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8월 15일 DJ는 8ㆍ15 경축사를 통해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소위 ‘생산적 복지’를 펼치겠다고 천명한다. 이어 각 부처는 부랴부랴 생산적 복지에 걸맞는 구체적인 정책사업들을 제시하게 된다. 그러나 1999년 9월에 공개된 정부의 2000년 예산(안)을 분석한 참여연대에서는 DJ의 생산적 복지가 말의 성찬에 그쳤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며 그동안 누적되어온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계기를 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9월 13일 참여연대를 위시하여 민주노춍, 여연, 기초생활보장법제정연대, 사회복지사협회 등 13개 전국규모 단체들이 정부 예산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가지면서 복지예산운동이 점화되게 된다. 그리고 그해 11월 참여연대 자체적으로 작성한 「2000년 복지예산의견서」가 부분적인 예산증액의 성과를 거두에 되었다.

이런 기류를 이어받아 시작된 2000년은 복지예산의 의미있는 진전을 확보하기 위해 시민진영 내에 강고한 기류가 형성되었다. 2000년 1월호 복지동향은 향후 예산운동이 어떤 새로운 발상과 접근법을 지닐 것인가를 이미 예고해 주고 있다. 즉, 1월호 “2000년 복지예산 현황과 평가”에서 세가지로 이를 요약해 주고 있다.

“첫째, 이제 향후 보건복지예산과 관련된 사회적 관심은 예산의 편성단계에서부터 좀더 면밀히 표출되어야 하겠다는 점이다. 정부의 원안이 거의 확정되는 9월이후가 되면 지엽적인 예산조정은 가능하겠지만 예산의 큰 틀에 대한 문제제기 및 변경요구는 거의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점에 유념하여야겠다.

둘째, 이와 관련하여 보건복지예산에 대해 이제 한번쯤 근본적이고 객관적인 자체평가가 이루어져야하겠고, 이제까지 항용하여왔던 대로 전년대비 자연증가방식으로 상투적인 예산책정을 행하던 구태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각예산지출항목에 대한 효율성 검토와 함께 부문별 예산수요를 감안한 합리적인 비중안배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셋째, 국회의 최종 예산 심의과정에 대한 민간감시장치를 강화하는 것이다. 2000년 예산 심의확정단계에서 볼 때 예결특위에서 최종 결정한 예산액 증감에는 어떠한 합리적이고 일관된 기준도 찾기 어렵다. 정부원안에 대한 가장 권위있는 최종 예산심의단계가 어떠한 원칙과 기준도 없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좀더 명확한 감시장치를 발동함으로써 제기능을 다하도록 견인하여야 할 것이다.“

실제로 2000년에 불붙은 참여연대의 예산확보운동은 그 어떤 해보다도 왕성한 상태였다. 다음의 그림은 그같은 사실을 잘 말해 주고 있다.즉, 연간 복지재정확보운동의 시기를 4단계로 구분하여, 복지부대응시기, 예산처 대응시기, 당대응시기, 국회대응시기 등 4단계의 접근대상별 시기구분을 전제로 각기 단계마다 시민사회단체와의 공동대응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투쟁방식 중 그해 9월 1일 국회에 2001년도 사회보장예산안 의견청원서를 제출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이는 국회법 제123조의 규정에 의한 것으로 이미경의원화 심재철의원을 소개의원으로 하여 총 54쪽에 달하는 예산청원서를 제출함으로써 시민사회내 예산확보운동방식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할 수 있다. 이 청원과정에 동참한 시민사회단체는 민노총, 한노총, 여연, 장총 등 모두 10개 단체였다.

출처 : 이태수, “참여연대의 복지재정 확보운동”, 『한국의 사회복지운동』,이영환편, 인간과 복지, p.373-374.

<그림 1> 2000년 예산확보운동의 연간 일정

그해 9월의 복지동향에 실린 “2001년 예산확보운동의 전개과정과 전망”이란 글에서 1999년의 활동성과를 이어받아 “올해야말로 사회보장예산확보운동은 그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한다”한다며 복지재정확보운동의 의의를 몇가지로 정리하여 보여주고 있다.

