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의 극복과 사회통합의 과제

국민의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발전을 국정철학으로 채택하여 이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은 IMF 외환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여념이 없었고, 그 결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발전의 주축이 되는 중산층이 엷어지고 서민들의 생활이 불안해졌다. 이는 급격한 경기침체에 따른 실업증가와 임금감소 때문이다. 실업자수는 1997년 56만명에서 최고점을 기록한 1999년 1/4분기에 175만명으로 급증했으며 상위 20% 소득비중을 하위 20%의 소득비중과 비교한 소득배율은 1997년 4.49에서 1999년 1/4분기에 5.85로 상승했다. 그 결과 전반적인 소득불균형을 보여주는 GINI 계수도 1997년 0.283에서 1999년 1/4분기에 0.333으로 높아져 1980년대 중반 수준으로 후퇴했다.

중산층 약화와 소득분배구조의 후퇴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안정적 발전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인이기에 이에 대한 국가적 대응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미 1998년에 10조 707억원, 1999년 9조 2,400억원의 실업대책 예산을 편성하여 실업문제에 신속하게 대응해왔다. 이와 더불어 구조조정의 성과도 서서히 나타나 최근에는 고실업과 소득분배구조의 악화 추세가 멈추고 서서히 회복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실업자는 1999년 11월 기준으로 97만명으로 줄었고 실업률은 4%대로 안정되었다. 소득배율도 1999년 2/4분기에 5.24로 1/4분기보다 개선되었고 GINI 계수도 1999년 3/4분기에 0.310으로 개선되었다.

잠정적인 평가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상태는 경제위기 이전에 비해 중산층이 약화되고 소득분배구조도 나빠진 것이 사실이나, 이는 최근 개선되고 있고 국제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업자는 줄었어도 비정규직이 급증했고 장기실업자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아울러 경제의 세계화와 정보화의 확산으로 취약계층의 일자리와 빈곤층에 대한 공공부조는 구조적인 처방없이 상황에 의존해서 긴급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생산적 복지정책의 필요성

무한경쟁의 시기이자 지식기반 경제가 지배하는 오늘날 지식이 부족하고 사회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끝없는 낙오를 경험하게 되고 이는 사회적 안정을 위협한다.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를 보완하고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권리를 보장해줄 포괄적인 사회정책이 필수적이다.

한편 시장경쟁 속에 있는 현대사회의 인간은 '일'을 통해 비로소 복지를 완성할 수 있다. 생산적 복지는 인권의 실현에서부터 출발하여, 국민에게 일을 통해 경제적인 안정과 자기개발의 길을 열어주고, 시장에서 낙오되는 이들에게는 공동체의 연대를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

사회적 시민권의 실현

생산적 복지 정책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인간으로서,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와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는 관점에서 필요성을 논할 수 있다.

복지에 대한 시민권적 관점은 시혜적 자선구제가 아닌 '권리로서의 사회복지'를 제시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이와 같은 국가의 적극적인 재분배 역할을 통해 시장으로부터 일시적으로 탈락하여 재진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재취업이 신속하게 이루어지도록 지원하며, 시장으로부터 영구히 탈락된 계층에게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한다.

인간자본의 보존과 개선

생산적 복지는 또한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의 원천인 인간자본을 보존하고 개선한다는 점에서 필요성을 가진다. 인간에게 노동이란 단지 생존수단이 아니라, 자기개발의 완성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삶의 일부를 이룬다. 따라서 생산적 복지는 노동권의 적극적 보장을 통해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사회경제적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느끼는 인간적 행복과 만족을 보장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노동을 통한 복지는 국가의 재분배정책에만 의존해온 기존 복지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장과 복지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지향하는 생산적 복지의 기초를 이룬다. 고용을 통해 시장 안에서 일차적인 공정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국가가 수많은 복지인구를 지속적으로 부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성장의 결과를 단순히 재분배하는 사회구조로는 시장실패에 의한 복지수요의 과다팽창으로 복지자원을 지속적으로 재창출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권과 함께 시장의 공정분배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사회적 연대의 회복

마지막으로 생산적 복지의 필요성은 사회적 연대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사회적 연대란 취약계층에 대한 공동체의 지원과 보호를 뒷받침하는 사회구성 원리로서 역사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되어 왔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향약, 두레, 구휼 등 사회적 연대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왔다.

