복지국가의 발전은 경제발전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들은 이른 바 산업주의 논리에 입각하여 복지국가는 한편으로는 산업화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에 의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화로 인해 축적된 경제적 자원에 의한 가능성에 의해 발전하게 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Cutright, Hage and Hanneman, Wilensky). 이들 연구에서 경제적 자원만 중요시된 것은 아니며 윌렌스키는 일부 제도변수(즉, 제도의 운영기간)의 영향도 인정하고 있지만(Wilensky, 1975), 전체적으로 사회적 욕구의 충족 필요성은 자원의 증가에 의해 가능해진다는 것을 기본논리로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접근은 자원중심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이 접근은 기본적으로 기능주의적 성격을 띠며, 복지는 사회적 욕구를 충족하려는 것으로 그것의 기능은 당연히 사회통합인 것으로 가정된다 사회통합은 자원중심적 접근의 방식으로 표현된 연대이다.
사회문제가 발생할 때 그 해결을 시도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그리고 시도하는 경우 어떤 형태로 시도하느냐는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문제이지만 자원중심적 접근에서 그러한 정치적 결정은 주목대상이 아니며 문제발생은 곧바로 그 해결시도로 나타난다고 전제되고 시도되는 해결책의 성격도 사회통합인 것으로 전제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원중심적 접근에서는 산업화로 인해 욕구충족의 필요성과 이를 위한 자원량이 증가함에 따라 모든 사회는 유사한 해결책을 강구하게 된다는 이른 바 수렴이론의 주장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자원중심적 접근이 합의의 정치논리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자원중심적 접근이 전후 자본주의적 축적과정이 비교적 원활했던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 탓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 이념‧정치 중심적 접근
이 접근에 속하는 비교연구는 복지국가의 발전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어떤 이념을 가진 정치세력이 지배적인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중요한 연구흐름으로는 이른 바 노동계급 동원론을 들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복지국가 발전은 노동계급의 동원력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며 노동계급의 권력자원 동원은 자본가 계급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정치경제학의 민주적 계급투쟁이라는 것이다. 이념을 좀 더 넓게 해석하여 해당 국가의 사회문화적 정향성이 복지국가의 주요 발전요인이라고 주장하는 림링거의 연구(Rimlinger, 1971)도 이념‧정치 중심적 접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념‧정치 중심적 접근에 의하면, 복지국가는 특정 모습으로 수렴하는 것이 아니다. 복지국가의 발전정도와 성격은 나라에 따라 서로 다르며 그 원인은 각 국가의 이념이나 권력자원 등 이념적‧정치적 요인이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데 있다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다양성을 이념적‧정치적 차원에서 실증하기 위한 비교연구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특히 에스핑-앤더슨의 복지국가 삼체제론(Esping-Andersen, 1990)에서 절정에 이른 바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복지국가의 기능은 욕구의 충족이나 사회연대(혹은 사회통합)의 증진으로 자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념적‧정치적 요인의 차이에 따라 나라마다 다르게 결정된다는 것이다. 보수주의 복지체제의 경우 복지제도는 계층유지 내지 계층강화적 성격을 가지며 자유주의 복지체제의 경우 이원적 계층화의 성격을 갖는 것이 그 예이다.
결국, 이념‧정치 중심적 접근에서 연대적 복지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으로 가정되며, 그것을 만드는 주요 주체는 노동자 계급으로 가정되는 것이다. 이 접근은 1960년대 말 이후 자본주의적 축적전략이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복지국가 위기론이 거론되면서 그에 대한 각 국의 대응전략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게 된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난 대응방식과 나라마다 다르게 예측되는 복지국가의 전망을 설명 혹은 예측하기 위해 이념적‧정치적 변수가 중요하게 다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접근에서는 이념적‧정치적 변수 외에 전후 만들어진 복지제도의 제도적 유산(legacies)도 각 국의 서로 다른 대응전략과 전망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3) 제도(institution) 중심적 연구
제도 중심적 연구는 199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전 시기의 비교연구가 복지국가의 발전을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었다면, 이 시기의 연구는 복지국가의 조정과정을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이로 인해 제도중심적 연구는 복지제도의 도입이나 어떤 형태로의 조정을 결정하는 요인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경향을 보이며 이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과거의 복지국가 전개과정을 재해석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제도주의적 분석은 Bonoli (2000)이나 Paul Pierson (2001), Ebbinghaus and Manow (2001)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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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중심적 연구는, 계급투쟁의 제도화로서의 정치보다는 게임의 규칙 내지 제도조정의 기제로서의 정치에 초점을 두며, 제도조정의 환경적 제약으로서의 제도적 유산과 기존 제도를 둘러싸고 형성된 이해관계(예컨대, 위험집단(risk group) 등의 개념), 정부구성형태(내각제인가 대통령제인가 등), 관료적 결정과정에 관련된 변수들(예컨대, 거부지점(veto point) 등의 개념) 등이 중요시된다. 제도중심적 연구는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지배적인 흐름이 되면서 그것을 대신할 거대이념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그에 따라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대한 미시적 조정에 기초한 대응이 모색되고 있는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 한국 복지국가의 전개과정
한국에서 자본주의는 해방 후부터 이식되었으나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부터였다. 이에 따라 복지제도 역시 196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1987년 민주화투쟁 이전까지의 복지제도 도입의 실적은 1960년대 초반 군사정권기의 대량도입을 제외하면 그리 괄목할만한 수준은 아니었으며, 도입된 제도도 일부 상층부 노동자를 대상으로 도입한 하향식 도입과정에 의한 것이었다. 한국의 복지국가 발전의 특징인 하향식 전개과정은 오늘날 복지제도의 유산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에서 복지국가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민주화투쟁 이후부터라고 볼 수 있다(김태성‧성경륭, 1993). 이는 1988년 국민연금제도의 도입,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의 달성, 1992년 국민연금과 산재보상보험의 5인 이상 사업장으로의 적용범위 확대, 그리고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걸친 각종 사회복지서비스 제도의 전면적 개정 등에서도 나타난다 일부 논자는 국민연금법의 도입결정이 5공화국 때 이루어졌고 그 공포시기도 1986년이었다는 사실과 전국민의료보험의 실시도 5공화국 때 결정되었다는 사실 등을 들어 한국 복지국가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구체적 시기는 물론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이는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과 1987년 민주화투쟁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이와 관련해서는 최장집, 2002 참조). 80년 광주항쟁과 87년 민주화투쟁의 사이 시기에 위치한 5공화국은 80년 광주항쟁이 제기한 문제의 해결을 지연시킨 정권이었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광주항쟁의 요구를 일정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정권이었다. 따라서 87년 민주화투쟁 이후의 상황전개를 80년 광주항쟁의 문제제기에 대한 ‘지연된 타협적 해결’이라고 본다면 5공화국 때 결정된 국민연금법의 도입이나 전국민의료보험의 실시 등은 80년 광주항쟁이 제기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의 일부라고 볼 수 있으며 그러한 정권 차원의 ‘나름의’ 노력은 87년 민주화투쟁에 의해 본질적인 모습을 찾을 계기를 부여받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복지국가의 태동을 1987년 이후부터라고 보는 것은 이러한 상황인식에 따른 것이다.
