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도 없이 이어지는 장애인 차별, 야만의 사회

• 사무실을 3층으로 옮기면서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목발을 사용하는 여성노동자에게 “불편 할 테니 1층에서 근무해라”라고 명령하는 직장 상사

• “장애로 일 할 능력이 떨어지니, 보건소장으로 임명하지 않겠다”며 의사임에도 보건소장 재임용 하지 않고, 비장애인 간호사를 보건소장에 임용한 제천시

• “어머니 낼 소풍가는 날인데, 재용이는 오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발달장애를 가졌으니, 반 아이들도 맘 놓고 놀지 못하지만, 재용이도 힘들잖아요”라고 말하는 담임 선생

• 시각장애인이 일터 면접을 보는데, “앞이 안 보여요? 얼마나 안 보여요. 이 글을 한번 큰 소리로 읽어 보세요”라며 한 페이지로 된 문서를 주는 면접관

• 수화통역 없이 조서를 꾸며 성폭력 피해자인 청각장애인이 가해자가 된 경우.

• “우리가 알아봤는데, 시각장애인 당신을 입학시키면 학교 시설비가 7억여원 소요될 것으로 보여, 입학원서 접수도 못하겠다”는 대학

• “내 아들(정신지체인)이, 600원을 훔쳤는데, 특수범죄라며 벌금 300만원으로 약식기소 당했어요”라며 하소연하는 장애인의 부모

장애인차별 사례를 찾기 위해 골몰하지 않아도 됩니다. 위와 같은 사례는 우리 한국 사회 어느 곳에서나 비일비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애인 차별 철폐 깃발을 높이 들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또는 악의적이든 그렇지 않든 가정과 사회에서 나타나는 이런 차별을 법과 제도로 금지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장애인, 시민, 사회단체가 함께 연대하여 2001년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이하 장추련)가 출범했습니다. 2006년 현재 약 70여개 단체와 지역 장추련까지 포함하여 약 200여개 단체가 연대하고 있습니다. 법인과 임의단체, 그리고 지역에 있는 단체들이 모두 참여하고 있습니다. 조직을 만들 때는 크고 오래된 조직, 작고 힘 없는 조직이라는 이유로 나타날 수 있는 차별의 한계들을 줄이고자 5개 영역으로 나누어 조직 정비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조직의 이름으로 법안을 만들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빠짐없이 만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경험한 차별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조문화했습니다. 외국의 입법례를 연구 조사하여 권리구제 수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차별 감수성이 있는 조직형태의 차별시정기구를 명시했습니다. 이렇게 만든 법안으로 전국 각 지역을 순회하며 법안을 수정하였고, 24회에 걸친 공청회와 토론회를 통해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안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2005년 8월 드디어 국회에 민주노동당 노회찬의원을 포함하여 37명의 국회의원 이름으로 입법 발의를 했습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개인적 또는 사회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장애인이 만든 법률이 국회에서 입법의 희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냉기류에 휩싸인 지난 시절, 투쟁은 계속되고

그 장차법(안)이 국회에서 1년 동안 묶여 있습니다. 입법 희망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차별금지법(안)이 국회에 발의됐을 때, 그 때 비로소 병합심리를 하겠다는 국회의원들의 생각이 원인이지요. 특히 지난해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차별시정기구 일원화’ 방침을 밝힌 뒤, 3년 여 동안 법안준비를 하던 보건복지부가 무기한 유보 방침을 밝히면서 장차법 제정은 사실상 냉기류에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당시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을위한공동투쟁단]은 청와대 앞에 천막을 치고 69여 일간 노숙 농성을 했고, 국가인권위원회, 법무부, 보건복지부 등에 면담을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당시에 썼던 면담 요청서만도 한 짐이 될 터이지요.

차별금지법 있어도 별도의 장차법 제정 필요하다

장추련은 3월 28일 차별금지법 토론회가 있던 날, 국가인권위원회 점거 농성을 했습니다. 차별금지법이 있다 하더라도, 생애주기별로 나타나는 다양한 장애인차별을 포괄하기 어려우니, 독립적으로 장차법이 필요함을 인권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밝히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차별시정기구 문제는 지속적으로 토론하자는 제안과 함께요. 농성에 들어가서야 인권위원회와 만남이 이뤄졌고, 급기야 60일 만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 하더라도, 모든 장애인 차별을 담보할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며, 따라서 독립적으로 장차법 제정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혔습니다.

60일 점거 농성, 그 희망의 빛이

인권위원회 농성을 마치고 한 달여가 지난 시점에서 대통령자문기구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가 정부와 장추련이 함께 만나 장차법에 대해 얘기를 나누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만나자는 제안을 해 왔습니다. 장추련은 여러 논쟁은 있었지만, 회의를 통해 이를 수용키로 했습니다. 입법은 국회에서 하지만 정부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을 때는 법제개정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정부 제안을 받기로 한 것이지요. 이름 하여 [장애인차별금지법 민관공동기획단(이하 장차법 기획단)]. 그 첫 번째 모임(8월16일)에 노동부, 재경부, 국무조정실 등 9개 부처가 이례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장추련은 독립적 장차법 제정안 마련을 전제하지 않는 모임이라면, 더 이상 만날 이유가 없다고 처음부터 입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에 쟁점 사항을 중심으로 2~3차례의 모임을 가진 후 장차법 개별 입법 여부를 결정키로 했습니다. 이후 가진 모임에서 정부 부처와 장추련은 팽팽한 입장 차이를 보였습니다. 정부 부처는 노동, 교육, 이동, 의사소통, 재화 용역 등을 포함하여 장애여성, 장애아동 등까지 총 16절에 해당하는 장애인차별금지 조항을 줄이든지, 아니면 권리구제 수단을 축소해야한다는 입장에서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으려 했습니다. 몇 개 부처는 여전히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금지법 안에서 장애인차별을 다뤄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장추련은 장애인차별은 이제 시혜와 동정을 넘어 권리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권리구제 수단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을 설파했습니다. 논쟁점도 많았고, 입장차이가 너무도 큰 점 등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지만, 3회의 모임을 마친 후, 독립적인 장차법 입법을 목표로 장차법 기획단을 운영키로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정치권 공략의 결정체

