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장애담론의 서비스 정책으로의 통합
월간 복지동향/2006 :
2006/08/11 00:00
서론
최근 들어 우리사회의 장애 관련 분야에서 가장 대표적인 담론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 소비자주의와 당사자주의이다. 소비자주의는 ‘주는 대로 받는’ 수동적 서비스 수혜자라는 관점에 대항하여 상품의 구매자와 같이 ‘상품을 선택하는’ 적극적인 구매자 또는 서비스의 선택자라는 관점으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당사자주의는 장애 문제는 특별한 훈련을 받은 전문가에 의해서 판단될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경험에 기초하여 본인 스스로 결정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자기결정’의 원칙을 제기하는 이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흐름들은 장애인들이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참여하는 주체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맥락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두 가지 담론이 주장하는 핵심적인 전략은 상당 부분 차별적이거나 갈등적인 관계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소비자주의는 공급자간의 경쟁을 전제로 하는 시장원리의 도입을 통하여 장애인은 적극적인 구매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며, 이는 장애인의 주체적 참여를 위하여 경쟁과 시장원리라는 수단을 지지한다는 면에서 보면 수단적인 측면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당사자주의는 전문가에 의한 결정이 아닌 장애인 스스로에 의한 자기결정을 지지한다는 면에서 원론적인 차원에서의 서비스의 ‘민주성’ 또는 ‘자기결정 원칙’을 주장하는 것이며 좀 더 강력한 ‘전문가 배제 또는 역할 축소’를 주장한다고 볼 수 있다.
소비자주의는 서비스의 성격 또는 본질에 관련된 문제제기라기 보다는 서비스를 전달하는 정치를 자본주의 시장에서 상품이 소비되는 것과 동일한 원리로 구성하자는 것이며, 당사자주의는 서비스의 성격 또는 본질과 관련하여 서비스의 정책결정과 전달의 전 과정에서 당사자의 통제력과 장악력을 높이고자 하는 장애문제에 대한 장애인 자치의 원리를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논리적인 차원에서 보면 소비자주의 접근을 통해서 선택권이 높아질 수 있고 이를 통해서 서비스에 대한 장애인 자치가 확보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두 가지 흐름은 동일한 입장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시장을 통한 선택은 단지 부분적인 수준에서 선택권을 높일 수 있을 뿐이고, 서비스의 전 과정은 여전히 전문가나 관료에 의해 지배된다고 본다면 소비자주의와 당사자주의는 갈등적인 관계에 있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서비스 정책과 실천의 현상을 보면 두 흐름은 갈등적인 관계이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애당사자에 의한 서비스를 주장하는 자립생활 그룹에서 장애당사자의 선택권을 높이는 수단으로 소비자주의 방식으로의 서비스 개혁을 주장하고 있는 점이나, 장애 당사자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인이 ‘장애인 소비자 연합’을 결성하여 소비자로서의 장애인의 권리를 천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소비자주의와 당사자주의가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받아들여지고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경우를 보면 당사자의 자기결정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사회적 모델에 입각한 논자들은 이미 시장 방식으로 편성되어 있는 커뮤니티케어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에 있다. 1990년대 이후에 시장기제로 재편된 커뮤니티케어에서 장애인의 독립과 선택을 의미 있게 높였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였으며, 이 체계에 의한 서비스는 본질적으로 장애인의 의존성을 높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영국사회의 경우는 소비자주의와 당사자주의는 상당히 깊은 갈등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DCDB(Derbyshire Coalition of Disabled People)가 운영하는 DCIL(Derbyshire Centre for Integrated Living)에서는 영국 커뮤니티케어의 핵심적인 기제인 지방정부에 고용되어 있는 전문가에 의한 ‘care assessment’와 ‘care management’는 장애인의 의존성을 증가시켰으며 융통성이 떨어지는 경직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 스스로가 욕구사정을 하고 스스로가 서비스의 과정을 관리하는 ‘self assessment'와 ’self management' 방식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Priestley, 1999). 이 예는 소비자주의와 당사자주의가 대립되는 지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의 커뮤니티케어에 대한 비판적 논의의 요지는 당사자주의 입장에서의 소비자주의에 대한 비판인데, 시장기제의 도입을 통한 사회복지서비스의 효율성 확보와 이용자 참여의 증진이라는 목표를 내걸었던 영국 커뮤니티케어 체계는 당사자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소비자주의를 토대로 한 개혁이며, 이는 아주 부분적으로만 장애인의 자립과 선택을 증진시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서비스 현실에서 소비자주의와 당사자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복지현실은 장애인이 서비스 상품의 소비자로 자리매김하는 소비자주의 지향이나, 장애인이 서비스 전달과 결정의 주체임을 강조하는 당사자주의 주장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상황에 있다. 우리나라 장애인서비스는 현재의 공급량보다 3배 이상 확대되어야 하는 절대적인 공급부족의 상황이며, 서비스 공급주체들은 서비스 제공 수단이 되는 토지나 자산에 대하여 일정한 소유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회복지법인이나 종교법인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이용자의 서비스 이용 정도나 서비스 질에 의해 정부지원금이 지급되는 방식이 아닌 건물의 규모나 직원 수에 의해 지원 금액이 결정되는 제공자 중심의 전달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와 함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들에 대한 이용자의 주체적 선택과 참여에 관련된 교육과 훈련이 미흡한 상태이며, 이용자 자신들도 전문가들의 결정에 적절한 주도권을 행사해 본 경험이 거의 없어 서비스 결정에 참여할 권리에 대한 인식도 낮은 상태에 있다.
