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동향을 통해 본 사회복지위원회의 선거투쟁
월간 복지동향/2007 :
2007/02/11 00:00
복지국가 발전에서 선거는 중요한 변수였다. 대표적으로 사회민주당의 장기집권으로 가장 선진적인 복지국가를 건설한 스웨덴의 경우나, 2차 대전 이후 선거를 통해 보수당과 노동당을 계속 교체하면서 복지국가의 길을 걸어온 영국의 경우를 볼 수 있다. 선거는 복지친화적인 정당의 집권을 가능케 하기도 하고, 보수적인 시기에도 최소한 복지후퇴를 견제함으로써 복지국가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해 왔다. 현재 복지국가의 정당간 이념적 차별성이 어느 정도 희석되고 중도 수렴하는 분위기를 보이기도 하지만, 실로 복지국가의 역사는 선거를 빼고 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그동안 벌여온 선거투쟁도 이러한 복지국가의 경험을 이 땅에서 재현하고자 하는 바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선거가 사회정책의 발전과 의미있는 관계를 형성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보다 엄밀하게는 1997년 말 건국 후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실현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의 선거는 독재체제의 극복이 핵심적인 과제로서 민주-반민주 대립구도가 지배적이었다. 2000년 선거에서 시민사회진영이 추진한 낙천낙선운동은 이러한 민주-반민주 구도에 입각한 시민사회의 선거영향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점을 지나 시민사회운동의 선거투쟁은 혼돈과 모색기를 거치고 있다. 어쨋든 오늘날의 상황은 이러한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나아가 민주, 진보를 표방한 진영이 연속 집권에 성공한 이후이기 때문에, 민주-반민주 구도를 넘어서는 진정한 정책선거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복지동향이 처음 발간(1998년 10월) 된 이후 치러진 몇 차례 선거의 밑바탕에는 민주-반민주 구도가 존속하면서, 표면적으로 정책선거를 지향하는 운동적 노력이 경주되는 과도기적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래와 같은 몇 차례 선거 때마다 우리 위원회는 후보자와 소속 정당의 복지공약을 검증하고, 우리가 개발한 정책대안을 이들이 수용하도록 여러 가지 형태의 선거캠페인을 열심히 추진하였다. 이러한 노력들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복지동향 기사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그 의미와 남은 과제를 평가하는 것이 본 고의 목적이다.
2000년 4월, 제 16대 국회의원 총선거
2002년 6월 지방자치 선거
2002년 12월 제 16대 대통령 선거
2004년 4월 제 17대 국회의원 총선거
2006년 5월. 지방자치 선거
우선 복지동향이 처음으로 다루었던 선거는 2000년 4월의 16대 총선이었는데, 이 당시 우리 위원회의 선거투쟁은 2002년에 본격화된 선거투쟁의 원형을 제공하였다(복지동향 2000년 4월, 19호 참조). 사회복지위원회는 각 당(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자민련, 민주국민당, 민주노동당) 선대위 정책실에 질의서를 배포하고 그 응답과 공약관련 문건들을 수집하여 분야별로 분석, 그 결과를 게재하였다. 질의서는 합당한 복지예산수준과 확보방법, 빈곤의 심각성과 대응책, 복지부장관 부총리승격 건, 4대 사회보험통합, 의료보험재정안정대책 등의 이슈에 대한 것이었다. 분야별 복지공약 평가 다음과 같이 나누어 집필하였다: 허선(빈곤), 김창엽(보건의료), 김연명(사회보험), 이태수(아동, 청소년), 김용득(장애인), 김형수(노인복지정책). 이와 더불어 보다 적극적으로, 16대 국회가 수행해야할 복지정책과제들-기초보장제도 시행, 4대보험 관리운영체계 통합 등-을 사회복지위원회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필자는 당시 각 당의 복지공약을 총괄적으로 평가하면서, 공약내용이 미흡하고, 정책정당으로서의 면모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정당간 차이도 집권당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공약을 제시하는 등 양적인 차이에 불과하다고 분석하였다.
