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노숙인의 인권과 현장보호 체계
월간 복지동향/2005 :
2005/03/10 00:00
최근 거리 노숙인과 관련된 논란이 많다. 해마다 겨울이면 거리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일시적으로 비등하기는 했었지만 올해는 이것이 좀 더 두드러진다. 2005년의 첫 머리에 노숙인은 그 수도 전혀 줄어들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는 서울역에서 사망 노숙인에 대한 부적절한 대처와 관련되어 소요까지 발생한 바 있다. 지난 1월 22일 서울역에서는 숨진 한 노숙인의 시신(?) 처리과정에서 짐수레에 시신을 싣고 시신이 그대로 눈에 띠도록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행태에 항의하는 노숙인과 경찰들 간의 마찰이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마찰이 확대되면서 ‘노숙인들의 집단난동’이라는 식으로 선정적인 언론보도가 발표된 바 있다. 또한 그보다 전인 1월 3일 지하철 7호선 방화사건을 우리국민은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얼마 전 범행일체를 자백한 용의자가 나타남으로써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 싶다. 하지만 그 이전에 한 노숙인을 용의자로 지목하여 경찰은 영장이 기각되었음에도 거리 노숙인을 강제로 쉼터에 구금시키고 40여 일간 감시를 해왔다는 사실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간 거리 노숙인 문제와 관련되어 편향된 언론 보도의 문제도 있었거니와 평소 서울역 등에서 노숙인을 보며 불쾌감을 가졌던 사람들 중 일부는 격리나 단속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노숙인의 인권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공장소를 이용하는 시민의 권리도 중요하므로 공공장소에서 남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람에 대한 단속(?)도 시민의 인권옹호에 중요하다는 식의 논리이다. 이 말도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모든 사회복지서비스는 전체 사회에 대한 책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수 취약인구층에 대한 인권옹호의 당위적 주장과 함께 공익에 대한 주장 혹은 사회전반적인 여론에 대한 책임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되짚어봐야 할 노숙인 복지체계
잠시 우리나라 노숙인 복지체계에 대한 논의들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노숙인 복지의 제도화가 시설 중심이 아니라 시스템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관련 종사자나 전문가들의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원칙의 하나이었다. 여기서 시스템 중심이라는 말 속에서는 거리 노숙인에 대한 현장보호체계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숙인 복지는 IMF 직후 응급보호 시스템을 만들면서 그 이전의 우발적이고 자선적인 무료급식 등을 벗어나 쉼터라는 시설보호체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모든 노숙인이 쉼터가 존재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쉼터로 입소해 서비스를 받도록 되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 속에서 현장보호체계로서 상담보호센터(drop-in center)가 도입되었다. 더구나 현대 사회에서 무조건 시설로 입소시킨다는 수용은 구금과 같은 인권침해이지 복지서비스가 될 수는 없다. 상담보호센터(drop-in center) 준비와 개소에는 거리 노숙인에 대한 아웃리치와 현장에서의 생활지원서비스, 쉼터 및 서비스 체계로의 투입과 상담 및 사정의 기능이 전제되었다. 즉, 거리 노숙인들 상대로 현장에서의 보호나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사회복지시설 등의 보호체계로 투입되는 현장창구로서의 역할을 도모하자는 것이었다.
노숙인 상담보호센터의 제자리찾기
현재 상담보호센터는 대구, 대전, 부산에 각 1개소, 서울지역에 3개소가 활동해오고 있으며, 올해 추가적으로 상담보호센터가 개소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종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노숙인에 대한 직접 서비스를 넘어서는 현장지역(거리 노숙인 생활지역)에서의 아웃리치서비스와 응급상황 대처의 기능은 취약하다.
이는 현재의 상담보호센터 체계나 활동여건에 부적절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원래 상담보호센터는 쉼터라는 시설체계의 대체재가 아니라 전혀 다른 기능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다른 기능은 예를 들면 서울역 등 공공역사에서 있는 거리 노숙인에 대한 아웃리치 서비스와 현장활동의 강화이다. 얼마전 서울역에서의 노숙인 사망사건이나 그에 따르는 소요상황 등을 예방하거나 이에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서비스 구조와 업무여건이 구축 혹은 지원되어야 한다. 이는 물론 노숙인에 대한 응급의료지원을 포함하는 것이다.
거리 노숙인에 대한 이슈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자 서울시에서는 새로운 큰 규모의 상담보호센터를 준비 중인 거리노숙인 사태(?)에 대한 해결대안으로 홍보하고 있다. 물론 서비스 수요가 있기 때문에 환영할만한 조치이다. 그리고 드롭인 센터가 제 자리를 잡아간다면 서울역 등 공공역사에서의 거리 노숙인 문제 완화(?)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상담보호센터의 확충과 서비스 강화가 무엇보다도 현장보호서비스의 강화와 사정을 통한 서비스 연계에 초점이 두어졌으면 한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것은 새로 만들어지는 상담보호센터가 ‘종합조정’ ‘기록관리’ 등 행정적 편의사항을 일차적 표적으로 두고 현장보호보다는 ‘여러 드롭인 센터를 행정적으로 총괄하는 중앙센터’라는 허황된(그간 수 많은 실패경험과 민간단체의 반발을 사왔던 것과 같은) 기능을 전제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솔직히 현재 새로 만들어진다는 큰 규모의 상담보호센터가 거리 노숙인에 대한 의료지원서비스 기능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나, 갑작스러운 개소를 위한 이사 등이 또 하나의 전시적 옥상옥 구조의 재판이 아닌가하는 우려의 소문을 가끔 듣기도 한다.
