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처음 난곡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1990년 겨울, 지난 15년 동안 난곡이 어떤 변화의 과정을 거쳐왔는지 나는 다 기억한다. 물론 나는 나의 기억들이 제 멋대로 왜곡되거나 조작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억한다. 나란히 늘어서 있던 달동네 판자집들도, 그 집들을 지켜주던 늙은 가로등도, 천장 낮은 방안에서 고단한 하루를 마치던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도.....

그리고 IMF로 인해 더욱 황폐화 된 동네도, 철거 잔재가 날리던 2001년의 난곡도, 하루가 다르게 아파트가 올라가는 현재의 난곡도 변한 것은 없다. 난곡은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이고, 우리 사회의 그늘에 가려진 아픔이다.

그런 측면에서 2003년 실시된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사업(이하, 교육복지사업)에 난곡이 선정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고, 나는 이것이 새로운 지역사회공동체의 모델을 만드는 역사적인 사건이 되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교육복지사업 추진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무런 희망도 걸지 않고, 아무런 환상도 가지지 않고 있다. 냉정한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지역주민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15년간 지역 활동을 해온 나는 안타깝게도 교육복지사업이 난곡이라고 하는 지역사회를 무엇하나 변화시키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3년 동안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이 가진 근본적인 목적을 충족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동안 난곡지역에서 이루어진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사업의 한계와 문제점을 통해 앞으로 이 사업이 올바로 추진되기 위해서 무엇이 먼저 필요한지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상과 현실의 그 깊은 간극

교육복지사업은 학교가 지역사회(Zone이 아니라 Community로 이해해야 한다.)의 중심이 되어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이를 통해 교육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협력하는 교육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이상으로 하고 있다. 이것이 개별 학교에 대한 지원을 넘어 ‘지역’이라고 하는 화두에 이 사업이 접근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학교와 지역사회와 가정이 주체가 되어 빈곤의 대물림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을 지켜내고 보호하며,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였다. 이것은 이미 우리 교육의 문제가 학교라는 틀 안에서만 가두어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인식으로부터 출발하고 특히 빈곤가정 아동의 문제는 교육, 문화, 보건의료, 복지의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초에 교육부로부터 사업이 구상되어 기획된 이후 아래로 내려와 추진되는 구체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이 사업이 얼마나 박제화될 수 있는가에 대해 뼈아프게 실감하게 되었다. 정작 사업을 추진해야할 서울시 교육청뿐 아니라 동작교육청, 개별학교에 이르기까지 전혀 사업의 근본적인 취지와 목적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다. 이미 학교는 정해진 교육일정도 다 있는데 예기치 않은 사업이 끼어들어 귀찮다는 반응이외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어느 자리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 또한 기본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할 단위에서 사업에 대한 이해가 너무 일천함을 실감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업을 추진하는 철학에서부터 공유되어야 하고, 이 사업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전 교육이 충분히 되지못한 것이 아쉽다. 한편, 항상 언론을 통해 비치는 정책들은 그럴듯한데 막상 우리 현실 앞에 펼쳐지는 정책들은 왜 이렇게 왜소하고 천박하게 되는 것인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학교와 지역사회, 그 엇갈린 오해 또는 이해

처음 교육복지사업을 통해 선생님들을 만났을 때 지역과 학교 사이의 간극 역시 넓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교육복지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 선생님들조차도 지역사회에 어떤 단체들이 있는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그들이 무엇을 위해 그런 활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부족해 보였다. 동시에 지역단체의 활동가들 역시 그들의 경험의 한계에 갇혀 학교와 선생님을 바라보았고, 그런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교육복지사업을 통해 어떻게 지역사회와 학교가 함께 하고 만날 것인지, 지역교육공동체라는 것을 각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떻게 이룰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는 닥친 사업들을 수행해 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앞섰다. 교육복지사업 3년이 지났지만 선생님들과 지역사회단체 활동가들이 허심탄회하게 만나 서로간의 이해를 높이고 오해를 해소하면서 사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나누는 자리는 매우 드물었다. 또 몇 번 만들어진 자리들은 지극히 형식적이어서 서로를 이해하는데 별반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들만의 학교 -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학교

학교가 독립적인 기관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지역사회 안에서 학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진지한 성찰과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여 진다.

교육복지사업에서 이상적으로 보여주는 학교는 ‘열린 학교’이다.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학교가 지역사회에 열려있어야 한다. 교육은 학교에서 하는 것이라는 강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또한 사업을 진행할 때마다 ‘사고 나면 누가 책임지나?’ 라고 하는 굴레에 갇혀 습관적으로 움츠려들었던 것이 이제까지 학교가 보여준 모습이었다. 학교가 정해놓은 일정도 흩트러뜨리면 안되고, 학교 수업에 방해가 되어서도 절대 안되고, 학교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 생기는 일은 더더욱 안되고, 학생들의 정보를 나누는 것도 절대 안되고..... 안되는 것들 투성이여서 도대체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특히 난곡의 경우 1차년도 사업에서 사업의 근본취지와 달리 지역사회와 연계하는 프로그램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교육청에서 막았다. 학교로 지원된 예산이 절대 학교 밖을 넘어가서는 안되었다. 이후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주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만 연계가 이루어질 뿐이다. 여전히 학교는 하나도 열려있지 않고, 열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느끼는 것은 나의 지나친 편견일까?

