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패러다임과 새로운 수사학
월간 복지동향/2000 :
2000/02/10 00:00
김대중 정부가 1999년 3·1절 경축식에서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으로 거듭날 것을 천명하고, 6월 현충일 기념사에서 국정운영 철학의 두 축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생산적 복지'를 첨가한 이래, 생산적 복지는 일종의 국정지표 수준의 국가적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이후 8·15 경축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생산적 복지사회 건설' 구상을 내놓았고, 그뒤 정부여당이 후속대책으로 세제개혁위원회, 신고용창출위원회, 적극노동시장위원회, 국민최저생활추진위원회 등 4개 정책위원회 설치 방침을 밝혔으며, 이러한 흐름은 2000년 신년사를 통해 더욱 강조된 바 있다.
생산적 복지는 새로이 등장한 용어가 아니다. 이미 김영삼 정부 시절 경제, 정치 영역에서의 문민개혁정책이 노동, 복지분야로 확산되면서 '신복지구상'이라는 이름 아래 경제성장과 복지의 조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생산적·예방적 복지가 주창된 바 있다. 그러나 신복지구상은 비슷한 시기에 제시되었던 신노사관계구상이 노동법 개악 파동으로 파탄에 이르고, 경제위기가 도래하면서 현실화되지 못하고 유실되었다. 지금 시기 생산적 복지의 문제가 다시금 국가정책적으로 대두된 근저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현 집권세력의 위기극복 전략과 깊이 연관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한국사회는 IMF 이후 경제재건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지표는 소득분배의 악화, 만성적 고실업 구조의 등장, 노사관계의 불안정, 빈곤인구의 급속한 증가, 소득계층간 사회적 양극화 등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산층이 붕괴되고 서민들 삶의 파탄 위기가 심화되고 있으며, 사회적 취약계층들이 정상적인 사회복귀의 비전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IMF라는 자본의 위기상황에서 고통분담이라는 이름으로 실질적으로는 노동자, 민중에게 고통을 전가해온 방식, 예컨대 정리해고와 노동강도 강화, 임금삭감으로 대표할 수 있는 구조조정의 흐름으로는 더 이상 민중의 불만을 잠재울 수 없다는 판단이 우세해지면서, 2000년 4월 총선을 앞둔 현 정권이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로 생산적 복지라는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새천년을 맞아 '생산적 복지'의 이름 아래 제시되고 있는 정책은 정보화 사회에 걸맞은 지식기반 산업의 육성과 함께 '생산적 복지사회'의 신기원을 이룰 것인가. 이 글에서는 일단 정부와 관변기관을 통해 제시된 '생산적 복지' 정책에 대해 살펴본 후, 그 성격과 한계를 그것의 뿌리가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제 3 의 길 등의 사조와 관련하여 분석하기로 한다.
지난 8·15 경축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생산적 복지'란 저소득층에게 시혜보다는 일할 능력을 키워주어 사회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경축사에서 이야기된 생산적 복지체제의 내용을 보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해 노인·장애인·아동 등 특수한 인구집단에 제한되어 제공되던 생활보호제도를 저소득층 일반에 확대하는 것과 함께, 평생교육체제, 직업훈련기관을 확충하여 교육훈련과 복지를 연계시키겠다는 점이 특징이다.