그리고 정부와 만남을 가지면서 정치권 공략이 필요함에 따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 당대표 면담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지난 8월 25일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면담에서 독립적인 장차법 연내 제정 의지를 밝히며, 핵심적인 쟁점 사항에 관해서는 논의를 통해, 가급적 열린우리당 당론으로 장차법 제정안 발의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한나라당도 9월 4일 고경화 제6정조위원장 면담을 진행했고, 11월 최근에야 장차법안을 만들어 연내에 발의하겠다는 한나라당의 입장을 전해 들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 가동, 그 의미는

장차법 제정 운동 5년, 정부도 국회도 장차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냉기류에 휩싸였던 지난 시절에 비한다면 상승 분위기 일로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추련은 결코 정신을 흐트리지 않습니다.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실효성 있는 장애인 차별 구제 방안 쟁취를 목표로 둬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도 지금까지 5년, 장추련이 힘차게 싸운 결실이지만,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는 것은 정부나 정치권이 언제 또 입장 변화를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또한 한 개의 생활시설에서 27억을 횡령한 성람재단 이사장 문제, 섬 노예의 삶을 살아간 장애인, 장애로 인해 여전히 입학을 거부하는 학교, 중증의 장애를 이유로 공무원 시험 배제 등이 현실 속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한, 이런 차별과 인권침해 나아가 인권유린에 실효성 있는 권리구제 수단을 반드시 쟁취하기 위한 우리의 투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장차법 제정의 최대 걸림돌, 경영계

경총규탄 1인시위 2일째 11월 17일 - 임종혁 장추련상임집행위원장,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소장

이제야 비로소, 정부도 국회도 장차법 만드는데 열정을 보이는데, 경영계가 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기업 부담 때문이라며, 장차법 제정 이전에 장애인의무고용제를 폐지하자는 막말을 하고 있습니다. 경영계의 대표 단체인 경영자총협회는 장차법 제정을 찬성하는 것은 경총 존재 근거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솔직하다 못해 뻔뻔스럽기까지 합니다. 지금까지 이뤄낸 경제발전은 경영자 몇 명의 노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닌,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된 것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부와 권력을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철면피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말로는 불합리한 장애인차별 해소에는 공감하나 장차법 제정은 반대한다는 기만적인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경총을 비롯하여 경제 5단체가 가지는 이 태도는 480만 장애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이고, 장애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장애인은 능력이 없으니, 국가나 사회가 도와주어야 할 대상으로 치부하고 장애인을 노동의 주체로 인정하여 노동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기 보다는 연말에 돈 몇 푼 후원하는 것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했다고 말합니다. ‘사람’으로 존중받길 원하는 장애인의 열망을 무시하고,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만 환산하여 장차법 제정 의의를 평가 절하해 버리는 경영계의 작태에 대해 장애인계는 큰 분노를 하고 있습니다. 전경련 앞 대규모 집회, 경총 점거, 경총 규탄 대회 등을 통해 장차법 제정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경제발전을 통해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경제계는 우리 사회의 장애인 차별 해소 방안에 동의하여 보다 성숙된 사회를 만드는 사회적 책무가 스스로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시민사회계가 연대하는 장차법 제정 운동

장추련의 지난 5년간의 투쟁의 역사가 있었다면, 앞으로 있을 투쟁은 새로운 역사가 될 것입니다. 297명의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독립적인 장차법 지지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67여명의 서명을 받았고 이 추세로 본다면 더욱 늘어날 것 입니다. 그리고 9월에는 부산(9월 19일-화)과 광주(9월 27일-화)에서 10월에는 대전, 11월에는 제주, 대구에서, ‘연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지역 장애인결의대회’가 진행되었습니다. 경제 5단체를 대상으로 기업 부담 운운 말고 건강한 사회 건설을 위해 장차법 제정을 인정하라며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는 12월 6일에는 전경련 앞에서 약 5천명의 장애인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결의대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민사회계의 참여가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11월 27일부터 일주일간 경총 앞 1인 시위에 시민사회계가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12월 4일 세계장애인의 날과 인권주간에는 시민사회계의 장차법 제정 지지 공동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연대하는 단체들은, 녹색연합, 민주노총, 전국민중연대, 빈곤해결을위한사회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인권단체연석회의, 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입니다.

최소한의 절실한 희망,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절실한 희망으로 일컬어집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을 차별한 사람들을 처벌하는데 목적을 두지 않습니다. 장애인 차별이 무엇인지를 알리는 것에 더 큰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애인 차별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을 경우, 차별이 감소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장애인 스스로 이 법을 만들었기에 다양한 장애인 차별이 명시되어 있고, 이는 국민적인 교육 홍보 효과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즉 이 법률을 만든 사람들은 장애인 차별을 판단하고 예방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법률이 가지는 힘은 장애인 차별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차별을 정의하였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기본권 존중이 주요 가치이며, 사회적으로 인권 감수성을 끌어올리는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따라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사회의 ‘공동체적 가치’ 지향과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한 징검다리로서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옥순 /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사무국장
2006/12/11 00:00 2006/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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