우리 서비스 현실에서 소비자주의와 당사자주의가 대립적인 것이냐, 아니면 상보적인 관계에 있느냐의 논쟁은 구체적인 진입점을 발견하기 어려울 것 같다. 따라서 우리 현실에서 장애인복지서비스의 개혁의 문제는 포괄적인 차원에서 소비자주의와 당사자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포함하면서, 구체적인 합의점을 담을 수 있는 용어로 표현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용자 참여(user participation)거 우리나라 사회복지 서비스 현실에 상황적으로 적절하며, 우리나라에서 회자되고 있는 이념들을 긍정적으로 소화해 낼 수 있는 개념으로 주장한다.
이용자 참여의 개념과 쟁점
일반적으로 ‘서비스 이용자’라는 용어는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일정한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리고 ‘이용자 참여’는 그들이 어떤 서비스를 어느 정도 받아야 하는가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대한 자신들의 참여를 의미하는 용어이다. 그리고 가족, 친구, 이웃 등은 그들 스스로가 서비스 제공자이면서 동시에 서비스 이용자이다. 따라서 이들도 이용자 참여의 주체에 포함될 수 있다. 이용자 참여의 문제를 논의하는 기본적인 출발점은 전문가와 이용자 간의 불평등한 관계의 문제이다.
불평등한 권력관계의 문제는 서비스 이용자와 서비스 제공기관간의 개인적 또는 집단적 관계의 경험이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이용자 참여라는 용어보다 권한강화(empowerment)라는 용어를 더 선호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서비스 실행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달라져야하는 문제는 권력의 재분배임을 강조한다. 이 분야의 연구자들은 권력의 균형을 달성하려는 시도는 매우 복잡한 것이라는 점과 조직 전체가 변화 필요성에 대한 절박한 인식과 이해가 없이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권한강화를 위한 법률의 내용이나 정부의 지침은 권한강화의 문제는 중대한 윤리적 쟁점을 제기할 수밖에 없으며 또한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전문적 능력을 요구한다는 점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사업법에서는 이용자의 대표가 시설 운영위원회에 참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들의 참여는 아주 부분적이거나 제한적이며, 형식적인 참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편 권한강화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사회복지사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욕구와 권리가 침해당하지 않으면서 서비스 이용자들의 욕구와 권리가 조화롭게 강화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고심해 왔다. 이용자의 권한강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우에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이중적일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권한강화를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용자들을 분류하고 제약하는 활동을 수행하게 된다. 사회복지서비스 기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클라이언티즘(clientism)'이라고 할 수 있는 부당한 억압에 직면할 수 있으며, 기관의 직원보다 열등한 존재로 취급당할 수 있는 위험에 놓이게 될 수 있다. 기관의 직원들은 ’이용자들과 함께 활동한다기보다는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활동한다는‘ 관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인식과 현실
서비스 결정과정에서 이용하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서비스에서 민주성이라는 측면과 아울러 서비스의 효과성에도 긍정적이라는 원론적인 차원의 주장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이 이루어지는 분위기인 것 같다. 그러나 참여 행위가 어느 수준에서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의미 있는 참여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상반된 견해가 있는 것 같다.