1987년 민주화투쟁 이후 태동하기 시작한 한국의 복지국가는 1997년 외환위기와 그로 인한 경제위기 이후 김대중 정권기에 또 한 번의 급격한 확장기에 접어들게 된다. 이 시기 국민연금은 1999년 4월에 도시지역 자영자를 적용범위에 포함시킴으로써 전국민연금을 실행하게 되었으며, 김영삼 정권 때인 1995년 7월 시행되었던 고용보험은 2000년 8월 1인 이상 사업장까지 적용범위가 확대되었고, 산재보상보험 역시 비슷한 시기에 전사업장으로 확대되는 등 매우 급속한 제도확대가 이루어졌다. 또한, 1999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공포되고 2000년 10월부터 시행됨으로써 기존에 30여년간 운영해오던 생활보호법이 전면 폐지되어 공공부조제도의 커다란 개혁이 이루어졌다. 김대중 정부 시기의 복지개혁은 이른 바 생산적 복지로 표현되는 종합적 복지개혁계획에 의거하여 추진되었는데, 이러한 복지개혁의 진행과 함께 복지개혁의 성격과 결과, 그리고 그로 인한 한국 복지국가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 논쟁은 대략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각종 학술지를 통해 전개되었으며 이를 정리하여 2002년 8월, ꡔ한국 복지국가 성격논쟁Ⅰꡕ이라는 제목의 책(김연명 편, 2002)이 출판되었다.
. 이 논쟁을 포함하여 김대중 정부 시기의 복지개혁은 주로 사회보험과 공공부조라는 소득보장에 중점을 두어 진행되었다. 물론, 사회복지서비스의 정비도 다각도로 추진되었으나 정권 후반기에 주로 시도되어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정부에 뒤이어 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는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나타난 각종 폐해와 새롭게 문제제기되기 시작한 여러 상황변화들, 예컨대 인구고령화의 급속한 진전, 이혼과 저출산 등으로 대표되는 가족구조와 기능의 변화,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속한 증가 등에 대처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물론, 인구고령화나 가족의 변화와 같은 문제들은 그것이 사실은 참여정부 이후 제기된 것은 아니며 따라서 새로운 것은 결코 아니지만 경제위기 이후의 급속한 양극화 현상과 맞물려 문제해결의 필요성과 함께 그 복잡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참여정부의 복지청사진은 참여복지계획(참여복지기획단, 2004)이라 할 수 있는데 참여정부는 2003년 5월 28일 참여복지기획단을 공식적으로 출범시켜 동년 10월 참여복지 5개년계획을 작성하고 2004년 1월 참여복지 5개년계획을 국무회의를 통해 확정, 참여복지계획을 공식적으로 내놓았다. 참여복지 5개년계획은 사실상 사회보장기본법에 의한 제2차 사회보장 5개년계획에 해당하는 것으로 참여정부의 복지슬로건인 참여복지를 부각하기 위해 그 명칭을 참여복지 5개년계획으로 한 것이다(참여복지기획단, 2004).
이 계획에는 위에서 말한 여러 상황변화와 문제점들에 대한 대응이 담겨 있다. 그러나 문제의 복잡성을 반영한 것인지 참여복지계획은 전반적 연결성보다는 각 부문별 개별적 해결을 시도한 듯한 성격이 더 강한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계획의 서론 부분에서는 전통적인 사회보장영역 외에 주거, 문화, 노동, 여성, 정보 등 관련 복지제도를 포괄하여 복지개념을 확장해야 한다는 언급이 있지만, 계획의 본론 부분에서 이러한 여러 분야의 계획이 어떤 하나의 일관된 테마에 의해 이끌어지는 성격은 약한 듯 보인다.
각 부문은 각기 자신의 부문에서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감이 더 강하며, 전체적으로 공유된 문제의식이나 지향성은 다소 모호한 듯 보인다. 이러한 모호함은 2003년 상반기에 나타난 보육업무 여성부 이관을 둘러싼 갈등이라든지 2003년 국민연금발전위원회의 연금개혁방안을 둘러싸고 2004년 상반기에 나타난 국민연금사태 등의 현상으로 나타난 바 있다.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나타난 각종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과제를 떠안은 참여정부는 특히 복지와 관련해서는 국가개입의 강화를 필요로 하는 문제들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실제 정책추진내용은 분권화를 추구함으로써 오히려 국가개입의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
가족구조와 기능의 변화나 인구고령화 등에 대한 대응은 총체적인 대응을 필요로 하며 이는 중앙정부의 적극적 계획수립과 그에 기초한 개입을 요구하는 것이지만 현재의 참여정부는 이러한 개입을 분권화라는 이름 하에 약화된 형식으로 추구하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지방자치의 강화라는 명분으로 중앙정부의 이해조정기능을 방기하는 태도까지 보이고 있다. 말하자면, 참여정부는 복지청사진을 적절히 제시하는 데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는 비단 참여정부의 잘못만은 아니다. 참여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는 과거부터 한국 사회에 쌓여온 모순과 새롭게 제기되는 요구들에 의해 그 방향을 정하기가 지극히 난해하고 복잡한 것들이다.
오늘 한국의 개혁세력들은 1987년 이후 제기된 정치적 민주화를 제도화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 사회적 민주화를 제도화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음과 동시에 외적으로는 세계화라는 흐름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문제는 이 과제들이 상충하는 방향을 지향하는 것들이며 이 상충하는 지향을 조화시킬 내부적 토대도 그리 튼튼하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3. 한국 복지국가의 성과와 한계
여기서는 한국 복지국가의 성과와 한계를 앞서 살펴본 자원과 이념, 제도의 측면에서 간략히 개관해 보기로 한다.
가. 자원 면
한국은 역사적으로 자원의 증가와 복지국가의 발전이 상응하지 않았다. 물론, 길게 보면 자원의 증가(경제성장)에 따라 복지지출도 증가해 왔고 최근, 특히 경제위기 이후 복지지출은 크게 증가한 것이 사실이지만 예컨대, 1996년 복지지출은 GDP 대비 5.29%였으나, 2001년 그 비중은 8.70%로 증가하였다(고경환 외, 2003).
복지지출의 증가속도는 언제나 자원의 증가속도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복지국가의 발전속도가 자원의 증가속도에 미치지 못한 것은 성장우선논리 등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한 것이지만 어쨋든 그로 인해 한국의 복지국가는 자원동원이 가능한 부문에서부터 먼저 발전하는 양상을 보였다. 자원동원이 가능한 부문부터 먼저 발전했다는 것은, 제도의 형태에 있어서는 사회보험제도를 중심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였음을 의미하며, 대상에 있어서는 대기업 노동자부터 먼저 적용시키는 하향식 발전양상을 보였음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성장우선논리의 지배 정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하향식 발전과 사회보험 중심의 발전이라는 발전경로가 결과한 제도적 유산은 그 발전과정에서 일정한 구조의 고착을 결과하였고 그로부터 형성된 일정한 이해관계구조를 형성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논의하겠지만 이렇게 해서 형성된 구조와 이해관계는 오늘날 매우 중차대하고 모순된 과제에 직면한 한국사회에서 그 과제해결을 위한 자원동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는 과거 개발독재시대와 달리 자원의 면에서 결코 취약하다고 할 수 없으나 기존의 제도적 유산과 경제위기 이후의 불안정화, 세계화 흐름 등으로 인해 실제로는 자원동원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경제위기 이후 불안정화로 인해 가속화하고 있는 사회양극화 현상은 이에 대응할 권럭자원의 취약성과 맞물려 자원동원 가능성을 더욱 제약하고 있는 것 같다.
