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동향”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이야기 하다
월간 복지동향/2007 :
2007/02/11 00:00
복지동향 100호를 맞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들을 만나, 98년이후 한국 사회의 주요 복지계 이슈와 정책 흐름을 반추해보았다. 또한, 복지동향에 대한 기대와 요구를 이야기 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사회자 : 이인재 복지동향 편집위원장
참석자 :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확과
김종해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백종만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윤찬영 전주대 사회복지학과
이영환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정리 : 차은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welfare@pspd.org
이인재: 1994년부터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위원회 출범과 동시에 복지동향이 만들어 진 것은 아니고, 1998년 5,6,7월 창간 준비호를 만든이후에 1998년10월부터 복지동향이 정식으로 창간되었습니다. 당시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은 백종만 선생님이셨고 이영환 선생님이 편집위원장 이셨습니다. 창간당시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으로 좌담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백종만 선생님 말씀 부탁드립니다.
백종만: 복지동향이 벌써 100호를 맞이한다고 하니 거의 10년 가까이 발행되어 왔군요. 사회복지위원회가 1994년 9월 창립되어 국민생활최저선 확보운동을 3년정도 하면서 성과를 가졌었습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운동이 시작되었으며, 시민들의 복지에 대한 전근대적인 인식을 넘어서서 새로운 권리 인식이 기초법 제정의 동력이 되었다고 봅니다. 복지에 대한 기본적 권리를 확보하는데 전문가들의 참여, 시민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복지에 대한 이슈를 제공하고 권리인식을 향상시키는 매체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복지동향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인재: 이영환 초대 편집위원장님도 한말씀 해주십시오.
이영환: 저는 창간준비호가 나오고 나서 담당 편집장으로 선출되어서 복지동향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백종만 선생님이 의미를 잘 말씀해 주셨지만, 저는 소박하게 의미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활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복지정책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는데, 소수만 접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정보들이 많았습니다. 이를 후학과 일반 시민과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봅니다. 좀 더 욕심을 내어본다면, 사회복지 정책 개혁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러한 힘을 모아내는 매개체를 만드는 것이었고 이러한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봅니다. 독자층이 증가했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출판에 돈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초기 출판사로 활동해 주었던 나남 출판의 공헌에 의해 가능했습니다. 초기 나남 출판사가 무상으로 출판해 주는것에 합의를 해주었고 이것을 계기로 돈이 개입되지 않는 잡지를 만들자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필자에게도 원고료를 주지 않고 6개월간 잡지를 보냈습니다. 즉, 출판사와 필자간에 돈이 개입되지 않는 잡지라는 의미에서 뜻이 있습니다.
조흥식: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시민운동 후속세대를 양성한다는 차원에서 사회복지학교를 3회까지 개최하고 더 이상 진행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계승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복지동향이 이러한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한 면도 있습니다.
이인재: 1994년부터 사회복지위원회에서 활동하신 두분이 더 계십니다. 윤찬영, 김연명 선생님이 창간 멤버이신데요. 더 붙이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으시면 해주십시오.
윤찬영: 참여연대 활동시작시 각 부서가 명확하게 나누어지지 않았고 사회복지위원회가 활발하게 운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1994년 10월, 11월 노령수당과 국민연금 등 4가지를 가지고 공익소송운동을 하고 이어서 입법청원운동을 했습니다. 1997년에 이에 대한 판결이 나오게 됩니다. 국민연금소송도, 공공자금관리기금법도 모두 위헌으로 나옵니다. 법률심판제청에 걸려서 노령수당건은 우리가 승소합니다. 생활보호대상자 생계보호 위헌소송이 1997년에 판결이 나옵니다. 사회복지학교도 후속세대 양성의 의미도 있지만 참여자를 보면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을 시민사회에 공유하는 대중화작업을 한 것입니다. 김연명 선생님은 연금관련 대중소송 작업을 하면서 알겠지만, 일반대중은 물론 타 영역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노동계조차 사회복지,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개념이나 인식이 워낙 떨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가 주장해봤자 제대로 설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인식의 지평을 확대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져 있었고 50년만에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여러 가지 정치적 민주화 뿐만 아니고 사회복지분야 개혁을 포함하는 기류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복지 지평을 시민과 함께 넓혀보자는 내부적인 인식의 공유가 복지동향이라는 잡지의 탄생 배경이 되었다고 봅니다.
이인재: 여러 선생님이 말씀해 주시니 사회복지위원회가 왜 복지동향을 만들었는지 정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활동에 대한 정보공유뿐 아니라 당시 시민사회와 인식을 공유하고 소통을 확대하기 위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출판사의 무료봉사도 잡지가 만들어 지는데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출간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 진 계기로 사회복지위원회의 기초생활보장운동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성격을 가진 잡지의 평가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복지동향의 역할은 보통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요. 하나는 일반시민이나 활동가들이 복지동향을 보고 사회복지계에 최근 어떤 이슈들이 쟁점화 되어 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발행의 주체인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활동을 대변하는 기관지의 성격도 지니고 있습니다. 99호까지 창간 때의 의도를 중심으로 평가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김연명: 당시 사회복지범주로 묶을수 있는 진보적이고 소규모적인 사회운동이 나타났지만,
서로 뭐하는지 모르겠다 해서 동향을 엮어보는 역할이 필요했고 개인적인 생각으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잡지가 없어서 복지동향이 그러한 역할을 해주었으면 했습니다. 창간호 3호까지 만들었을때는 이것이 성공할지 의문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말자는 말도 많았는데 이렇게 시작해서 100호까지 왔으니 일단 성공을 했다고 봅니다. 기관지 역할로 복지동향은 충분히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봅니다. 관련해서 진보적인 관점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 평가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역할에서는 충실히 역할을 해왔다고 봅니다. 사회복지계 동향을 진보적인 입장에서 해석하고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하는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논문에도 인용이 많이 되었고요.
이인재: 김종해 선생님은 현재 위원장으로서 어떻게 보시는 지요?
김종해: 제가 임기를 맡은 것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두 번째 10년 초기입니다. 저는 지금 지나간 성과만을 팔아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하는 반성이 듭니다. 잘해왔지만 최근에 들어오면서 우리 위원회가 정체기에 들면서 복지동향도 그러한 성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관지로서 복지동향 내용을 생각한다면, 좌표 제시라는 역할이 중요한데 최근에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기 위한 연간 시리즈를 담은 기획물을 통해 앞으로의 10년을 제시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을 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체적인 평가로는 성공을 했지만 그러한 측면에서는 아직은 부족하다고 봅니다. 새로운 방향을 고민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조흥식: 초반 복지동향은 특집과 포커스로 되어있습니다. 특집이라는 것은 동향에 대한 내용이 있을것이고 포커스는 기관지적 성격이 나타나겠지요? 후반으로 갈수록 포커스는 그대로 있는데 특집은 심층분석으로 변화하면서 내용을 더 깊이 있게 담은 것으로 봅니다. 김종해 선생님의 말씀대로 초반에는 최저생계비와 같은 큰 내용으로 5~6년을 내다보는 큰 그림이 있었는데 민주화가 되면서 복지계가 너무 일반화되면서, 복지의 특수성이 약화되고 특징이 없어졌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앞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인거 같습니다.
