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들어 의료의 공공성이 확대되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증대되기를 희구하였던 많은 이들에게는 충격적이게도, 최근 정부 일각에서 소위 ‘의료서비스산업화론’이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

"의료서비스산업화론"의 검토방안

올 초부터 정부는 “교육ㆍ의료 등 고도 소비사회가 요구하는 서비스를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전략산업으로 육성”(‘05. 1. 13 대통령 연두기자회견)한다는 천명이 있은 후 관계장관회의 등을 거치면서 의료산업을 첨단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의료기관에 대한 자본참여가 활성화되도록 하기 위해 영리의료법인을 단계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함은 물론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여 고수준의 의료기술을 향유할 수 있는 선택폭을 넓히며, 의료시장 개방에 적극 대응하여 국내병원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한편, 우수 외국병원의 국내 유치를 위한 노력을 강화하겠다(’05. 3. 8 서비스산업관계장관회의 보고)고 나섰다.

이에 상반기중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분주한 작업이 복지부를 비롯 관련 부처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조만간 국무총리산하에 이와 관련한 위원회가 구성되어 강력한 추진체가 생길 예정이다.

사실 이러한 의료서비스산업 육성에 대한 움직임은 의료계 및 재계에서 일찍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그리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전경련은 ‘의료서비스산업 현황 및 제도개선 과제’를 2003. 5. 14에 발표하고 요양기관 강제지정제 폐지를 비롯하여 민간의료보험, 영리법인에 대한 촉구를 진즉부터 해온 터이다. 이에 뒤질세라 병원협회는 지속적으로 영리법인 허용을 기회있을 때마다 주장하여 왔다.

의료기기, 의약품, 의료기술 등의 개발과 같은 ‘의료제품ㆍ기술의 발달’과는 명백히 구분되는 ‘의료서비스 산업 육성’은 주로 병ㆍ의원에서 생산되는 부가가치의 양을 산업적 관점에서 더 키우고 더 많이 생산케 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투입물로서의 의료제품과 의료기술의 발달이 아닌 최종 생산물로서의 의료서비스 발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의료서비스산업화 주장의 근거

이러한 의료서비스산업화를 주장하는 근거는 다음 몇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의료서비스부문의 적극적 투자를 통하여 질적 제고를 하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서비스의 질적 수준은 미국의 76%정도에 그쳐(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04), 국민의 서비스 충족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따라서 이 부문의 투자와 경쟁 촉발은 시장의 법칙이 관철되어 서비스 질은 높아지고 가격은 낮아지고 이에 소비자 잉여가 확보됨으로써 궁극적으로 국제경쟁력까지 갖추게 된다는 논리이다.

둘째, 의료서비스 분야의 투명성 확보를 이루자는 것이다. 어차피 비영리법인은 명목이요 허울뿐인 현 상태를 인정하고 안팎이 일치토록 영리법인화하면 기업회계 방식에 의거한 감독을 통해 투명성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셋째, 의료서비스의 활성화는 400조에 달하는 민간의 부동자금에 대한 투자처를 확보(재정경제부, 2004)해 주는 동시에 자본집약적이면서도 동시에 노동집약적인 의료서비스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고용창출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주장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병상당 종사자가 0.9명에 불과, 미국의 4.82명, 영국의 5.70명에 비해 고용유발효과가 매우 낮은 편(OECD Health Data, 2003)이다.

넷째는 최근 황우석박사로 대변되는 생명공학의 발달은 물론, 제약, 의료기기 등의 투입물에 대한 발전 촉진을 통해 21세기형 고부가가치산업의 육성에도 이바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강력한 논거를 바탕으로 할 때 경제계와 의료계, 그리고 정부의 삼각편대에 의해 강력히 떠받쳐지고 있는 의료서비스산업 육성론은 과연 이 시점에서 국민의 의료서비스 질의 수준 고양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현재와 미래의 경제성장의 지렛대로서 필연적인 것인가?

의료서비스산업화의 역효과

불행하게도 이러한 주장들은 지극히 피상적인 것이며 하나의 이론적 개연성에 불과할 뿐 의료서비스의 특성과 한국의료계의 현실, 그리고 국민건강을 위한 과제의 우선순위를 생각할 때 이러한 서비스산업으로서의 육성론은 매우 치명적인 역효과를 낼 것이라는 전망을 어렵지 않게 낼 수 있다.