또 하나, 서울 시내에 있는 쉼터 하나에 이제는 무혐의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한 ‘용의자 노숙인’을 ‘수용감금(?)’하고 감시했다는 사실은 경찰이나 공공권력이 사회복지시설인 ‘쉼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된 관계자들은 엄중한 책임문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시민의 불편함을 빌미로 엉뚱한 여론 편승을 통해 노숙인에 대해 ‘단속과 수용’ 정책을 편다는 것은 옳지도 않지만 가능하지도 않다. 행정편의적 발상을 버리는 것부터 거리 노숙인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처의 원칙이 시작된다(물론 우리 사회에서 노숙인이 한 명도 남지 않고 없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떤 대책 속에서도 비현실적이다).
‘서울역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그리고 거리 노숙인에 대한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현장기능의 강화를 위해 의료지원과 현장보호, 아웃리치를 강화하는 상담보호센터의 능력이다. 새로 구축되는 드롭인 센터는 이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노숙인 보호와 복지를 위해 유력한 지방자치단체들은 이양된 예산과 책임에 부합하는 충분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믿어본다. 실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민간단체들과 법령이라는 기준에 의해 지자체의 활동을 관찰하고 있는 눈들이 있고 적절한 견제 속에서 현장보호기능이 잘 강화되어가리라고 기대한다. 이번 센터의 개소가 적절한 방향으로 진행되는지는 인근 지역에 대한 아웃리치가 얼마나 강화되고 현장보호와 의료지원이 얼마나 잘 이루어지는가로 평가될 것이다.
노숙인의 인권존중
거리 노숙인 중에는 얼마 전까지 기업을 운영하던 사람도, 대졸의 학력을 가진 사람도, 버젓한 직장인이었던 사람들도 있다. 바로 나와 내 이웃이다. 우리 사회는 나와 내 이웃 중 상당수의 사람이 노숙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경제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시민인 내 이웃 혹은 내가 경험할 수도 있는 이 상황에 대해 사회가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내가 어느 순간 실직과 경제여건 악화, 도와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 처해서 오갈데 없이 길거리에 있게 되었다면 겨울 날씨에 추위를 피해 따듯한 장소인 역사나 일부 공공장소로 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내가 일정한 거처와 돌봐줄 사람이 없어 서울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단속이 되고 이 사회로부터 격리된다면... 그리고 결국은 영원히 재기하거나 사회주류로 복귀할 수 없다면... 이는 올바른 사회의 모습은 아니다. ‘복지’의 이름에 맞는 거리 서비스가 인권증진을 위해 준비되어야 한다.
이웃의 인권이 침해된다면 나의 인권도 장담할 수 없다. 잘 살펴볼 일이다.
그간 거리 노숙인 문제와 관련되어 편향된 언론 보도의 문제도 있었거니와 평소 서울역 등에서 노숙인을 보며 불쾌감을 가졌던 사람들 중 일부는 격리나 단속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노숙인의 인권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공장소를 이용하는 시민의 권리도 중요하므로 공공장소에서 남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람에 대한 단속(?)도 시민의 인권옹호에 중요하다는 식의 논리이다. 이 말도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모든 사회복지서비스는 전체 사회에 대한 책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수 취약인구층에 대한 인권옹호의 당위적 주장과 함께 공익에 대한 주장 혹은 사회전반적인 여론에 대한 책임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되짚어봐야 할 노숙인 복지체계
잠시 우리나라 노숙인 복지체계에 대한 논의들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노숙인 복지의 제도화가 시설 중심이 아니라 시스템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관련 종사자나 전문가들의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원칙의 하나이었다. 여기서 시스템 중심이라는 말 속에서는 거리 노숙인에 대한 현장보호체계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숙인 복지는 IMF 직후 응급보호 시스템을 만들면서 그 이전의 우발적이고 자선적인 무료급식 등을 벗어나 쉼터라는 시설보호체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모든 노숙인이 쉼터가 존재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쉼터로 입소해 서비스를 받도록 되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 속에서 현장보호체계로서 상담보호센터(drop-in center)가 도입되었다. 더구나 현대 사회에서 무조건 시설로 입소시킨다는 수용은 구금과 같은 인권침해이지 복지서비스가 될 수는 없다. 상담보호센터(drop-in center) 준비와 개소에는 거리 노숙인에 대한 아웃리치와 현장에서의 생활지원서비스, 쉼터 및 서비스 체계로의 투입과 상담 및 사정의 기능이 전제되었다. 즉, 거리 노숙인들 상대로 현장에서의 보호나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사회복지시설 등의 보호체계로 투입되는 현장창구로서의 역할을 도모하자는 것이었다.