나. 이념‧정치 면
한국의 노동운동은 우선 물리적인 면에서 권력자원이 취약한 편이다. 한국 노동운동의 전투성은 어떤 면에서 권력자원의 취약성의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산업화 초기부터 강력한 중앙집중적 국가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불균등한 권력관계로 인해 기본적으로 기업노조주의(enterprise unionism)에 머물러 왔으며 국가에 의한 행정적 개입에 규제당해 왔다. 기업노조주의는 노동문제에 대한 전산업적 차원의 해결시도를 차단하고 그것을 작업장 수준에서의 경영과 노동의 관계로 협소화하도록 유도하였으며, 행정적 규제는 노사관계에서 국가가 자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노동의 동원을 억제하고 노동을 정치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송호근, 1994; 최장집, 1997). 이와 같은 기업노조주의는 1990년대 이래 진행된 노동시장유연화와 그로부터 결과한 노동운동의 양극화로 인해 더욱 강화되었다(구해근, 2002). 1987년 이후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노동운동은 협소한 기업노조주의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거기에 머물러 있으며 최근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 등으로 권력자원의 동원력이 더욱 약화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노동운동과 민주화 세력의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문화적‧정치적 정체성을 굳건히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며(구해근, 2002) 나아가 복지나 사회정책에 대한 노동자들을 비롯한 시민들의 인식수준 혹은 사회정치적 지향성은 여전히 성숙된 상태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위기 이후 양극화의 심화로 인해 사회적 연대의 필요성은 더욱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나 공감대는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다. 제도 면
한국 복지국가가 가진 제도적 유산으로 우선 거론할 수 있는 것은 하향식 전개과정으로 인해 형성된 이해관계와 취약한 공공부문을 들 수 있다. 한국의 복지국가는 하향식 전개과정을 거쳐 발전해 왔기 때문에 시장으로부터의 보호가 누구보다 더 필요한 계층을 언제나 복지혜택으로부터 배제해 왔다. 그리고 복지로부터 배제된 계층은 자신들을 위해서는 아무런 복지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 자체적인 비공식적 연줄망을 통한 위험대처기제를 발전시켜 왔다(남찬섭, 2001).
소득신고의 불성실과 이를 통한 가처분소득의 보존, 보존된 가처분소득의 연줄망을 통한 비공식적 이전, 높은 교육열, 저축행위에 대한 지극한 애착 등은 자체적인 위험대처기제의 예들이다. 한국사회에서 자립과 자활의 가치는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며 수긍되지만 그 자립과 자활은 개인의 자율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자유주의적 의미의 자립은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은 상품거래관계를 통해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의존하는 비인격적 의존관계를 창출하며 그로 인한 폐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의존하는 연대기제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연대의식은 낮으며 연대의 범위는 연줄망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자원의 제약을 강조해 온 한국의 국가는 지극히 협애한 이데올로기적 틀에 갇혀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표하지 못하고(최장집, 2002) 대표되지 못한 계층의 자체적인 위험대처를 방조 내지 조장하여 왔다.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소득파악의 미비는 단순히 그 대상이 원래부터 소득파악이 어려운 자영자들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들을 복지혜택으로부터 배제해 온 역사적 발전과정과 밀접히 관련된 것이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표하지 않는 정치구조 그리고 이러한 정치구조와 함께 시민사회의 중요한 부문을 복지로부터 배제해 온 복지국가가 형성되어 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드러내지 않는 시민사회가 형성되어 왔다. 복지의 필요성은 있으되 이것이 정치세력화하지 못하고 정치 요구화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민사회의 요구를 대표하지 못하고 시민사회의 중요한 부문을 복지로부터 배제한 하향식 발전과정을 겪은 관계로 한국의 복지국가는 공공부문이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다. 한국의 국가는 강하지만 약하다(최장집, 2002). 강하다는 것은 정치구조를 통해 대표되지 못하는 이해관계의 억압에 강하다는 것이며, 약하다는 것은 대표되지 못하던 이해관계의 폭발적 분출이 있는 경우 그것을 조율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특히 국가의 약함은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밀접히 관련된 생활부문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한국의 국가는 보건의료, 교육, 주택 등 생활부문에서의 재화 및 서비스 공급을 대부분 민간부문에 맡겨 왔고, 이로 인해 생활부문의 재화 및 서비스 공급자들은 민간시장적 원리에 입각한 이해관계를 구축해 왔으며 이 부문에서 공공부문은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이해관계를 조절할 지렛대 역할을 할 만큼의 비중을 갖지 못하고 있다. 생활부문 서비스의 민간공급은 국민들 모두가 생활부문의 서비스를 위해 자신이 스스로 비용을 부담해야 함을 의미하며, 또한 공급자들은 국민들이 스스로 부담하는 비용을 통해 이윤을 추구해 왔음을 의미한다. 국민들은 생활부문의 서비스를 위해 개별가계의 저축과 연줄망을 통한 비공식적 서비스 전달구조에 의존해 왔고, 생활부문의 공급자들은 국민들을 상대로 이윤을 추구하고 국민들은 생활부문의 서비스를 위해 분투하는 그래서 모두가 모두에 대해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가 되었다.
어떤 면에서 한국은 아직도 피난민 사회(김동춘, 2000)인지도 모른다. 생활부문에서 공공부문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이해관계를 깨뜨려야 하지만 이를 위한 공공부문의 비중은 취약하며 이로 인해 정부의 조정능력은 한계에 달해 있고, 국민들 역시 공공부문의 확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기존에 연줄망과 저축을 통한 생활부문 서비스 소비로부터 얻던 이익을 능가하지 않는 한 공공부문의 확대에 찬성할 유인이 별로 크지 않을 것이다.
과거 복지의 하향식 전개과정에 따라 형성된 이해관계구조와 취약한 공공부문이 의미하는 바는 한국에서 복지의 정치는 복지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계층을 배제해 왔음을 그 본질로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본질을 ‘배제의 복지’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이 배제의 복지는 오늘날 중대한 제도적 제약으로 존재하고 있다. 자발적 위험대처기제의 작동에 자원이 되었던 소득불성실신고는 복지제도의 제도적 토대 형성을 방해하고 있으며 생활부문의 취약한 공공성은 또 다시 자발적 위험대처기제의 작동필요성을 온존시키고 있다.
2004년 상반기에 나타난 바 있는 연금사태는 이러한 모순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의 고갈을 우려한다면 이는 논리적으로는 기여의 증가를 통해 기금고갈을 방지하는 대책의 강구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연금사태의 전개과정에서 시민들이 보여준 태도는 이러한 것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많은 시민들은 국민연금의 폐지를 주장하였다. 이는 마치 민간금융기관에 적금을 들었다가 그 금융기관의 파산소식을 듣고 앞 다투어 적금인출을 하기 위해 모여든 예금주들의 태도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하향식 발전과정은 시민들의 비공식적 연줄망 복지의 형성에만 기여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관리능력 부재를 조장하는 데에도 일조하였다. 개발독재시대의 관료들의 유능함은 오늘날 이해관계조정에서는 무능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배제의 복지와 취약한 공공부문으로 인해 생활부문에서의 정부의 관리능력은 크게 의문시되고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 한국 정치구조는 오랜 세월 동안 협애한 대표체제(최장집, 2002)를 구축해 온 나머지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정치의 장으로 끌어 들여 다양한 목소리(voice)를 대표하는 구조를 만들어오지 못했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에는 발전국가의 부정적 요소에만 주목하여 이것을 지나치게 급격히 해체한 나머지 국가의 이해조정능력까지도 심각하게 제한해 버리는 조치를 취하였다(신장섭‧장하준, 2004). 그리하여 민주화 이후 이른 바 개혁세력들은 신자유주의 논리와 세계화 논리에 빠르게 빠져들었다.
이들은 경제부문에서는 경제관련 부처를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적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여 강력한 구조조정을 시도하였고, 그로 인한 폐해를 오로지 복지부문에서 받아 안도록 하는 기조의 정책을 추진하였다. 생산적 복지는 이러한 개혁기조에 바탕을 둔 것이었으며 참여복지 역시 이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복지국가의 이념이나 민주주의 이념이 과거 개발독재 논리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국가경쟁력이라는 이념이 그것을 대체하였다. 이러한 결과 경제관련 부처를 중심으로 한 정부 일각이 과거의 개발독재논리를 신자유주의와 국가경쟁력이라는 새로운 논리로 대체하여 강력한 거부지점(veto point)으로 등장하고 있다.
