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서남아시아의 대지진과 해일로 세계는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새해를 맞이하였다. 을유년 새해가 도래하자마자 우리는 도시락 파동을 겪게 되었다. 일선 지방자치단체들이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점심을 굶는 저소득층 아동 및 청소년들을 위해 배달해준 도시락이 너무 부실하다는 사실이 밝혀져, 외환위기 이후 가속되는 빈부격차의 비정한 단면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제주도 서귀포시와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연이어 터져나온 도시락 사건은 좀처럼 쉽게 가라앉지 않은 채 연일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에 등장하였다.

이에 우리 언론들은 늘 그랬듯이 비슷한 기사들을 연일 쏟아내며 여론을 달구었다. 도시락 1개당 2,500원의 예산이 너무 적어 비현실적이라는 일선 실무자들의 문제제기가 결국은 힘을 얻어 도시락의 단가를 3,000원으로 내년에는 4,000원으로 인상한다는 정부의 발표로 대충 마무리되어 갔다. 새해 벽두부터 시끄러웠던 도시락파동은 서서히 사라지고 언론의 관심은 연예인 X파일 문제로 옮겨졌다.

시끄러웠지만 이렇다 할 개선책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보는 작업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신문들은 대개 사설을 통해 정부의 부실한 정책 집행을 꾸짖으며 가난한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책을 시행할 것을 주문하였다. 특히 조선일보는 온기가 흐르는 복지정책(1월 13일자 사설 “내 아이라면 이런 도시락 주겠는가”)을 주장하며, 기자수첩(1월 21일자, “예산부터 늘리고…” 공무원식 발상법)과 외부 칼럼(1월 22일자 “그건 타부처 소관인데요”)을 통해 공무원들의 안일한 정책 태도를 꾸짖었다.

결식아동의 도시락 문제 해결책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언론들이 소극적이었다. 예산 인상에 대해서는 대체로 소극적으로 찬성하면서 자원봉사자 및 시민사회단체의 활용(경향신문 1월 15일자 사설, 중앙일보 1월 13일자 사설),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정성(중앙일보 1월 15일자 사설, 동아일보 1월 19일자 기자의 눈, 오마이뉴스 1월 19일자 기사 “아동복지, 지원금 액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등을 제시하였다. 그리하여 상대적으로 잘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의 현황을 소개하면서 자원봉사자들이나 사회복지사 그리고 사회복지관, 자활후견기관 등의 애정어린 활동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감정적이고 두루뭉술한 기사들 속에서도 중앙일보 1월 17일자 취재일기(예고된 ‘도시락 파문’)는 사회복지사의 확충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한겨레신문 1월 14일자 사설이 철저한 실태조사와 효율적인 급식운영체계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구체성이 없는 이러한 대안들은 문제해결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번 도시락 파동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사회복지전달체계와 인력체계 구축의 문제, 현물급여 및 서비스의 관리ㆍ운영의 문제, 쿠폰제도의 관리방식, 사회복지예산 문제, 요보호대상자들의 욕구 파악문제 등 다양한 해결지점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언론은 이런 해결책과 방법들에 대해 꼼꼼하게 따질 수 있는 실력과 여유를 가지지 못한 것 같다.

언론이 복지를 아무리 강조해도 그것은 여전히 언론의 장식물에 지나지 않는다. 죽은 어머니의 시신과 6개월 간 동거했던 중학생의 사건 때에도, 장롱 속에서 굶어죽은 4세 아동의 사건 때에도 엽기적인 부분만 호들갑스럽게 부각시키고 정부에게 호통 한번 치고 독자들의 측은지심에 호소하면서 슬그머니 시선을 거두었다. 이런 언론의 행태는 이번 도시락파동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언론이 다루어야 할 사항들은 많다. 언제까지 도시락 문제에만 매달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모든 사안이 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제한된 시간과 지면을 통해 문제의 본질을 찾아내고 대안을 제시하여 계속적으로 촉구하는 것이다.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감성적인 호소로 마무리하는 것은 언론의 문제해결 기능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빈부격차, 차별,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상태를 실질적으로 완화하는 데 언론의 힘은 실로 중요하다. 그러나 이렇게 둔탁한 칼로 정교한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언론은 좀 더 전문적인 식견으로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 일환으로 사회복지 전문기자의 채용을 추천해 본다.

윤찬영 / 전주대 교수
2005/02/10 00:00 2005/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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