이인재: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뿐만 아니라 장기간 편집위원장을 맡아주셨던 이영환 선생님도 한말씀 해주십시오.
이영환: 잡지를 실제로 만들때는 정보지기능과 기관지기능이 다 필요하면서도 갈등관계에 있었다고 봅니다. 그동안에 개략적으로 보면 사회복지위원회 활동을 대변하는 기능이 우세하고 정보쪽기능이 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운동단체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개혁적인 아젠다를 선도해 나가고 보완해 나가는 역할을 해야했기 때문에 이렇게 가야하지 않았나 합니다. 앞으로 이러한 두가지 역할의 갈등관계에서 보완적인 관계로 어떻게 가야할 것인가 하는 점이 고민이라고 봅니다. 한가지 더 짚을 것은 이를 통해서 사회적인 진보세력을 모아 내는데는 크게 성공했다고 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진보적인 세력의 공론의 자리역할은 꽤 해왔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인재: 윤찬영 선생님 방송인으로서 보는 평가는 어떠신지요? (웃음)
윤찬영: 방송 뿐아니라 열린전북이라는 월간대안 매체,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웃음)
사회복지위원회가 10년을 넘기면서 중간에 소강상태에 있으면서 복지동향도 비슷한 상태였다고 봅니다. 복지동향의 글을 쓰고 편집에 관여할 때 과연 이것이 우리사회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글을 쓰는데 아무도 안보면 얼마나 맥이 빠집니까. 복지동향은 아무도 안 보는 것 같으면서도 어디서 복지동향을 보고 문의해 오는 단체나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어디선가 복지동향을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전체를 돌아다 보면, 사회복지계는 교수집단과 학생집단으로 나눠고 전공을 보면 정책은 소수이고 다수가 임상쪽에 몰려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복지계 실무자들 학생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고 동향과 트랜드를 읽을 수 있는 길잡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못하는 상황인 듯 합니다. 주로 정책의 생산자나 관여자인 정부나 정치 관련자 들이나 신경을 쓰지만 대중적인 파급력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복지동향을 이런 식으로 자족을 하면서 가는 것 보다는 우리의 활동을 반영하고 담아내기는 하지만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한걸음 물러서 있는 입장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복지계는 물론이고 사회복지계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 경제 각 영역에서 좀더 영향력이 있는 잡지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인재: 복지동향은 우리 사회복지위원회 활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활동이 활발할 때는 내용도 다양하고 활동이 적을 때는 책의 분량이 줄어 들어왔습니다. (웃음) 김영삼 정권을 거쳐 노무현 정권까지 사회복지라는 주제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사회적 투자국가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각 정권의 정책 특성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사회복지위원회 활동영역에도 반영이 되었을 것입니다. 잘한 부분도 있을 것이고 잘못한 부분도 있을 것인데 각 정권의 특성에 대해 각 위원장님이 재임한 시절에 어떤 정책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는지 말씀해 주시면 복지동향의 경향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흥식: 1993년도 문민정부로서 첫 출발한 김영삼 정권은 태생적으로 개혁적이며 진보적인 색채를 가진 정권이 아니었기 때문에 민중의 삶을 고려한 복지 쪽에 그렇게 관심이 있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시 김영삼 정부는 삶의질향상기획단을 만들어서 활동했는데, 이후 외환위기로서 IMF사태가 터지면서 더 이상 활동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에 왜 이러한 삶의질향상기획단을 만들었는가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사실 OECD 가입을 염두에 두어 세계사회발전정상회의에도 참석하는 등 OECD 가입 이후 우리 국가의 위상 상 최소한 정도에서의 민생 복지 부분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삶의 질을 내세우게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어떻든 이것이 복지의 발전에 조금의 역할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큰 틀로서 정부의 사회복지정책은 여전히 경제성장의 부속물로 여기는 잔여적인 성격을 가졌습니다. 이와 함께 그때 삶의 질이라는 것이 국민들의 복지와 직접 관련되었다 라기 보다는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일상생활에서의 안전과 관련된 삶의 질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백종만 : 저는 조흥식 전위원장님이 외국에 가셔서 1997년 권한 대행으로 시작해서 1999년까지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실제로 3년을 활동을 한 것이 되겠지요. 시기적으로는 김대중 정부였고 그 당시 나왔던 정부의 복지 슬로건은 생산적 복지였습니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생산적 복지의 원천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제3의 길을 한국에 적용한 것으로 이해했었습니다. 즉, 생산적인 복지제도하에서 전반적인 복지제도 확충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복지제도의 적용범위나 사회보험의 적용 범위 등 적용 확대가 많이 이루어졌던 시기 였던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연금의 도시 자영업자 확대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실행등 복지제도의 기본적인 틀이 이 시기에 만들어 졌습니다. 현재 4대 사회보험 체계 개편에 대한 이야기도 이시기에 4대 사회보험 통합 기획단이 만들어져 현재의 틀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사회보험 통합의 골격이 만들어졌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또한, 의약분업이 이 시기에 정착이 되었습니다. 시기가 길기도 했지만 국민의 정부시대는 여러 중요 법안들이 제정되거나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창립후 3~4년동안 활동한 시기로서 국가적으로도 격변의 시기였고 사회복지계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었던 시기입니다. 그러면서, 참여연대가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대안도 내는 시기였습니다. 여러 노동단체와 시민단체와 연대를 통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조율해 나가면서 복지권을 확대하는 획기적인 시기였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인재 : 임기를 채우지 못한 위원장이 두 분 계신데, 이영환, 윤찬영 선생님 재임시절을 회고해 보시면 어떠신지요 ?
이영환 : 주지하듯이 김대중 정부 이전부터 공공부조의 개혁과 사회보험제도 확충 등 근대적인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을 형성하는 것이 주된 과제였는데, 김대중 정부 전반부에 외환위기의 상황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확립하는 한편, 국민연금확충, 의약분업 확립, 의료보험 통합 등 굵직굵직한 개혁이 이루어졌습니다. 실로 김대중 전부 전반부가 사회보장 역사에서 가장 개혁적인 시기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2000년 이후에는 외환위기가 일정하게 극복되는 한편 그 반대급부로 소득분배의 악화와 양극화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단순한 제도의 확대보다 더 근본적인 사회적 개혁이 필요한 시기였지만, 정부의 개혁성은 오히려 더 떨어지는 안타까운 상황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참여정부하에서 사회복지서비스 각 역역별로 보다 심층적인 복지개혁이 요청되고 있지만, 이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위원장을 맡은 2002년은 김대중 정부 마지막 해였는데, 그 해 여름 월드컵과 12월 대통령선거의 극적인 역전드라마는 우리 민족의 저력과 역동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사건이었지만, 김대중 정부는 레임덕에 빠진 후였고, 복지정책의 개혁이라는 측면에서 만족스럽지 못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위원회의 활동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평가합니다. 개혁적인 선거공약을 유도하는 캠페인과 새정부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세미나 등의 노력을 했었지만,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후, 개인적으로 대학에서 중책을 맡는 바람에 임기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바톤을 김연명 교수에게 넘기게 되었습니다.