자원의 증가에 상응하지 않는 복지는 국가의 재정부담을 회피한 채 가입자의 비용부담을 전제한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한국에서 복지는 뒤늦게 제도화했으며 제도화한 경우에도 그것은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제도화했던 것이다. 하지만, 생활부문에서의 공공부문의 비중이 취약하고 배제된 계층의 자체적 위험대처기제가 발달된 상황에서 사회보험의 제도화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한계는 경제위기 이후 분배구조의 악화와 고용불안정 등으로 인해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진행된 의료보험 통합, 전국민연금의 제도화 시도는 단일한 사회보험 구조 내에 노동자와 자영자를 포괄함으로써 이들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고 이를 통해 사회연대의식을 제고하려는 것이었지만, 이러한 의도는 충분히 실현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통합의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지만 통합의 효과를 살릴 수 있는 행정적‧재정적 토대는 취약했던 것 같다. 국가는 배제되었던 계층을 제대로 관리할 적절한 행정적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였으며 이들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여 통합된 구조 내에서 마련될 수 있는 단일한 이해관계의 형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재정적 토대로 제대로 구축하고 있지 못하였다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한 때 신용카드의 사용증가는 소득파악률의 제고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 바도 있었고 또 실제로 소득파악률 제고에 기여한 것이 사실이지만 신용불량자 문제 등 부정적인 면도 결과도 낳았다.
이러한 국가능력의 부족이라는 상황 속에서 지배적 이념으로 신자유주의적 논리가 등장하면서 사회의 다른 모든 부문을 신자유주의적 방향으로 재편(조영훈, 2002)하는 가운데 복지만 고립되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으며, 이제는 고립된 복지가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될 수도 있는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결국, 한국의 복지국가는 과거부터의 배제의 복지정치를 극복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신자유주의 이념의 지배와 세계화 흐름에 직면하여 그에 대처할 적절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고용불안정화와 양극화로 인한 권력자원의 취약성 증가 등은 한계극복의 방안을 마련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분배구조의 악화로 자발적 위험대처기제가 붕괴하고 있지만 이것이 연대의 보편성에 대한 인식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분배구조 악화로 인한 지불능력 취약성의 증가는 복지제도의 토대를 침식하고 있다. 베브리지(Beveridge, 1942)는 자신이 구상한 사회보장(=소득보장)의 토대로 완전고용, 보편적 보건의료, 보편적 아동수당의 세 가지를 제시한 바 있으며, 이 세 가지를 토대로 한 영국의 복지제도는 소득보장 외에도 주택, 고용, 보건 등에 걸쳐 구축되어 왔다. 현재 한국은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으며, 소득보장과 함께 제도화될 수 있는 주택, 고용, 보건의료에서의 공공성은 지극히 취약한 실정이다. 그리하여 소득보장의 토대가 되거나 그것과 밀접히 연관된 부문에서의 보수주의적 공격에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4. 결론: 연대적 복지의 가능성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연대적 복지는 보편적 상호의존성을 기초로 한다. 이러한 보편적 상호의존성에 기초하여 욕구가 보편적인 것으로 인정되고 이에 따라 욕구가 권리로 보장될 때 연대적 복지는 가능하다. 하지만, 욕구가 권리로 승인되는 것은 철학적으로 자명한 것이 아니며 정치경제적으로도 미리 결정된 것이 아니다.
유럽의 경우 연대적 복지를 추구한 집단은 노동계급이었지만 노동계급과 연대추구집단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다(Baldwin, 1990). 복지제도, 특히 사회보험은 위험의 재분배에 관련된 것이므로 시장경제 내에서 위험의 대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위험의 재분배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없고 오히려 손해를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집단은 위험의 재분배에 저항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연대적 복지를 위해서는 각 집단이 위험의 재분배로부터 얻는 이익을 자신들의 집단적 이익과 동일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위험의 재분배로부터 얻는 이익을 각 집단이 자신들의 집단적 이익으로 동일시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어 있는가는 매우 회의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속한 증가와 더불어 나타나고 있는 노동계급의 양극화와 분배구조 악화는 그러한 조건의 형성에 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분배구조 악화는 일반적으로 위험의 재분배에 대해 긍정적 인식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현재의 한국의 상황은 그 반대인 것 같다. 이는 연금사태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2004년 10월 28일에는 국민연금의 소득규정 미비에 관련된 위헌확인 청구소송이 제기되어 헌법재판소가 이를 심리하기로 결정한 일도 일어났다. 이 위헌소송은 최근 확산되고 있는 연금폐지정서를 더욱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법은 시민법의 근간이 되는 사적 재산권의 일정한 제약을 통해 성립하는 것인데 이 경우는 시민법의 재산권 원리에 비추어 사회법의 작동을 제약하려는 방향을 취하고 있는 것이어서 아쉬움을 더함과 동시에 그 판결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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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의존의 보편화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연대의식의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 현재의 상황에서 연대적 복지를 위해 어떤 전략을 취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위험의 재분배로부터 얻는 이익을 시민들에게 실증해주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인 것 같다. 소득보장 중심의 복지전략으로부터 탈피하여 주택, 교육, 보건의료 등 조세를 통해 공공성을 증진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여 조세증가가 궁극적으로 이익이 됨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공공부문의 확대가 비공식적인 자발적 위험대처기제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더 많은 이익을 준다는 사실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의료와 공공주택, 공공교육의 확대가 절실히 필요하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세제도 개혁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사회구성원들도 조세납부에 성실히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익실증의 바탕 위에서 복지제도를 위한 비용부담과 급여수준의 조정 등에 관련된 사회적 합의를 시급히 형성해야 할 것이다. 오늘 한국사회는 연대적 복지라는 먼 목표를 보고 나아가되 이를 위해 연대적 복지가 가능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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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국 사회는 매우 큰 전환점을 통과하고 있으며 복지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화로 인한 여건 변화와 인구구조의 변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과 같은 내‧외부적 조건의 변화에 의한 것이다. 세계화의 경향은 지난 1997년 말 이후의 경제위기로 나타난 바 있고 이 경제위기의 극복과정에서 복지제도는 크게 확대되었으나 빈부격차 역시 크게 확대되었다. 빈곤으로 인한 ‘사회적 타살’ 사건의 발생, 생계형 범죄의 증가와 같은 사회현상의 이면에는 경쟁의 가속화와 경제구조의 양극화, 그리고 이에 따른 삶의 질 양극화가 놓여 있다.
경쟁이 치열해진다는 것은 사회구성원들의 삶이 서로 간에 무관해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경쟁의 치열은 서로 간의 삶이 더욱 더 강하게 연관됨을 의미한다. 문제는 상호연관의 성격이 상호 적대적인가 아니면 상호 의존적인가 하는 것이다. 삶의 연관이 상호 적대적인 것으로 구조화할 때 그것은 극심한 양극화를 결과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호 적대적 연관은 그만큼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누구도 시장경쟁에서 자립을 확신할 수 없게 만든다. 왜냐하면 시장은 의지를 가진 구조물이 아니며 누구에 대해서도 경쟁에서의 성공을 사전에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Plant, 1991). 시장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상호연관성을 증대하며 또 이러한 상호연관성 증대가 자립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상호연관성이 상호 적대가 아니라 상호의존관계로 구조화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연대적 복지(solidaristic welfare)는 바로 여기서 나온다. 연대적 복지는 누구도 자립을 확신할 수 없으며 따라서 모든 사람들 간의 상호의존이 모두에게 궁극적으로 이익이라는 잠재적 보편성을 그 기본전제로 한다(Baldwin, 1990). 자선은 일방적 의존(dependence)과 관련되지만 연대는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과 관련된다. 연대는 모두가 가진 자립에의 욕구가 경쟁이 아니라 서로 간의 의존을 구조화할 때 가장 잘 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승인할 때 가능하며 이런 점에서 연대는 곧 사회적 연대(social solidarity)이다. 이는 욕구의 측면에서 규정된 정의의 실현이다(Baldwin, 1990).
