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서비스 재편가능성과 일자리 창출
월간 복지동향/2006 :
2006/10/11 00:00
최근 우리나라 복지국가에 관한 논의에서 사회서비스에 관한 논의가 매우 중요하게 부상하고 있다. 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는 몇 년 전부터 사회서비스 확충과 정비가 시급하다는 점을 지적해 온 바 있으며, 현 정부도 출범 초기부터 사회적 일자리라는 명칭으로 사회서비스 확충에 노력하여 왔다. 그리고 올해 9월에는 기획예산처가 「사회서비스 향상기획단」이라는 새로운 조직을 구성하여 운영에 들어갔으며 보건복지부도 비슷한 시기에 보건복지서비스 확대추진팀을 새로 편성하여 사업추진에 나서고 있고 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개혁 외에 아동이나 노인 등을 위한 복지서비스 개혁을 역점사업의 하나로 삼아 역량을 집중하려고 애쓰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같은 흐름은 사회양극화의 심화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그간 나름대로 확충해 온 한국 복지국가의 질적 심화를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단계에서 나타나는 흐름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배경에 의해 나타나고 있는 사회서비스 확충 논의의 성격과 전망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사회서비스 확충과 일자리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서비스 확충 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서비스 확충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당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서비스를 확충하면 일자리가 창출되기 때문에 사회서비스 확충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논의가 주를 이루고 있다. 지난 9월 20일에는 정부가 민간단체 등을 초청하여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면서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을 발표하였는데 이 행사의 제목도 “사회서비스 분야 좋은 일자리 창출 추진보고회”였고, 전략의 주요 내용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20만개의 사회서비스 분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사회서비스 확충 논의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사회서비스 확충 = 일자리 창출”이라는 근거에서만 논의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로서의 사회서비스 확충”이 현 단계 우리나라에서의 논의에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회서비스 확충이 일자리 창출을 가져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사회서비스 확충을 반드시 일자리 창출로 정당화해야 할 필요는 없다. 사회서비스 확충이 일자리 창출로 정당화되고 있는 배경으로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청년실업문제를 들 수 있으며 인구고령화에 따른 대비의 필요성, 사회양극화 심화로 인해 지속적으로 어려워지는 서민가계 부담문제의 해결 등도 중요한 배경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동안 사회서비스를 정부의 정당한 역할로 생각하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관습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사회서비스 분야 좋은 일자리 창출 추진보고회”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서비스는 복지‧보건의료‧교육‧문화‧환경‧사회안전 등인데 이들은 모두 사회구성원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늘 부딪히게 되고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들이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이와 같은 일상생활의 문제에 대해 정부가 그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여 집행하고 그에 문제가 있을 때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 정부의 정책을 수정하는 식의 행동을 보인 적은 거의 없다. 가족 중 누구를 돌보아야 하고 아플 때 치료를 받아야 하고 자녀를 가르쳐야 하고 가족이 함께 여가를 보내고 학교가는 길의 자녀를 걱정하지 않게 하는 등등 보통 사람들의 일상사에서 늘 부딪히는 사안들은 언제나 그런 일을 해야 할 개인과 가족에게 맡겨져 있었다. 