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노예제도’로 낙인 찍힌 산업연수생제도를 폐지하기 위한 인권단체들의 노력이 시작된 지 어느덧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2003년 고용허가제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당시에도 산업연수생제도와 고용허가제를 병행 실시하기로 하는 실망스런 방안이 확정되었고, 최근에 와서야 정부는 2007년 1월 부터 연수생제도를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내 놓았다. 그러나 정부는 고용허가제 일원화에 대한 발표를 한 이후 연수생제도하에서 각종 문제를 발생시켰던 이익단체들에게 또 다시 관련 업무를 맡기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인권단체들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현대판 노예제도’인 산업연수생제도

산업연수생제도 운용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심각하기 이를 데 없다. 연수생제도는 첫째, 이주노동자에게 ‘기술연수생’이라는 학생 신분의 체류자격을 부여함으로써 사실상 노동자의 노동권을 박탈하는 노동 착취 제도의 전형을 보였다.

둘째, 송출 비리가 전혀 시정되지 않았다. 송출 브로커들의 난립으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은 막대한 비용을 브로커들에게 지급한 후에 입국해야 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적게는 400만원에서 많게는 1,400만원 가량의 돈을 빌려 브로커에게 주어야 했다. 이는 사실상 인신매매와 다를 바 없는 행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브로커들은 합법적 제도 하에서 별다른 규제 조차 받지 않았다.

셋째, 막대한 돈을 들여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은 짧은 시간 안에 빚을 갚고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임금을 더 많이 주는 회사로 이동하게 되었고, 이는 결국 수많은 이들이 미등록자(소위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2004년 8월 부터 고용허가제를 실시하였는데, 이때 정부가 고용허가제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제시했던 것이 ‘공공성의 원칙’이었다. 중소기업중앙회, 대한건설협회, 농협, 수협 등 민간 대행업자들이 외국 노동 인력의 도입, 관리를 맡아오면서 노동권 보호를 철저히 외면해왔고, 막대한 브로커 비용과 각종 송출 비리가 계속되었기에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투명한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 ‘공공성의 원칙’이었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가 송출 국가 정부와 양해 각서를 체결하여 비리 발생의 여지를 없애고자 했으며, 이들의 한국 입국 후에도 산업인력공단이 관리업무를 맡도록 하였다. 또한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박탈했던 연수생제도의 심각한 문제를 인정하여 고용허가제를 통해 노동3권을 보장하도록 하였다.

특히 산업연수생제도 하에서 중소기업중앙회(이하 ‘중기중앙회’)는 막대한 관리비 수입을 올리면서도 정작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권보호를 외면하여 사실상 산업연수생제도를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중소기업중앙회(당시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2001년 국회 국정감사 당시 연수생 복지 등에 써야 할 수 십 억원의 돈을 전임 회장의 차량(에쿠스 8,400만원)과 콘도미니엄 회원권 구입(8,800만원), 직원 퇴직금 중간 정산(58억원)에 사용한 것이 확인되어 사회적 비난을 받은 바 있다(2001년 12월, 월간 참여사회 게재).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려는 정부

그러나 최근 들어 정부의 고용허가제 정책이 산업연수생제도와 유사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어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산업연수생제도 아래에서 막대한 이익을 누려온 중소기업중앙회, 대한건설협회 등 사업주 단체들이 또 다시 고용허가제 하에서 ‘대행기관’이라는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월 2일, 국무조정실은 이들 사업주 단체들에 대해 과거 송출업체들이 하던 입국 전 모집 선발, 입국 후 취업교육, 사후관리 등을 고용허가제 하에서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안을 발표함으로써 이주노동자들과 인권단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국무조정실은 고용허가제 관리를 위한 대행기관 운영과 관련하여 금년 초부터 7회에 걸쳐 관련부처 실무회의를 진행하였으나, 고용허가제의 도입 취지에 맡는 합리적인 대책을 만들기보다 각 부처와 관련된 민간 이익단체의 이해를 반영하는데만 골몰하였다. 연수생제도의 폐해를 발생시킨 이들이 또 다시 고용허가제 대행기관이 되어 이주노동자 관리를 맡는 것은 생선가게 전문털이 고양이에게 또 다시 생선을 맡기는 것이기에 인권단체들은 지난 9월 13일 <중기중앙회 등 이익집단의 고용허가제 개입 반대 공동투쟁본부>(이하 공투본)를 결성하였고, 국무조정실의 발표 직후인 10월 11일부터 항의 농성에 돌입하였다.