윤찬영 : 2005년도는 참여정부의 한복판 시대여서 참여정부의 복지정책이 막 쏟아져나올때 였습니다. 중점 사안은 지방분권에 기초한 복지이양 문제와 2005년 하반기에 중점 사안이 되었던 장기요양보장제도를 들 수 있습니다. 정부 정책의 취지면에서는 수궁이 가는 면이 있었습니다. 균형 발전을 위해서 지방 분권을 해야 한다는 것과 지역사회 복지를 지역이 책임지고 해야 한다는 것 등의 취지는 이해를 하지만 이를 실행하는 구체적인 추진내용이나 실행 방법에서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복지라는 것은 권력이나 권한의 문제보다는 책임과 부담의 의미가 큰데 지방분권이라는 미명하에 중앙의 책임을 지방으로 넘기는 것이고, 장기요양보장제도도 고령화 시대에 노인수발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면에선 동의를 하지만,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조직이나 건강보험과의 연계되는 부분, 대상자 선정문제등 여러 가지 논쟁점이 많았습니다. 또한,이것보다는 비중은 떨어지지만, 2005년 상반기에 긴급복지지원제도를 복지부가 법제화하겠다고 나서게 됩니다. 참여연대 입장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초생활보장법을 좀더 내실있게 만들어서 개혁을 하자는 것이 주요 입장이었고, 정부는 당장 결식아동등 위급한 상황에 빠진 계층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큰 논쟁이 되어서 참여연대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참여정부의 정책은 적극찬성도 어렵고 적극 반대도 어려운 선택의 논쟁이 많았습니다. 정책의제를 선점하지 못하고 정부가 던진 의제에 따라 가다보니, 운동성 면에서 매우 취악해게 되었습니다. EITC는 참여연대 내부에서부터 의견이 엇 갈렸습니다. 2005년은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기 보단 정부가 제시한 정책을 이해하고, 문제점을 찾고 대안을 찾는데 활동을 주로 했었습니다.
이인재 : 현재 위원장을 맡고 계신 김종해 선생님 현재의 주요 정책을 정리해 주시죠.
김종해 : 드디어 ‘삶의 질의 세계화’와 ‘생산적 복지’를 거쳐 ‘참여복지’의 차례인가요? 그런데 이제 복지동향 창간 준비호를 보니 당시에 이미 우리들이 참여복지란 말을 사용했네요! 우리가 로얄티라도 받아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웃음) 현 정부는 과거에 비해 아젠다 생산 능력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우리가 공세적으로 아젠다를 제시하고 주도했다면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또 문제의 영역도 과거에 비해 폭이 많이 넓어졌고요. 그러다 보니 복지동향의 주제도 매우 다양하게 다룰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쉬운것이 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주장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뒤따라 가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인재 : 이번 순서는 개인적인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재임시절, 중요하게 다룬 이슈 혹은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밝혀 주시죠. 특히 복지동향과 관련된 일이라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복지동향 편집위원장을 가장 오래 맡았던 이영환 교수님 부터 시작하시죠.
이영환 :복지동향이 벌써 100호가 나온다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그동안 매월 발행하면서 단 한번 결호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나남출판사에서 무상으로 출판을 해주면서, 우리 회원들에게 배부할 것을 빼고 판매수입으로 경비를 메꾸고자 했던 것인데, 적자가 누적되는 등 출판사의 입장이 어려워져서, 결국 나눔의 집 출판사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간부족으로 1,2월 합본호를 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출판사고 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외에 무사고로 100호까지 왔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다른 한편 어려운 사정에서도 큰 도움을 주었던 나남출판사와 나눔의 집 출판사에 감사하는 마음이고, 오래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 새천년을 맞이하면서 1990년대 10년 동안의 복지운동을 스무 개 가까운 꼭지로 정리하는 특집을 마련한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이런 정도의 정리작업도 복지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을 보고, 우리 작업의 의의를 새삼 느끼게 되었던 기억이 남니다. 이러한 경험을 축적했기 때문에 수년전부터 시민의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시민사회연감에 사회복지분야의 원고를 제공하는 일도 크게 힘들지 않게 해왔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사회복지분야의 정책과 실천, 운동을 포괄하는 연감을 만들어봤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김연명 : 2003년과 2004년은 어느해 보다 이슈가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두 가지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는 외환위기 이후 빈곤층이 늘어나면서 일하지만 빈곤한 근로빈곤층(working poor) 문제가 핵심적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당시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모녀가 동반자살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회복지위원회는 이 문제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활동 중에 빈곤층의 자살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규정하였는데 이 용어가 한동안 언론지상에 오르내렸고 아직도 쓰이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위원회의 문제의식을 적절히 잘 표현한 용어로 생각됩니다. 다른 하나는 월곡동에서 진행된 “최저생계비로 한달 살기‘ 프로그램입니다. 당시 허선교수가 제안한 이 사업은 찬반양론이 있었지만 빈곤문제를 여론화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사회복지위원회가 생긴 이후 가장 많은 언론의 조명을 받았고, 당시 김근태장관까지 현장을 방문하여 빈곤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여론화시켰죠. 복지동향과 관련해서는 너무 잦은 원고청탁으로 상당히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백종만 : 위원장 재임시절에는 기간도 길었고 역동적으로 대응한 시절이라 무엇부터 이야기 해야 할지 우려스럽습니다. 우선, 대중과 복지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노력한 점이 떠오릅니다. 당시 사회복지학교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저변의 공감대를 넓히려 했습니다. 당시에도 복지문제에 관심이 있는 지역 단체들이 있었는데, 복지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어떻게 인식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는 때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활동가들이 참여연대에 모여서 복지에 대한 현안이라던지 내용을 배우고 의제화하는 방법에 대해 서로 논하는 모임을 가졌었습니다. 하지만, 동력이 부족해서 오래가지 못했는데 그것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당시 굵직한 이슈들인 건강보험, 의약분업 등의 문제들을 다루면서 다른 단체들과의 연대활동이 굉장히 활성화 되었었다고 생각합니다. 의약 분업 관련해서는 건강의료단체들과 활동을 했었고, 사회보험 통합은 민주노총과 활동을 해왔고요. 기초생활보장법에선 연대회의를 진행하면서 참여연대가 간사단체로 활동을 해왔습니다.
윤찬영 : 두가지 정도 기억에 남습니다. 지역복지운동네트워크를 만들어서 보육 및 여러 정책에 대해 각지역에서 복지운동을 하는 단체와 참여연대가 함께 대안을 제시하고 촉구했습니다. 참여연대가 다루는 사안이 전국적인 사안인 만큼 각 지역에서 실행이 되는 사회서비스 복지 단체들의 역할이 필요했습니다. 또, 밤샘작업으로 정책브리핑 자료를 만들어 국회를 다니며 설명했던 일도 기억에 남습니다.