본격적인 선거투쟁이 벌어졌던 2002년은 필자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에 재임하였던 시기인데, 6월 지방선거와 12월 대선이 겹치는 선거의 해이면서, 2000년 낙천낙선운동의 성공을 이어가야 하는 과제와 기대 때문에 유난히 부담이 많았던 해였다. 여당과 야당의 대선후보를 국민경선방식으로 선출하기로 하면서 선거의 열기가 연초부터 고조되었다. 6월의 지방선거는 모처럼 단체장과 지방의원 모두를 뽑는 큰 규모로 진행되었고, 12월 대선의 전초전이라는 의미가 가중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한편으로, 월드컵의 감동과 환희,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미군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이 희비의 쌍곡선을 그으면서 연말 대선까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행한 2002년의 선거투쟁은 이전의 경험을 계승하면서, 선거국면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연초부터 연중기획 형태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복지동향 2월호는 「복지대통령 만들기」라는 독자들의 바램 특집을 실으면서 양대 선거가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신장의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피력하였다(편집인 이인재). 이와 함께 차기 대통령이 수행해야 할 복지정책 과제에 대한 연중기획 연재도 시작하였는데,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와 전국민 사회보험의 실현(김연명), 보육의 공공성(김종해), 전달체계개선(이재완), 장애인복지(김용득), 사회복지시설 확대와 운영의 합리화(심재호) 등의 이슈로 이어졌다. 복지동향을 중심으로 전개된 선거투쟁은 정책과제 연중기획과 특집, 심층분석 등의 형태로 주로 다루었지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복지민심을 대변하는 압축적 표현들은 칼럼이나 편집인의 글 등에서 보다 용이하게 찾아볼 수 있다.
4월, 5월을 지나면서 여야 대선후보들이 국민경선방식을 거쳐 명멸하는 정치드라마를 보는 재미에 국민들은 푹 빠졌지만, 우리 복지동향 편집인들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정책노선의 신선한 날카로움은 커녕 해묵은 ‘음모’니 지역감정이 왠말인가... 역사적 과제인 남북화해, 재벌개혁, 복지확충 등이 의제로 등장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꿈도 한참 허황된 꿈일까(4월호, 김창엽)”, “한번도 제대로 된 정책대결을 해본 적이 없는데다, 벌써부터 가당치도 않은 이상하고도 공허한 색깔 논쟁으로 갈 기미....아직 모양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복지정책이 도마 위에 오를 중요한 품목임은 물론...(5월호, 김창엽)" 같은 한탄을 볼 수 있다.
대선을 목전에 둔 11월에도 “후보들간의 정책대결이 이루어지리라는 순진한 희망은 사라졌고, 병역비리, 대북지원설 등과 관련된 무책임한 폭로가 계속되고 있다...심지어 특정후보의 출생비밀을 운운하는 인신공격의 단계까지 접어들고... (정홍원)” 있는 실망스러운 선거분위기를 한탄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고집스럽게 정책대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후보들의 사회복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려 노력....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를 생각하며 희망을 잃지 말아야 ... (정홍원)” 한다는 생각으로, 사회복지위원회는 꿋꿋하게 각 당 후보들에게 질의서를 배포하고, 공약분석에 들어갔다.
이 때 각 당 후보는 권영길, 노무현, 이회창, 정몽준이었다. 질의는 총론과 각론으로 나누었고, 총론질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입장, 사회보험개혁문제, 복지예산확보, 문제로 압축하여 답변서를 받아 게재하였다. 그 외 각론적인 질의에 대한 답변은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하여 제시하였다. 12월호에서는 심층분석으로 대선후보들의 분야별 사회복지공약을 점검하였다- 기초생활(허선), 건강보험과 연금(정홍원), 보건의료(우석균), 보육(김종해), 주거(남원석), 장애인(장애인단체대선연대).
이러한 노력의 결과였는지, “이전 선거에 비해서 정파에 관계없이 복지에 대한 정책이 풍부해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어찌 복지동향이 그 공을 가질까마는,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12월호, 편집인, 김창엽)”라는 고무적인 평가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어쨌든 친복지적 후보의 당선으로 한숨 돌리고, 새정부 정책과제까지 제시(2003년 1월호)하는 것으로 2002년 선거투쟁을 마무리하였다. 당시 몇 가지 평가를 인용해보자. 먼저 김종해 교수는 권두칼럼에서, 노무현 당선자의 공약은 친 사회복지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위험과 기회는 동시에 존재하므로 전 정권에서의 실수를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고, 이인재 교수는 편집인의 글에서, 사회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보건복지 분야 개혁은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 되었음을 확인한 선거였지만, 공약이 정책의제화되고 집행될 때까지 시민사회의 요구와 감시활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산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였다.
