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폐기 책임자 누구인지 밝혀져야



복지부가 360억 원을 날렸다. 삼성SDS와 의약품유통종합정보시스템(이하 ‘정보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하자고 계약을 맺어놓고, 시스템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삼성SDS가 입은 피해를 배상해야 한단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한숨이 절로 난다. 360억 원이라면 4만2천 명의 장애인에게 월 7만원씩 주고도 남고 올 한 해 자활후견기관 운영비 총액보다도 많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돈 때문에 발을 동동 굴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낸 피 같은 세금을 날려?’ 보다는 이 돈으로 할 수 있었을 일들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할 것 같다. 문제는 이 돈을 날린 과정이 참으로 어이가 없는데다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시작해 보자. 1998년에 보험 약가가 부풀려져 있고, 의약품 유통 구조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제기가 정부 안팎에서 일어났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참여연대도 일조하였는데, 양심적인 의료인들의 도움으로 병의원에 납품되는 약품의 가격이 얼마나 부풀려져 있는지 폭로하고 이로 인한 보험재정 손실이 1조 2천억 원 이상이라고 추정하면서 약가개혁 논의에 불을 지폈다. 약가개혁 문제는 의약분업의 전초전이었고, 결국 ‘약’은 90년대 말미 우리 사회를 뒤흔든 주인공이었다.

1998년 복지부는 ‘의약품 유통개혁 방안’을 만들어 제약 산업을 구조조정하고 투명한 의약품 유통을 위해 의약품 물류협동조합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고, 이를 뒷받침하는 문제의 정보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거래 투명화를 통해 약품 거래를 통한 음성적 수입을 양성화하겠다는 것으로 정보시스템이 잘 가동되면 당시 수천억 원의 보험재정이 절감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개혁 추진을 위해 ‘의약품 유통기획단’을 구성하였고, 관련 법규를 1999년 말 까지 개정, 완료하고 정보시스템 구축을 2000년까지 마무리, 2001년부터 시행하겠다는 일련의 계획을 발표하였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병의원과 제약회사들이 이러한 방안에 당연히 반대하였지만, 국민들이 개혁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법규 확정 전에 삼성SDS와 협약 체결

문제는 2000년 3월 27일 삼성SDS와 보건복지부가 정보시스템 실시협약을 맺는 데에서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1999년 2월 제정된 국민건강보험법에 건강보험공단이 제약회사에 직접 약품 대금을 지급할 수 있는 규정이 신설되었다. 병의원이 제약회사와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공단이 제약회사에 약품 대금을 직접 지불하는 직불제 규정이 이 시스템 운영의 핵심적인 법률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직불제를 세부적으로 규정하는 복지부령인 ‘요양급여 약제비 지급규칙’은 법 개정이 있은 지 한참이 지난 2000년 12월에 입법 예고되어 다음 해 7월 21일 제정된다. 게다가 지급규칙에는 직불제가 강제규정이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으로 반영되어 정보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고 과거와 같이 병의원과 제약회사가 거래하여도 무방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삼성SDS는 시스템의 운영비를 이 정보시스템을 이용하는 약품 거래 금액의 0.5%로 받는 것을 계약했고, 약제 급여 총액이 최근 6조원에 이르니 연간 200~300억원 가량의 보험재정이 지출되는 큰 계약이었다. 연간 수백억 원의 보험재정이 지출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관련 법령의 근거가 확정되기도 전에 무리하게 계약을 체결한 것이 첫 번째 문제였고, 둘째로 정보시스템 이용이 강제가 아닌 선택사항이 되어 버려 이러한 시스템을 반대해 온 병의원이 이를 이용할 리 없게 된 것이 문제였다. 선택적 직불제 규정으로 정보시스템을 통한 거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삼성SDS가 받게 될 수수료가 푼돈이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유통개혁 포기로 정보시스템은 쓰레기통으로