정부는 경제개발만을 내세워 시민들의 일상생활 문제와 같은 “사소한 사안”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고, 경제개발이 되면 그런 사소한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해서 수십년을 보내는 동안 시민들도 정부가 그러한 사소한 문제에까지 관심을 쏟으리라는 기대 자체를 포기하고 “각자가 알아서” 삶을 영위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민들이 가지게된 이러한 “포기의 심리” 기저에는 정부에 대한 “불신의 심리”가 놓여 있다. 1990년대 초 정도까지만 해도 한국의 정부는 민주화하지 못한 것 때문에도 시민들로부터 불신을 받았지만 시민들의 일상사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 때문에도 불신을 받았다. 경제개발로 국민소득이 증가해도 국가는 여전히 시민들의 일상사에 무관심하였고, 이는 경제가 발전해도 실제 생활에서의 인간다운 대접을 받게 되는 것은 국가의 서비스 때문이 아니라 “내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기 때문”이라는 인식으로 자리하게 된다. 거기다가 소득의 증가로 외국의 사례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외국의 일상생활 관련 서비스와 한국의 서비스를 직접 비교하여 좋은 서비스의 이미지와 실제를 외국에서 구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고 이는 다시 한국 국가에 대한 포기와 불신의 심리를 강화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이른 바 “작은 정부론”이 제기되었을 때 그것은 민주화 세력뿐만 아니라 시민들로부터도 많은 호응을 받았는데, 이는 정치적인 의미에서 민주적이지 않았던 정부에 대한 불신이나 거부감도 중요한 근거였겠지만 시민들의 일상사에 무관심하고 심지어는 고압적이고 불친절한 태도를 보였던 정부(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정부)에 대한 “포기의 심리”와 “불신의 심리”가 더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포기와 불신의 심리는 민주화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점점 거세어지는 경쟁 속에서 사교육비는 계속 증가하여 왔고 주거비와 의료비도 계속 증가하여 왔다. 게다가 권위주의 시대 때부터 민간부문에게 사회서비스의 직접 공급을 맡겨 오면서 생겨난 “민간 공급자, 정부 지원자”의 구조는 이제 너무나 거대하게 고착되어 재정지원을 하는 정부가 민간공급자에 대해 적절한 규제를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공공부문에 의한 사회서비스를 확대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기가 어렵다. 거기다 정부가 사회서비스를 위해 그에 필요한 인력을 공무원으로 채용하여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비용이 많이 소요되며 당장 공무원 증원을 반대하는 여론에 부딪히게 된다. 또한, 정부가 사회서비스 부문의 공무원을 늘릴 경우 기존에 사회서비스 부문에 종사하던 민간기관 인력과의 관계조정 문제도 부상하게 된다. 설사 공무원을 늘려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사회서비스 자체에 드는 사업비용이 단기간에 크게 늘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체감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그렇게 되는 과정에는 성과보다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비용이 더 두드러져 보일 것이다. 따라서 사회서비스가 그 자체로 가진 가치로 사회서비스를 정당화하지 못하게 되고 사회서비스가 부수적으로 창출하는 효과에 기대어 사회서비스 확충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서비스 확충 논의가 이렇게라도 시민들의 동의를 얻고 자원배분에서 과거보다 높은 우선순위를 가지게 된다면 이는 한국 복지국가의 발전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회서비스 분야 좋은 일자리 창출 추진보고회” 관련 자료에 의하면, 2005년 12월 기준으로 사회서비스 분야의 부족한 인력은 약 90만명으로 추정되며, 이러한 부족인력이 가장 많은 분야는 방과후 활동(19만 8천명), 보육(14만명), 간병(13만 4천명)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사회복지와 보건의료분야의 부족인력이 54만 9천명으로 전체 부족인력의 60.2%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2001년부터 2005넌 동안 일자리 증가 추이를 산업별로 보면 제조업은 2001년 426만개 일자리에서 2005년 423만개 일자리로 3만개가 줄었고 도소매‧음식‧숙박업은 2001년 588만개에서 2005년 581만개로 7만개의 일자리가 준 반면 건설업(22만개 증)과 금융‧보험‧부동산업(10만개 증), 사업서비스업(39만개 증)은 일자리가 늘어났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일자리 증가속도가 가장 빠른 산업은 사회서비스로서 이 부문의 일자리는 2001년 242만개에서 301만개로 59만개의 일자리가 증가하였다. 이는 사회서비스업의 일자리가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연평균 14만 6천개씩 증가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같은 기간 총일자리수의 연평균 증가량 32만 1천개(총증가량은 2001년 2,157만개 → 2005년 2,286만개로 129만개)의 45.5%에 해당한다. 결국 사회서비스 부문은 일자리가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만큼 일자리가 창출될 여력이 매우 큰 것이다.