필자 역시 다음과 같은 총괄평가를 남겼다. 즉, 명색이 여당인 후보가 조직과 자금에서 열세였던 것도 드문 일이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후보가 온갖 악재를 극복하고 극적으로 당선되었던 것이 특이하고, 그만큼 선거에서 권력과 금력이 힘을 잃었고, 고질적인 지역간 대랍구도, 소위 북풍의 영향력, 안보주의, 미국의 영향력, 거대언론의 부정적 영향력 등도 사라지거나 최소화되는 발전을 볼 수 있었다. 나아가 국민경선방식은 정당민주화의 불씨를 살려내었고, 민주노동당의 부상은 진보정당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TV 토론의 활성화로 정책선거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도 상당히 고무적인 변화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전과 더불어 복지분야에서 정책선거의 가능성을 얼마나 보여주었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이다. 우선 각 후보자들이 복지확대에는 이구동성이었지만, 각자의 이념적 노선에 따른 일관된 정책개발로는 나가지 못했다는 한계가 여전히 존재하였다. 다만, 기초보장제도나 사회보험 재정안정 문제 등 구체적인 이슈들에서 이념적 차이가 조금씩 나타나는 양상이었다. 전반적으로 사회복지문제가 아직 핵심적인 선거이슈로 부각되기는 어려웠고, 시민운동의 운동도 미흡했으며, 운동방식도 반성의 여지가 크다고 평가하였다.
이와 같이 2002년은 월드컵과 대선 드라마를 통해 우리 사회의 합리성을 한 단계 높인 의미있는 한 해였지만, 정책정당들이 본격적으로 경쟁하는 정치문화로 발전하지는 못하였고, 복지이슈가 부각되는 데에도 한계가 분명하였다. 이러한 한계는 2004년도 17대 총선 때에도 별로 개선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난다.
17대 총선에 즈음하여 김연명(2004년 3월호)은,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정당의 공약이 95% 동일하며, 누가 누구 것을 베꼈는지 모를 정도라고 주장하였다. 우리나라만 유독 정치노선에 따른 복지정책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선거국면에서 시민운동은 정당의 정책을 평가하기 보다는 이러저러한 정책을 제시하면서 수용을 촉구하는 방식에 치중해 왔다. 물론 이러한 방식의 성과가 상당했지만, 이념 노선에 따른 정책평가의 부담(편가르기)을 회피해온 것이라는 자성도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17대 총선 과정에서도 우리 위원회는 이전과 유사한 활동을 전개하였지만(2004년 3월호 참조), 실망스러운 점은, 당시 탄핵국면임을 감안하더라도, 선거 30일 전까지도 민노당을 제외하고 정당들의 공약발표가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질의서를 발송하고, 그 회신을 가지고 평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공약개발을 담당하는 부서/기구를 찾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고, 담당자가 바뀌면 공약도 바뀌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념적 차별성에 근거한 정책정당의 확립은 고사하고, 선거만이라도 정책선거의 면모를 갖추는 것이 요원함을 반증하는 것이었다(4월호). 하지만, 공약의 내용들이 16대 보다는 발전적이라는 평가, 그리고 진보정당의 존재가 정당간 차별성을 가져오기 시작했다는 것이 희망이라고 지적되었다.
