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간은 사회복지운동, 특히 생존권확보운동(혹은 기초생활수급권확보운동)에 있어서 많은 것을 확인케 해준 기간이었다. 1999년 9월에 제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을 놓고 정부와 사회복지계(혹은 시민단체)간에 엄청난 관점 차이(동상이몽)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우리 사회가 얼마나 허술한 사회인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복지는 정치이자 운동

1999년도 말 2000년도 정부예산을 편성할 때 최종적으로 기초보장예산이 전년도에 비해 4.0% 삭감되었지만 2000년 2월 17일 기초보장법의 시행령.규칙이 입법 예고될 때까지만 해도 기초법제정운동을 벌여왔던 단체들이나 전문가들은 기초보장법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것은 기초법에 최저생활의 보장이 국가의 의무이자 국민의 권리로 분명히 명시되었기 때문에 수급자 자격요건이 완화되어 수급자가 늘어나게 되면 예산은 자동적으로 확보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토대(정신적.물질적)가 변하지 않으면 무늬만 변한다는 사실과 우리사회에 반복지(혹은 신자유주의)의 장벽이 얼마나 두터운가를 확인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진보적인 한 경제학자가 기초법 제정을 두고 했던 말,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말을 심각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많은 반복지주의자들이 우려했던 일은 그렇게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역시 짧은 시간에 제자리(그들이 보기에)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즉, 입법 예고된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대해 정부 부처간 협의 과정 속에서 기초법의 제정목적과 의의는 더 많이 훼손되어져 갔던 것이다. 예전처럼 최저생계비를 정부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재산기준이 강화되어 수급자수가 예상을 훨씬 밑돌았고, 수급자의 근로의욕 유지를 위한 긍정적인 방법(근로소득공제제도)은 연기.축소하였고, 부정적인 방법(조건부 수급: 일 안하면 생계비 안주기)을 적극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2000년 5월 급여신청을 받기 이전에 발표된 수급자 자격요건과 이후 마련된 시행방안을 보고 시민단체 일각에서 "무늬만 기초생활보장법", "부정수급자 방지법", "요보호자 방치법", "가족해체촉진법"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기초법 제정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간에 운동방법과 강도를 놓고 의견이 갈리게 되는데, 한쪽에서는 너무나 어려운 여건에서 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에 10월에 기초법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것만 해도 성공(예전의 생활보호법 보다는 진보적이라는 측면에서)이기 때문에 기초법 반대론자.축소론자들을 자극하거나 그들이 비판할 빌미를 주지 말자는 의견과 다른 한쪽에서는 시행방안이 기초법 제정 목적을 완전 훼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기존의 생활보호나 한시 생보제도보다도 못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함으로서 현재 방치되고 있는 부당탈락자들의 권리를 찾아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결국 5월 초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에 후자의 입장을 취한 수급권운동본부가 설치되게 되고, 이후 수급권 운동은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5월 부터 8월까지는 전국적인 수급권 운동의 시작을 위해 지역의 수급권 운동 모델 개발, 지원, 상담교육에 주력한 시기였다. 수급권운동의 결과인지, 아니면 복지부에서 예정했던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8월 12일 수급자 자격요건의 특례기준을 발표하게 된다. 8월 이후 10월 말까지는 기초법 시행 전후로 있게될 것으로 예상했던 기초법 반대.축소를 주장하는 언론과 학자의 공세에 대한 논리 개발과 대응에 주력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감시민연대를 통한 공익로비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11월과 12월은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통한 제도 개선과 합리적인 최저생계비 결정에 힘을 기울였지만 좌절감을 맛본 시기였다.

결국 지난 일년동안의 수급권 운동을 통해 "복지는 정치이자 운동"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 성과라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 만큼 고통이 더욱 커졌다. 아군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고, 복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규모와 힘이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이 우리들을 좌절케 하고 있다.

"허탈감", "아득함", "절망감" 등이 수급권운동을 벌여 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최근 심정을 표현하고 있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기초법 시행으로 합리성, 효율성 제고

현재 기초법의 시행상황을 보면 법 제정의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혹은 미흡하게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초법은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때 예전의 생활보호법 보다는 진일보한 법임에는 틀림없다.