사회서비스의 개혁
그러나 현 단계에서 어느 정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서비스의 확충을 계속 일자리 창출과 연결시켜서 정당화할 수는 없다. 사회서비스는 그것이 본래적으로 가진 가치가 있는 것이며 이 가치에 대해 사회가 합의하고 이 가치의 실현을 증진시켜 나갈 때 사회서비스가 올바로 설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서비스의 단순한 확충보다는 사회서비스의 개혁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서비스는 그 공급주체가 대부분 민간기관이며 정부는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민간기관에 대해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그래서 민간기관이 서비스를 공급하지만 완전히 시장화하여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간기관들이 공공성에 대한 의식이 강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편으로 민간기관들은 기관에 대한 재산권 의식은 강하다. 그리하여 재산권 수호의 측면에서는 시장적이며 또 그런 면에서는 정부의 규제에 대해 저항의식이 강하지만, 합리적이라는 의미에서의 시장적이거나 효율적인 성격은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정부에 대해 종속적인 위치에 있지만 이것이 공공성으로 이어져 있지는 않다. 따라서 사회서비스 분야의 민간공급자는 두 가지 방향에서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그 한 가지는 공공성의 강화라는 방향이며 다른 한 가지는 시장적인 의미에서 효율성의 증진이라는 방향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방향의 개혁이 주장되는 근거는 서로 다르다. 공공성 강화는 민간기관에 대한 정부개입의 증대, 혹은 정부에 의한 직접적인 공급, 민간기관의 투명하고 민주적인 운영 등과 연결되며 반면 시장적 효율성의 증진은 기관운영의 효율화, 마켓팅 전략의 도입 등과 연결된다(사실 지금까지 시장적 효율성의 증진은 민간기관 자체에 직접 적용되었다기보다는 사회서비스 전체에 대한 자원배분의 억제를 위한 논리로 동원된 성격이 더 강하다). 이 두 가지 방향의 개혁 중 어느 방향의 개혁이 우위를 점하느냐에 따라 일자리 창출로 정당화되고 있는 사회서비스가 나중에라도 올바로 설 수 있느냐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공공성 강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현재 일자리 창출로 정당화된 사회서비스는 값싼 일자리를 빌미로 낮은 인건비를 들여 값싼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문으로 전락할 우려가 높다. 이런 점에서 지금부터라도 일자리 창출과 함께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전략을 구상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노력이 최대한 경주되어야 한다. 현재 사회서비스 재정의 지방이양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지방이양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를 위해 지방이양의 기회를 최대한 살리려는 노력을 전개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와 같은 흐름은 사회양극화의 심화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그간 나름대로 확충해 온 한국 복지국가의 질적 심화를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단계에서 나타나는 흐름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배경에 의해 나타나고 있는 사회서비스 확충 논의의 성격과 전망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사회서비스 확충과 일자리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서비스 확충 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서비스 확충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당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서비스를 확충하면 일자리가 창출되기 때문에 사회서비스 확충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논의가 주를 이루고 있다. 지난 9월 20일에는 정부가 민간단체 등을 초청하여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면서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을 발표하였는데 이 행사의 제목도 “사회서비스 분야 좋은 일자리 창출 추진보고회”였고, 전략의 주요 내용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20만개의 사회서비스 분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사회서비스 확충 논의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사회서비스 확충 = 일자리 창출”이라는 근거에서만 논의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로서의 사회서비스 확충”이 현 단계 우리나라에서의 논의에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회서비스 확충이 일자리 창출을 가져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사회서비스 확충을 반드시 일자리 창출로 정당화해야 할 필요는 없다. 