조흥식: 1994년 9월 참여연대 창립과 함께 사회복지특별위원회를 만든 일입니다. 당시 참여연대의 창립은 정부와 상당히 우호적인 성격을 가졌던 경실련과 분명히 차별성을 가지며, 또한 계급적 속성을 너무 강조하는 노동조합과도 좀 다른 조직으로서, 정부의 비판과 견제 기능을 지니면서도 새로운 대안을 창출해 내는 시민사회조직체로서의 NGO를 지향하자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조직의 정체성을 어떻게 행동으로 나타내느냐 하는데 막상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런 차에 10월 말 용산역 앞 사무실에서 집행위원회 회의를 마친 후 늘 그랬듯이, 역전 포장마차에서 위원들끼리 2차 회의(?)를 하던 중에 초대 공동대표 중 한 분이신 김중배 선생님이 느닷없이 민중복지를 참여연대의 정체성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역설하시면서 저에게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민중복지와 관련된 특별한 일을 많이 할 것을 주문하신 게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그게 바로 국민생활최저선(나중에 국민복지기본선으로 개명) 확보운동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탄생은 이러한 우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지속적인 국민생활최저선 확보운동의 한 산물이라 하겠습니다.
김종해 : 아직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중요하게 다룬 것이라면 역시 저출산 고령화 사회문제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에 대해 중요하게 다루었던 거 같고 관련해서 개인적으로는 보육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이인재 : 여러 위원장님들의 회고를 통해 13년의 사회복지위원회의 활동과 10년간의 복지동향 활동을 되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질문은 앞으로의 사회복지위원회의 활동과 관련해서 2007년도 사회복지계를 전망해 주시기 바랍니다. 초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조흥식교수님 부터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조흥식 : 앞으로 사회문제로는 양극화 문제가 가장 크게 대두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특히 올해는 경제문제에 모든 초점이 모아지면서 대선에서 핫이슈로 대두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위원회의 역할은 이러한 사회의 흐름에서 대중적 사회복지 이슈를 다시 부각시키고 향후 한국사회의 복지 패러다임 모델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경제 이슈에 복지문제가 매몰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백종만 : 양극화 문제가 심각합니다. 정부도 이러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인 전망과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전 2030이라든지 새로마지플랜등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복지 재정이 확충되어야 한다는 문제도 있고요. 그래서 보면, 올해 복지가 핵심적 쟁점이 되지 않을까. 복지의 정치화가 뚜렷히 이야기되고 증세와 감세 논쟁도 크게 있을 것 입니다. 그런 와중에 참여연대 역시 복지재정의 확대라는 원론적인 측면에서 의견을 공유하지만 제도를 재편하고 효율화하는데는 내부적인 이견과 갈등이 상당히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부적 토론을 치열하게 하면서 통일되고 여러 제도와 부합되는 제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위기의 측면과 기회의 측면이 동시에 있는 것이죠.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변화된 복지지형 속에서 우리의 좌표들을 정확히 잡고 시대에 조흥해 가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어려운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이영환 :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던 1990년대에는 비교적 운동의 전선이 명확했습니다. 운동의 목표도 비교적 분명했고, 피아의 구분도 비교적 분명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활발한 운동이 가능했었다고 봅니다. 지금은 일종의 교착상태입니다. 무슨 굵직한 제도를 새로 만드는 상황이 아니라,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한 영역에서 질적인 발전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의 시민사회운동방식으로 헤쳐나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른 한편 복지예산의 극적인 확대가 필요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에는 뉴라이트 운동과 같은 보수적 운동도 등장하는 상황이라서, 복지정책과 관련한 이념적 다양성도 확대되는 단계라고 봅니다.
금년에는 아무래도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 같은데, 과거와 같이 최소한 구두선으로라도 모든 후보가 복지확대를 찬성하는 상황이 계속될지 의문입니다. 좀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싶고, 어쩌면 신자유주의적인 복지축소론도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복지정책의 방향을 둘러싼 담론 투쟁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연명 : 최근 사회복지계의 동향 중에 주목할 부분은 과거에는 별개의 영역으로 보였던 노동시장정책, 교육정책, 여성정책 그리고 보건복지정책의 융합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사회정책이란 말이 자주 회자되는 측면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발전단계는 복지정책 하나만 중심에 놓고 정책을 구상하거나 토론을 할수 없습니다. 하나의 복지정책은 다른 정책과 너무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문제를 종합적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때문에 사회복지위원회도 노동, 여성, 교육정책 등의 동향을 면밀히 파악할 필요성이 있고 정책의 연계성과 통합성을 높일 수 있는 대안들을 개발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주요한 담론으로 떠오르고 있는 사회투자국가에 대한 이해를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복지국가를 경험하지 못한 한국이 사회투자전략에 집중하는 것이 문제가 발생될 수 있으나 전체적인 경제사회적 구조변화가 사회투자전략의 필요성을 높여가고 있다고 봅니다. 정책방향도 사회투자적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고요.
윤찬영 : 2007년은 다 아시다시피, 대선이 있는 해이고 정책의 시장화가 절정을 이룰 시기입니다. 사회 양극화가 워낙 심하기 때문에 사회복지 정책에 대한 발전 기류도 많고 기대도 크지만, 구체적인 생각과 의견은 상이한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지 정책에 대한 논란이 상당히 많을 것이라고 봅니다. 사회복지계 내적으로는 정부가 사회복지사업법을 입법예고를 했고, 주요 내용이 민간 사회복지 시설의 투명화, 공공성 강화를 의도하고 있기 때문에 민간 사회복지계와 정부의 충돌이 있을것으로 보입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활동하려면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서로의 의견이 달라 어려움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합니다.
김종해 : 금년은 아무래도 대선이 있는 해라 대선 정국에 복지에 대한 논의가 묻혀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아무래도 구체적인 제도보다는 전체적인 복지의 지향점 내지 복지담론에 대한 논의가 많을 듯 합니다. 사회복지위원회 역시 구체적인 개별 제도에 대한 대처보다는 (물론 필요가 있으면 이에 따라야 하겠지만) 새로운 아젠다의 세팅이나 복지담론 형성에 주력할 생각입니다.
이인재 : 이번 좌담회의 마지막 질문입니다. 100호를 맞이하는 ‘복지동향’에 대한 당부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윤찬영 교수님부터 시작하시죠.