복지제도를 확대하되 복지를 노동과 연계시키는 기조는 이후 김대중 정부의 복지철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신년사를 통해 새천년은 무한한 경쟁, 지식의 시대임을 강조하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빈곤층을 보호하고, 인간개발 중심의 생산적 복지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펴나갈 것을 다시금 약속하였다. '생산적 복지' 국정이념은 '민주주의', '시장경제'와 더불어 올해도 사회통합 정책으로 기능할 것이다. 요컨대 새로운 '한국적 복지모델'의 수준에서 제기되고 있는 생산적 복지는 크게 노동연계복지와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특히 생산적 복지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바로 노동연계복지, 즉 일과 복지를 연계하고자 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생산적 복지가 제기된 작년 8월 이후 실제로 진행된 과정을 보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었을 뿐 의료보험 통합을 위시한 일련의 복지개혁 정책이 후퇴하면서 생산적 복지가 매우 협소한 정책이 되었다. 실제로 2000년 예산을 보면, 총예산이 93조원으로 전년대비 4.5%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1999년에 2조 5천억원이던 노동부의 공공근로예산이 절반으로 줄고, 직업훈련비가 14% 감축되는 등 실업예산이 대책없이 줄었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시행을 앞두고도 생활보호대상자 수를 예년보다 적은 153만 9천명으로 책정하였다. 또 보건복지부의 예산은 4조 7,534억원으로 전년대비 7.0% 증가하였다고는 하나, 생산적 복지의 후속조치에 책정된 예산은 실제 필요한 예산 4,670억원에서 4,099억원이 부족한 626억원만 반영되었다. 결국 생산적 복지는 사실상 생산성의 이름 아래 복지를 가능한 한 확대하지 않겠다는 정책이 되고 있는 것이다.
생산적 복지가 일종의 국정지표 수준에서 거창하게 제기되었으며, 복지제도를 확장하는 한편 노동, 교육과 연계시키겠다는 서로 상충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 현실에서는 말만큼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결과적으로 생산적 복지에 대한 매우 혼란스런 평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생산적 복지와 같은 복지친화적 담론이 형성되고 있음은 국민복지 기본선 보장에 청신호'지만 '자원기득권 옹호자들의 집단적·제도적 방어벽과 복지개혁을 추동할 만한 정부부처내의 튼튼한 추진세력 및 사령탑이 부재하며, 복지개혁을 구현하는 데 긴요한 정부내 행정시스템이 미비하고, 복지개혁과 관련된 집단들의 이기주의 발흥, 복지개혁 운동세력의 연대약화 등은 상당한 걸림돌'이라는 평가를 비롯하여, 생산적 복지는 상당히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구체성과 실천 가능성만이 문제라는 견해, 생산적 복지는 경제성장과 복지의 관계에서 경제성장을 우선하는 사고에 기초하여 복지를 노동과 연계하는 '노동을 위한 복지'(welfare to work)를 핵심으로 하고 있으며 유럽이 근로연계복지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1980년대 이후 저소득자의 급여만 감축되거나 사회불평등 정도가 증가되는 결과를 가져온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에서 생산적 복지를 주장하는 것은 복지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견해까지 다양하다.
서로 상이한 입장들은 대체로 최저선의 관점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을 중심으로 사회복지를 보고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복지의 확대에 기여할 것인가의 여부를 기준으로 '생산적 복지'의 긍정성을 판단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문제는 좀더 근본적이다. 우리는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실업대책을 놓고 고용창출이냐 사회적 안전망이냐 하는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 현실에서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고용창출론자들의 주장대로 대규모의 정리해고가 진행되는 한편 사회적 안전망론자의 주장대로 외형적인 복지제도를 확대함으로써 양자가 상호보완적으로 진행되었던 것을 보았다. 결과적으로는 복지제도가 형식적으로는 확대되었지만 노동자 민중이 경제위기의 부담을 감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생산적 복지에서도 생산성이냐 복지이냐의 문제라기보다 누구를 위한 생산성인지, 어떠한 내용의 복지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생산적 복지'는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복지(workfare)의 의미가 강하다. 새로운 복지패러다임으로서 '생산적 복지'는 경제와 복지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이 두 체계가 상호 상승작용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통합적 사고에 기초한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공적 부조를 실업문제 해결 및 지식기반 산업화에 필요한 노동인력 공급과 연결시키는 영국의 '제 3 의 길'-일로 통하는 복지(welfare to work)와 같은 맥락에서 함께 이해될 수 있다. 실제로 생산적 복지 옹호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이 제 3 의 길의 비판적 수용을 통해 발전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즉, 모순적일 수도 있는 가치를 조화시켜 그 힘으로 더불어 사는 활력있는 사회를 건설하고, 그동안 한국사회를 짓눌러왔던 좌우 이념대립과 지역갈등을 넘어 대타협을 통한 공존의 사회를 건설하는 한국식 제 3 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산적 복지'의 이념적 모티브인 '제 3 의 길'은 공존의 사회를 열어나갈 새로운 대안인가?