첫째는 “사회보장예산확보운동은 사회개혁의 추동제 역할”을 행한다는 것이다. 그 배경으로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준비 및 시행과정에서 보이는 것처럼 우리사회의 개혁 저지 세력은 기존의 정책기조를 향한 향수를 떨치지 못한 채, 새로운 사회정책기조를 나타내는 일련의 복지개혁 조짐에 대하여 일정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그 힘을 증폭시키려 하므로 이에 대한 대항 움직임이 결집될 필요성이 있고 이는 사회보장예산을 둘러싸고 가장 첨예한 대립점의 하나를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둘째는 “사회보장의 제부문간 각개운동의 틀을 넘어 사회보장예산운동이라는 큰 틀걸이 아래 결집”한다는 것이다. “노동, 복지, 보건, 여성 등 제분야에서 각개약진 식의 개별 제도 및 예산투쟁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이를 결집할 수 있는 통로가 사회보장예산이며 따라서 부문간 운동을 총합화하고 역량을 극대화하는 의미로 사회보장예산확보운동이 전개되어야 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셋째는, 사회복지예산확보운동이 “이제야말로 한국사회내에 적극적인 사회정책의 구현을 담보할 수 있는 국가정책 상의 획기적 변화를 가져오는 일 계기”로 기능해야 한다고 본다.“ 따지고 보면 현재의 국면은 부분적 성과를 거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종래 국가정책의 파라다임을 바꾸어 사회정책의 진정한 실현을 위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므로 올해 예산확보 운동을 이러한 차원까지 승화시킬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2000년 정부는 생산적 복지를 강조하면서도 여전히 복지재원 확보에는 미진한 자세를 견지하였고, 앞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0. 4. 25 정부에 사회복지관련 20개 핵심사업에 모두 9조 3,307만원의 증액을 요구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적자재정규모를 GDP 대비 2.5%내에서 관리하고 20%이상의 증액사업에 대해서는 철저한 사업성검토를 천명하는 등의 움직임 속에 복지재정의 확대가 순탄치 않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에 2000. 8. 3에는 기획예산처 장관과 복지노동수석이 복지재정확보에 소극적인 점을 고발하고 교체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내기에 이르른다. 9월 국회로 예산안이 제출되기 이전에 정부의 재정확대 의지를 끌어내기 위해 여야 정책위의장 면담, 성명, 집회 등을 주도하던 시민단체는 막상 국회가 본격적인 심의를 하는 가운데 한나당으로부터 선심성인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예산 삭감과 추경편성 반대라는 입장을 접하고는 새로운 또 하나의 투쟁과제를 넘기위한 의지를 불태우기도 하였다.

결국 2000. 12. 27. 헌정사상 유례없는 지리한 공방과 지연 끝에 마침내 100조 2,246억원에 해당하는 2001년도 중앙정부 예산이 통과되었고, 이 와중에 사회복지제도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예산은 일반회계 6조 2,748억원, 특별회계 2,998억원 합계 6조 5,747억원으로 최종 편성되었다. 이는 일반회계 기준으로 전년 대비 18.2%, 특별회계를 포함할 시에는 18.1% 순증한 상태이며 정부 예산 증가율이 5.6%인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또한 IMF 경제위기가 시작되던 해이자 김대중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인 1997년 보건복지부예산이 2조 8천억원이던 것과 비교해보면 실로 4년만에 이 부문 예산이 절대액 기준으로 2배이상 증가한 셈이었다.

복지동향 2001년 1월호에 실린 글에서는 2000년도 예산확보운동을 통해 그간 “시민사회단체가 33개 사회보장관련 중점사업에 10조 4,500억원정도가 배정되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하였던 예산사업의 약 47.8% 정도만이 확보되는 미약한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하면서도 그러나 무엇보다도 “정리해보면, 2000년 한해동안 사회보장예산확보운동과 관련하여 민노총, 한국노총, 여연, 참여연대, 건강연대, 종교사회복지대표자협의회 등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성명서 7차례, 청원 1차례, 의견서 4차례, 방문 3차례, 집회ㆍ간담회ㆍ공청회 각 1회가 이루어졌다는 점만 보더라도 이 운동이 상대적으로 활성화되었었음을 짐작케”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음해인 2001년도 복지예산확보운동은 줄기찬 기세를 드러냈고 복지동향도 이러한 추이를 담아내고 있었다. 특히 2001년의 예산확보 운동방식에는 “시민참여예산제”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 보았다. 즉 시민의 대표들이 참여하여 시민합의제 방식으로 ‘시민이 바라는 복지예산’을 만들어내었다. 이를 위해 3월부터 일종의 대안내각(shadow cabinet)처럼 시민보건복지국을 구성하고 여기에서 전문가가 만든 예산안에 대해 주부, 학생, 회사원 등 12명의 시민대표로 구성된 ‘시민패널’이 격의없는 토론과 심의를 거쳤으며, 이로부터 “시민이 합의한 12대분야 16개 우선사업”, 총 8조 9천억원의 주요예산액을 결정하였다.