생산적 복지가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복지모형은 '자립'과 함께 '상호연대'의 원칙이 조화를 이루는 체계이며, 이는 사회공동체의 다양한 가치를 활용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따라서 생산적 복지의 최종적 완성은 사회적 연대를 토대로 가능하며 이는 근대화 과정에서 약화된 공동체적 유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복지의 모든 영역을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중앙집권형 복지체계를 지역공동체 중심으로 분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단위의 복지체계는 무엇보다 복지수혜자들의 자활과 자립에 기여함으로써, 이들이 수혜를 받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에서 벗어나 지역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의미있는 일에 적극 참여하는 능동적 주민으로 변화될 수 있다. 이처럼 생산적 복지가 지향하는 사회는 물질적 생존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소외의 극복을 통해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생산적 복지정책의 추진방향

균형적 복지의 추진

생산적 복지의 기본원리는 균형적 복지의 실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복지의 실현이 최소의 의미로는 생존권의 보장이고 가장 적극적인 의미로는 행복한 생활을 실현하는 것이라면 생산적 복지는 이 모든 목표를 포괄하면서 균형있게 추진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이다. 20세기 복지국가의 발전과 한계를 볼 때 국가의 재정확대와 소득재분배에 의존하는 국가복지 일변도의 정책은 한계가 있다. 이는 국가, 시장, 시민사회가 복지의 중요기능을 균형있게 담당하는 균형복지에 의해 극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장과 시민사회의 역할을 강조한다고 해서 이것이 국가의 복지역할 축소를 의미하지 않는다. 국가는 모든 국민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호하는 역할과 삶의 질에 바탕이 되는 제도를 개선하고 구축하는 책임을 가지며, 이는 조세와 재정 등의 정책을 통한 재분배정책의 확립을 근간으로 한다.

반면에 시장은 이전의 기업복지처럼 단지 국가가 보장하지 못하는 기본생활을 종업원이기에 시혜를 베푼다는 차원이 아니라 상품과 서비스의 창출에 참여하고 기여한 결과로 나타나는 이익을 공정하게 나눈다는 보상적 차원에서 분배정의를 확립해야 한다.

한편 시민사회의 역할은 재분배와 분배를 통한 복지가 실제로 국민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사회적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의사결정 과정과 전달체계상에 적극적인 감시와 참여를 하는데 있고, 그 당위성은 단지 돈만으로 복지사회가 달성될 수 없다는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균형적 복지의 필요성은 또한 국민계층간의 다양한 복지 욕구를 균형있게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빈곤에 처한 국민들은 생계를 보호받아야 하고, 빈곤가구의 자녀들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충족되어야 하며, 일자리가 없는 실업자에게는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 빈곤하지는 않지만 노령, 질병, 실업, 재해 등의 위험에 대해 걱정하는 국민들에게는 사회보험의 혜택이 골고루 전달되어야 하고, 문화와 환경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프라가 확충되어야 한다. 따라서 복지는 단지 일부 계층에 대한 시혜적 복지가 아니라 모든 국민의 삶의 질을 균형있게 보장하는 제도가 되어야 한다.

인권적 복지의 추진

생산적 복지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인간의 기본권을 실현하는 데 목적이 있다. 기본권은 무엇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소극적 의미의 권리가 아니라 무엇을 누릴 수 있는 적극적 의미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전의 복지가 소득의 이전에 따라 가난을 면하게 해주는 소극적 복지였다면, 생산적 복지는 인간다운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삶의 공정한 기회를 이전해 주는 인간개발 중심의 복지이다. 일자리 창출, 교육훈련, 자활지원 등 사회구성원으로서 정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계층, 연령, 성별, 신체적 능력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모든 복지정책의 내용은 수혜자가 인간적 존엄성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하고 의존이 아닌 자활, 자립, 자존의 가치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실시하는 데 자활연계를 강조하는 것이나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적 존엄성을 찾으며 같이 생활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지 국가재정지출을 축소하려는 의도가 앞서기 때문은 아니다. 적정 복지투자를 유지하면서 그 효과는 최대화할 수 있는 복지야말로 가장 좋은 복지이며 이는 복지의 내용이 관료제적 제도중심이 아니라 수혜자 측면에서 인간 중심적인 서비스로 채워질 때 가능하다.

투자적 복지의 추진

복지는 사람과 제도에 대한 사회적 투자이다. 국민들의 생활을 보장하는 것은 경제성장의 열매를 축내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의 궁극적 목적이다. 다만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투자적 복지를 확대해 국민들이 생활하는 데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축소하고 시장경제 참여의 기반을 확대해 복지와 시장, 성장과 분배 간의 호순환적 연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빈곤층의 교육기회 확충에 집중하고 기업들이 제공하는 근로자 복지를 소비지원이 아니라 자산축적 형태로 바꾸어가며, 시장경제가 소홀히 하는 교육, 환경, 문화, 보건 등의 사회적 인프라를 확대해 모든 국민이 실질적으로 풍요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모하는 적극적 노력이 분배와 재분배 정책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동시에 이러한 투자적 복지는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층인 여성, 노인, 장애인, 영세상인 및 근로자들을 위해 강화되어야 한다. 이들 계층의 삶의 질은 더 이상 가족의 책임이나 시장원리에 내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의 적극적 정책대상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장원 / 대통령비서실 삶의질향상기획단 정책팀장
2000/02/10 00:00 2000/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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