사회서비스 확충이 일자리 창출로 정당화되고 있는 배경으로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청년실업문제를 들 수 있으며 인구고령화에 따른 대비의 필요성, 사회양극화 심화로 인해 지속적으로 어려워지는 서민가계 부담문제의 해결 등도 중요한 배경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동안 사회서비스를 정부의 정당한 역할로 생각하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관습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사회서비스 분야 좋은 일자리 창출 추진보고회”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서비스는 복지‧보건의료‧교육‧문화‧환경‧사회안전 등인데 이들은 모두 사회구성원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늘 부딪히게 되고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들이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이와 같은 일상생활의 문제에 대해 정부가 그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여 집행하고 그에 문제가 있을 때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 정부의 정책을 수정하는 식의 행동을 보인 적은 거의 없다. 가족 중 누구를 돌보아야 하고 아플 때 치료를 받아야 하고 자녀를 가르쳐야 하고 가족이 함께 여가를 보내고 학교가는 길의 자녀를 걱정하지 않게 하는 등등 보통 사람들의 일상사에서 늘 부딪히는 사안들은 언제나 그런 일을 해야 할 개인과 가족에게 맡겨져 있었다. 정부는 경제개발만을 내세워 시민들의 일상생활 문제와 같은 “사소한 사안”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고, 경제개발이 되면 그런 사소한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해서 수십년을 보내는 동안 시민들도 정부가 그러한 사소한 문제에까지 관심을 쏟으리라는 기대 자체를 포기하고 “각자가 알아서” 삶을 영위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민들이 가지게된 이러한 “포기의 심리” 기저에는 정부에 대한 “불신의 심리”가 놓여 있다. 1990년대 초 정도까지만 해도 한국의 정부는 민주화하지 못한 것 때문에도 시민들로부터 불신을 받았지만 시민들의 일상사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 때문에도 불신을 받았다. 경제개발로 국민소득이 증가해도 국가는 여전히 시민들의 일상사에 무관심하였고, 이는 경제가 발전해도 실제 생활에서의 인간다운 대접을 받게 되는 것은 국가의 서비스 때문이 아니라 “내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기 때문”이라는 인식으로 자리하게 된다. 거기다가 소득의 증가로 외국의 사례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외국의 일상생활 관련 서비스와 한국의 서비스를 직접 비교하여 좋은 서비스의 이미지와 실제를 외국에서 구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고 이는 다시 한국 국가에 대한 포기와 불신의 심리를 강화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이른 바 “작은 정부론”이 제기되었을 때 그것은 민주화 세력뿐만 아니라 시민들로부터도 많은 호응을 받았는데, 이는 정치적인 의미에서 민주적이지 않았던 정부에 대한 불신이나 거부감도 중요한 근거였겠지만 시민들의 일상사에 무관심하고 심지어는 고압적이고 불친절한 태도를 보였던 정부(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정부)에 대한 “포기의 심리”와 “불신의 심리”가 더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포기와 불신의 심리는 민주화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점점 거세어지는 경쟁 속에서 사교육비는 계속 증가하여 왔고 주거비와 의료비도 계속 증가하여 왔다. 게다가 권위주의 시대 때부터 민간부문에게 사회서비스의 직접 공급을 맡겨 오면서 생겨난 “민간 공급자, 정부 지원자”의 구조는 이제 너무나 거대하게 고착되어 재정지원을 하는 정부가 민간공급자에 대해 적절한 규제를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공공부문에 의한 사회서비스를 확대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기가 어렵다. 거기다 정부가 사회서비스를 위해 그에 필요한 인력을 공무원으로 채용하여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비용이 많이 소요되며 당장 공무원 증원을 반대하는 여론에 부딪히게 된다. 또한, 정부가 사회서비스 부문의 공무원을 늘릴 경우 기존에 사회서비스 부문에 종사하던 민간기관 인력과의 관계조정 문제도 부상하게 된다. 설사 공무원을 늘려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사회서비스 자체에 드는 사업비용이 단기간에 크게 늘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체감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그렇게 되는 과정에는 성과보다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비용이 더 두드러져 보일 것이다. 