첫째, 노동능력자가 있는 가구에 대한 최소한의 생계비 지원이

가능하게는 되었다는 점,

둘째, 제도의 합리성, 대상자간의 형평성이 강화되었다는 점,

셋째, 그동안의 주먹구구식 행정에서 비교적 체계적인 행정으로

전환됨으로서 국가 재정의 효율적 사용이 가능해 진 점 등이 그러하다. 따라서 수급권 운동은 기초법 시행을 반대하는 운동이 아니라 법 제정의 취지에 맞게 제도를 운영해서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해 주도록 하는 운동이고, 그러한 것을 정부가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기초법 시행방안이 전과 비교하여 크게 나아지진 않았고, 그 보장수준이 국민 모두의 생존권을 보장하는데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권리보장에는 예산 뒷따라야

정부에서는 기초법이 예전과 달리 노동능력자에게도 생계급여를 지급한다고 자랑하고 있으나 노동능력자는커녕 여전히 아동, 장애인, 노인과 같은 노동무능력자의 최저생활도 보장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면적기준과 같은 재산기준 뿐만 아니라 비합리적인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그와 같은 부당 탈락자가 여전히 대량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렇듯 제도가 왜곡되게 된 것은

첫째, 부정수급자들이 많아질 경우 받게될 책임추궁이 걱정되었

던 복지부,

둘째, 근로의욕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면 최소한의 복지도 낭비

라고 생각하는 경제.예산관련 부처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많은 정부관료는 더 이상 복지에 투여할 예산이 없다고 하고 있고, 혹은 (드러내 놓고 하지는 않지만) 그럴만한 예산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채를 갚는 등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예산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현재 많은 근로무능력자들이 생존권을 보장받고 있지 못한 상황은 "예산을 투여하려는 의지의 부족"으로 인해 생겨난 문제로 보여진다. 물론 그들은 '부정수급자를 예방하기 위해', '소득파악이 잘 안되기 때문에', '근로의욕을 유지시키기 위해(혹은 복지병을 예방하기 위해)',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전통적인 미풍양속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달고 있긴 하지만 사실은 최소한의 복지에 투여하는 예산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또한 그들의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결과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同乘同船(한배를 타고 있다)이데올로기"에 젖어 있다. 즉, 배가 태풍을 만났으니 하루빨리 육지에 정착할 수 있도록 배 안의 모든 물적.정신적 에너지를 육지에 빨리 도착할 수 있는데 쏟아야 한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그들의 논리를 비약하면, 배 안의 사람들이 한쪽에서는 굶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놀고 먹는 현실은 그대로 방치해 두고서, 즉 놀고 먹는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노를 젓도록 하는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예전부터 굶고 있었고 폭풍우를 만나 새롭게 굶게된 사람들을 위해 쓰려고 하는 예산도 아껴서 육지를 빨리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육지는 무엇이고, 그 육지는 언제쯤 도착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 모두가 배를 타고 있다는 것을 가정했다면 사실 언제까지나 우리는 배를 타고 있는 것이지 도착해야 할 육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육지는 그들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경제성장을 위해 예산이 필요하다면 생존권 보장과 삶의 희망을 찾아주기 위해 필요한 예산을 줄이지 말고, 자신의 소득을 숨겨서 결국 국가예산을 축내는 탈세자들을 색출하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일 것이다. 누구를 위한 경제성장이고, 누구를 위한 육지 도착인가를 항상 고려해야만 한다. 결국 소수를 위해 경제성장을 하고, 그 성장을 위해 대다수가 희생되는 방향으로 국가정책이 나아가서는 안 된다. 상황과 판단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국가정책의 방향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同苦同樂 - 나눔과 연대

결국 현 시점에서 복지운동단체에서 해야할 일 중의 하나는 "同乘同船이데올로기"의 확산을 차단하고 "同苦同樂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편을 찾아내고 늘려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제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눈앞에 성과가 바로 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동승동선이데올로기에 젖어 있는 사람들도 쉽게 설득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서 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극우파라고 하더라고 노동무능력자에 대한 최저생활의 보장을 반대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기초법에 의해서 노동능력유무에 상관없이 최저생계비 이하의 모든 가구가 최저생활을 보장받고 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노동무능력자도 최저생활을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우선적으로 '노동무능력자 최저생활보장 운동'을 벌여 나가고, 이를 통해 상당수의 국민이 생존권을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전파하여야 한다. 그들은 피상적으로 현실을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들이 실제 상황을 알게 되면 적어도 생존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역할에 있어서는 우리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빈민 관련 단체들은 실제 상황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을 해 나가야 하고, 국가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공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요보호자를 방치하고 있음으로 인해 사회적 위기가 심각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하여 부각해야만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기초법의 제정과 시행을 통해 우리는 (물질적.정신적) 토대가 변하지 않으면 무늬만 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토대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빈곤문제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실무자와 연구자의 인력 풀을 늘려나가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가상공간상에 활발한 정보제공과 토론의 공간을 마련하여 연구자(사회복지, 경제학 등)와 실무자(공무원, 지역단체 등)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문제 인식의 공유와 대안 마련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이것은 제도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빈곤문제에 대한 전문가를 발굴해내고 양성해 내는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변화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격려, 지지, 유인할 수도 있다.

허선 /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001/02/10 00:00 2001/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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