이상의 서술은 국회의원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중심으로 하였지만, 그동안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도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다. 2002년과 2006년의 지방선거에서 복지동향 특집으로(5월호), 지방차원의 복지공약 모델을 제시하는 외에, 각 지역의 모범적 복지운동의 사례를 소개하고, 지방선거와 관련한 지역복지운동가들의 의견도 제시하는 등 지역복지운동의 선거투쟁에 일조했다고 자평할 수 있다. 오늘날 전국 각지의 지역복지운동체들은 선거 때마다 후보자검증, 공약분석, 공약요구, 토론회 개최 등의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2007년 또 다시 대선의 해이다. 2002년 대선 때(12월) 복지동향 50호가 지나갔는데, 이제 100호를 맞게 되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선거를 겪으면서 이러 저러한 성취가 있었지만, 선거문화의 근본적 개선, 그리고 복지세상을 향한 큰 진전을 실감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좌절하거나 냉소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그 동안의 선거투쟁 경험을 밑거름으로, 보다 포괄적인 사회정책 선거투쟁을 리드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창출하기 위해 매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선거가 사회정책의 발전과 의미있는 관계를 형성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보다 엄밀하게는 1997년 말 건국 후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실현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의 선거는 독재체제의 극복이 핵심적인 과제로서 민주-반민주 대립구도가 지배적이었다. 2000년 선거에서 시민사회진영이 추진한 낙천낙선운동은 이러한 민주-반민주 구도에 입각한 시민사회의 선거영향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점을 지나 시민사회운동의 선거투쟁은 혼돈과 모색기를 거치고 있다. 어쨋든 오늘날의 상황은 이러한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나아가 민주, 진보를 표방한 진영이 연속 집권에 성공한 이후이기 때문에, 민주-반민주 구도를 넘어서는 진정한 정책선거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복지동향이 처음 발간(1998년 10월) 된 이후 치러진 몇 차례 선거의 밑바탕에는 민주-반민주 구도가 존속하면서, 표면적으로 정책선거를 지향하는 운동적 노력이 경주되는 과도기적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래와 같은 몇 차례 선거 때마다 우리 위원회는 후보자와 소속 정당의 복지공약을 검증하고, 우리가 개발한 정책대안을 이들이 수용하도록 여러 가지 형태의 선거캠페인을 열심히 추진하였다. 이러한 노력들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복지동향 기사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그 의미와 남은 과제를 평가하는 것이 본 고의 목적이다.
2000년 4월, 제 16대 국회의원 총선거
2002년 6월 지방자치 선거
2002년 12월 제 16대 대통령 선거
2004년 4월 제 17대 국회의원 총선거
2006년 5월. 지방자치 선거
우선 복지동향이 처음으로 다루었던 선거는 2000년 4월의 16대 총선이었는데, 이 당시 우리 위원회의 선거투쟁은 2002년에 본격화된 선거투쟁의 원형을 제공하였다(복지동향 2000년 4월, 19호 참조). 사회복지위원회는 각 당(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자민련, 민주국민당, 민주노동당) 선대위 정책실에 질의서를 배포하고 그 응답과 공약관련 문건들을 수집하여 분야별로 분석, 그 결과를 게재하였다. 질의서는 합당한 복지예산수준과 확보방법, 빈곤의 심각성과 대응책, 복지부장관 부총리승격 건, 4대 사회보험통합, 의료보험재정안정대책 등의 이슈에 대한 것이었다. 분야별 복지공약 평가 다음과 같이 나누어 집필하였다: 허선(빈곤), 김창엽(보건의료), 김연명(사회보험), 이태수(아동, 청소년), 김용득(장애인), 김형수(노인복지정책). 이와 더불어 보다 적극적으로, 16대 국회가 수행해야할 복지정책과제들-기초보장제도 시행, 4대보험 관리운영체계 통합 등-을 사회복지위원회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필자는 당시 각 당의 복지공약을 총괄적으로 평가하면서, 공약내용이 미흡하고, 정책정당으로서의 면모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정당간 차이도 집권당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공약을 제시하는 등 양적인 차이에 불과하다고 분석하였다.