오늘 한국사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지만 이를 위한 조건이 충족되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은 것 같다. 한 사회가 가진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은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Baldwin, 1990). 상호의존성이 보편적인 것으로 승인되기 위해서는 상호의존성이 권리로 인정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욕구가 권리로 인식되어야 하지만, 욕구가 권리화하는 것은 선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 따라 사후적으로 승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사회가 가진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 역시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한국 복지국가의 전개과정상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고 그 성과와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연대적 복지의 사회적 토대에 대해 논의해본다. 한국 복지국가의 성과와 한계를 살펴보는 과정에서는 복지국가 발전요인에 관련된 비교연구의 흐름을 정리함으로써 이에 비추어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2. 복지국가 발전요인과 한국의 복지국가 발전과정
복지국가의 발전요인을 밝히려는 연구는 2차 대전 이후 복지국가가 확립되기 시작한 이후 본격적으로 시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복지국가의 발전요인을 규명하려는 비교연구는 대체로 세 가지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비교적 초기에 나타난 비교연구로서 복지국가의 발달요인으로 자원을 중시한 연구들이며, 둘째는 1970년대부터 등장한 것으로 복지국가 발전요인으로 이념을 중시한 연구들이고, 셋째는 1990년대 이후 등장한 것으로 제도를 중요시하는 연구들이다.
가. 복지국가의 발전요인에 관련된 비교연구
(1) 자원(resource) 중심적 접근
여기에 속하는 비교연구의 주된 결론은 복지국가의 발전은 경제발전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들은 이른 바 산업주의 논리에 입각하여 복지국가는 한편으로는 산업화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에 의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화로 인해 축적된 경제적 자원에 의한 가능성에 의해 발전하게 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Cutright, Hage and Hanneman, Wilensky). 이들 연구에서 경제적 자원만 중요시된 것은 아니며 윌렌스키는 일부 제도변수(즉, 제도의 운영기간)의 영향도 인정하고 있지만(Wilensky, 1975), 전체적으로 사회적 욕구의 충족 필요성은 자원의 증가에 의해 가능해진다는 것을 기본논리로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접근은 자원중심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이 접근은 기본적으로 기능주의적 성격을 띠며, 복지는 사회적 욕구를 충족하려는 것으로 그것의 기능은 당연히 사회통합인 것으로 가정된다 사회통합은 자원중심적 접근의 방식으로 표현된 연대이다.
사회문제가 발생할 때 그 해결을 시도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그리고 시도하는 경우 어떤 형태로 시도하느냐는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문제이지만 자원중심적 접근에서 그러한 정치적 결정은 주목대상이 아니며 문제발생은 곧바로 그 해결시도로 나타난다고 전제되고 시도되는 해결책의 성격도 사회통합인 것으로 전제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원중심적 접근에서는 산업화로 인해 욕구충족의 필요성과 이를 위한 자원량이 증가함에 따라 모든 사회는 유사한 해결책을 강구하게 된다는 이른 바 수렴이론의 주장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자원중심적 접근이 합의의 정치논리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자원중심적 접근이 전후 자본주의적 축적과정이 비교적 원활했던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 탓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 이념‧정치 중심적 접근
이 접근에 속하는 비교연구는 복지국가의 발전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어떤 이념을 가진 정치세력이 지배적인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중요한 연구흐름으로는 이른 바 노동계급 동원론을 들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복지국가 발전은 노동계급의 동원력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며 노동계급의 권력자원 동원은 자본가 계급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정치경제학의 민주적 계급투쟁이라는 것이다. 이념을 좀 더 넓게 해석하여 해당 국가의 사회문화적 정향성이 복지국가의 주요 발전요인이라고 주장하는 림링거의 연구(Rimlinger, 1971)도 이념‧정치 중심적 접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념‧정치 중심적 접근에 의하면, 복지국가는 특정 모습으로 수렴하는 것이 아니다. 복지국가의 발전정도와 성격은 나라에 따라 서로 다르며 그 원인은 각 국가의 이념이나 권력자원 등 이념적‧정치적 요인이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데 있다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다양성을 이념적‧정치적 차원에서 실증하기 위한 비교연구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특히 에스핑-앤더슨의 복지국가 삼체제론(Esping-Andersen, 1990)에서 절정에 이른 바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복지국가의 기능은 욕구의 충족이나 사회연대(혹은 사회통합)의 증진으로 자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념적‧정치적 요인의 차이에 따라 나라마다 다르게 결정된다는 것이다. 보수주의 복지체제의 경우 복지제도는 계층유지 내지 계층강화적 성격을 가지며 자유주의 복지체제의 경우 이원적 계층화의 성격을 갖는 것이 그 예이다.
결국, 이념‧정치 중심적 접근에서 연대적 복지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으로 가정되며, 그것을 만드는 주요 주체는 노동자 계급으로 가정되는 것이다. 이 접근은 1960년대 말 이후 자본주의적 축적전략이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복지국가 위기론이 거론되면서 그에 대한 각 국의 대응전략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게 된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난 대응방식과 나라마다 다르게 예측되는 복지국가의 전망을 설명 혹은 예측하기 위해 이념적‧정치적 변수가 중요하게 다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접근에서는 이념적‧정치적 변수 외에 전후 만들어진 복지제도의 제도적 유산(legacies)도 각 국의 서로 다른 대응전략과 전망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3) 제도(institution) 중심적 연구
제도 중심적 연구는 199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전 시기의 비교연구가 복지국가의 발전을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었다면, 이 시기의 연구는 복지국가의 조정과정을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이로 인해 제도중심적 연구는 복지제도의 도입이나 어떤 형태로의 조정을 결정하는 요인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경향을 보이며 이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과거의 복지국가 전개과정을 재해석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제도주의적 분석은 Bonoli (2000)이나 Paul Pierson (2001), Ebbinghaus and Manow (2001)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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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중심적 연구는, 계급투쟁의 제도화로서의 정치보다는 게임의 규칙 내지 제도조정의 기제로서의 정치에 초점을 두며, 제도조정의 환경적 제약으로서의 제도적 유산과 기존 제도를 둘러싸고 형성된 이해관계(예컨대, 위험집단(risk group) 등의 개념), 정부구성형태(내각제인가 대통령제인가 등), 관료적 결정과정에 관련된 변수들(예컨대, 거부지점(veto point) 등의 개념) 등이 중요시된다. 제도중심적 연구는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지배적인 흐름이 되면서 그것을 대신할 거대이념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그에 따라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대한 미시적 조정에 기초한 대응이 모색되고 있는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 한국 복지국가의 전개과정
한국에서 자본주의는 해방 후부터 이식되었으나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부터였다. 이에 따라 복지제도 역시 196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1987년 민주화투쟁 이전까지의 복지제도 도입의 실적은 1960년대 초반 군사정권기의 대량도입을 제외하면 그리 괄목할만한 수준은 아니었으며, 도입된 제도도 일부 상층부 노동자를 대상으로 도입한 하향식 도입과정에 의한 것이었다. 한국의 복지국가 발전의 특징인 하향식 전개과정은 오늘날 복지제도의 유산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에서 복지국가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민주화투쟁 이후부터라고 볼 수 있다(김태성‧성경륭, 1993). 이는 1988년 국민연금제도의 도입,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의 달성, 1992년 국민연금과 산재보상보험의 5인 이상 사업장으로의 적용범위 확대, 그리고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걸친 각종 사회복지서비스 제도의 전면적 개정 등에서도 나타난다 일부 논자는 국민연금법의 도입결정이 5공화국 때 이루어졌고 그 공포시기도 1986년이었다는 사실과 전국민의료보험의 실시도 5공화국 때 결정되었다는 사실 등을 들어 한국 복지국가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구체적 시기는 물론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이는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과 1987년 민주화투쟁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이와 관련해서는 최장집, 2002 참조). 80년 광주항쟁과 87년 민주화투쟁의 사이 시기에 위치한 5공화국은 80년 광주항쟁이 제기한 문제의 해결을 지연시킨 정권이었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광주항쟁의 요구를 일정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정권이었다. 따라서 87년 민주화투쟁 이후의 상황전개를 80년 광주항쟁의 문제제기에 대한 ‘지연된 타협적 해결’이라고 본다면 5공화국 때 결정된 국민연금법의 도입이나 전국민의료보험의 실시 등은 80년 광주항쟁이 제기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의 일부라고 볼 수 있으며 그러한 정권 차원의 ‘나름의’ 노력은 87년 민주화투쟁에 의해 본질적인 모습을 찾을 계기를 부여받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복지국가의 태동을 1987년 이후부터라고 보는 것은 이러한 상황인식에 따른 것이다.