윤찬영 : 잘 만들라는 당부를 드립니다. 2004년도에 편집위원장으로 있으면서도 고민을 했지만, 매체의 본질적인 역할은 소통입니다. 특히, 쌍방향의 소통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복지동향을 보면 한쪽편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그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소통의 의미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매체의 성격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문지인지, 대중지인지 그 구분에 따라 달라집니다. 저는 적어도 복지동향이 사회복지계에 종사하는 활동가들, 공부하는 학생들, 사회복지계 관심있는 시민들과 함께 나아가는 것이 저희가 활동하는 큰 원동력이 된다고 봅니다. 그것을 보면 대중지 성격이어야 하는데,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들이 그러한 성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복지동향이 어렵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대중지의 성격은 매우 중요하므로, 대중지와 전문지간의 비율을 적절하게 나누어서 편집을 해나갈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백종만 : 윤교수가 복지동향에 대해 상세히 당부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창간 준비호를 만들때는 내가 의원장이었던 1998년도이니 그때의 발간 의도는 복지정보의 제공과 복지에 대한 대중지, 계몽지에 대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워낙 복지에 대한 시민의 의식이 없었으니까요. 지금의 사안을 가지고도 이러한 시도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참여연대가 그러한 이슈를 고른 이유나 입장들을 알려야 할 것입니다. 제도가 발전하면서 제도의 내용들이 전문화 되고 복잡해 지면서 대중들이 이를 읽고 얼마나 소회해 내느냐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쉬운 언어로 관점을 해석해 내고, 그것들이 시민들의 삶에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 알렸으면 합니다.
조흥식 : 100호까지 나오기까지 복지동향이 잘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좀 더 독자층을 확보하는 잡지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한 방법으로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시민활동가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지동향이 우리사회의 복지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을 담아내야 합니다. 지금은 현안을 좇아가기 바빠 보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장기적 전망을 내놓고 이를 위해 한국 사회가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를 조망해 보는 잡지가 되었으면 합니다.
김연명 : 진보세력의 위기론에 대해 동의하지는 않지만 진보의 여러 가치가 예전만큼 주목을 받지 못하는 측면은 있습니다. 그 중 핵심은 미래 사회에 대한 진보진영의 전망이 확실치 않다는 것입니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이 없다고 표현해도 좋을 듯 합니다. 개별 정책 대안은 물론 사회부분 전체의 진보적 대안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만들어가는 잡지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좀 더 논쟁적인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회정책 분야에 대한 언론비평도 좋습니다. 진보진영 내부의 논쟁을 다루는 것도 한 방법이고요. 사회복지위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도 좋지만 진보진영 내의 대안 프로그램에 대한 토론을 활성화시키는 역할도 복지동향이 떠맡아야 하는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김종해 : 소박하게 제 임기동안 무사히 발간되었으면 하고요, 바라는 게 있다면 사회복지위원회의 기관지 성격을 갖는다면 편집계획을 장기적으로 수립해서 지향점을 명확히 보여줄 수 있다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영환 : 첫째는 어렵게 어렵게 100호를 냈는데, 앞으로도 죽~ 계속 냈으면 좋겠습니다. 200호 아니라 100년 가는 잡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둘째는, 앞으로 전개될 담론투쟁에서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모색함은 물론 진보적인 복지세력의 목소리를 보다 폭넓게 담아내는 공론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셋째는 젋은 세대들이 공감하는 잡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인터넷을 좀 더 활용해서, 출간즉시 인터넷에 공개하고 댓글도 수용하는 등 보다 많은 투자를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인재 : 장시간 수고하셨습니다. 100호를 맞이하는 복지동향의 새로운 출발을 기원하면서 이것으로 오늘의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
사회자 : 이인재 복지동향 편집위원장
참석자 :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확과
김종해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백종만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윤찬영 전주대 사회복지학과
이영환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정리 : 차은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welfare@pspd.org
이인재: 1994년부터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위원회 출범과 동시에 복지동향이 만들어 진 것은 아니고, 1998년 5,6,7월 창간 준비호를 만든이후에 1998년10월부터 복지동향이 정식으로 창간되었습니다. 당시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은 백종만 선생님이셨고 이영환 선생님이 편집위원장 이셨습니다. 창간당시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으로 좌담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백종만 선생님 말씀 부탁드립니다.
백종만: 복지동향이 벌써 100호를 맞이한다고 하니 거의 10년 가까이 발행되어 왔군요. 사회복지위원회가 1994년 9월 창립되어 국민생활최저선 확보운동을 3년정도 하면서 성과를 가졌었습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운동이 시작되었으며, 시민들의 복지에 대한 전근대적인 인식을 넘어서서 새로운 권리 인식이 기초법 제정의 동력이 되었다고 봅니다. 복지에 대한 기본적 권리를 확보하는데 전문가들의 참여, 시민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복지에 대한 이슈를 제공하고 권리인식을 향상시키는 매체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복지동향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인재: 이영환 초대 편집위원장님도 한말씀 해주십시오.
이영환: 저는 창간준비호가 나오고 나서 담당 편집장으로 선출되어서 복지동향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백종만 선생님이 의미를 잘 말씀해 주셨지만, 저는 소박하게 의미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활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복지정책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는데, 소수만 접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정보들이 많았습니다. 이를 후학과 일반 시민과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봅니다. 좀 더 욕심을 내어본다면, 사회복지 정책 개혁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러한 힘을 모아내는 매개체를 만드는 것이었고 이러한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봅니다. 독자층이 증가했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출판에 돈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초기 출판사로 활동해 주었던 나남 출판의 공헌에 의해 가능했습니다. 초기 나남 출판사가 무상으로 출판해 주는것에 합의를 해주었고 이것을 계기로 돈이 개입되지 않는 잡지를 만들자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필자에게도 원고료를 주지 않고 6개월간 잡지를 보냈습니다. 즉, 출판사와 필자간에 돈이 개입되지 않는 잡지라는 의미에서 뜻이 있습니다.
조흥식: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시민운동 후속세대를 양성한다는 차원에서 사회복지학교를 3회까지 개최하고 더 이상 진행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계승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복지동향이 이러한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한 면도 있습니다.
이인재: 1994년부터 사회복지위원회에서 활동하신 두분이 더 계십니다. 윤찬영, 김연명 선생님이 창간 멤버이신데요. 더 붙이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으시면 해주십시오.
윤찬영: 참여연대 활동시작시 각 부서가 명확하게 나누어지지 않았고 사회복지위원회가 활발하게 운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1994년 10월, 11월 노령수당과 국민연금 등 4가지를 가지고 공익소송운동을 하고 이어서 입법청원운동을 했습니다. 1997년에 이에 대한 판결이 나오게 됩니다. 국민연금소송도, 공공자금관리기금법도 모두 위헌으로 나옵니다. 법률심판제청에 걸려서 노령수당건은 우리가 승소합니다. 생활보호대상자 생계보호 위헌소송이 1997년에 판결이 나옵니다. 사회복지학교도 후속세대 양성의 의미도 있지만 참여자를 보면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을 시민사회에 공유하는 대중화작업을 한 것입니다. 김연명 선생님은 연금관련 대중소송 작업을 하면서 알겠지만, 일반대중은 물론 타 영역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노동계조차 사회복지,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개념이나 인식이 워낙 떨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가 주장해봤자 제대로 설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인식의 지평을 확대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져 있었고 50년만에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여러 가지 정치적 민주화 뿐만 아니고 사회복지분야 개혁을 포함하는 기류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복지 지평을 시민과 함께 넓혀보자는 내부적인 인식의 공유가 복지동향이라는 잡지의 탄생 배경이 되었다고 봅니다.