우선, 의료서비스의 특징부터 살펴보자. 주지하다시피, 의료서비스는 공급자에 의한 수요유발형 재화이며, 전문성을 기초로 한 공급독점적인 재화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이란 경제학적 용어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을만큼 환자와 의사 사이에는 비대칭적인 권력관계까지 존재한다. 생명을 담보로 하기 때문에 강력한 사회적 통제기전에 의하거나 의사의 탁월한 도덕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이러한 비대칭적 관계에 의거한 독점적 상황은 일반적인 시장의 경쟁법칙을 거부한다. 물론 이때 일반적인 시장의 경쟁법칙이란 가격메카니즘을 통하여 수요자와 공급자 공히 잉여를 창출하는 최적의 효율성을 담보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의료서비스 특성의 본질상 단순히 경쟁을 통해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는 것은 상당정도 허상에 기인한다 하겠다.

다음으로 오늘날 한국의료계의 현실에서 의료서비스의 육성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살펴보면,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우리의 경우 국민의료지출비가 지금까지도 충분히 상승했고, 앞으로도 여전히 빠르게 상승할 것이란 점이다. 이미 GDP의 6%를 넘긴 국민의료비 비중은 고령사회로의 질주로 인해 2020년 11%를 넘어 거의 두배 가까운 비중상의 상승이 예상된다. 또한 공공병원이 전체의 10.6%만을 차지하고 개인병원이 47.6%, 그리고 비영리법인이 41.8%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영리법인의 허용은 공공병원의 위상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어 의료의 공공성과는 전혀 배치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매우 왜곡되어있는 의료계의 현실, 예을 들어 급성병상의 과잉, 의료서비스의 이용의 과다, 의료서비스 부문 내의 불균등성 심화, 제약 및 의료기기의 높은 수입의존성 등을 생각할 때 맹목적인 ‘산업육성론’은 이러한 왜곡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특히 영리법인과 민간보험 도입을 구체적인 수단으로 할 때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한 교정보다는 ’보이지 않는 발(invisible foot)'의 패악만이 극에 달할 수 있음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수많은 선진국가에서 의료서비스산업을 ‘육성’한다는 정책을 시행하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도 이 부문의 독특성과 국민복지와의 직결성 때문이겠지만, 이에 우리 의료계의 특수성까지 생각하노라면 이러한 ‘산업육성론’이 갖는 위험천만성은 능히 짐작된다.

당면과제: 국민건강상의 과제

그러나 무엇보다도 현재 당면한 국민건강상의 과제는 무엇일까? 그것이 산업육성일까? 그리고 산업육성론이 이러한 과제의 해결에 가장 적절하고 긴요한 돌파구일까? 결국 논제는 이러한 가장 결정적인 질문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할때, 현재의 시급한 국민건강상의 과제가 산업육성론도 아니며, 이것이 과제를 해결하는 데에 적실한 수단이 아니며 오히려 이러한 과제 해결과는 배치되며 한국 의료보장체계 전체를 후퇴시킬 수 있다는 데에서 현 상황에 대한 우려는 극점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가장 시급히 정부와 시민사회가 풀어내야 하는 의료보장상의 과제는 의료의 보장성 강화이다. 공식적인 수치상으로 61%에 머무는 급여율은 의료서비스의 질과 국제경쟁력을 논하기 이전에 서민가계의 파탄을 부르는 불행의 도화선이라는 점에서 의당 최우선의 정책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리법인과 민간보험의 활용은 기본적인 공공의료 인프라의 부족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보장성의 강화를 가로막는 주범으로 활약할 것이 자명하다. 영리법인제도에 의해 의료기관의 강제지정제는 파기되고 의료가격은 상승하며 민간보험의 활성화는 공공에 의한 보장성 수준의 제고를 철저히 억누르는 가운데 의료의 양극화는 심화될 것이다. 이는 결국 공보험체제의 유명무실로 이어진다.

외형적으로 의료서비스산업의 부가가치가 커지고 GDP 증대는 이루어질 수 있을지 몰라도 국민건강의 피폐를 담보로 만들어진 이러한 결과는 의료서비스부문의 본래의 목적과 기능을 상실한 그야말로 맹목적인 성장지상주의의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의료서비스는 한 사회의 최대의 공공재이며, 공익재이다. 국방을 민간에 넘길 수 없는 것과 같이 의료서비스 역시 정부 정책 의지의 산물로 조절되어야 한다.

이제까지 국민의료의 발전을 논하며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는 포괄수가제, 총액예산제, 고가의료장비관리제, 의료법인 회계준칙 작성 등등의 해법은 실종되고 난데없는 의료서비스산업 육성론만이 횡행하는 지금의 현실은 황량한 벌판에서 어두운 잿빛 하늘을 쳐다보는 나그네의 심정과 다르지 않다.

의료서비스, 산업의 관점이 아니라 국민건강의 관점으로 되돌아 와야 한다. 끝.

이태수 / (재)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원장,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
2005/07/10 00:00 2005/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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