수년 전에 필자는 장애인복지관에서 근무하는 직원과 이용자 참여에 관한 의견차이 때문에 논쟁을 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필자는 장애인복지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서비스에 대한 결정에 의미 있게 참여하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서비스 계획회의에 직접 참여하여 자신의 견해를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장애인복지관의 담당자는 전문가인 자신이 장애인으로부터 초기상담 과정에 충분한 이야기를 이미 들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서비스 계획회의에 본인이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식적인 서비스 계획회의는 전문가들이 전문적인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이기 때문에 비전문가인 이용자가 참여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서 이용자 참여는 어떤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대립적인 주장이 제기된다.
우리나라 사회복지사업법 제 36조에서는 사회복지시설의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운영을 위하여 사업계획의 수립과 평가, 근무자의 환경개선, 시설 거주자의 생활환경 개선 및 고충처리 등을 심의하는 운영위원회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동법 시행규칙 24조에서는 운영위원회의 구성에 관하여 시설거주자 또는 시설거주자의 보호자 대표와 지역주민 등이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 규정을 통해서 보면 사회복지사업법상의 사회복지시설은 서비스 이용자나 보호자의 대표 또는 지역주민이 중요한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장애인복지시설의 운영위원회에는 이용자나 보호자의 대표들이 실제로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의미 있는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필자는 영국 버밍엄에 있는 African-Caribbean 노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시설(care home)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는 매월 1회 모임을 갖는 서비스 질 평가를 위한 집단(Quality Review Group)이 구성되어 있는데, 이 집단은 거주인, 거주인의 가족, 직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집단은 월 1회 모임을 통해서 시설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문제점들을 논의하고, 이 문제들에 대한 개선 방안을 합의해서 제안하게 된다. 이 제안들은 시설의 운영진들에게 통보될 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의 담당 부서에도 통보된다. 이 제안 내용에 대하여 지방정부는 주기적으로 이 집단의 제안이 잘 처리되고 있는지를 점검한다. 이용자들의 의미 있는 참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런 정도의 실효성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장치들의 작동과 함께 이용자 참여가 도대체 무엇이며, 어떤 차원이 있으며, 어떤 방해요소들이 있으며, 이용자들은 어떤 노력을 하여야 하며, 전문가들은 어떤 지원을 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시설은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떤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하여야 하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대안의 모색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이용자 참여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직은 구호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듯하다. 우선 이용자의 참여를 진작하기 위하여 제도적인 차원에서 검토할 수 있는 대안들을 몇 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ㆍ시장기제의 검토
사회복지서비스에서 시장기제의 도입은 세계적인 추세 중의 하나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영국의 커뮤니티케어, 독일의 수발보험, 일본의 개호보험 등이다. 이런 추세는 한편으로는 국가복지의 축소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진행된 이런 개혁은 관료적이고 제공자 중심적인 복지에 대한 개혁이라는 성격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시장기제와 관련된 내용들이 이미 도입되었거나 검토되기 시작했다. 사회복지사업법에서 이용권제도의 도입 근거가 입법화 되었다는 점, 중앙정부가 장애인 서비스에서 바우처 방식의 도입을 발표했다는 점, 시행 예정인 공적노인수발보장에서 수발제공기관에 대하여 ‘서비스의 효율성 및 경쟁시스템 구축을 위한 민간사업자와 비영리 법인・단체 등 다양한 주체의 참여 촉진’을 강조하고 있는 점 등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사회복지서비스에서 시장기제의 도입이 실천현장에서 이용자 참여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행 조건이 필요하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이용자가 의미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서비스의 공급이 충분한가의 문제이다. 우리나라 장애인서비스의 부족한 공급량을 고려해 볼 때, 시장 접근을 채택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급확대와 함께 이용자의 선택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시장 접근 방식의 도입 가능성이나 유효성에 대한 검토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ㆍ지방이양을 통한 정책결정과정 참여 확대