이인재: 여러 선생님이 말씀해 주시니 사회복지위원회가 왜 복지동향을 만들었는지 정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활동에 대한 정보공유뿐 아니라 당시 시민사회와 인식을 공유하고 소통을 확대하기 위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출판사의 무료봉사도 잡지가 만들어 지는데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출간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 진 계기로 사회복지위원회의 기초생활보장운동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성격을 가진 잡지의 평가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복지동향의 역할은 보통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요. 하나는 일반시민이나 활동가들이 복지동향을 보고 사회복지계에 최근 어떤 이슈들이 쟁점화 되어 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발행의 주체인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활동을 대변하는 기관지의 성격도 지니고 있습니다. 99호까지 창간 때의 의도를 중심으로 평가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김연명: 당시 사회복지범주로 묶을수 있는 진보적이고 소규모적인 사회운동이 나타났지만,
서로 뭐하는지 모르겠다 해서 동향을 엮어보는 역할이 필요했고 개인적인 생각으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잡지가 없어서 복지동향이 그러한 역할을 해주었으면 했습니다. 창간호 3호까지 만들었을때는 이것이 성공할지 의문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말자는 말도 많았는데 이렇게 시작해서 100호까지 왔으니 일단 성공을 했다고 봅니다. 기관지 역할로 복지동향은 충분히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봅니다. 관련해서 진보적인 관점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 평가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역할에서는 충실히 역할을 해왔다고 봅니다. 사회복지계 동향을 진보적인 입장에서 해석하고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하는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논문에도 인용이 많이 되었고요.
이인재: 김종해 선생님은 현재 위원장으로서 어떻게 보시는 지요?
김종해: 제가 임기를 맡은 것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두 번째 10년 초기입니다. 저는 지금 지나간 성과만을 팔아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하는 반성이 듭니다. 잘해왔지만 최근에 들어오면서 우리 위원회가 정체기에 들면서 복지동향도 그러한 성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관지로서 복지동향 내용을 생각한다면, 좌표 제시라는 역할이 중요한데 최근에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기 위한 연간 시리즈를 담은 기획물을 통해 앞으로의 10년을 제시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을 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체적인 평가로는 성공을 했지만 그러한 측면에서는 아직은 부족하다고 봅니다. 새로운 방향을 고민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조흥식: 초반 복지동향은 특집과 포커스로 되어있습니다. 특집이라는 것은 동향에 대한 내용이 있을것이고 포커스는 기관지적 성격이 나타나겠지요? 후반으로 갈수록 포커스는 그대로 있는데 특집은 심층분석으로 변화하면서 내용을 더 깊이 있게 담은 것으로 봅니다. 김종해 선생님의 말씀대로 초반에는 최저생계비와 같은 큰 내용으로 5~6년을 내다보는 큰 그림이 있었는데 민주화가 되면서 복지계가 너무 일반화되면서, 복지의 특수성이 약화되고 특징이 없어졌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앞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인거 같습니다.
이인재: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뿐만 아니라 장기간 편집위원장을 맡아주셨던 이영환 선생님도 한말씀 해주십시오.
이영환: 잡지를 실제로 만들때는 정보지기능과 기관지기능이 다 필요하면서도 갈등관계에 있었다고 봅니다. 그동안에 개략적으로 보면 사회복지위원회 활동을 대변하는 기능이 우세하고 정보쪽기능이 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운동단체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개혁적인 아젠다를 선도해 나가고 보완해 나가는 역할을 해야했기 때문에 이렇게 가야하지 않았나 합니다. 앞으로 이러한 두가지 역할의 갈등관계에서 보완적인 관계로 어떻게 가야할 것인가 하는 점이 고민이라고 봅니다. 한가지 더 짚을 것은 이를 통해서 사회적인 진보세력을 모아 내는데는 크게 성공했다고 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진보적인 세력의 공론의 자리역할은 꽤 해왔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인재: 윤찬영 선생님 방송인으로서 보는 평가는 어떠신지요? (웃음)
윤찬영: 방송 뿐아니라 열린전북이라는 월간대안 매체,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웃음)
사회복지위원회가 10년을 넘기면서 중간에 소강상태에 있으면서 복지동향도 비슷한 상태였다고 봅니다. 복지동향의 글을 쓰고 편집에 관여할 때 과연 이것이 우리사회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글을 쓰는데 아무도 안보면 얼마나 맥이 빠집니까. 복지동향은 아무도 안 보는 것 같으면서도 어디서 복지동향을 보고 문의해 오는 단체나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어디선가 복지동향을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전체를 돌아다 보면, 사회복지계는 교수집단과 학생집단으로 나눠고 전공을 보면 정책은 소수이고 다수가 임상쪽에 몰려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복지계 실무자들 학생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고 동향과 트랜드를 읽을 수 있는 길잡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못하는 상황인 듯 합니다. 주로 정책의 생산자나 관여자인 정부나 정치 관련자 들이나 신경을 쓰지만 대중적인 파급력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복지동향을 이런 식으로 자족을 하면서 가는 것 보다는 우리의 활동을 반영하고 담아내기는 하지만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한걸음 물러서 있는 입장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복지계는 물론이고 사회복지계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 경제 각 영역에서 좀더 영향력이 있는 잡지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인재: 복지동향은 우리 사회복지위원회 활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활동이 활발할 때는 내용도 다양하고 활동이 적을 때는 책의 분량이 줄어 들어왔습니다. (웃음) 김영삼 정권을 거쳐 노무현 정권까지 사회복지라는 주제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사회적 투자국가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각 정권의 정책 특성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사회복지위원회 활동영역에도 반영이 되었을 것입니다. 잘한 부분도 있을 것이고 잘못한 부분도 있을 것인데 각 정권의 특성에 대해 각 위원장님이 재임한 시절에 어떤 정책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는지 말씀해 주시면 복지동향의 경향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흥식: 1993년도 문민정부로서 첫 출발한 김영삼 정권은 태생적으로 개혁적이며 진보적인 색채를 가진 정권이 아니었기 때문에 민중의 삶을 고려한 복지 쪽에 그렇게 관심이 있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시 김영삼 정부는 삶의질향상기획단을 만들어서 활동했는데, 이후 외환위기로서 IMF사태가 터지면서 더 이상 활동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에 왜 이러한 삶의질향상기획단을 만들었는가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사실 OECD 가입을 염두에 두어 세계사회발전정상회의에도 참석하는 등 OECD 가입 이후 우리 국가의 위상 상 최소한 정도에서의 민생 복지 부분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삶의 질을 내세우게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어떻든 이것이 복지의 발전에 조금의 역할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큰 틀로서 정부의 사회복지정책은 여전히 경제성장의 부속물로 여기는 잔여적인 성격을 가졌습니다. 이와 함께 그때 삶의 질이라는 것이 국민들의 복지와 직접 관련되었다 라기 보다는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일상생활에서의 안전과 관련된 삶의 질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백종만 : 저는 조흥식 전위원장님이 외국에 가셔서 1997년 권한 대행으로 시작해서 1999년까지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실제로 3년을 활동을 한 것이 되겠지요. 시기적으로는 김대중 정부였고 그 당시 나왔던 정부의 복지 슬로건은 생산적 복지였습니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생산적 복지의 원천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제3의 길을 한국에 적용한 것으로 이해했었습니다. 즉, 생산적인 복지제도하에서 전반적인 복지제도 확충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복지제도의 적용범위나 사회보험의 적용 범위 등 적용 확대가 많이 이루어졌던 시기 였던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연금의 도시 자영업자 확대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실행등 복지제도의 기본적인 틀이 이 시기에 만들어 졌습니다. 현재 4대 사회보험 체계 개편에 대한 이야기도 이시기에 4대 사회보험 통합 기획단이 만들어져 현재의 틀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사회보험 통합의 골격이 만들어졌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또한, 의약분업이 이 시기에 정착이 되었습니다. 시기가 길기도 했지만 국민의 정부시대는 여러 중요 법안들이 제정되거나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창립후 3~4년동안 활동한 시기로서 국가적으로도 격변의 시기였고 사회복지계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었던 시기입니다. 그러면서, 참여연대가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대안도 내는 시기였습니다. 여러 노동단체와 시민단체와 연대를 통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조율해 나가면서 복지권을 확대하는 획기적인 시기였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인재 : 임기를 채우지 못한 위원장이 두 분 계신데, 이영환, 윤찬영 선생님 재임시절을 회고해 보시면 어떠신지요 ?