영국 노동당 토니 블레어의 정치이념인 '제 3 의 길'은 구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뛰어넘고자 하는 시도에서 나왔다. '제 3 의 길'은 지난 20여년간 자본운동의 범세계화를 가속시켜온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한다. 그러나 '제 3 의 길'은 지난 20∼30년에 걸쳐 근본적으로 변한 세계에 사회민주주의를 적응시키고자 하는 사고와 정책의 틀을 가리키는 것으로, 신자유주의시대의 자유경쟁체제를 인정하고 더이상 이전의 구사회민주주의로의 회귀도 불가능한 것으로 규정한다. 이것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신자유주의가 사회복지제도의 전통적인 개념들을 벗어나 좀더 시장친화적인 개인책임과 노동기회의 조화를 주장함으로써 복지에 자본의 논리를 관철시키는 것과 같다. 이러한 점은 제 3 의 길에서 이야기하는 노동과 복지의 연계, 즉 일하도록 유도하는 복지로 나타난다. 강화되는 자본의 지구화 경향 속에서 적극적으로 자본의 논리, 즉 경제적 논리를 복지에까지 확대하는 시도인 것이다. '일로 통하는 복지정책'을 통해 노동인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수준이하의 근로조건을 감수하면서 '일'하도록 강제함으로써 '부의 창조에 순기능'하는 체제를 성립하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서구 각국에서 2차대전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된 복지국가는 1980년대 이래 경제위기와 함께 등장한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적 공세에 의해 해체의 위기에 직면한다. 그러나 악화되는 노동조건 및 생활조건은 노동자 민중투쟁을 불러일으켰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복지를 삭감함으로써 축적위기를 모면하려 시도하듯이, 제3의 길 노선에서는 마치 노동에 문제가 있어 위기가 생긴 것처럼, 쓸모없는 노동을 교육시켜 자본에 유용한 노동으로 바꿈으로써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 복지삭감, 효율성, 자본의 지구적 경쟁 등에 기본적으로 동조하면서, 노동과 복지의 연계 속에 평생교육, 직업훈련 등 사회적 투자의 맥락에서 복지를 간주하고 있는 제 3 의 길 노선은 신자유주의에 투항한 '노동의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이다. 그들 스스로의 입을 빌면 '신자유주의자들이 하려는 것을 노동이 더 잘하려는 것'이다. 자본에 내재적인 모순의 결과 도래한 경제위기를 마치 지나친 복지에, 또는 쓸모없는 노동에 원인이 있는 것처럼 은폐하는 것이다.
서구 '제 3 의 길'의 한국적 표현으로 제시되고 있는 생산적 복지론은 제 3 의 길 노선의 원초적인 한계를 반복하는 것에 더해, 우리나라에 적용되면서 또 다른 의미를 획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복지의 과잉'이나, 비효율적인 복지확대를 도모하는 구식의 '좌파정치'의 부재로 인해 다른 결과를 빚어내는 것이다. 이는 마치 과거 김영삼 정권 시기와 그 이후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군살도 없는데 군살빼기 정책을 기조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무분별하게 도입됨으로써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제 2 의 길 또는 비생산적(?) 복지가 부재한 상태에서 제 3 의 길이나 '생산적' 복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상 복지를 가능한 한 안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심지어 일부에서 우려하듯이 경제위기의 도래로 어쩔 수 없이 확대해야 했던 사회적 안전망을 생산성의 이름 아래 최소치만 남겨두고 거두어들이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제 3 의 길, 생산적 복지 등이 서구나 우리나라에서 구체적으로 야기하는 문제점들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즉, '생산적'인 것이란 무엇이며, '복지'란 또 무엇인지,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적'인 것과 '복지'가 양립할 수 있는지의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생산적 복지'가 갖는 논리적, 이데올로기적 허구성을 밝혀내는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다.