1987년 민주화투쟁 이후 태동하기 시작한 한국의 복지국가는 1997년 외환위기와 그로 인한 경제위기 이후 김대중 정권기에 또 한 번의 급격한 확장기에 접어들게 된다. 이 시기 국민연금은 1999년 4월에 도시지역 자영자를 적용범위에 포함시킴으로써 전국민연금을 실행하게 되었으며, 김영삼 정권 때인 1995년 7월 시행되었던 고용보험은 2000년 8월 1인 이상 사업장까지 적용범위가 확대되었고, 산재보상보험 역시 비슷한 시기에 전사업장으로 확대되는 등 매우 급속한 제도확대가 이루어졌다. 또한, 1999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공포되고 2000년 10월부터 시행됨으로써 기존에 30여년간 운영해오던 생활보호법이 전면 폐지되어 공공부조제도의 커다란 개혁이 이루어졌다. 김대중 정부 시기의 복지개혁은 이른 바 생산적 복지로 표현되는 종합적 복지개혁계획에 의거하여 추진되었는데, 이러한 복지개혁의 진행과 함께 복지개혁의 성격과 결과, 그리고 그로 인한 한국 복지국가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 논쟁은 대략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각종 학술지를 통해 전개되었으며 이를 정리하여 2002년 8월, ꡔ한국 복지국가 성격논쟁Ⅰꡕ이라는 제목의 책(김연명 편, 2002)이 출판되었다.
. 이 논쟁을 포함하여 김대중 정부 시기의 복지개혁은 주로 사회보험과 공공부조라는 소득보장에 중점을 두어 진행되었다. 물론, 사회복지서비스의 정비도 다각도로 추진되었으나 정권 후반기에 주로 시도되어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정부에 뒤이어 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는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나타난 각종 폐해와 새롭게 문제제기되기 시작한 여러 상황변화들, 예컨대 인구고령화의 급속한 진전, 이혼과 저출산 등으로 대표되는 가족구조와 기능의 변화,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속한 증가 등에 대처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물론, 인구고령화나 가족의 변화와 같은 문제들은 그것이 사실은 참여정부 이후 제기된 것은 아니며 따라서 새로운 것은 결코 아니지만 경제위기 이후의 급속한 양극화 현상과 맞물려 문제해결의 필요성과 함께 그 복잡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참여정부의 복지청사진은 참여복지계획(참여복지기획단, 2004)이라 할 수 있는데 참여정부는 2003년 5월 28일 참여복지기획단을 공식적으로 출범시켜 동년 10월 참여복지 5개년계획을 작성하고 2004년 1월 참여복지 5개년계획을 국무회의를 통해 확정, 참여복지계획을 공식적으로 내놓았다. 참여복지 5개년계획은 사실상 사회보장기본법에 의한 제2차 사회보장 5개년계획에 해당하는 것으로 참여정부의 복지슬로건인 참여복지를 부각하기 위해 그 명칭을 참여복지 5개년계획으로 한 것이다(참여복지기획단, 2004).
이 계획에는 위에서 말한 여러 상황변화와 문제점들에 대한 대응이 담겨 있다. 그러나 문제의 복잡성을 반영한 것인지 참여복지계획은 전반적 연결성보다는 각 부문별 개별적 해결을 시도한 듯한 성격이 더 강한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계획의 서론 부분에서는 전통적인 사회보장영역 외에 주거, 문화, 노동, 여성, 정보 등 관련 복지제도를 포괄하여 복지개념을 확장해야 한다는 언급이 있지만, 계획의 본론 부분에서 이러한 여러 분야의 계획이 어떤 하나의 일관된 테마에 의해 이끌어지는 성격은 약한 듯 보인다.
각 부문은 각기 자신의 부문에서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감이 더 강하며, 전체적으로 공유된 문제의식이나 지향성은 다소 모호한 듯 보인다. 이러한 모호함은 2003년 상반기에 나타난 보육업무 여성부 이관을 둘러싼 갈등이라든지 2003년 국민연금발전위원회의 연금개혁방안을 둘러싸고 2004년 상반기에 나타난 국민연금사태 등의 현상으로 나타난 바 있다.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나타난 각종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과제를 떠안은 참여정부는 특히 복지와 관련해서는 국가개입의 강화를 필요로 하는 문제들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실제 정책추진내용은 분권화를 추구함으로써 오히려 국가개입의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
가족구조와 기능의 변화나 인구고령화 등에 대한 대응은 총체적인 대응을 필요로 하며 이는 중앙정부의 적극적 계획수립과 그에 기초한 개입을 요구하는 것이지만 현재의 참여정부는 이러한 개입을 분권화라는 이름 하에 약화된 형식으로 추구하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지방자치의 강화라는 명분으로 중앙정부의 이해조정기능을 방기하는 태도까지 보이고 있다. 말하자면, 참여정부는 복지청사진을 적절히 제시하는 데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는 비단 참여정부의 잘못만은 아니다. 참여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는 과거부터 한국 사회에 쌓여온 모순과 새롭게 제기되는 요구들에 의해 그 방향을 정하기가 지극히 난해하고 복잡한 것들이다.
오늘 한국의 개혁세력들은 1987년 이후 제기된 정치적 민주화를 제도화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 사회적 민주화를 제도화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음과 동시에 외적으로는 세계화라는 흐름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문제는 이 과제들이 상충하는 방향을 지향하는 것들이며 이 상충하는 지향을 조화시킬 내부적 토대도 그리 튼튼하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3. 한국 복지국가의 성과와 한계
여기서는 한국 복지국가의 성과와 한계를 앞서 살펴본 자원과 이념, 제도의 측면에서 간략히 개관해 보기로 한다.
가. 자원 면
한국은 역사적으로 자원의 증가와 복지국가의 발전이 상응하지 않았다. 물론, 길게 보면 자원의 증가(경제성장)에 따라 복지지출도 증가해 왔고 최근, 특히 경제위기 이후 복지지출은 크게 증가한 것이 사실이지만 예컨대, 1996년 복지지출은 GDP 대비 5.29%였으나, 2001년 그 비중은 8.70%로 증가하였다(고경환 외, 2003).
