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복지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복지국가에서 법제정의 중요성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정부의 손길이 필요한 영역에 법을 제정하고, 이에 따라 제도가 실행되는 법치국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직도 법제정이 필요한 수많은 복지영역이 남아있는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필자가 이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법 만능주의의 함정이다.

하나의 법이 제정되기까지는 사회적 수요, 행정적 여건, 제도의 내용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 타 관계법령과의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법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의 동의(同意) 획득 등 어찌 보면 그 사회의 전반적인 프로세스와 맞물려 돌아가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 하더라도 시행의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마련이어서 행정적인 곤혹을 치루는 것이 다반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복지영역에 관한 한 일단 법을 만들어놓으면 그 자체로서 생명력을 가지고 돌아가게 마련이라는, 그래서 우리 사회의 복지수준을 높일 수 있으리라는 꽤나 낙관적이고 무책임한 정서가 팽배해있다. 소위 제도주의의 아류(亞流)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정서는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정부, 학계, 사회복지 실천계 그리고 심지어는 시민단체에서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물론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지금보다 복지의 수준이 매우 낮아서 사실 복지법령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일단 법을 만들어보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고, 솔직히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10여년간 우리나라는 복지국가의 면모를 갖추는 굵직굵직한 복지 관계법이 제정되었고, 따라서 지금은 이러한 제도적 성과에 대해서 면밀하게 분석하여 제도적 완성도를 높여가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행정적인 여건이 성숙하여 법제정의 성과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면 법은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법제정만이 능사는 결코 아니고, 그 법에 담겨있는 정신과 법이 추구하는 목적을 제대로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있는가 하는 점을 면밀히 따져보아야 한다. 이 세상에 헌법이 나빠서 민주주의 못하는 나라 보았는가? 법만 만든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전혀 아니고, 오히려 섣부른 법의 제정은 현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가 올해부터 시행되는 건강가정기본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우둔한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건강가정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법조문(법 제3조)에 따르면 “가족 모두의 욕구가 충족되고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가정”이 건강가정이라는데, 도대체 현실세계에서 이런 가정이 존재하기나 하는지부터 의문이며, 정부는 이런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정책을 시행할 것인지도 불명확하다. 결국 이 법의 제정으로 인해서 우리 사회에서 성실히 살아가는 대다수 가정을 불건강한 가정 혹은 불온한 가정으로 낙인(烙印)찍힌 결과만 초래하였다. 이렇듯 도덕적 계몽주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법이 제정되었다는 사실에서 우리 사회의 낙후성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한 마음이다. 국민 모두 착하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훈시하였던 국민교육헌장은 차라리 애교였다.

물론 경우가 다르지만, 요즈음 복지계 일각에서 법 제정이 심도 있게 논의되고 있는 긴급구호법, 자활지원법 역시 자칫하면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 우려(憂慮)되는데, 이는 필자의 지나친 기우(杞憂)일까? 사실 긴급구호법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긴급급여에 관한 조항(법 제27조)이 있고, 자활지원법 역시 자활사업에 관한 조항(법 제15~18조, 법 제28조)이 있기 때문에 독립된 법체계가 아니라도 의지만 있다면 사업을 실시할 수 있다. 따라서 문제는 법체계의 구성이 아니라, 내용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충실하게 채워나가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물론 이 법의 제정을 주장하는 분들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건강가정지원법과 같은 전(前)근대적 훈시통치(訓示統治) 시대의 법과는 논의의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은 충분히 인정한다. 하지만 행정적인 실현가능성(feasibility)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필요하다고 모두 법으로 제정한다면, 우리는 법의 홍수 속에 허우적거릴 것이 너무 명약관화하다. 우리의 생활을 편하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려고 만드는 법이 오히려 우리의 발목을 잡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복지국가의 성립이후부터 우익들은 “누구를 위한 복지국가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즉 복지국가의 제도가 실제 국가의 도움이 필요한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가 아니면 복지관계 공무원, 사회복지사, 사회복지학자 등과 같은 공급자를 위해서 기능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우익의 목소리를 그냥 공염불로 넘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마음속에 공급자 위주의 시각에서 복지제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한 성찰이 요구된다 하겠다.

문진영 / 서강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05/04/10 00:00 2005/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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