이영환 : 주지하듯이 김대중 정부 이전부터 공공부조의 개혁과 사회보험제도 확충 등 근대적인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을 형성하는 것이 주된 과제였는데, 김대중 정부 전반부에 외환위기의 상황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확립하는 한편, 국민연금확충, 의약분업 확립, 의료보험 통합 등 굵직굵직한 개혁이 이루어졌습니다. 실로 김대중 전부 전반부가 사회보장 역사에서 가장 개혁적인 시기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2000년 이후에는 외환위기가 일정하게 극복되는 한편 그 반대급부로 소득분배의 악화와 양극화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단순한 제도의 확대보다 더 근본적인 사회적 개혁이 필요한 시기였지만, 정부의 개혁성은 오히려 더 떨어지는 안타까운 상황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참여정부하에서 사회복지서비스 각 역역별로 보다 심층적인 복지개혁이 요청되고 있지만, 이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위원장을 맡은 2002년은 김대중 정부 마지막 해였는데, 그 해 여름 월드컵과 12월 대통령선거의 극적인 역전드라마는 우리 민족의 저력과 역동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사건이었지만, 김대중 정부는 레임덕에 빠진 후였고, 복지정책의 개혁이라는 측면에서 만족스럽지 못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위원회의 활동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평가합니다. 개혁적인 선거공약을 유도하는 캠페인과 새정부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세미나 등의 노력을 했었지만,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후, 개인적으로 대학에서 중책을 맡는 바람에 임기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바톤을 김연명 교수에게 넘기게 되었습니다.
윤찬영 : 2005년도는 참여정부의 한복판 시대여서 참여정부의 복지정책이 막 쏟아져나올때 였습니다. 중점 사안은 지방분권에 기초한 복지이양 문제와 2005년 하반기에 중점 사안이 되었던 장기요양보장제도를 들 수 있습니다. 정부 정책의 취지면에서는 수궁이 가는 면이 있었습니다. 균형 발전을 위해서 지방 분권을 해야 한다는 것과 지역사회 복지를 지역이 책임지고 해야 한다는 것 등의 취지는 이해를 하지만 이를 실행하는 구체적인 추진내용이나 실행 방법에서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복지라는 것은 권력이나 권한의 문제보다는 책임과 부담의 의미가 큰데 지방분권이라는 미명하에 중앙의 책임을 지방으로 넘기는 것이고, 장기요양보장제도도 고령화 시대에 노인수발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면에선 동의를 하지만,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조직이나 건강보험과의 연계되는 부분, 대상자 선정문제등 여러 가지 논쟁점이 많았습니다. 또한,이것보다는 비중은 떨어지지만, 2005년 상반기에 긴급복지지원제도를 복지부가 법제화하겠다고 나서게 됩니다. 참여연대 입장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초생활보장법을 좀더 내실있게 만들어서 개혁을 하자는 것이 주요 입장이었고, 정부는 당장 결식아동등 위급한 상황에 빠진 계층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큰 논쟁이 되어서 참여연대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참여정부의 정책은 적극찬성도 어렵고 적극 반대도 어려운 선택의 논쟁이 많았습니다. 정책의제를 선점하지 못하고 정부가 던진 의제에 따라 가다보니, 운동성 면에서 매우 취악해게 되었습니다. EITC는 참여연대 내부에서부터 의견이 엇 갈렸습니다. 2005년은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기 보단 정부가 제시한 정책을 이해하고, 문제점을 찾고 대안을 찾는데 활동을 주로 했었습니다.
이인재 : 현재 위원장을 맡고 계신 김종해 선생님 현재의 주요 정책을 정리해 주시죠.
김종해 : 드디어 ‘삶의 질의 세계화’와 ‘생산적 복지’를 거쳐 ‘참여복지’의 차례인가요? 그런데 이제 복지동향 창간 준비호를 보니 당시에 이미 우리들이 참여복지란 말을 사용했네요! 우리가 로얄티라도 받아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웃음) 현 정부는 과거에 비해 아젠다 생산 능력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우리가 공세적으로 아젠다를 제시하고 주도했다면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또 문제의 영역도 과거에 비해 폭이 많이 넓어졌고요. 그러다 보니 복지동향의 주제도 매우 다양하게 다룰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쉬운것이 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주장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뒤따라 가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인재 : 이번 순서는 개인적인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재임시절, 중요하게 다룬 이슈 혹은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밝혀 주시죠. 특히 복지동향과 관련된 일이라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복지동향 편집위원장을 가장 오래 맡았던 이영환 교수님 부터 시작하시죠.
