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권에 대하여
월간 복지동향/2000 :
2000/02/10 00:00
자본주의 체제에서 시장의 불완전성 때문에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된 국민들이 생존권을 인정받게 된 것은, 근대 시민사회가 성립된 이후 오랜 세월에 걸친 사회적 계급 갈등을 겪고 나서야 가능해진 것이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조차 1920∼1930년대의 세계적인 불황을 겪으면서 구조적 대량실업으로 대다수 국민들이 궁핍하게 되어 자본주의가 체제위기에 직면하자 비로소 사회복지 제도를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니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게 된 것은 불과 몇 십 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사실인즉 복지의 전사(前史)시대에 해당하는 초기 자본주의 시절만 하더라도 빈곤이나 빈민의 문제는 자본과 유산계급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반영된 노동통제정책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지 국민들의 인권이나 생존권 보장에 관련된 복지의 문제는 아니었다. 19세기 영국의 경우, 산업혁명에 의한 자본주의 체제의 확립은 경제적 발전과 국부를 가져오기는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빈민의 급격한 증가와 그에 따르는 구빈세 부담의 증대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는 곧바로 유산계급의 불만으로 이어졌고, 이를 계기로 노동자와 빈민의 생활을 그들의 자력(資力)과 시장의 자유에 방임하고자 했던 자본의 요구가 더욱 힘을 얻어 자유주의 원리가 사회 전체적으로 팽배하게 되었다. 그래서 중세 이후 빈민과 부랑자들에 대한 가혹한 형벌제도로서 존재해 오던 구빈제도는 그 단속적 성격을 유지한 채 노동능력이 있는 빈민으로부터의 노동력 창출을 위한 노동강제적 기능을 행하는 것으로 재편되는데, 이것이 바로 1834년에 제정된 이른바 신(新) 빈민법이다. 그리하여 노동능력자에 대해서는 노역장(workhouse)에의 수용과 강제노동이 부과되었으며, 그것을 거부하면 당연히 구제도 거부되었다. 이때의 빈민구제는 오직 노동 무능력자와 응급적인 상황에 국한되었다. 구제 대상자는 어디까지나 시민사회에서의 탈락자, 독립적 인격을 상실한 자, 혹은 이를 방치하면 사회불안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특수한 인간이었을 뿐, 인권과 생존권을 가진 시민으로서 간주되지는 않았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빈민에 대한 사회적 대책은 생존권 조항을 실정법 상에 등장시키는 등 진보적인 모양새와 내용을 갖추긴 했지만 여전히 통제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체제의 빈민구제와 그 본질적인 면에서 일맥상통하는 점이 남아 있다. 그래서 공공부조에 의해서 지출되는 복지급여는 시장경제의 불완전성에서 기인되는 만성적·경기적 실업과 반실업의 희생을 대가로 해서 지불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비용이요, 동시에 구조적으로 불평등한 사회체제를 기능적으로 조화된(?) 모습으로 위장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담해야 하는 정당화 비용이라는 비판이 항상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지금까지 시행된 우리나라의 생활보호제도는 현대판 구빈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치스러운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즉, 공공부조의 권리성이 법제도에 의해 엄연히 뒷받침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급부대상은 노동 무능력자를 중심으로 지극히 제한된 범위에서만 인정되었고, 기대될 수 있는 급부내용과 수준 또한 너무 빈약하고 낮아 도저히 최저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으며, 서비스 전달체계의 미비로 인한 절차상의 불공정과 관료적 병폐 등 갖가지 전근대적 요소 때문에 국민들이 가진 법률상의 권리는 형해화(形骸化)되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공공부조제도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왔던 생활보호정책에 대한 평가는, 국민 일반에 대한 생존권 보장이라는 헌법상 명구(名句)를 실현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의미를 가진다기보다는, 지난 몇 십 년에 걸쳐 일관되게 견지해온 빈민통제적 성격으로 인해, 계급(층) 편향적 경제정책이 배태한 사회적 갈등을 무마하고 역대 정권들의 정통성 부재에서 기인한 정치적 불안을 잠재화하는 유력한 정책수단이었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권은 아직도 현대 자본주의 체제하의 복지정책에 대하여 정책목표의 정당성을 제공하는 유력한 이념적 보루(堡壘)가 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 실현 정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의 정치적 지지와 체제의 도덕적 정당성 여부를 가름하는 바로미터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선진국의 경우, 사회복지체계의 일환으로서 공공부조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로서 시혜성을 배제하고 권리성을 확립하는 것이 주요한 정책과제가 되어왔다. 이 점에 대해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역사적 경험이 시사하는 바는, 자본주의 체제하의 무상 급부체계로서의 공공부조가 기반으로 하고 있는 권리성은, 그것이 실정법에 명시됨으로써 완결된 것이라기보다는, 각국의 정치·경제적 조건과 사회적 노력 정도에 따라 매우 가변적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공공부조와 복지서비스를 내용으로 한 생존권의 당위적 가치가 실현되고 있는 정도는 같은 시장체제하의 나라라고 할지라도 다양한 편차를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세기말 국회를 통과하여 새천년 첫해 10월부터 시행할 예정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생존권적 기본권을 실현해 나가는 데 기존의 생활보호제도와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부가 앞으로 구체화해 나갈 후속조치에 대해 각별히 주목하고자 한다.