본격적인 선거투쟁이 벌어졌던 2002년은 필자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에 재임하였던 시기인데, 6월 지방선거와 12월 대선이 겹치는 선거의 해이면서, 2000년 낙천낙선운동의 성공을 이어가야 하는 과제와 기대 때문에 유난히 부담이 많았던 해였다. 여당과 야당의 대선후보를 국민경선방식으로 선출하기로 하면서 선거의 열기가 연초부터 고조되었다. 6월의 지방선거는 모처럼 단체장과 지방의원 모두를 뽑는 큰 규모로 진행되었고, 12월 대선의 전초전이라는 의미가 가중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한편으로, 월드컵의 감동과 환희,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미군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이 희비의 쌍곡선을 그으면서 연말 대선까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행한 2002년의 선거투쟁은 이전의 경험을 계승하면서, 선거국면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연초부터 연중기획 형태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복지동향 2월호는 「복지대통령 만들기」라는 독자들의 바램 특집을 실으면서 양대 선거가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신장의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피력하였다(편집인 이인재). 이와 함께 차기 대통령이 수행해야 할 복지정책 과제에 대한 연중기획 연재도 시작하였는데,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와 전국민 사회보험의 실현(김연명), 보육의 공공성(김종해), 전달체계개선(이재완), 장애인복지(김용득), 사회복지시설 확대와 운영의 합리화(심재호) 등의 이슈로 이어졌다. 복지동향을 중심으로 전개된 선거투쟁은 정책과제 연중기획과 특집, 심층분석 등의 형태로 주로 다루었지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복지민심을 대변하는 압축적 표현들은 칼럼이나 편집인의 글 등에서 보다 용이하게 찾아볼 수 있다.
4월, 5월을 지나면서 여야 대선후보들이 국민경선방식을 거쳐 명멸하는 정치드라마를 보는 재미에 국민들은 푹 빠졌지만, 우리 복지동향 편집인들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정책노선의 신선한 날카로움은 커녕 해묵은 ‘음모’니 지역감정이 왠말인가... 역사적 과제인 남북화해, 재벌개혁, 복지확충 등이 의제로 등장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꿈도 한참 허황된 꿈일까(4월호, 김창엽)”, “한번도 제대로 된 정책대결을 해본 적이 없는데다, 벌써부터 가당치도 않은 이상하고도 공허한 색깔 논쟁으로 갈 기미....아직 모양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복지정책이 도마 위에 오를 중요한 품목임은 물론...(5월호, 김창엽)" 같은 한탄을 볼 수 있다.
대선을 목전에 둔 11월에도 “후보들간의 정책대결이 이루어지리라는 순진한 희망은 사라졌고, 병역비리, 대북지원설 등과 관련된 무책임한 폭로가 계속되고 있다...심지어 특정후보의 출생비밀을 운운하는 인신공격의 단계까지 접어들고... (정홍원)” 있는 실망스러운 선거분위기를 한탄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고집스럽게 정책대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후보들의 사회복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려 노력....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를 생각하며 희망을 잃지 말아야 ... (정홍원)” 한다는 생각으로, 사회복지위원회는 꿋꿋하게 각 당 후보들에게 질의서를 배포하고, 공약분석에 들어갔다.
이 때 각 당 후보는 권영길, 노무현, 이회창, 정몽준이었다. 질의는 총론과 각론으로 나누었고, 총론질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입장, 사회보험개혁문제, 복지예산확보, 문제로 압축하여 답변서를 받아 게재하였다. 그 외 각론적인 질의에 대한 답변은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하여 제시하였다. 12월호에서는 심층분석으로 대선후보들의 분야별 사회복지공약을 점검하였다- 기초생활(허선), 건강보험과 연금(정홍원), 보건의료(우석균), 보육(김종해), 주거(남원석), 장애인(장애인단체대선연대).
이러한 노력의 결과였는지, “이전 선거에 비해서 정파에 관계없이 복지에 대한 정책이 풍부해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어찌 복지동향이 그 공을 가질까마는,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12월호, 편집인, 김창엽)”라는 고무적인 평가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어쨌든 친복지적 후보의 당선으로 한숨 돌리고, 새정부 정책과제까지 제시(2003년 1월호)하는 것으로 2002년 선거투쟁을 마무리하였다. 당시 몇 가지 평가를 인용해보자. 먼저 김종해 교수는 권두칼럼에서, 노무현 당선자의 공약은 친 사회복지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위험과 기회는 동시에 존재하므로 전 정권에서의 실수를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고, 이인재 교수는 편집인의 글에서, 사회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보건복지 분야 개혁은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 되었음을 확인한 선거였지만, 공약이 정책의제화되고 집행될 때까지 시민사회의 요구와 감시활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산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였다.