사회복지서비스를 중앙집권적인 방식에서 지방자치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지역차원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서비스에 관련된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방이양은 지역에 밀착된 서비스를 통해서 주민과 공무원간의 관계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단위의 위원회와 같은 민주적 과정에 이용자인 주민들이 참여하기가 더 용이해진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공부문의 지방화라는 명분에 의하여 2005년부터 장애인복지서비스의 대부분이 지방으로 이양되었다. 지방이양을 통해서 이용자를 포함한 다양한 복지주체들의 참여가 증진되었는가를 보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지방이양이 다양한 주체들의 민주적 참여라는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지방정부들이 다양한 참여기제를 작동시키도록 견인하는 장치들이 중앙정부 차원에서 정교하게 제시되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런 조건 없이 지방에 권한을 넘겨주는 일은 지방권력에 의한 보다 까다로운 통제를 인정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따라서 지방이양과정에서는 필수적으로 지방정부들이 서비스 정책결정이나 서비스 전달과정에서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를 보장하도록 하는 다양한 장치들이 동시에 제시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최근의 지방이양 과정은 이런 고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이용자 참여라는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ㆍ서비스 신청과 사정받을 권리의 보장
영국의 장애인들은 1986년 장애인법(Disabled Persons (Services, Consultation and Representation) Act)의 s.4에 의해서 자신들의 욕구에 대하여 사정받을 권리를 가진다(Rummery, 2002). 우리나라 사회복지사업법 33조에서는 ‘사회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자와 그 친족 그 밖의 관계인은 관할 시장ㆍ군수ㆍ구청장에게 보호대상자에 대한 사회복지서비스의 제공을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2003년 법 개정에서 추가된 내용이며, 2004년 9월에 후속 시행방안이 제정되었으나 실제로는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정받을 권리가 실제로 보장될 수 있기 위해서는 이것이 법률상의 ‘권리’임을 선언하고 사법체계를 통해서 보장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사정받을 권리는 법률에 의해서 명시적으로 규정되어야 하며, 장애인이나 가족들에 의해 이의제기가 가능한 수준으로 공식적이며 명확한 사정 체계계가 수립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회복지사업법 33조의 규정을 개정하여 사정받을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치를 통하여 스스로 사회적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장애인들이 공적 전달체계를 통해서 사정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ㆍ이의제기와 구제절차
각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자격과 우선순위 등에 관련된 자원배분 정책들은 공개되어야 하며, 명확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접근 가능해야 한다.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용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서비스 제공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결정의 기준은 무엇인지, 특정 서비스를 이용함에 있어 이용자의 권리와 책임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견해가 반영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정보접근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이의제기와 권리의 구제에 관련된 절차도 공식화되어야한다.
1990년 NHSCCA의 s.50에 의하여 영국의 지방정부들은 서비스 이용자들로부터 불만사항을 비롯한 의견을 청취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수립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의제기절차는 다음의 사항들을 충족하도록 규정하였다(Department of Health, 1990). 첫째, 서비스 이용자들이나 대표자들이 서비스의 질이나 내용에 관하여 불만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적인 수단을 제공하여야 한다. 둘째, 제기된 불만은 실제 서비스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불만을 해결하려는 조치는 신속히 이루어져야 하며, 수긍할 수 있을 만큼 적절한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서비스를 거부한 사람들에게는 결정에 도전할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확립되어 있는 이의제기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다섯째, 혼자서 이의제기 절차를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인 설명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서비스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이의제기절차가 확립되어 있지 못하다. 이는 한편으로는 서비스 공급의 부족과 관련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서비스에 대한 권리의식이 빈약하다는 사실과 관련 있다. 서비스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서는 이용자들에게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분명한 권리가 있음을 선언하고, 그 절차를 공식화시키는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5. 결론
현재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되고 있는 소비자주의, 당사자주의 담론은 공통적으로 장애인의 선택과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경향들을 장애인복지서비스에 적용하는 경우 이용자의 참여 증진으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서비스 실천의 효과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이용자의 참여는 중요한 과제로 설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이용자 참여확대를 위한 노력은 향후 수년간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서비스 실천에서 핵심적인 화두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전문가와 이용자가 적대적 대립관계가 아닌 평등에 기초한 상호보완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 우선적으로 필요할 것이며, 실천현장에서도 서비스 전달과정의 구석구석에서 이용자의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단서들을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에 대한 교육 과정에서도 이용자 참여의 필연성과 의미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장애인 당사자들도 조직적으로 사회복지서비스 과정에서의 참여를 주장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다각적인 과제들에 대하여 중앙정부는 일관성 있고 치밀한 기제들을 개발하고 실행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사회의 장애 관련 분야에서 가장 대표적인 담론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 소비자주의와 당사자주의이다. 