복지부는 선택적 직불제가 초래할 후과를 몰랐을까? 삼성SDS는 이런 상황이 초래될 것을 마치 예견이라도 했던 것처럼 복지부와의 실시협약에 문제될 사항을 조목조목 못 박아 두었다. 정부가 정보시스템을 이용한 거래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시스템 운영 개시 2개월 전까지 제도 시행방안을 마련하고(실시협약 제7조 제1항), 관련 법령의 제정ㆍ개폐와 정부의 조치로 협약의 변경이나 수정 또는 제한 적용이 필요한 경우, 이를 정부의 귀책사유로 보고(제39조 제3항), 법령의 개정이나 방침의 변경, 정부 지원 사항의 지연 등의 사유가 발생한 경우 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으며(제26조), 정부 지원의 지연 등으로 입은 손해에 대한 책임을 정부가 보증하고, 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명기하였던 것이다(제43조 제2항). 실시협약에 따라 삼성SDS는 정보시스템이 가동이 안 되니 복지부가 이를 사들이라고 요구했으나, 복지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자 곧바로 소송에 들어갔고, 올 6월 20일에야 배상이 확정되었지만 이 소송은 초기부터 정부가 질 것이라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실시협약 내용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 복지부 스스로 직불제를 선택사항으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제도 시행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이 있었지만, 이는 시종일관한 것으로 정보시스템 도입 과정에 툭 불거져 나온 것이 결코 아니다. 정보시스템 폐기는 1998년 이후 추진해 온 의약품 유통개혁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들어버린 것과 같다. 왜, 누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손해배상 책임, 알고도 모른 척 한 것?

문제는 더 남아 있다. 정보시스템과 의약품 유통개혁 방안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과 청원이 있었고, 2001년 10월 17일 물류조합 및 정보시스템 관련 조항을 삭제하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원형 의원 발의)이 국회에 발의, 2002년 12월 직불제 근거 법률이 없어지게 된다. 시점으로 보면 법률 조항의 삭제는 삼성SDS가 법률적 대처를 시작한 이후였기 때문에 손해배상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은 떨어진다. 그러나 법률 개정 심의 과정에서 복지부가 보여준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1년 11월 상임위에서 김홍신, 고진부 의원이 조항 삭제가 의약품 유통개혁과 정보시스템 운영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고 질의했을 때 당시 김원길 장관은 정보시스템 가동이 사실상 어렵고, 관련 근거를 폐기하기보다는 선택적 적용으로 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원길 장관은 정보시스템이 폐기되면 정부가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한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아니다. 삼성SDS는 정보시스템 이용이 저조하여 시스템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2001년 10월부터 4차례에 걸쳐 시스템 인수를 요청하였고, 이 과정에서 2001년 8월 10일 보건복지부 장관(당시 김원길 장관)이 삼성SDS 사장을 직접 만나 정보시스템 문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정보시스템 계약을 관련 법령이 확정되기도 전에 무리하게 계약을 체결한 점, 계약을 체결해 놓고도 골간이 되는 법령에 시스템 이용을 선택사항으로 하여 정보시스템을 무용지물로 만든 점,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 것이 사실상 명백함에도 법률 개정 과정 등에서 정보시스템과 의약품 유통개혁 방안 자체를 폐기하고 안이하게 대처한 점이 이 사건에서 드러난 문제점이다. 그렇다면 1998년의 의약품 유통개혁의 방향이 2001년 이후 대전환 된 이유는 무엇이고, 그러한 결정을 내린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이 날아간 360억 원 사건의 핵심이다. 단순한 정책적 판단의 오류나 준비 부족이 아니라 수백억 원의 손실이 예견됨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고 이로 인한 손해배상에다가 정책 실행으로 인한 국민적 이득까지를 포기해 버린 책임은 과연 누가 질 것인가?

정책 결정 책임자 누구인가?

사실 360억 원의 손해배상 결정으로 이 문제가 불거졌지만, 정부 정책의 방향이 충분한 근거 없이 변경된 일은 이번 뿐은 아닐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책임’을 묻지 않는 관행 때문이다. 정부 정책이 성공하면 좋고, 실패하거나 폐기되어도 그만인 상황을 개선하지 않으면 드러난 360억 원 만이 아니라 정책의 임의적 변경과 폐기로 인한 피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아래 <표 1>은 정보시스템 정책이 입안되고(1998-1999) 삼성SDS와 계약이 체결되는 과정(1999-2000), 정보시스템 및 유통개혁 정책의 폐기(2000-2001) 등 일련의 과정에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관료들의 명단이다. 의약품 유통개혁의 실무 담당부서인 보건정책국 및 약무(식품)정책과, 건강보험 재정 중 수백억 원을 수수료로 지불해야 하는 등 건강보험 정책을 담당하는 보험정책국, 복지부의 주요 업무를 관장하는 기획관리실장과 사회복지정책실장, 부서의 수장인 장관과 차관들의 명단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7월 3일 이번 사건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는 차원에서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했다. 감사원이 감사를 할 지, 그 결과가 어떨지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아래의 인사들이 의약품 유통개혁 및 정보시스템, 특히 정책 방향의 변경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면밀히 밝혀져야 한다.

<표 > 1998-2002년 의약품종합정보시스템 관련 주요보직자 - 생략

문혜진 / 참여연대 사회인권팀장
2006/08/11 00:00 2006/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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