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유전자가 보내는 가을편지
월간 복지동향/2006 :
2006/10/11 00:00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깊어가는 가을밤에 오랜만에 김민기의 노래를 들어본다. 맑은 저음, 느린 템포의 기타소리, 끊길 듯 이어지는 소리의 여백을 통해 진하게 가슴으로 파고드는 선율이 한 마디로 죽인다. 불현듯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지만 왠지 머쓱해진다. 편지지, 편지봉투, 우체국, 우표 이런 것들을 갑자기 찾으니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뜬금 없이 누구에게 편지를 써야 할지 막막하다.
요즘도 아파트 우편함에는 매일 같이 우편물이 가득 차 있지만, 고지서, 홍보물, 행사 안내장, 인쇄매체 등이 전부다. 친필로 쓴 편지를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 예전의 편지는 이제 온라인을 타고 이메일, 쪽지, 문자로 전해진다. 너무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다. 편지는 분량이 많을수록 받는 사람의 반가움과 기쁨은 컸다. 그러나 요즘 메일이나 문자의 분량이 길면 외면을 당한다. 편지를 쓰면서 상대방을 떠 올리고, 편지를 부치고 나서도 한 동안 그를 생각한다. 그리고 답장이 올 때까지 기다림은 아름다웠다. 편지를 한번 주고받는 절차가 마무리 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 동안 서로 만나지는 못해도 결국 함께 했던 것이다. 서로의 마음 속에서 말이다.
경이로운 IT 기술의 발달은 인간들의 접촉을 엄청나게 빠르고 빈번하게 만들어주었지만, 그 서정성과 낭만을 죽여버리고 말았다. 소식의 전달 속도와 양을 따진다면 편지는 당연히 경쟁력이 현격하게 떨어진다. 그러나 편지는 진정한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했었다. IT 기술이 발달할지라도 인간의 마음과 정성을 담은 편지가 여전히 쓰인다면 최소한 이 부분의 일자리는 줄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가을이라 그런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잔함이 솟아난다. 역사는 상실과 회복의 변주곡이다. 무엇인가는 끊임없이 사라져가고 또 어떤 것들은 계속 등장한다. 그러나 소멸하는 것은 그 유전자를 남기고 떠난다. 전해진 유전자는 새로운 환경과 만나면서 새롭게 현상된다. 편지 역시 인간들이 감정과 생각을 소통하던 도구였지만 IT 기술의 개발에 힘입어 온라인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계승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소통과 공유라는 유전자는 여전히 살아 있다. 함께 소통하고 공유했던 인간관계와 공동체의 모습을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과제이다. 유전자의 현상화는 우리들의 역사적 과제인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사람들이 유지했던 공동체성은 근대사회로 이행하면서 파괴되었다. 인간의 유전자 속에는 이기적 속성이 들어 있다. 이것은 항상 경쟁을 원하며 적자생존의 가치를 신봉한다. 이기적 유전자는 자신에게 맞는 환경의 창출을 위해 공격적으로 나선다. 그러나 인간의 유전자는 이타적인 속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이기적인 유전자의 부름을 받은 환경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공동체성을 추구하는 이타적인 유전자는 인간의 욕구로서 잠재되어 남아 있다. 이것을 현재의 환경 조건 속에서 현상화하는 것이 사회복지의 역사적 과제이다.
대면적인 인간관계가 지배적이었던 전통사회와 달리 현대사회는 원자화된 익명의 인간들의 사회를 이루고 있다. 개인들은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도착 지점이 없는 선착순 경기와 같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인을 앞서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물려받은 유전자는 끊임없이 더불어 함께 뛰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우리는 억압되어 있는 공동체성의 유전자를 현상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인류는 보험, 부조, 수당, 서비스 등의 방식을 찾아내어 공동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보여 왔다. 세금이나 사회보험료, 기부금 등은 익명의 타인들을 위한 것이다. 타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나 역시 익명의 타인의 범주에 속한다. 익명의 타인들끼리 공동체성을 실현해나가도록 설계된 제도가 바로 사회복지제도이다.
최근 『비전2030』과 국민연금개혁방안을 놓고 첨예하게 부딪치는 이익 집단과 정치 집단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안에 있는 유전자들의 외침과 싸움을 본다. 이제 국회에서 예산 작업이 본격화되면 각자 내 몫을 챙기기 위해 한바탕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예산을 깎아 내리려는 예의 없는 것들이 설칠 것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편지를 받아줄 수 있는 그대가 되어 보자. 그들에게 더불어 살 수 있는 제도로 답장을 해 줄 수 있는 가을이 되기를 빌어 본다. 그리고 예의 없는 것들에게 편지를 써보자. 가난한 이의 생존권은 부자의 재산권보다 앞선다고 말이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오랜만에 김민기의 노래를 들어본다. 맑은 저음, 느린 템포의 기타소리, 끊길 듯 이어지는 소리의 여백을 통해 진하게 가슴으로 파고드는 선율이 한 마디로 죽인다. 불현듯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지만 왠지 머쓱해진다. 편지지, 편지봉투, 우체국, 우표 이런 것들을 갑자기 찾으니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뜬금 없이 누구에게 편지를 써야 할지 막막하다.