소비자주의는 ‘주는 대로 받는’ 수동적 서비스 수혜자라는 관점에 대항하여 상품의 구매자와 같이 ‘상품을 선택하는’ 적극적인 구매자 또는 서비스의 선택자라는 관점으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당사자주의는 장애 문제는 특별한 훈련을 받은 전문가에 의해서 판단될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경험에 기초하여 본인 스스로 결정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자기결정’의 원칙을 제기하는 이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흐름들은 장애인들이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참여하는 주체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맥락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두 가지 담론이 주장하는 핵심적인 전략은 상당 부분 차별적이거나 갈등적인 관계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소비자주의는 공급자간의 경쟁을 전제로 하는 시장원리의 도입을 통하여 장애인은 적극적인 구매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며, 이는 장애인의 주체적 참여를 위하여 경쟁과 시장원리라는 수단을 지지한다는 면에서 보면 수단적인 측면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당사자주의는 전문가에 의한 결정이 아닌 장애인 스스로에 의한 자기결정을 지지한다는 면에서 원론적인 차원에서의 서비스의 ‘민주성’ 또는 ‘자기결정 원칙’을 주장하는 것이며 좀 더 강력한 ‘전문가 배제 또는 역할 축소’를 주장한다고 볼 수 있다.
소비자주의는 서비스의 성격 또는 본질에 관련된 문제제기라기 보다는 서비스를 전달하는 정치를 자본주의 시장에서 상품이 소비되는 것과 동일한 원리로 구성하자는 것이며, 당사자주의는 서비스의 성격 또는 본질과 관련하여 서비스의 정책결정과 전달의 전 과정에서 당사자의 통제력과 장악력을 높이고자 하는 장애문제에 대한 장애인 자치의 원리를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논리적인 차원에서 보면 소비자주의 접근을 통해서 선택권이 높아질 수 있고 이를 통해서 서비스에 대한 장애인 자치가 확보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두 가지 흐름은 동일한 입장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시장을 통한 선택은 단지 부분적인 수준에서 선택권을 높일 수 있을 뿐이고, 서비스의 전 과정은 여전히 전문가나 관료에 의해 지배된다고 본다면 소비자주의와 당사자주의는 갈등적인 관계에 있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서비스 정책과 실천의 현상을 보면 두 흐름은 갈등적인 관계이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애당사자에 의한 서비스를 주장하는 자립생활 그룹에서 장애당사자의 선택권을 높이는 수단으로 소비자주의 방식으로의 서비스 개혁을 주장하고 있는 점이나, 장애 당사자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인이 ‘장애인 소비자 연합’을 결성하여 소비자로서의 장애인의 권리를 천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소비자주의와 당사자주의가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받아들여지고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경우를 보면 당사자의 자기결정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사회적 모델에 입각한 논자들은 이미 시장 방식으로 편성되어 있는 커뮤니티케어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에 있다. 1990년대 이후에 시장기제로 재편된 커뮤니티케어에서 장애인의 독립과 선택을 의미 있게 높였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였으며, 이 체계에 의한 서비스는 본질적으로 장애인의 의존성을 높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영국사회의 경우는 소비자주의와 당사자주의는 상당히 깊은 갈등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DCDB(Derbyshire Coalition of Disabled People)가 운영하는 DCIL(Derbyshire Centre for Integrated Living)에서는 영국 커뮤니티케어의 핵심적인 기제인 지방정부에 고용되어 있는 전문가에 의한 ‘care assessment’와 ‘care management’는 장애인의 의존성을 증가시켰으며 융통성이 떨어지는 경직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 스스로가 욕구사정을 하고 스스로가 서비스의 과정을 관리하는 ‘self assessment'와 ’self management' 방식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Priestley, 1999). 이 예는 소비자주의와 당사자주의가 대립되는 지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의 커뮤니티케어에 대한 비판적 논의의 요지는 당사자주의 입장에서의 소비자주의에 대한 비판인데, 시장기제의 도입을 통한 사회복지서비스의 효율성 확보와 이용자 참여의 증진이라는 목표를 내걸었던 영국 커뮤니티케어 체계는 당사자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소비자주의를 토대로 한 개혁이며, 이는 아주 부분적으로만 장애인의 자립과 선택을 증진시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서비스 현실에서 소비자주의와 당사자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복지현실은 장애인이 서비스 상품의 소비자로 자리매김하는 소비자주의 지향이나, 장애인이 서비스 전달과 결정의 주체임을 강조하는 당사자주의 주장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상황에 있다. 우리나라 장애인서비스는 현재의 공급량보다 3배 이상 확대되어야 하는 절대적인 공급부족의 상황이며, 서비스 공급주체들은 서비스 제공 수단이 되는 토지나 자산에 대하여 일정한 소유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회복지법인이나 종교법인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이용자의 서비스 이용 정도나 서비스 질에 의해 정부지원금이 지급되는 방식이 아닌 건물의 규모나 직원 수에 의해 지원 금액이 결정되는 제공자 중심의 전달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와 함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들에 대한 이용자의 주체적 선택과 참여에 관련된 교육과 훈련이 미흡한 상태이며, 이용자 자신들도 전문가들의 결정에 적절한 주도권을 행사해 본 경험이 거의 없어 서비스 결정에 참여할 권리에 대한 인식도 낮은 상태에 있다.