노숙인 상담보호센터의 제자리찾기
현재 상담보호센터는 대구, 대전, 부산에 각 1개소, 서울지역에 3개소가 활동해오고 있으며, 올해 추가적으로 상담보호센터가 개소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종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노숙인에 대한 직접 서비스를 넘어서는 현장지역(거리 노숙인 생활지역)에서의 아웃리치서비스와 응급상황 대처의 기능은 취약하다.
이는 현재의 상담보호센터 체계나 활동여건에 부적절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원래 상담보호센터는 쉼터라는 시설체계의 대체재가 아니라 전혀 다른 기능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다른 기능은 예를 들면 서울역 등 공공역사에서 있는 거리 노숙인에 대한 아웃리치 서비스와 현장활동의 강화이다. 얼마전 서울역에서의 노숙인 사망사건이나 그에 따르는 소요상황 등을 예방하거나 이에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서비스 구조와 업무여건이 구축 혹은 지원되어야 한다. 이는 물론 노숙인에 대한 응급의료지원을 포함하는 것이다.
거리 노숙인에 대한 이슈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자 서울시에서는 새로운 큰 규모의 상담보호센터를 준비 중인 거리노숙인 사태(?)에 대한 해결대안으로 홍보하고 있다. 물론 서비스 수요가 있기 때문에 환영할만한 조치이다. 그리고 드롭인 센터가 제 자리를 잡아간다면 서울역 등 공공역사에서의 거리 노숙인 문제 완화(?)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상담보호센터의 확충과 서비스 강화가 무엇보다도 현장보호서비스의 강화와 사정을 통한 서비스 연계에 초점이 두어졌으면 한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것은 새로 만들어지는 상담보호센터가 ‘종합조정’ ‘기록관리’ 등 행정적 편의사항을 일차적 표적으로 두고 현장보호보다는 ‘여러 드롭인 센터를 행정적으로 총괄하는 중앙센터’라는 허황된(그간 수 많은 실패경험과 민간단체의 반발을 사왔던 것과 같은) 기능을 전제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솔직히 현재 새로 만들어진다는 큰 규모의 상담보호센터가 거리 노숙인에 대한 의료지원서비스 기능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나, 갑작스러운 개소를 위한 이사 등이 또 하나의 전시적 옥상옥 구조의 재판이 아닌가하는 우려의 소문을 가끔 듣기도 한다.
또 하나, 서울 시내에 있는 쉼터 하나에 이제는 무혐의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한 ‘용의자 노숙인’을 ‘수용감금(?)’하고 감시했다는 사실은 경찰이나 공공권력이 사회복지시설인 ‘쉼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된 관계자들은 엄중한 책임문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시민의 불편함을 빌미로 엉뚱한 여론 편승을 통해 노숙인에 대해 ‘단속과 수용’ 정책을 편다는 것은 옳지도 않지만 가능하지도 않다. 행정편의적 발상을 버리는 것부터 거리 노숙인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처의 원칙이 시작된다(물론 우리 사회에서 노숙인이 한 명도 남지 않고 없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떤 대책 속에서도 비현실적이다).
‘서울역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그리고 거리 노숙인에 대한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현장기능의 강화를 위해 의료지원과 현장보호, 아웃리치를 강화하는 상담보호센터의 능력이다. 새로 구축되는 드롭인 센터는 이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노숙인 보호와 복지를 위해 유력한 지방자치단체들은 이양된 예산과 책임에 부합하는 충분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믿어본다. 실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민간단체들과 법령이라는 기준에 의해 지자체의 활동을 관찰하고 있는 눈들이 있고 적절한 견제 속에서 현장보호기능이 잘 강화되어가리라고 기대한다. 이번 센터의 개소가 적절한 방향으로 진행되는지는 인근 지역에 대한 아웃리치가 얼마나 강화되고 현장보호와 의료지원이 얼마나 잘 이루어지는가로 평가될 것이다.
노숙인의 인권존중
거리 노숙인 중에는 얼마 전까지 기업을 운영하던 사람도, 대졸의 학력을 가진 사람도, 버젓한 직장인이었던 사람들도 있다. 바로 나와 내 이웃이다. 우리 사회는 나와 내 이웃 중 상당수의 사람이 노숙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경제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시민인 내 이웃 혹은 내가 경험할 수도 있는 이 상황에 대해 사회가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내가 어느 순간 실직과 경제여건 악화, 도와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 처해서 오갈데 없이 길거리에 있게 되었다면 겨울 날씨에 추위를 피해 따듯한 장소인 역사나 일부 공공장소로 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내가 일정한 거처와 돌봐줄 사람이 없어 서울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단속이 되고 이 사회로부터 격리된다면... 그리고 결국은 영원히 재기하거나 사회주류로 복귀할 수 없다면... 이는 올바른 사회의 모습은 아니다. ‘복지’의 이름에 맞는 거리 서비스가 인권증진을 위해 준비되어야 한다.
이웃의 인권이 침해된다면 나의 인권도 장담할 수 없다. 잘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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