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 민주노총의 “2006년 세상을 바꾸는 투쟁”

“노동운동의 위기”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그리고 이런 ‘위기설’은 단순히 토론회장에서 회자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체적인 현실로 때로는 공세로 진행되고 있다. 12%의 조직된 노동자와 88%의 조직되지 않은 대다수 노동자, 그리고 40%의 정규직 노동자와 60%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갈라진 노동계급은 자본과 정권의 효율적인 통제방법이자, 이데올로기 공세의 단골 소재가 되고 있다. 최근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노동조합 비리사건들이 터지면서 이러한 공세는 한층 가속화되고 있다. 또한 2007년을 고비로 복수노조허용, 전임자 임금금지 등 노동통제와 노동운동 고립화는 한층 더 해질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정권의 탄압이나 언론의 왜곡으로만 치부해서는 이러한 국면을 주체적으로 돌파해나갈 수 없다. ‘위기의 본질’을 명확하게 바라봐야한다. 기업단위 정규직 노동운동에 갇혀 있는 한, 임금투쟁에 매몰하는 전투적 조합주의에 갇혀있는 한, 계급적 단결도 자본과 정권의 통제와 변화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노동운동의 혁신을 통해 기존의 투쟁내용과 투쟁방식을 새롭게 정립하고 실천할 때가 왔다. 신자유주의 공세로 더욱 심해지고 있는 노동자 내부의 분할과 차별, 그리고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민중들의 빈곤과 빈부격차에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전개하려 한다. 이를 위해 지난 1월 20-21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직 차별철폐’, ‘노사관계로드맵 분쇄 및 산별체계 구축’,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사회공공성 강화’의 3대 의제로 2006년 5월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그리고 115주년 세계노동절대회에서 세상을 바꾸는 투쟁방침을 발표했다. 노동자 내부 뿐 아니라 전 사회적인 빈곤과 양극화를 해결해나가기 위해 노동시장구조 뿐 아니라 산업구조, 사회구조 등을 총체적으로 바꿔나가자는 것이다. 70만 조합원 뿐 아니라 860만 비정규직, 그리고 노동자만의 “임단투”가 아니라 1,500만 노동자를 비롯한 전체 민중의 요구를 받아 안고 투쟁하겠다는 것이다. 당장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거꾸로 가는 신자유주의 흐름을 바꾸는 돌파구를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왜 무상의료, 무상교육인가?

광범위한 사회공공성 영역 가운데, 민주노총은 왜 의료와 교육 영역을 전면적 요구로 내걸었는가. 가장 큰 이유는 첫째, 민중의 보편적 요구와 분노가 결집되어 있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어려워진 가계살림에 외국에서는 거의 국가가 책임지고 있는 의료와 교육에 오히려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 과도한 의료비와 교육비는 빈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발목을 잡으며 우리를 더욱 절망으로 내몰고 있다. 한쪽에선 수 백 만원을 호가하는 검진상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고액과외, 해외유학 등 사교육비를 쏟아 붓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수술비를 마련할 수 없어 수술을 포기해야 하고, 학교급식비와 치솟는 등록금을 걱정해야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보편적인 요구와 그렇지 못한 현실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분노를 모아 대중적인 투쟁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둘째, 신자유주의 정책의 십자포화 속에 놓여있는 가장 대표적인 필수사회서비스 영역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복지가 취약하건만,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의료, 교육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해야한다며 교육, 의료시장개방 뿐 아니라 병원을 영리법인화하고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하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하고 있다. 사교육비를 경감시키겠다면서 오히려 공교육을 입시학원으로 전락시키고 구조조정이라는 명목 하에 국공립대를 통폐합하고 있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쟁취투쟁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기조에 맞서 가장 대중적으로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펼칠 수 있다. 특히, 서구선진자본주의의 역사적 경험과는 달리, 사회복지영역에서 ‘지켜야할 것’이 거의 없는 우리의 상황에서 ‘사회공공성강화’라는 구호는 수세적 대응을 넘어 공세적인 흐름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교육과 보건의료의 시장화, 상업화를 저지하는 것과 노동자민중의 교육권과 건강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별개가 아닌 것이다.

셋째, 무상의료 무상교육이 직접적인 참여와 행동을 촉발시켜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아직 의회 내 힘이 부족할 뿐 만 아니라 광범위한 사회적 연대를 통해 ‘분배’문제를 둘러싼 대중적 투쟁의 경험을 지녀본 적이 없는 우리에겐 노동자민중의 참여와 행동을 촉발시켜낼 수 있는 사회적, 대중적 의제가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직접적인 대중투쟁의 힘으로 만들어내는 실천적 계획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다. 전부일 수는 없겠으나, 무상의료 무상교육은 그 계기가 될 것이다.

다양한 의제, 광범위한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노총의 세상을 바꾸는 투쟁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지난 4월 20일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전국농민회총연맹 대표자 연석회의를 통해 “공동추진단”을 결성하고 공동토론회를 개최했다. 또한 6월 1일에는 정부의 각 부처별 예산안이 제출되는 시점에 맞춰 대정부집회를 개최하고 요구서를 전달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투쟁주체를 마련하기 위해 ‘사회공공성강화위원회’를 전조직적 차원에서 꾸려나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임단협 시기에 맞춰 조합원 교육 및 선전, 간담회 사업 등을 집중적으로 펼칠 계획이며, 9월부터는 본격적인 대정부 예산투쟁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무상의료, 무상교육 투쟁만으로는 부족하다. “세상을 바꾸는 투쟁”이라는 상에 맞게, “사회양극화”라는 상황에 맞게, 광범위한 사회적 연대를 형성하면서, 무상의료 무상교육이 담지 못하는 다양한 삶의 문제들을 적극 제기하고 의제화 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주거, 보육, 연금, 기초법 개정 등의 의제를 시민사회단체와 공동으로 논의하고 대응하기 위한 연대의 틀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마치며

사회양극화와 빈곤에 맞서 보편적 삶의 권리를 쟁취하고, 계급적 단결과 사회적 연대를 실현하기 위해서 사회공공성 투쟁은 더 이상 노동운동이 방관할 수 없는 의제이다. 민주노총의 사회공공성 투쟁은 연일 제기되는 산적한 과제와 부족한 주체역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제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내년 세계노동절대회를 기점으로 세상을 바꾸는 커다란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 나가자는 민주노총의 결심은 공허한 바람이 아니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변해가고 있다.

올 한해 교육과 선전, 실천투쟁을 얼마나 내실 있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70만 조합원의 권익이 아닌, 양극화 시대 80%의 대다수 노동자민중의 삶을 위한 총파업의 파장이 결정될 것이다.

이재훈 / 민주노총 정책차장
2005/07/10 00:00 2005/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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