따라서 사회서비스가 그 자체로 가진 가치로 사회서비스를 정당화하지 못하게 되고 사회서비스가 부수적으로 창출하는 효과에 기대어 사회서비스 확충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서비스 확충 논의가 이렇게라도 시민들의 동의를 얻고 자원배분에서 과거보다 높은 우선순위를 가지게 된다면 이는 한국 복지국가의 발전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회서비스 분야 좋은 일자리 창출 추진보고회” 관련 자료에 의하면, 2005년 12월 기준으로 사회서비스 분야의 부족한 인력은 약 90만명으로 추정되며, 이러한 부족인력이 가장 많은 분야는 방과후 활동(19만 8천명), 보육(14만명), 간병(13만 4천명)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사회복지와 보건의료분야의 부족인력이 54만 9천명으로 전체 부족인력의 60.2%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2001년부터 2005넌 동안 일자리 증가 추이를 산업별로 보면 제조업은 2001년 426만개 일자리에서 2005년 423만개 일자리로 3만개가 줄었고 도소매‧음식‧숙박업은 2001년 588만개에서 2005년 581만개로 7만개의 일자리가 준 반면 건설업(22만개 증)과 금융‧보험‧부동산업(10만개 증), 사업서비스업(39만개 증)은 일자리가 늘어났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일자리 증가속도가 가장 빠른 산업은 사회서비스로서 이 부문의 일자리는 2001년 242만개에서 301만개로 59만개의 일자리가 증가하였다. 이는 사회서비스업의 일자리가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연평균 14만 6천개씩 증가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같은 기간 총일자리수의 연평균 증가량 32만 1천개(총증가량은 2001년 2,157만개 → 2005년 2,286만개로 129만개)의 45.5%에 해당한다. 결국 사회서비스 부문은 일자리가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만큼 일자리가 창출될 여력이 매우 큰 것이다.
사회서비스의 개혁
그러나 현 단계에서 어느 정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서비스의 확충을 계속 일자리 창출과 연결시켜서 정당화할 수는 없다. 사회서비스는 그것이 본래적으로 가진 가치가 있는 것이며 이 가치에 대해 사회가 합의하고 이 가치의 실현을 증진시켜 나갈 때 사회서비스가 올바로 설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서비스의 단순한 확충보다는 사회서비스의 개혁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서비스는 그 공급주체가 대부분 민간기관이며 정부는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민간기관에 대해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그래서 민간기관이 서비스를 공급하지만 완전히 시장화하여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간기관들이 공공성에 대한 의식이 강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편으로 민간기관들은 기관에 대한 재산권 의식은 강하다. 그리하여 재산권 수호의 측면에서는 시장적이며 또 그런 면에서는 정부의 규제에 대해 저항의식이 강하지만, 합리적이라는 의미에서의 시장적이거나 효율적인 성격은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정부에 대해 종속적인 위치에 있지만 이것이 공공성으로 이어져 있지는 않다. 따라서 사회서비스 분야의 민간공급자는 두 가지 방향에서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그 한 가지는 공공성의 강화라는 방향이며 다른 한 가지는 시장적인 의미에서 효율성의 증진이라는 방향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방향의 개혁이 주장되는 근거는 서로 다르다. 공공성 강화는 민간기관에 대한 정부개입의 증대, 혹은 정부에 의한 직접적인 공급, 민간기관의 투명하고 민주적인 운영 등과 연결되며 반면 시장적 효율성의 증진은 기관운영의 효율화, 마켓팅 전략의 도입 등과 연결된다(사실 지금까지 시장적 효율성의 증진은 민간기관 자체에 직접 적용되었다기보다는 사회서비스 전체에 대한 자원배분의 억제를 위한 논리로 동원된 성격이 더 강하다). 이 두 가지 방향의 개혁 중 어느 방향의 개혁이 우위를 점하느냐에 따라 일자리 창출로 정당화되고 있는 사회서비스가 나중에라도 올바로 설 수 있느냐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공공성 강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현재 일자리 창출로 정당화된 사회서비스는 값싼 일자리를 빌미로 낮은 인건비를 들여 값싼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문으로 전락할 우려가 높다. 이런 점에서 지금부터라도 일자리 창출과 함께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전략을 구상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노력이 최대한 경주되어야 한다. 현재 사회서비스 재정의 지방이양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지방이양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를 위해 지방이양의 기회를 최대한 살리려는 노력을 전개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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