요즘도 아파트 우편함에는 매일 같이 우편물이 가득 차 있지만, 고지서, 홍보물, 행사 안내장, 인쇄매체 등이 전부다. 친필로 쓴 편지를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 예전의 편지는 이제 온라인을 타고 이메일, 쪽지, 문자로 전해진다. 너무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다. 편지는 분량이 많을수록 받는 사람의 반가움과 기쁨은 컸다. 그러나 요즘 메일이나 문자의 분량이 길면 외면을 당한다. 편지를 쓰면서 상대방을 떠 올리고, 편지를 부치고 나서도 한 동안 그를 생각한다. 그리고 답장이 올 때까지 기다림은 아름다웠다. 편지를 한번 주고받는 절차가 마무리 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 동안 서로 만나지는 못해도 결국 함께 했던 것이다. 서로의 마음 속에서 말이다.
경이로운 IT 기술의 발달은 인간들의 접촉을 엄청나게 빠르고 빈번하게 만들어주었지만, 그 서정성과 낭만을 죽여버리고 말았다. 소식의 전달 속도와 양을 따진다면 편지는 당연히 경쟁력이 현격하게 떨어진다. 그러나 편지는 진정한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했었다. IT 기술이 발달할지라도 인간의 마음과 정성을 담은 편지가 여전히 쓰인다면 최소한 이 부분의 일자리는 줄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가을이라 그런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잔함이 솟아난다. 역사는 상실과 회복의 변주곡이다. 무엇인가는 끊임없이 사라져가고 또 어떤 것들은 계속 등장한다. 그러나 소멸하는 것은 그 유전자를 남기고 떠난다. 전해진 유전자는 새로운 환경과 만나면서 새롭게 현상된다. 편지 역시 인간들이 감정과 생각을 소통하던 도구였지만 IT 기술의 개발에 힘입어 온라인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계승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소통과 공유라는 유전자는 여전히 살아 있다. 함께 소통하고 공유했던 인간관계와 공동체의 모습을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과제이다. 유전자의 현상화는 우리들의 역사적 과제인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사람들이 유지했던 공동체성은 근대사회로 이행하면서 파괴되었다. 인간의 유전자 속에는 이기적 속성이 들어 있다. 이것은 항상 경쟁을 원하며 적자생존의 가치를 신봉한다. 이기적 유전자는 자신에게 맞는 환경의 창출을 위해 공격적으로 나선다. 그러나 인간의 유전자는 이타적인 속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이기적인 유전자의 부름을 받은 환경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공동체성을 추구하는 이타적인 유전자는 인간의 욕구로서 잠재되어 남아 있다. 이것을 현재의 환경 조건 속에서 현상화하는 것이 사회복지의 역사적 과제이다.
대면적인 인간관계가 지배적이었던 전통사회와 달리 현대사회는 원자화된 익명의 인간들의 사회를 이루고 있다. 개인들은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도착 지점이 없는 선착순 경기와 같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인을 앞서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물려받은 유전자는 끊임없이 더불어 함께 뛰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우리는 억압되어 있는 공동체성의 유전자를 현상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인류는 보험, 부조, 수당, 서비스 등의 방식을 찾아내어 공동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보여 왔다. 세금이나 사회보험료, 기부금 등은 익명의 타인들을 위한 것이다. 타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나 역시 익명의 타인의 범주에 속한다. 익명의 타인들끼리 공동체성을 실현해나가도록 설계된 제도가 바로 사회복지제도이다.
최근 『비전2030』과 국민연금개혁방안을 놓고 첨예하게 부딪치는 이익 집단과 정치 집단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안에 있는 유전자들의 외침과 싸움을 본다. 이제 국회에서 예산 작업이 본격화되면 각자 내 몫을 챙기기 위해 한바탕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예산을 깎아 내리려는 예의 없는 것들이 설칠 것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편지를 받아줄 수 있는 그대가 되어 보자. 그들에게 더불어 살 수 있는 제도로 답장을 해 줄 수 있는 가을이 되기를 빌어 본다. 그리고 예의 없는 것들에게 편지를 써보자. 가난한 이의 생존권은 부자의 재산권보다 앞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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