필자 역시 다음과 같은 총괄평가를 남겼다. 즉, 명색이 여당인 후보가 조직과 자금에서 열세였던 것도 드문 일이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후보가 온갖 악재를 극복하고 극적으로 당선되었던 것이 특이하고, 그만큼 선거에서 권력과 금력이 힘을 잃었고, 고질적인 지역간 대랍구도, 소위 북풍의 영향력, 안보주의, 미국의 영향력, 거대언론의 부정적 영향력 등도 사라지거나 최소화되는 발전을 볼 수 있었다. 나아가 국민경선방식은 정당민주화의 불씨를 살려내었고, 민주노동당의 부상은 진보정당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TV 토론의 활성화로 정책선거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도 상당히 고무적인 변화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전과 더불어 복지분야에서 정책선거의 가능성을 얼마나 보여주었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이다. 우선 각 후보자들이 복지확대에는 이구동성이었지만, 각자의 이념적 노선에 따른 일관된 정책개발로는 나가지 못했다는 한계가 여전히 존재하였다. 다만, 기초보장제도나 사회보험 재정안정 문제 등 구체적인 이슈들에서 이념적 차이가 조금씩 나타나는 양상이었다. 전반적으로 사회복지문제가 아직 핵심적인 선거이슈로 부각되기는 어려웠고, 시민운동의 운동도 미흡했으며, 운동방식도 반성의 여지가 크다고 평가하였다.
이와 같이 2002년은 월드컵과 대선 드라마를 통해 우리 사회의 합리성을 한 단계 높인 의미있는 한 해였지만, 정책정당들이 본격적으로 경쟁하는 정치문화로 발전하지는 못하였고, 복지이슈가 부각되는 데에도 한계가 분명하였다. 이러한 한계는 2004년도 17대 총선 때에도 별로 개선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난다.
17대 총선에 즈음하여 김연명(2004년 3월호)은,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정당의 공약이 95% 동일하며, 누가 누구 것을 베꼈는지 모를 정도라고 주장하였다. 우리나라만 유독 정치노선에 따른 복지정책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선거국면에서 시민운동은 정당의 정책을 평가하기 보다는 이러저러한 정책을 제시하면서 수용을 촉구하는 방식에 치중해 왔다. 물론 이러한 방식의 성과가 상당했지만, 이념 노선에 따른 정책평가의 부담(편가르기)을 회피해온 것이라는 자성도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17대 총선 과정에서도 우리 위원회는 이전과 유사한 활동을 전개하였지만(2004년 3월호 참조), 실망스러운 점은, 당시 탄핵국면임을 감안하더라도, 선거 30일 전까지도 민노당을 제외하고 정당들의 공약발표가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질의서를 발송하고, 그 회신을 가지고 평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공약개발을 담당하는 부서/기구를 찾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고, 담당자가 바뀌면 공약도 바뀌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념적 차별성에 근거한 정책정당의 확립은 고사하고, 선거만이라도 정책선거의 면모를 갖추는 것이 요원함을 반증하는 것이었다(4월호). 하지만, 공약의 내용들이 16대 보다는 발전적이라는 평가, 그리고 진보정당의 존재가 정당간 차별성을 가져오기 시작했다는 것이 희망이라고 지적되었다.
이상의 서술은 국회의원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중심으로 하였지만, 그동안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도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다. 2002년과 2006년의 지방선거에서 복지동향 특집으로(5월호), 지방차원의 복지공약 모델을 제시하는 외에, 각 지역의 모범적 복지운동의 사례를 소개하고, 지방선거와 관련한 지역복지운동가들의 의견도 제시하는 등 지역복지운동의 선거투쟁에 일조했다고 자평할 수 있다. 오늘날 전국 각지의 지역복지운동체들은 선거 때마다 후보자검증, 공약분석, 공약요구, 토론회 개최 등의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2007년 또 다시 대선의 해이다. 2002년 대선 때(12월) 복지동향 50호가 지나갔는데, 이제 100호를 맞게 되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선거를 겪으면서 이러 저러한 성취가 있었지만, 선거문화의 근본적 개선, 그리고 복지세상을 향한 큰 진전을 실감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좌절하거나 냉소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그 동안의 선거투쟁 경험을 밑거름으로, 보다 포괄적인 사회정책 선거투쟁을 리드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창출하기 위해 매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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