애초에 생산적이라는 의미는 인간이 자연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즉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통해 사용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생산적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인구는 장애인, 아동, 노인 등 노동 능력이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단순한 가치생산이 아니라 잉여가치(이윤)의 생산이 특징이며, 이제 생산적이라는 것은 바로 이윤을 생산한다는 의미에서 생산적인 것이다. 이윤을 만들어내지 않는 노동은 비생산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자본주의적인 의미에서 이윤을 생산하면 생산적이고, 이와 관련없으면 비생산적이라는 논리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확대되면서 자본의 투하자본 중에서 가변자본부분의 비율이 불변자본부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되고, 자본 고용능력의 상대적 감축으로 이어져 상대적 과잉인구를 형성하게 된다. 이것은 좀더 구체적인 산업순환을 통해 나타나는데, 주기적으로 공황이 발생하며, 해고되거나 극빈상태로 떨어지게 되는 실업노동자군이 형성되고, 실업노동자군의 누적은 자본축적의 확대재생산을 가져오는 물적 토대로서 추가노동력을 공급하는 산업예비군을 낳는다. 이것은 자본운동의 속성이며, 이러한 과잉인구는 값싼 노동력의 확보를 통해 이윤확대를 가져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생존조건이 된다. 생산에 참여하지 못하는 잉여인구는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자본에 내재적인 모순의 결과이고, 자본운동의 사이클과 축적조건의 변화에 달려 있는 것이지, 노동이 생산적인지 아닌지와 상관이 없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생산적'이라는 것은 위의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경우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성은 상부상조와 사회적 필요의 충족을 원칙으로 하는 복지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생산적이지 않은 부분은 길거리에 내다버리든지 가스실로 보내지 않으려면 최저생활보장을 해주어야 하며, 상대적 과잉인구의 경우 역시 연명하도록 최저생활보장을 해주는 한편 조건의 변화에 맞추어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훈련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직접적으로 이윤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생산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사실 자본의 축적 조건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노동에 의하여 이루어진 '생산'이 그 자체로서 생산적일 수 있을 때, 생산의 목적이 잉여가치의 생산이기를 중단할 때, '복지'의 원칙인 사회구성원의 사회적인 필요(need)를 충족시키는 원칙은 생산의 원칙과 충돌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진정한 '생산적 복지'의 실현은 자본관계의 지양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 이 글은 '민중건강회의 2000' 심포지움을 위해 민중복지 준비팀에서 공동작업한 글에서 발췌하였다. 글의 작성에는 김현미, 남구현, 배영희, 윤소정, 한진 등이 참여하였다.
생산적 복지는 새로이 등장한 용어가 아니다. 이미 김영삼 정부 시절 경제, 정치 영역에서의 문민개혁정책이 노동, 복지분야로 확산되면서 '신복지구상'이라는 이름 아래 경제성장과 복지의 조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생산적·예방적 복지가 주창된 바 있다. 그러나 신복지구상은 비슷한 시기에 제시되었던 신노사관계구상이 노동법 개악 파동으로 파탄에 이르고, 경제위기가 도래하면서 현실화되지 못하고 유실되었다. 지금 시기 생산적 복지의 문제가 다시금 국가정책적으로 대두된 근저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현 집권세력의 위기극복 전략과 깊이 연관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한국사회는 IMF 이후 경제재건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지표는 소득분배의 악화, 만성적 고실업 구조의 등장, 노사관계의 불안정, 빈곤인구의 급속한 증가, 소득계층간 사회적 양극화 등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산층이 붕괴되고 서민들 삶의 파탄 위기가 심화되고 있으며, 사회적 취약계층들이 정상적인 사회복귀의 비전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IMF라는 자본의 위기상황에서 고통분담이라는 이름으로 실질적으로는 노동자, 민중에게 고통을 전가해온 방식, 예컨대 정리해고와 노동강도 강화, 임금삭감으로 대표할 수 있는 구조조정의 흐름으로는 더 이상 민중의 불만을 잠재울 수 없다는 판단이 우세해지면서, 2000년 4월 총선을 앞둔 현 정권이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로 생산적 복지라는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새천년을 맞아 '생산적 복지'의 이름 아래 제시되고 있는 정책은 정보화 사회에 걸맞은 지식기반 산업의 육성과 함께 '생산적 복지사회'의 신기원을 이룰 것인가. 이 글에서는 일단 정부와 관변기관을 통해 제시된 '생산적 복지' 정책에 대해 살펴본 후, 그 성격과 한계를 그것의 뿌리가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제 3 의 길 등의 사조와 관련하여 분석하기로 한다.