우리 서비스 현실에서 소비자주의와 당사자주의가 대립적인 것이냐, 아니면 상보적인 관계에 있느냐의 논쟁은 구체적인 진입점을 발견하기 어려울 것 같다. 따라서 우리 현실에서 장애인복지서비스의 개혁의 문제는 포괄적인 차원에서 소비자주의와 당사자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포함하면서, 구체적인 합의점을 담을 수 있는 용어로 표현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용자 참여(user participation)거 우리나라 사회복지 서비스 현실에 상황적으로 적절하며, 우리나라에서 회자되고 있는 이념들을 긍정적으로 소화해 낼 수 있는 개념으로 주장한다.
이용자 참여의 개념과 쟁점
일반적으로 ‘서비스 이용자’라는 용어는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일정한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리고 ‘이용자 참여’는 그들이 어떤 서비스를 어느 정도 받아야 하는가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대한 자신들의 참여를 의미하는 용어이다. 그리고 가족, 친구, 이웃 등은 그들 스스로가 서비스 제공자이면서 동시에 서비스 이용자이다. 따라서 이들도 이용자 참여의 주체에 포함될 수 있다. 이용자 참여의 문제를 논의하는 기본적인 출발점은 전문가와 이용자 간의 불평등한 관계의 문제이다.
불평등한 권력관계의 문제는 서비스 이용자와 서비스 제공기관간의 개인적 또는 집단적 관계의 경험이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이용자 참여라는 용어보다 권한강화(empowerment)라는 용어를 더 선호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서비스 실행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달라져야하는 문제는 권력의 재분배임을 강조한다. 이 분야의 연구자들은 권력의 균형을 달성하려는 시도는 매우 복잡한 것이라는 점과 조직 전체가 변화 필요성에 대한 절박한 인식과 이해가 없이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권한강화를 위한 법률의 내용이나 정부의 지침은 권한강화의 문제는 중대한 윤리적 쟁점을 제기할 수밖에 없으며 또한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전문적 능력을 요구한다는 점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사업법에서는 이용자의 대표가 시설 운영위원회에 참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들의 참여는 아주 부분적이거나 제한적이며, 형식적인 참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편 권한강화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사회복지사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욕구와 권리가 침해당하지 않으면서 서비스 이용자들의 욕구와 권리가 조화롭게 강화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고심해 왔다. 이용자의 권한강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우에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이중적일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권한강화를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용자들을 분류하고 제약하는 활동을 수행하게 된다. 사회복지서비스 기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클라이언티즘(clientism)'이라고 할 수 있는 부당한 억압에 직면할 수 있으며, 기관의 직원보다 열등한 존재로 취급당할 수 있는 위험에 놓이게 될 수 있다. 기관의 직원들은 ’이용자들과 함께 활동한다기보다는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활동한다는‘ 관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인식과 현실
서비스 결정과정에서 이용하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서비스에서 민주성이라는 측면과 아울러 서비스의 효과성에도 긍정적이라는 원론적인 차원의 주장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이 이루어지는 분위기인 것 같다. 그러나 참여 행위가 어느 수준에서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의미 있는 참여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상반된 견해가 있는 것 같다.
