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제기

이 글을 준비하며 필자가 「복지동향」에 게재했던 몇 편의 글을 다시 읽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자활사업 출범직전과 출범직후에 발표된 두 편의 글1)은 많은 고민을 담고 있었으며, 자연스럽게 그 글에서 지적했던 문제점이 현재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그 결과, 5년 전에 제기했던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고 누적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처음으로 돌아와, 자활사업이 무엇을 위해 탄생하였으며, 그에게 부여된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지 되새겨 보았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근로빈곤층에게 생계급여를 보장하는 성과를 거두었다면, 자활사업은 어떠한 성과를 거두었는가. 실직수급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근로의무 이행조항>의 부속사업으로 전락하였는가. 아니면 근로빈곤층의 빈곤탈출을 촉진하기 위한 적극적 지원정책으로 자리매김하였는가.

불행하게도 자활사업은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경제양극화와 맞물려 근로빈곤층의 문제가 정책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자활사업을 소수의 실직수급자를 대상으로 하는 제도로 한정지을 것인지, 근로빈곤층에 대한 적극적인 탈빈곤 지원제도로 발전시킬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자활사업, 무엇이 문제인가

자활사업은 참여자의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지지망 구축이라는 측면에서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참여자들의 일차적 욕구인 취업과 소득증대의 측면에서는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가.

이와 관련해서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첫째, 실직수급자의 취업잠재력이 미약하여 지원을 하더라도 자립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제도의 목표(경제적 자립)을 하향 조정하거나, 지원대상의 범위를 확대하여 정책목표를 달성하게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한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 그 결과 빈곤하고 취업능력과 근로의지가 있어도 수급자가 아닌 계층은 배제되고 실직수급자 중심으로 자활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업의 역동성이 급격히 떨어지게 되었다.

둘째, 자활사업 참여자나 취업수급자의 근로소득이 증가하는 경우, 급여의 형평성만을 고려하여 급여를 삭감하는 징벌방식의 제도를 강화하기보다 이를 격려함으로써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급여체계를 구축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한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근로소득의 증가가 급여삭감 및 수급자격 상실이라는 불이익을 주는 방식이 계속 적용되었다. 그 결과 자활사업 참여자는 수급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근로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거나, 형식적으로 사업에 참여하는 합리적(?) 선택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셋째,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근로빈곤층의 취업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ㆍ취업연계ㆍ직업능력개발ㆍ사회서비스 지원>을 강화했어야 했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은 ‘인건비 보조에 의존하는 자활근로’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취업연계와 직업능력 개발사업은 참여자를 발굴하기조차 힘들었으며, 전업주부의 취업촉진을 위한 사회서비스는 거의 확대되지 않았다. 더욱이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필요한 인프라에 대한 투자 또한 소극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일부 프로그램은 제대로 작동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자활사업은 한편으로는 지원대상을 실직수급자로 국한하고 방어적으로 급여체계를 운영해 왔던 기초생활보장제도로부터 제약을 받아 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고용지원서비스를 강화하고 사회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필요한 지원과 협력의 부재로 인해 어려움을 겪어 왔던 것이다. 물론 사업주체의 역량이나 노력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제도의 설계와 정책추진 의지에 있었던 것이다.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자활사업을 활성화하려면 기존의 공공부조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작업이 뒤따른다. 그렇다면 자활사업이 이러한 수고를 감수해야 할 정도로 필요한 사업인가. 간단히 정리하면, 자활사업은 우리사회가 복지국가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복지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복지지출을 확대하는 논리이자 방법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며, 수급자격이 엄격한 현금급여 확대를 통해 근로빈곤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 때문이다.

혹자는 근로소득보전제도가 자활사업의 대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두 제도는 서로 다른 집단을 대상으로 작동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대체관계에 있다고 볼 수 없다. 한국 근로빈곤층은 미국의 근로빈곤층과 달리 영세자영업자와 미취업자의 비중이 매우 높고, 이들을 흡수할 수 있는 노동수요 또한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근로소득보전제도만으로 근로빈곤층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경우, 대다수 근로빈곤층이 지원에서 배제되고 노동수요 부족과 맞물려 근로유인효과가 실종되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는 근로빈곤층 지원정책이 <근로유인, 자활지원, 소득보장>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서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2).

결국 자활지원제도를 개편함으로써 근로빈곤층에 대한 통합적 지원을 강화하고자 한다면, 앞서 언급했던 세 가지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① 자활지원 및 고용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근로빈곤층을 지원할 수 있도록 지원대상범위를 확대하고, 초기상담과 프로그램 연계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② 근로빈곤층의 다양한 욕구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개별급여체계를 도입하고 근로인센티브를 강화함으로써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야기하고 있는 지원의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고, 근로빈곤층이 수급자격상실에 대한 두려움 없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③ 끝으로 지역사회 노동수요를 고려한 취업알선ㆍ직업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실업자와 기타 미취업자(Hidden Labor Force)를 위한 사회서비스 부문 일자리 창출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부처간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고, 일자리 창출을 담당할 인프라, 즉 조직과 인력을 단계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맺으며

우리사회의 공공부조제도는 환경변화와 빈곤층의 욕구에 맞게 전문화ㆍ다양화되어야 한다. 이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중심의 공공부조제도를 욕구별 개별급여체계로 다원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하나의 제도 안에 서로 다른 수급기준과 급여방식에 따라 운영되는 급여를 모두 포괄하는 것은 복잡한 제도를 더욱 난해하게 만들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중심으로 복지 총량을 확대하는 방식은 사각지대 해소효과의 측면에서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끝으로 현 통합급여체계로 근로빈곤층의 탈빈곤ㆍ탈수급을 촉진하며 소득계층간 형평성의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활지원제도 개편을 위한 논의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하고 있다. 자활사업은 방대한 근로빈곤층을 지원대상으로 하며, 탄력적인 급여체계와 근로인센티브를 갖추고, 고용지원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많은 부처의 긴밀한 협조를 토대로 해야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활사업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틀 내에서 작동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자활지원제도 개편방향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

1) ‘자활사업의 추진현황과 그 전망’, 2000년 10월 ; ‘사회적 연대와 자활사업’, 월간 「복지동향」 2001년 6월

2) 노대명 외(2004), 『한국 근로빈곤층의 소득ㆍ고용실태 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노대명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2005/09/10 00:00 2005/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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