사실인즉 복지의 전사(前史)시대에 해당하는 초기 자본주의 시절만 하더라도 빈곤이나 빈민의 문제는 자본과 유산계급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반영된 노동통제정책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지 국민들의 인권이나 생존권 보장에 관련된 복지의 문제는 아니었다. 19세기 영국의 경우, 산업혁명에 의한 자본주의 체제의 확립은 경제적 발전과 국부를 가져오기는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빈민의 급격한 증가와 그에 따르는 구빈세 부담의 증대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는 곧바로 유산계급의 불만으로 이어졌고, 이를 계기로 노동자와 빈민의 생활을 그들의 자력(資力)과 시장의 자유에 방임하고자 했던 자본의 요구가 더욱 힘을 얻어 자유주의 원리가 사회 전체적으로 팽배하게 되었다. 그래서 중세 이후 빈민과 부랑자들에 대한 가혹한 형벌제도로서 존재해 오던 구빈제도는 그 단속적 성격을 유지한 채 노동능력이 있는 빈민으로부터의 노동력 창출을 위한 노동강제적 기능을 행하는 것으로 재편되는데, 이것이 바로 1834년에 제정된 이른바 신(新) 빈민법이다. 그리하여 노동능력자에 대해서는 노역장(workhouse)에의 수용과 강제노동이 부과되었으며, 그것을 거부하면 당연히 구제도 거부되었다. 이때의 빈민구제는 오직 노동 무능력자와 응급적인 상황에 국한되었다. 구제 대상자는 어디까지나 시민사회에서의 탈락자, 독립적 인격을 상실한 자, 혹은 이를 방치하면 사회불안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특수한 인간이었을 뿐, 인권과 생존권을 가진 시민으로서 간주되지는 않았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빈민에 대한 사회적 대책은 생존권 조항을 실정법 상에 등장시키는 등 진보적인 모양새와 내용을 갖추긴 했지만 여전히 통제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체제의 빈민구제와 그 본질적인 면에서 일맥상통하는 점이 남아 있다. 그래서 공공부조에 의해서 지출되는 복지급여는 시장경제의 불완전성에서 기인되는 만성적·경기적 실업과 반실업의 희생을 대가로 해서 지불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비용이요, 동시에 구조적으로 불평등한 사회체제를 기능적으로 조화된(?) 모습으로 위장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담해야 하는 정당화 비용이라는 비판이 항상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지금까지 시행된 우리나라의 생활보호제도는 현대판 구빈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치스러운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즉, 공공부조의 권리성이 법제도에 의해 엄연히 뒷받침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급부대상은 노동 무능력자를 중심으로 지극히 제한된 범위에서만 인정되었고, 기대될 수 있는 급부내용과 수준 또한 너무 빈약하고 낮아 도저히 최저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으며, 서비스 전달체계의 미비로 인한 절차상의 불공정과 관료적 병폐 등 갖가지 전근대적 요소 때문에 국민들이 가진 법률상의 권리는 형해화(形骸化)되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공공부조제도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왔던 생활보호정책에 대한 평가는, 국민 일반에 대한 생존권 보장이라는 헌법상 명구(名句)를 실현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의미를 가진다기보다는, 지난 몇 십 년에 걸쳐 일관되게 견지해온 빈민통제적 성격으로 인해, 계급(층) 편향적 경제정책이 배태한 사회적 갈등을 무마하고 역대 정권들의 정통성 부재에서 기인한 정치적 불안을 잠재화하는 유력한 정책수단이었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권은 아직도 현대 자본주의 체제하의 복지정책에 대하여 정책목표의 정당성을 제공하는 유력한 이념적 보루(堡壘)가 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 실현 정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의 정치적 지지와 체제의 도덕적 정당성 여부를 가름하는 바로미터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선진국의 경우, 사회복지체계의 일환으로서 공공부조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로서 시혜성을 배제하고 권리성을 확립하는 것이 주요한 정책과제가 되어왔다. 이 점에 대해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역사적 경험이 시사하는 바는, 자본주의 체제하의 무상 급부체계로서의 공공부조가 기반으로 하고 있는 권리성은, 그것이 실정법에 명시됨으로써 완결된 것이라기보다는, 각국의 정치·경제적 조건과 사회적 노력 정도에 따라 매우 가변적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공공부조와 복지서비스를 내용으로 한 생존권의 당위적 가치가 실현되고 있는 정도는 같은 시장체제하의 나라라고 할지라도 다양한 편차를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세기말 국회를 통과하여 새천년 첫해 10월부터 시행할 예정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생존권적 기본권을 실현해 나가는 데 기존의 생활보호제도와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부가 앞으로 구체화해 나갈 후속조치에 대해 각별히 주목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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