그렇지만 2001년도에는 국가채무에 대한 사회적 논란에 심각히 제기되면서 아예 재정건전화를 목적으로 하는 특별법제정시도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연초의 기류로부터 복지예산확보의 치명적인 한계선이 설정될 것을 예감한 참여연대는 2001년 4월호 복지동향에 “현재의 복지재정수준, 과연 충분한 것인가?”라는 제하의 글을 통해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발의한 재정건전화관련법안을 다음과 같이 비교 분석하면서,

<표 1> 2001년 초에 발의한 양당의 재정건전화 관련 법안 비교

출처 : 이태수, “현재의 복지재정수준, 과연 충분한 것인가?”, 복지동향, 제 30호, 2001. 4, p.13.

이 글에서 “양당의 발의 법안은 국가채무 변제에 최우선순위를 둔 것으로서, 만일 이 법안이 통과될 시 향후 10년간은 현재의 재정규모나 그 내적 구성 등이 그대로 고착, 온존됨은 피할 수 없는데 이로 인해 사회보장예산의 획기적 증대를 통한 복지재정 적정화나 국민최저선의 확보를 강력히 요구해온 시민사회단체들의 주장은 정책적 수용가능성 자체가 희박해진다”고 이러한 기류의 확산에 쐐기를 박고 있다.

그해 7월호는 당시의 주요이슈에 대해 대립되는 견해를 통해 논쟁을 유발하는 기획의 일환으로 재정건전화에 대해 성균관대의 안종범교수와 현도사회복지대학의 이태수교수가 논란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 글에서 안교수는 예의 균형재정의 중요성과 복지재정 확충의 자제를 이야기하였고 이교수는 ‘재정건전화’ ≠ ‘균형재정’이라는 부등식을 통해 재정건전화가 문제가 아니라 재정구조의 건전화를 통해 서구복지선진국가들이 복지재정에 대해 압도적인 비중을 할애하는 재정운용방식을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행히 이러한 재정건전화 논란은 입법이 성사되지 않는 것으로 종결되었지만, 이 해에도 2002년 정부 예산(안)이 9월 25일 공개되면서 시민단체는 “신기루로 끝난 ‘생산적 복지’ 정책”이란 성명서를 발표하고 끝내 DJ 정부가 자신의 임기내에 편성하는 예산을 통해 생산적 복지 정책에서나마 주장한 사업들을 반영하지 못하는 점을 신랄히 비판하게 된다.

이어서 그해 11월 12일 2000년에 이어 국회에 의견청원의 형태로 「2002년 사회보장예산안 의견청원서」를 제출하였다. 김홍신, 김태홍의원을 소개의원으로 하여 총 82쪽에 달하며 민노총, 여연, 전국실직노숙자대책종교시민단체협의회 등 7개 단체가 모여 공동청원형태를 취하기도 하였다.

결국 복지동향은 적어도 2000년과 2001년 숨가쁘게 전개된 시민사회단체의 복지재정확충운동을 정리하고 그 지향점을 밝히며 성과를 대내외에 알리며 맥락을 같이한 충실한 대변인 구실을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울러 이때의 복지재정확충운동은 DJ 정부 5년 임기동안 복지부 예산이 2.8배로 증액되며 오늘날까지 지속적인 복지예산 확충의 기류를 형성하는 데에 이바지했다고 자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선진복지재정에 비해 열악한 면모를 근본적으로 탈피하지 못한 현실앞에서 복지재정확보운동의 필요성은 여전히 유효하며 복지동향의 역할 또한 희석되지 않았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
2007/02/11 00:00 2007/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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