공투본의 규탄 활동이 한창이던 10월 중 국회에서는 국정감사가 진행되었는데, 이를 통해 중기중앙회의 연수생제도 관리 실태가 일부 드러났다. 중기중앙회는 2005년에 93억원을 관리비 명목으로 거두어 들였다. 그러나 관리 실적이라며 중기중앙회가 국회에 제출한 상담지원 내역 462건 중 자그마치 405건이 담당 직원이 아닌 송출회사 직원들에 의해 이루어졌음이 확인되었다. 백억 원 가량의 돈을 벌어들이고도 일은 남에게 맡기는 이들의 작태가 확인된 것이다. 50여 건의 상담 내역 조차도 상당수가 단순 안내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나 ‘일은 하지 않고 돈만 챙긴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또한 중기중앙회는 열린우리당 조정식 의원이 93억원의 구체적인 집행 내역과 사용처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감사 당일까지 제출하지 않았고, 자료 제출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의원에게 담당자는 “민감한 시기라서...”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렇듯 무책임하고 안하무인의 태도를 중기중앙회가 보인 것은 국회에 자료를 제출할 경우 자신들의 부실한 관리 운영 실태가 드러날 것이 우려되고, 이로 인해 고용허가제 대행기관을 맡으려는 자신들의 시도가 허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방침에 의해 중기중앙회 등 이익단체들이 고용허가제로 편입되려 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행정 당국자들이 이주노동자 정책을 얼마나 안이하게 수립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10년 가량 연수생 도입과 관리를 해 왔으니 이들에게 고용허가제 운영도 맡기는게 좋겠다’는 무책임한 탁상행정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연수생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반복하지 않겠다던 정부가 문제의 핵심 주범들에게 또다시 제도 운영을 위탁하겠다는 것이야말로 현 정부의 무능력과 무소신 행정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과거 정경유착의 폐해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에 대해 이주노동자 인권단체들은 크나큰 충격과 분노를 느끼고 있으며, 지금까지 이주노동자들이 왜 한국에서 제대로 된 인권과 노동권을 보호받지 못했는지 다시금 실감하고 있다. 또한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피땀 흘려 일하는 동안 관리 명목으로 수백 억 원대의 돈벌이를 해 온 이들이 어떻게 정부의 감독과 제재를 피해 버젓이 일해왔는지 그 이유를 온몸으로 확인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해야

비리와 인권유린으로 점철되어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과거의 산업연수생제도가 고용허가제라는 이름으로 다시 되살아나려 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주노동자 인권단체들은 정부에 대해 연수생제도의 더러운 찌꺼기를 완전하고 철저하게 제거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과 제도가 더 이상 일부 이익단체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고, 실질적인 노동권보장 정책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이 전면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주노동자 도입 과정에서의 이익단체 개입을 차단하고, 입국 후 공익적 기관들에 의한 취업교육을 통해 이들에게 인권과 노동권을 교육해야 할 것이다. 또한 체류자격 연장, 인권피해 구제 등 이주노동자 관리업무도 민간 이익 단체들이 아닌 산업인력공단, 각 지역 노동사무소 등에게 맡겨 공정한 보호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재 35만 여 명에 이르는 이 땅의 이주노동자들은 노동 집약적 저임금 생산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며 한국경제의 하부를 지탱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업종에서 땀 흘리고 있는 이들은 이제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 받고 차별 없이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 받아야 한다. 이제라도 정부는 고용허가제 대행기관 선정과 관련하여 이익단체들에 대한 이권 배분 시도를 중단하고, 작업장 이동 제한 등 고용허가제의 독소조항 삭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전면 합법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보장을 위한 노동허가제 도입 등 실질적인 노동권 보호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삼열 /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사무국장
2006/12/11 00:00 2006/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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