수년 전에 필자는 장애인복지관에서 근무하는 직원과 이용자 참여에 관한 의견차이 때문에 논쟁을 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필자는 장애인복지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서비스에 대한 결정에 의미 있게 참여하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서비스 계획회의에 직접 참여하여 자신의 견해를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장애인복지관의 담당자는 전문가인 자신이 장애인으로부터 초기상담 과정에 충분한 이야기를 이미 들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서비스 계획회의에 본인이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식적인 서비스 계획회의는 전문가들이 전문적인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이기 때문에 비전문가인 이용자가 참여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서 이용자 참여는 어떤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대립적인 주장이 제기된다.
우리나라 사회복지사업법 제 36조에서는 사회복지시설의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운영을 위하여 사업계획의 수립과 평가, 근무자의 환경개선, 시설 거주자의 생활환경 개선 및 고충처리 등을 심의하는 운영위원회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동법 시행규칙 24조에서는 운영위원회의 구성에 관하여 시설거주자 또는 시설거주자의 보호자 대표와 지역주민 등이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 규정을 통해서 보면 사회복지사업법상의 사회복지시설은 서비스 이용자나 보호자의 대표 또는 지역주민이 중요한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장애인복지시설의 운영위원회에는 이용자나 보호자의 대표들이 실제로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의미 있는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필자는 영국 버밍엄에 있는 African-Caribbean 노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시설(care home)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는 매월 1회 모임을 갖는 서비스 질 평가를 위한 집단(Quality Review Group)이 구성되어 있는데, 이 집단은 거주인, 거주인의 가족, 직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집단은 월 1회 모임을 통해서 시설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문제점들을 논의하고, 이 문제들에 대한 개선 방안을 합의해서 제안하게 된다. 이 제안들은 시설의 운영진들에게 통보될 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의 담당 부서에도 통보된다. 이 제안 내용에 대하여 지방정부는 주기적으로 이 집단의 제안이 잘 처리되고 있는지를 점검한다. 이용자들의 의미 있는 참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런 정도의 실효성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장치들의 작동과 함께 이용자 참여가 도대체 무엇이며, 어떤 차원이 있으며, 어떤 방해요소들이 있으며, 이용자들은 어떤 노력을 하여야 하며, 전문가들은 어떤 지원을 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시설은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떤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하여야 하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대안의 모색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이용자 참여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직은 구호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듯하다. 우선 이용자의 참여를 진작하기 위하여 제도적인 차원에서 검토할 수 있는 대안들을 몇 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ㆍ시장기제의 검토
사회복지서비스에서 시장기제의 도입은 세계적인 추세 중의 하나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영국의 커뮤니티케어, 독일의 수발보험, 일본의 개호보험 등이다. 이런 추세는 한편으로는 국가복지의 축소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진행된 이런 개혁은 관료적이고 제공자 중심적인 복지에 대한 개혁이라는 성격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시장기제와 관련된 내용들이 이미 도입되었거나 검토되기 시작했다. 사회복지사업법에서 이용권제도의 도입 근거가 입법화 되었다는 점, 중앙정부가 장애인 서비스에서 바우처 방식의 도입을 발표했다는 점, 시행 예정인 공적노인수발보장에서 수발제공기관에 대하여 ‘서비스의 효율성 및 경쟁시스템 구축을 위한 민간사업자와 비영리 법인・단체 등 다양한 주체의 참여 촉진’을 강조하고 있는 점 등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사회복지서비스에서 시장기제의 도입이 실천현장에서 이용자 참여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행 조건이 필요하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이용자가 의미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서비스의 공급이 충분한가의 문제이다. 우리나라 장애인서비스의 부족한 공급량을 고려해 볼 때, 시장 접근을 채택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급확대와 함께 이용자의 선택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시장 접근 방식의 도입 가능성이나 유효성에 대한 검토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ㆍ지방이양을 통한 정책결정과정 참여 확대
사회복지서비스를 중앙집권적인 방식에서 지방자치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지역차원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서비스에 관련된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방이양은 지역에 밀착된 서비스를 통해서 주민과 공무원간의 관계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단위의 위원회와 같은 민주적 과정에 이용자인 주민들이 참여하기가 더 용이해진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공부문의 지방화라는 명분에 의하여 2005년부터 장애인복지서비스의 대부분이 지방으로 이양되었다. 지방이양을 통해서 이용자를 포함한 다양한 복지주체들의 참여가 증진되었는가를 보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지방이양이 다양한 주체들의 민주적 참여라는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지방정부들이 다양한 참여기제를 작동시키도록 견인하는 장치들이 중앙정부 차원에서 정교하게 제시되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런 조건 없이 지방에 권한을 넘겨주는 일은 지방권력에 의한 보다 까다로운 통제를 인정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따라서 지방이양과정에서는 필수적으로 지방정부들이 서비스 정책결정이나 서비스 전달과정에서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를 보장하도록 하는 다양한 장치들이 동시에 제시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최근의 지방이양 과정은 이런 고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이용자 참여라는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ㆍ서비스 신청과 사정받을 권리의 보장