지난 8·15 경축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생산적 복지'란 저소득층에게 시혜보다는 일할 능력을 키워주어 사회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경축사에서 이야기된 생산적 복지체제의 내용을 보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해 노인·장애인·아동 등 특수한 인구집단에 제한되어 제공되던 생활보호제도를 저소득층 일반에 확대하는 것과 함께, 평생교육체제, 직업훈련기관을 확충하여 교육훈련과 복지를 연계시키겠다는 점이 특징이다.
복지제도를 확대하되 복지를 노동과 연계시키는 기조는 이후 김대중 정부의 복지철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신년사를 통해 새천년은 무한한 경쟁, 지식의 시대임을 강조하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빈곤층을 보호하고, 인간개발 중심의 생산적 복지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펴나갈 것을 다시금 약속하였다. '생산적 복지' 국정이념은 '민주주의', '시장경제'와 더불어 올해도 사회통합 정책으로 기능할 것이다. 요컨대 새로운 '한국적 복지모델'의 수준에서 제기되고 있는 생산적 복지는 크게 노동연계복지와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특히 생산적 복지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바로 노동연계복지, 즉 일과 복지를 연계하고자 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생산적 복지가 제기된 작년 8월 이후 실제로 진행된 과정을 보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었을 뿐 의료보험 통합을 위시한 일련의 복지개혁 정책이 후퇴하면서 생산적 복지가 매우 협소한 정책이 되었다. 실제로 2000년 예산을 보면, 총예산이 93조원으로 전년대비 4.5%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1999년에 2조 5천억원이던 노동부의 공공근로예산이 절반으로 줄고, 직업훈련비가 14% 감축되는 등 실업예산이 대책없이 줄었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시행을 앞두고도 생활보호대상자 수를 예년보다 적은 153만 9천명으로 책정하였다. 또 보건복지부의 예산은 4조 7,534억원으로 전년대비 7.0% 증가하였다고는 하나, 생산적 복지의 후속조치에 책정된 예산은 실제 필요한 예산 4,670억원에서 4,099억원이 부족한 626억원만 반영되었다. 결국 생산적 복지는 사실상 생산성의 이름 아래 복지를 가능한 한 확대하지 않겠다는 정책이 되고 있는 것이다.
생산적 복지가 일종의 국정지표 수준에서 거창하게 제기되었으며, 복지제도를 확장하는 한편 노동, 교육과 연계시키겠다는 서로 상충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 현실에서는 말만큼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결과적으로 생산적 복지에 대한 매우 혼란스런 평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생산적 복지와 같은 복지친화적 담론이 형성되고 있음은 국민복지 기본선 보장에 청신호'지만 '자원기득권 옹호자들의 집단적·제도적 방어벽과 복지개혁을 추동할 만한 정부부처내의 튼튼한 추진세력 및 사령탑이 부재하며, 복지개혁을 구현하는 데 긴요한 정부내 행정시스템이 미비하고, 복지개혁과 관련된 집단들의 이기주의 발흥, 복지개혁 운동세력의 연대약화 등은 상당한 걸림돌'이라는 평가를 비롯하여, 생산적 복지는 상당히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구체성과 실천 가능성만이 문제라는 견해, 생산적 복지는 경제성장과 복지의 관계에서 경제성장을 우선하는 사고에 기초하여 복지를 노동과 연계하는 '노동을 위한 복지'(welfare to work)를 핵심으로 하고 있으며 유럽이 근로연계복지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1980년대 이후 저소득자의 급여만 감축되거나 사회불평등 정도가 증가되는 결과를 가져온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에서 생산적 복지를 주장하는 것은 복지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견해까지 다양하다.