복지지출의 증가속도는 언제나 자원의 증가속도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복지국가의 발전속도가 자원의 증가속도에 미치지 못한 것은 성장우선논리 등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한 것이지만 어쨋든 그로 인해 한국의 복지국가는 자원동원이 가능한 부문에서부터 먼저 발전하는 양상을 보였다. 자원동원이 가능한 부문부터 먼저 발전했다는 것은, 제도의 형태에 있어서는 사회보험제도를 중심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였음을 의미하며, 대상에 있어서는 대기업 노동자부터 먼저 적용시키는 하향식 발전양상을 보였음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성장우선논리의 지배 정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하향식 발전과 사회보험 중심의 발전이라는 발전경로가 결과한 제도적 유산은 그 발전과정에서 일정한 구조의 고착을 결과하였고 그로부터 형성된 일정한 이해관계구조를 형성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논의하겠지만 이렇게 해서 형성된 구조와 이해관계는 오늘날 매우 중차대하고 모순된 과제에 직면한 한국사회에서 그 과제해결을 위한 자원동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는 과거 개발독재시대와 달리 자원의 면에서 결코 취약하다고 할 수 없으나 기존의 제도적 유산과 경제위기 이후의 불안정화, 세계화 흐름 등으로 인해 실제로는 자원동원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경제위기 이후 불안정화로 인해 가속화하고 있는 사회양극화 현상은 이에 대응할 권럭자원의 취약성과 맞물려 자원동원 가능성을 더욱 제약하고 있는 것 같다.
나. 이념‧정치 면
한국의 노동운동은 우선 물리적인 면에서 권력자원이 취약한 편이다. 한국 노동운동의 전투성은 어떤 면에서 권력자원의 취약성의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산업화 초기부터 강력한 중앙집중적 국가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불균등한 권력관계로 인해 기본적으로 기업노조주의(enterprise unionism)에 머물러 왔으며 국가에 의한 행정적 개입에 규제당해 왔다. 기업노조주의는 노동문제에 대한 전산업적 차원의 해결시도를 차단하고 그것을 작업장 수준에서의 경영과 노동의 관계로 협소화하도록 유도하였으며, 행정적 규제는 노사관계에서 국가가 자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노동의 동원을 억제하고 노동을 정치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송호근, 1994; 최장집, 1997). 이와 같은 기업노조주의는 1990년대 이래 진행된 노동시장유연화와 그로부터 결과한 노동운동의 양극화로 인해 더욱 강화되었다(구해근, 2002). 1987년 이후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노동운동은 협소한 기업노조주의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거기에 머물러 있으며 최근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 등으로 권력자원의 동원력이 더욱 약화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노동운동과 민주화 세력의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문화적‧정치적 정체성을 굳건히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며(구해근, 2002) 나아가 복지나 사회정책에 대한 노동자들을 비롯한 시민들의 인식수준 혹은 사회정치적 지향성은 여전히 성숙된 상태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위기 이후 양극화의 심화로 인해 사회적 연대의 필요성은 더욱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나 공감대는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다. 제도 면
한국 복지국가가 가진 제도적 유산으로 우선 거론할 수 있는 것은 하향식 전개과정으로 인해 형성된 이해관계와 취약한 공공부문을 들 수 있다. 한국의 복지국가는 하향식 전개과정을 거쳐 발전해 왔기 때문에 시장으로부터의 보호가 누구보다 더 필요한 계층을 언제나 복지혜택으로부터 배제해 왔다. 그리고 복지로부터 배제된 계층은 자신들을 위해서는 아무런 복지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 자체적인 비공식적 연줄망을 통한 위험대처기제를 발전시켜 왔다(남찬섭, 2001).
소득신고의 불성실과 이를 통한 가처분소득의 보존, 보존된 가처분소득의 연줄망을 통한 비공식적 이전, 높은 교육열, 저축행위에 대한 지극한 애착 등은 자체적인 위험대처기제의 예들이다. 한국사회에서 자립과 자활의 가치는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며 수긍되지만 그 자립과 자활은 개인의 자율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자유주의적 의미의 자립은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은 상품거래관계를 통해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의존하는 비인격적 의존관계를 창출하며 그로 인한 폐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의존하는 연대기제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연대의식은 낮으며 연대의 범위는 연줄망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자원의 제약을 강조해 온 한국의 국가는 지극히 협애한 이데올로기적 틀에 갇혀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표하지 못하고(최장집, 2002) 대표되지 못한 계층의 자체적인 위험대처를 방조 내지 조장하여 왔다.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소득파악의 미비는 단순히 그 대상이 원래부터 소득파악이 어려운 자영자들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들을 복지혜택으로부터 배제해 온 역사적 발전과정과 밀접히 관련된 것이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표하지 않는 정치구조 그리고 이러한 정치구조와 함께 시민사회의 중요한 부문을 복지로부터 배제해 온 복지국가가 형성되어 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드러내지 않는 시민사회가 형성되어 왔다. 복지의 필요성은 있으되 이것이 정치세력화하지 못하고 정치 요구화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민사회의 요구를 대표하지 못하고 시민사회의 중요한 부문을 복지로부터 배제한 하향식 발전과정을 겪은 관계로 한국의 복지국가는 공공부문이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다. 한국의 국가는 강하지만 약하다(최장집, 2002). 강하다는 것은 정치구조를 통해 대표되지 못하는 이해관계의 억압에 강하다는 것이며, 약하다는 것은 대표되지 못하던 이해관계의 폭발적 분출이 있는 경우 그것을 조율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특히 국가의 약함은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밀접히 관련된 생활부문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한국의 국가는 보건의료, 교육, 주택 등 생활부문에서의 재화 및 서비스 공급을 대부분 민간부문에 맡겨 왔고, 이로 인해 생활부문의 재화 및 서비스 공급자들은 민간시장적 원리에 입각한 이해관계를 구축해 왔으며 이 부문에서 공공부문은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이해관계를 조절할 지렛대 역할을 할 만큼의 비중을 갖지 못하고 있다. 생활부문 서비스의 민간공급은 국민들 모두가 생활부문의 서비스를 위해 자신이 스스로 비용을 부담해야 함을 의미하며, 또한 공급자들은 국민들이 스스로 부담하는 비용을 통해 이윤을 추구해 왔음을 의미한다. 국민들은 생활부문의 서비스를 위해 개별가계의 저축과 연줄망을 통한 비공식적 서비스 전달구조에 의존해 왔고, 생활부문의 공급자들은 국민들을 상대로 이윤을 추구하고 국민들은 생활부문의 서비스를 위해 분투하는 그래서 모두가 모두에 대해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가 되었다.
어떤 면에서 한국은 아직도 피난민 사회(김동춘, 2000)인지도 모른다. 생활부문에서 공공부문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이해관계를 깨뜨려야 하지만 이를 위한 공공부문의 비중은 취약하며 이로 인해 정부의 조정능력은 한계에 달해 있고, 국민들 역시 공공부문의 확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기존에 연줄망과 저축을 통한 생활부문 서비스 소비로부터 얻던 이익을 능가하지 않는 한 공공부문의 확대에 찬성할 유인이 별로 크지 않을 것이다.
과거 복지의 하향식 전개과정에 따라 형성된 이해관계구조와 취약한 공공부문이 의미하는 바는 한국에서 복지의 정치는 복지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계층을 배제해 왔음을 그 본질로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본질을 ‘배제의 복지’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이 배제의 복지는 오늘날 중대한 제도적 제약으로 존재하고 있다. 자발적 위험대처기제의 작동에 자원이 되었던 소득불성실신고는 복지제도의 제도적 토대 형성을 방해하고 있으며 생활부문의 취약한 공공성은 또 다시 자발적 위험대처기제의 작동필요성을 온존시키고 있다.