영국의 장애인들은 1986년 장애인법(Disabled Persons (Services, Consultation and Representation) Act)의 s.4에 의해서 자신들의 욕구에 대하여 사정받을 권리를 가진다(Rummery, 2002). 우리나라 사회복지사업법 33조에서는 ‘사회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자와 그 친족 그 밖의 관계인은 관할 시장ㆍ군수ㆍ구청장에게 보호대상자에 대한 사회복지서비스의 제공을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2003년 법 개정에서 추가된 내용이며, 2004년 9월에 후속 시행방안이 제정되었으나 실제로는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정받을 권리가 실제로 보장될 수 있기 위해서는 이것이 법률상의 ‘권리’임을 선언하고 사법체계를 통해서 보장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사정받을 권리는 법률에 의해서 명시적으로 규정되어야 하며, 장애인이나 가족들에 의해 이의제기가 가능한 수준으로 공식적이며 명확한 사정 체계계가 수립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회복지사업법 33조의 규정을 개정하여 사정받을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치를 통하여 스스로 사회적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장애인들이 공적 전달체계를 통해서 사정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ㆍ이의제기와 구제절차
각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자격과 우선순위 등에 관련된 자원배분 정책들은 공개되어야 하며, 명확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접근 가능해야 한다.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용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서비스 제공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결정의 기준은 무엇인지, 특정 서비스를 이용함에 있어 이용자의 권리와 책임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견해가 반영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정보접근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이의제기와 권리의 구제에 관련된 절차도 공식화되어야한다.
1990년 NHSCCA의 s.50에 의하여 영국의 지방정부들은 서비스 이용자들로부터 불만사항을 비롯한 의견을 청취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수립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의제기절차는 다음의 사항들을 충족하도록 규정하였다(Department of Health, 1990). 첫째, 서비스 이용자들이나 대표자들이 서비스의 질이나 내용에 관하여 불만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적인 수단을 제공하여야 한다. 둘째, 제기된 불만은 실제 서비스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불만을 해결하려는 조치는 신속히 이루어져야 하며, 수긍할 수 있을 만큼 적절한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서비스를 거부한 사람들에게는 결정에 도전할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확립되어 있는 이의제기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다섯째, 혼자서 이의제기 절차를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인 설명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서비스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이의제기절차가 확립되어 있지 못하다. 이는 한편으로는 서비스 공급의 부족과 관련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서비스에 대한 권리의식이 빈약하다는 사실과 관련 있다. 서비스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서는 이용자들에게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분명한 권리가 있음을 선언하고, 그 절차를 공식화시키는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5. 결론
현재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되고 있는 소비자주의, 당사자주의 담론은 공통적으로 장애인의 선택과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경향들을 장애인복지서비스에 적용하는 경우 이용자의 참여 증진으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서비스 실천의 효과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이용자의 참여는 중요한 과제로 설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이용자 참여확대를 위한 노력은 향후 수년간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서비스 실천에서 핵심적인 화두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전문가와 이용자가 적대적 대립관계가 아닌 평등에 기초한 상호보완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 우선적으로 필요할 것이며, 실천현장에서도 서비스 전달과정의 구석구석에서 이용자의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단서들을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에 대한 교육 과정에서도 이용자 참여의 필연성과 의미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장애인 당사자들도 조직적으로 사회복지서비스 과정에서의 참여를 주장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다각적인 과제들에 대하여 중앙정부는 일관성 있고 치밀한 기제들을 개발하고 실행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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