서로 상이한 입장들은 대체로 최저선의 관점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을 중심으로 사회복지를 보고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복지의 확대에 기여할 것인가의 여부를 기준으로 '생산적 복지'의 긍정성을 판단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문제는 좀더 근본적이다. 우리는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실업대책을 놓고 고용창출이냐 사회적 안전망이냐 하는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 현실에서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고용창출론자들의 주장대로 대규모의 정리해고가 진행되는 한편 사회적 안전망론자의 주장대로 외형적인 복지제도를 확대함으로써 양자가 상호보완적으로 진행되었던 것을 보았다. 결과적으로는 복지제도가 형식적으로는 확대되었지만 노동자 민중이 경제위기의 부담을 감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생산적 복지에서도 생산성이냐 복지이냐의 문제라기보다 누구를 위한 생산성인지, 어떠한 내용의 복지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생산적 복지'는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복지(workfare)의 의미가 강하다. 새로운 복지패러다임으로서 '생산적 복지'는 경제와 복지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이 두 체계가 상호 상승작용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통합적 사고에 기초한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공적 부조를 실업문제 해결 및 지식기반 산업화에 필요한 노동인력 공급과 연결시키는 영국의 '제 3 의 길'-일로 통하는 복지(welfare to work)와 같은 맥락에서 함께 이해될 수 있다. 실제로 생산적 복지 옹호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이 제 3 의 길의 비판적 수용을 통해 발전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즉, 모순적일 수도 있는 가치를 조화시켜 그 힘으로 더불어 사는 활력있는 사회를 건설하고, 그동안 한국사회를 짓눌러왔던 좌우 이념대립과 지역갈등을 넘어 대타협을 통한 공존의 사회를 건설하는 한국식 제 3 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산적 복지'의 이념적 모티브인 '제 3 의 길'은 공존의 사회를 열어나갈 새로운 대안인가?
영국 노동당 토니 블레어의 정치이념인 '제 3 의 길'은 구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뛰어넘고자 하는 시도에서 나왔다. '제 3 의 길'은 지난 20여년간 자본운동의 범세계화를 가속시켜온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한다. 그러나 '제 3 의 길'은 지난 20∼30년에 걸쳐 근본적으로 변한 세계에 사회민주주의를 적응시키고자 하는 사고와 정책의 틀을 가리키는 것으로, 신자유주의시대의 자유경쟁체제를 인정하고 더이상 이전의 구사회민주주의로의 회귀도 불가능한 것으로 규정한다. 이것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신자유주의가 사회복지제도의 전통적인 개념들을 벗어나 좀더 시장친화적인 개인책임과 노동기회의 조화를 주장함으로써 복지에 자본의 논리를 관철시키는 것과 같다. 이러한 점은 제 3 의 길에서 이야기하는 노동과 복지의 연계, 즉 일하도록 유도하는 복지로 나타난다. 강화되는 자본의 지구화 경향 속에서 적극적으로 자본의 논리, 즉 경제적 논리를 복지에까지 확대하는 시도인 것이다. '일로 통하는 복지정책'을 통해 노동인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수준이하의 근로조건을 감수하면서 '일'하도록 강제함으로써 '부의 창조에 순기능'하는 체제를 성립하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서구 각국에서 2차대전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된 복지국가는 1980년대 이래 경제위기와 함께 등장한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적 공세에 의해 해체의 위기에 직면한다. 그러나 악화되는 노동조건 및 생활조건은 노동자 민중투쟁을 불러일으켰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복지를 삭감함으로써 축적위기를 모면하려 시도하듯이, 제3의 길 노선에서는 마치 노동에 문제가 있어 위기가 생긴 것처럼, 쓸모없는 노동을 교육시켜 자본에 유용한 노동으로 바꿈으로써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 복지삭감, 효율성, 자본의 지구적 경쟁 등에 기본적으로 동조하면서, 노동과 복지의 연계 속에 평생교육, 직업훈련 등 사회적 투자의 맥락에서 복지를 간주하고 있는 제 3 의 길 노선은 신자유주의에 투항한 '노동의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이다. 그들 스스로의 입을 빌면 '신자유주의자들이 하려는 것을 노동이 더 잘하려는 것'이다. 자본에 내재적인 모순의 결과 도래한 경제위기를 마치 지나친 복지에, 또는 쓸모없는 노동에 원인이 있는 것처럼 은폐하는 것이다.