자유를 갇힌 프로젝트 조정자와 지역사회교육전문가

애초에 이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 프로젝트 코디네이터(조정자)라고 하는 다소 낯선 역할을 하는 사람을 지역사회 활동의 경험이 있는 사람을 뽑는다고 했을 때 참 신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민간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지자체나 정부에서 시행하는 사업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예를 많이 본다. 그런 측면에서 이 사업에 대한 기대가 나름대로 높았다. 그러나 프로젝트 조정자가 되고, 지역사회교육전문가가 되는 순간 그들은 ‘학교’라는 틀 속에 갇혀 버렸다.

요즘은 학교사회사업 영역도 많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인데 학교사회사업가라고 하지 않고 지역사회교육전문가라고 한 것은 나름대로 깊은 뜻이 있다고 생각된다. 지역사회교육전문가의 기본적인 역할은 지역사회를 아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지역사회를 안다는 것은 지역사회로 나와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만나는 것이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자원들을 만나고 조직하는 활동일 것이다.

그러나 출장 한번 나가려면 결재받는 것도 너무 힘들다는 누군가의 말은 이 사업에서 프로젝트조정자나 지역사회교육전문가가 가진 위상을 말해준다. 프로젝트 조정자는 교육청에서 장학사를 보조하는 역할밖에 수행하지 못하고 있고, 지역사회교육전문가들은 지역사회 전문가도 아니고 교육전문가도 아니다. 교육청으로부터도, 학교로부터도 자유롭지 않은 이들은 교육과 복지에는 접근해 있을지 몰라도 지역에는 절대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사회와의 협력 - 평등한 관계의 힘

협력은 평등한 관계 속에서 나온다. 학교와 지역사회단체가 서로를 인정하는 속에서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만날 때 협력은 가능하다. 지역사회가 가진 자발성과 역동성을 충분히 살리고, 학교가 가진 시스템과 하드웨어를 충분히 활용한다면 보다 성공적인 교육복지사업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학교는 지역사회단체들을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기 보다는 학교에서 미쳐 다하지 못하는 기능의 일부를 대행하는 정도의 일방적인 관계맺음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적어도 학교에서 사업을 담당하는 교사와 지역사회교육전문가가 자유롭게 지역사회의 사람들을 만나 협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업운영협의회와 실무지원협의회가 실질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시스템화 된 네트워크를 통해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사업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어떻게 사용할지 함께 공유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치고, 또한 예산의 집행 역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지역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이 필요하면 학교를 방문하여 지역사회교육전문가나 담임선생님과 함께 아이들의 문제를 상담할 수 있게 되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부모님이나 지역주민들을 참여시킬 수도 있어야 한다. 또한 교육복지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지역들 간의 다양한 연계와 협력이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역사회교육전문가나 프로젝트 조정자들 간의 연계뿐만 아니라 지역사회기관들 간의 연계가 있었다면 다른 지역의 사례들을 통해 사업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행복한 지역사회 만들기를 위하여

글을 쓰면서 이 글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지 염려스럽다. 단지 난곡지역에서 일하는 활동가로서 교육복지사업에 대한 경험과 한계를 개인적인 입장에서 솔직하게 쓴 것 일뿐 단체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다르다. 또한 교육복지 사업이 애초에 가졌던 목적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채 뼈대만 남은 앙상한 모습으로 진행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성찰일 뿐 지금도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지역사회전문가나 프로젝트 조정자의 잘못을 지적하고자 함이 아니다. 나 역시 교육복지 사업이 충분히 의미있는 사업이며, 필요한 사업이라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애초의 취지를 충분히 살려내는 사업이 되기 위해서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고, 그 산을 넘는 힘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합의하고 협력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2006년부터 교육복지사업이 확대실시 될 예정이라고 한다. 먼저 시행착오를 겪었던 지역이 많고, 또 성과를 거두고 있는 사업들도 많은 만큼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통해 더 나은 사업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또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사업이라고 하는 사업명에서 보듯이 관계부처간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학교와 지역사회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 에너지가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행복한 지역사회 만들기, 아이들이 건강한 지역사회 만들기, 아이들이 꿈을 키우는 지역사회 만들기 - 우리가 살고 싶은 지역사회의 모습이다.

이명애 / 난곡주민도서실 실장
2005/10/10 00:00 2005/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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