2004년 상반기에 나타난 바 있는 연금사태는 이러한 모순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의 고갈을 우려한다면 이는 논리적으로는 기여의 증가를 통해 기금고갈을 방지하는 대책의 강구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연금사태의 전개과정에서 시민들이 보여준 태도는 이러한 것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많은 시민들은 국민연금의 폐지를 주장하였다. 이는 마치 민간금융기관에 적금을 들었다가 그 금융기관의 파산소식을 듣고 앞 다투어 적금인출을 하기 위해 모여든 예금주들의 태도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하향식 발전과정은 시민들의 비공식적 연줄망 복지의 형성에만 기여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관리능력 부재를 조장하는 데에도 일조하였다. 개발독재시대의 관료들의 유능함은 오늘날 이해관계조정에서는 무능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배제의 복지와 취약한 공공부문으로 인해 생활부문에서의 정부의 관리능력은 크게 의문시되고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 한국 정치구조는 오랜 세월 동안 협애한 대표체제(최장집, 2002)를 구축해 온 나머지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정치의 장으로 끌어 들여 다양한 목소리(voice)를 대표하는 구조를 만들어오지 못했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에는 발전국가의 부정적 요소에만 주목하여 이것을 지나치게 급격히 해체한 나머지 국가의 이해조정능력까지도 심각하게 제한해 버리는 조치를 취하였다(신장섭‧장하준, 2004). 그리하여 민주화 이후 이른 바 개혁세력들은 신자유주의 논리와 세계화 논리에 빠르게 빠져들었다.
이들은 경제부문에서는 경제관련 부처를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적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여 강력한 구조조정을 시도하였고, 그로 인한 폐해를 오로지 복지부문에서 받아 안도록 하는 기조의 정책을 추진하였다. 생산적 복지는 이러한 개혁기조에 바탕을 둔 것이었으며 참여복지 역시 이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복지국가의 이념이나 민주주의 이념이 과거 개발독재 논리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국가경쟁력이라는 이념이 그것을 대체하였다. 이러한 결과 경제관련 부처를 중심으로 한 정부 일각이 과거의 개발독재논리를 신자유주의와 국가경쟁력이라는 새로운 논리로 대체하여 강력한 거부지점(veto point)으로 등장하고 있다.
자원의 증가에 상응하지 않는 복지는 국가의 재정부담을 회피한 채 가입자의 비용부담을 전제한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한국에서 복지는 뒤늦게 제도화했으며 제도화한 경우에도 그것은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제도화했던 것이다. 하지만, 생활부문에서의 공공부문의 비중이 취약하고 배제된 계층의 자체적 위험대처기제가 발달된 상황에서 사회보험의 제도화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한계는 경제위기 이후 분배구조의 악화와 고용불안정 등으로 인해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진행된 의료보험 통합, 전국민연금의 제도화 시도는 단일한 사회보험 구조 내에 노동자와 자영자를 포괄함으로써 이들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고 이를 통해 사회연대의식을 제고하려는 것이었지만, 이러한 의도는 충분히 실현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통합의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지만 통합의 효과를 살릴 수 있는 행정적‧재정적 토대는 취약했던 것 같다. 국가는 배제되었던 계층을 제대로 관리할 적절한 행정적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였으며 이들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여 통합된 구조 내에서 마련될 수 있는 단일한 이해관계의 형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재정적 토대로 제대로 구축하고 있지 못하였다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한 때 신용카드의 사용증가는 소득파악률의 제고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 바도 있었고 또 실제로 소득파악률 제고에 기여한 것이 사실이지만 신용불량자 문제 등 부정적인 면도 결과도 낳았다.
이러한 국가능력의 부족이라는 상황 속에서 지배적 이념으로 신자유주의적 논리가 등장하면서 사회의 다른 모든 부문을 신자유주의적 방향으로 재편(조영훈, 2002)하는 가운데 복지만 고립되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으며, 이제는 고립된 복지가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될 수도 있는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결국, 한국의 복지국가는 과거부터의 배제의 복지정치를 극복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신자유주의 이념의 지배와 세계화 흐름에 직면하여 그에 대처할 적절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고용불안정화와 양극화로 인한 권력자원의 취약성 증가 등은 한계극복의 방안을 마련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분배구조의 악화로 자발적 위험대처기제가 붕괴하고 있지만 이것이 연대의 보편성에 대한 인식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분배구조 악화로 인한 지불능력 취약성의 증가는 복지제도의 토대를 침식하고 있다. 베브리지(Beveridge, 1942)는 자신이 구상한 사회보장(=소득보장)의 토대로 완전고용, 보편적 보건의료, 보편적 아동수당의 세 가지를 제시한 바 있으며, 이 세 가지를 토대로 한 영국의 복지제도는 소득보장 외에도 주택, 고용, 보건 등에 걸쳐 구축되어 왔다. 현재 한국은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으며, 소득보장과 함께 제도화될 수 있는 주택, 고용, 보건의료에서의 공공성은 지극히 취약한 실정이다. 그리하여 소득보장의 토대가 되거나 그것과 밀접히 연관된 부문에서의 보수주의적 공격에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4. 결론: 연대적 복지의 가능성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연대적 복지는 보편적 상호의존성을 기초로 한다. 이러한 보편적 상호의존성에 기초하여 욕구가 보편적인 것으로 인정되고 이에 따라 욕구가 권리로 보장될 때 연대적 복지는 가능하다. 하지만, 욕구가 권리로 승인되는 것은 철학적으로 자명한 것이 아니며 정치경제적으로도 미리 결정된 것이 아니다.
유럽의 경우 연대적 복지를 추구한 집단은 노동계급이었지만 노동계급과 연대추구집단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다(Baldwin, 1990). 복지제도, 특히 사회보험은 위험의 재분배에 관련된 것이므로 시장경제 내에서 위험의 대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위험의 재분배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없고 오히려 손해를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집단은 위험의 재분배에 저항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연대적 복지를 위해서는 각 집단이 위험의 재분배로부터 얻는 이익을 자신들의 집단적 이익과 동일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위험의 재분배로부터 얻는 이익을 각 집단이 자신들의 집단적 이익으로 동일시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어 있는가는 매우 회의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속한 증가와 더불어 나타나고 있는 노동계급의 양극화와 분배구조 악화는 그러한 조건의 형성에 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분배구조 악화는 일반적으로 위험의 재분배에 대해 긍정적 인식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현재의 한국의 상황은 그 반대인 것 같다. 이는 연금사태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2004년 10월 28일에는 국민연금의 소득규정 미비에 관련된 위헌확인 청구소송이 제기되어 헌법재판소가 이를 심리하기로 결정한 일도 일어났다. 이 위헌소송은 최근 확산되고 있는 연금폐지정서를 더욱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법은 시민법의 근간이 되는 사적 재산권의 일정한 제약을 통해 성립하는 것인데 이 경우는 시민법의 재산권 원리에 비추어 사회법의 작동을 제약하려는 방향을 취하고 있는 것이어서 아쉬움을 더함과 동시에 그 판결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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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의존의 보편화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연대의식의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 현재의 상황에서 연대적 복지를 위해 어떤 전략을 취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위험의 재분배로부터 얻는 이익을 시민들에게 실증해주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인 것 같다. 소득보장 중심의 복지전략으로부터 탈피하여 주택, 교육, 보건의료 등 조세를 통해 공공성을 증진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여 조세증가가 궁극적으로 이익이 됨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공공부문의 확대가 비공식적인 자발적 위험대처기제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더 많은 이익을 준다는 사실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의료와 공공주택, 공공교육의 확대가 절실히 필요하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세제도 개혁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사회구성원들도 조세납부에 성실히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익실증의 바탕 위에서 복지제도를 위한 비용부담과 급여수준의 조정 등에 관련된 사회적 합의를 시급히 형성해야 할 것이다. 오늘 한국사회는 연대적 복지라는 먼 목표를 보고 나아가되 이를 위해 연대적 복지가 가능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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