서구 '제 3 의 길'의 한국적 표현으로 제시되고 있는 생산적 복지론은 제 3 의 길 노선의 원초적인 한계를 반복하는 것에 더해, 우리나라에 적용되면서 또 다른 의미를 획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복지의 과잉'이나, 비효율적인 복지확대를 도모하는 구식의 '좌파정치'의 부재로 인해 다른 결과를 빚어내는 것이다. 이는 마치 과거 김영삼 정권 시기와 그 이후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군살도 없는데 군살빼기 정책을 기조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무분별하게 도입됨으로써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제 2 의 길 또는 비생산적(?) 복지가 부재한 상태에서 제 3 의 길이나 '생산적' 복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상 복지를 가능한 한 안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심지어 일부에서 우려하듯이 경제위기의 도래로 어쩔 수 없이 확대해야 했던 사회적 안전망을 생산성의 이름 아래 최소치만 남겨두고 거두어들이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제 3 의 길, 생산적 복지 등이 서구나 우리나라에서 구체적으로 야기하는 문제점들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즉, '생산적'인 것이란 무엇이며, '복지'란 또 무엇인지,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적'인 것과 '복지'가 양립할 수 있는지의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생산적 복지'가 갖는 논리적, 이데올로기적 허구성을 밝혀내는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다.
애초에 생산적이라는 의미는 인간이 자연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즉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통해 사용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생산적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인구는 장애인, 아동, 노인 등 노동 능력이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단순한 가치생산이 아니라 잉여가치(이윤)의 생산이 특징이며, 이제 생산적이라는 것은 바로 이윤을 생산한다는 의미에서 생산적인 것이다. 이윤을 만들어내지 않는 노동은 비생산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자본주의적인 의미에서 이윤을 생산하면 생산적이고, 이와 관련없으면 비생산적이라는 논리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확대되면서 자본의 투하자본 중에서 가변자본부분의 비율이 불변자본부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되고, 자본 고용능력의 상대적 감축으로 이어져 상대적 과잉인구를 형성하게 된다. 이것은 좀더 구체적인 산업순환을 통해 나타나는데, 주기적으로 공황이 발생하며, 해고되거나 극빈상태로 떨어지게 되는 실업노동자군이 형성되고, 실업노동자군의 누적은 자본축적의 확대재생산을 가져오는 물적 토대로서 추가노동력을 공급하는 산업예비군을 낳는다. 이것은 자본운동의 속성이며, 이러한 과잉인구는 값싼 노동력의 확보를 통해 이윤확대를 가져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생존조건이 된다. 생산에 참여하지 못하는 잉여인구는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자본에 내재적인 모순의 결과이고, 자본운동의 사이클과 축적조건의 변화에 달려 있는 것이지, 노동이 생산적인지 아닌지와 상관이 없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생산적'이라는 것은 위의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경우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성은 상부상조와 사회적 필요의 충족을 원칙으로 하는 복지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생산적이지 않은 부분은 길거리에 내다버리든지 가스실로 보내지 않으려면 최저생활보장을 해주어야 하며, 상대적 과잉인구의 경우 역시 연명하도록 최저생활보장을 해주는 한편 조건의 변화에 맞추어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훈련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직접적으로 이윤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생산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사실 자본의 축적 조건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노동에 의하여 이루어진 '생산'이 그 자체로서 생산적일 수 있을 때, 생산의 목적이 잉여가치의 생산이기를 중단할 때, '복지'의 원칙인 사회구성원의 사회적인 필요(need)를 충족시키는 원칙은 생산의 원칙과 충돌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진정한 '생산적 복지'의 실현은 자본관계의 지양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 이 글은 '민중건강회의 2000' 심포지움을 위해 민중복지 준비팀에서 공동작업한 글에서 발췌하였다. 글의 작성에는 김현미, 남구현, 배영희, 윤소정, 한진 등이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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