이영환 :복지동향이 벌써 100호가 나온다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그동안 매월 발행하면서 단 한번 결호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나남출판사에서 무상으로 출판을 해주면서, 우리 회원들에게 배부할 것을 빼고 판매수입으로 경비를 메꾸고자 했던 것인데, 적자가 누적되는 등 출판사의 입장이 어려워져서, 결국 나눔의 집 출판사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간부족으로 1,2월 합본호를 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출판사고 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외에 무사고로 100호까지 왔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다른 한편 어려운 사정에서도 큰 도움을 주었던 나남출판사와 나눔의 집 출판사에 감사하는 마음이고, 오래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 새천년을 맞이하면서 1990년대 10년 동안의 복지운동을 스무 개 가까운 꼭지로 정리하는 특집을 마련한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이런 정도의 정리작업도 복지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을 보고, 우리 작업의 의의를 새삼 느끼게 되었던 기억이 남니다. 이러한 경험을 축적했기 때문에 수년전부터 시민의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시민사회연감에 사회복지분야의 원고를 제공하는 일도 크게 힘들지 않게 해왔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사회복지분야의 정책과 실천, 운동을 포괄하는 연감을 만들어봤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김연명 : 2003년과 2004년은 어느해 보다 이슈가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두 가지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는 외환위기 이후 빈곤층이 늘어나면서 일하지만 빈곤한 근로빈곤층(working poor) 문제가 핵심적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당시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모녀가 동반자살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회복지위원회는 이 문제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활동 중에 빈곤층의 자살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규정하였는데 이 용어가 한동안 언론지상에 오르내렸고 아직도 쓰이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위원회의 문제의식을 적절히 잘 표현한 용어로 생각됩니다. 다른 하나는 월곡동에서 진행된 “최저생계비로 한달 살기‘ 프로그램입니다. 당시 허선교수가 제안한 이 사업은 찬반양론이 있었지만 빈곤문제를 여론화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사회복지위원회가 생긴 이후 가장 많은 언론의 조명을 받았고, 당시 김근태장관까지 현장을 방문하여 빈곤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여론화시켰죠. 복지동향과 관련해서는 너무 잦은 원고청탁으로 상당히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백종만 : 위원장 재임시절에는 기간도 길었고 역동적으로 대응한 시절이라 무엇부터 이야기 해야 할지 우려스럽습니다. 우선, 대중과 복지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노력한 점이 떠오릅니다. 당시 사회복지학교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저변의 공감대를 넓히려 했습니다. 당시에도 복지문제에 관심이 있는 지역 단체들이 있었는데, 복지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어떻게 인식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는 때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활동가들이 참여연대에 모여서 복지에 대한 현안이라던지 내용을 배우고 의제화하는 방법에 대해 서로 논하는 모임을 가졌었습니다. 하지만, 동력이 부족해서 오래가지 못했는데 그것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당시 굵직한 이슈들인 건강보험, 의약분업 등의 문제들을 다루면서 다른 단체들과의 연대활동이 굉장히 활성화 되었었다고 생각합니다. 의약 분업 관련해서는 건강의료단체들과 활동을 했었고, 사회보험 통합은 민주노총과 활동을 해왔고요. 기초생활보장법에선 연대회의를 진행하면서 참여연대가 간사단체로 활동을 해왔습니다.
윤찬영 : 두가지 정도 기억에 남습니다. 지역복지운동네트워크를 만들어서 보육 및 여러 정책에 대해 각지역에서 복지운동을 하는 단체와 참여연대가 함께 대안을 제시하고 촉구했습니다. 참여연대가 다루는 사안이 전국적인 사안인 만큼 각 지역에서 실행이 되는 사회서비스 복지 단체들의 역할이 필요했습니다. 또, 밤샘작업으로 정책브리핑 자료를 만들어 국회를 다니며 설명했던 일도 기억에 남습니다.
조흥식: 1994년 9월 참여연대 창립과 함께 사회복지특별위원회를 만든 일입니다. 당시 참여연대의 창립은 정부와 상당히 우호적인 성격을 가졌던 경실련과 분명히 차별성을 가지며, 또한 계급적 속성을 너무 강조하는 노동조합과도 좀 다른 조직으로서, 정부의 비판과 견제 기능을 지니면서도 새로운 대안을 창출해 내는 시민사회조직체로서의 NGO를 지향하자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조직의 정체성을 어떻게 행동으로 나타내느냐 하는데 막상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런 차에 10월 말 용산역 앞 사무실에서 집행위원회 회의를 마친 후 늘 그랬듯이, 역전 포장마차에서 위원들끼리 2차 회의(?)를 하던 중에 초대 공동대표 중 한 분이신 김중배 선생님이 느닷없이 민중복지를 참여연대의 정체성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역설하시면서 저에게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민중복지와 관련된 특별한 일을 많이 할 것을 주문하신 게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그게 바로 국민생활최저선(나중에 국민복지기본선으로 개명) 확보운동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탄생은 이러한 우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지속적인 국민생활최저선 확보운동의 한 산물이라 하겠습니다.
김종해 : 아직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중요하게 다룬 것이라면 역시 저출산 고령화 사회문제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에 대해 중요하게 다루었던 거 같고 관련해서 개인적으로는 보육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이인재 : 여러 위원장님들의 회고를 통해 13년의 사회복지위원회의 활동과 10년간의 복지동향 활동을 되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질문은 앞으로의 사회복지위원회의 활동과 관련해서 2007년도 사회복지계를 전망해 주시기 바랍니다. 초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조흥식교수님 부터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조흥식 : 앞으로 사회문제로는 양극화 문제가 가장 크게 대두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특히 올해는 경제문제에 모든 초점이 모아지면서 대선에서 핫이슈로 대두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위원회의 역할은 이러한 사회의 흐름에서 대중적 사회복지 이슈를 다시 부각시키고 향후 한국사회의 복지 패러다임 모델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경제 이슈에 복지문제가 매몰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백종만 : 양극화 문제가 심각합니다. 정부도 이러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인 전망과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전 2030이라든지 새로마지플랜등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복지 재정이 확충되어야 한다는 문제도 있고요. 그래서 보면, 올해 복지가 핵심적 쟁점이 되지 않을까. 복지의 정치화가 뚜렷히 이야기되고 증세와 감세 논쟁도 크게 있을 것 입니다. 그런 와중에 참여연대 역시 복지재정의 확대라는 원론적인 측면에서 의견을 공유하지만 제도를 재편하고 효율화하는데는 내부적인 이견과 갈등이 상당히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부적 토론을 치열하게 하면서 통일되고 여러 제도와 부합되는 제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위기의 측면과 기회의 측면이 동시에 있는 것이죠.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변화된 복지지형 속에서 우리의 좌표들을 정확히 잡고 시대에 조흥해 가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어려운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이영환 :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던 1990년대에는 비교적 운동의 전선이 명확했습니다. 운동의 목표도 비교적 분명했고, 피아의 구분도 비교적 분명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활발한 운동이 가능했었다고 봅니다. 지금은 일종의 교착상태입니다. 무슨 굵직한 제도를 새로 만드는 상황이 아니라,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한 영역에서 질적인 발전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의 시민사회운동방식으로 헤쳐나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른 한편 복지예산의 극적인 확대가 필요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에는 뉴라이트 운동과 같은 보수적 운동도 등장하는 상황이라서, 복지정책과 관련한 이념적 다양성도 확대되는 단계라고 봅니다.
금년에는 아무래도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 같은데, 과거와 같이 최소한 구두선으로라도 모든 후보가 복지확대를 찬성하는 상황이 계속될지 의문입니다. 좀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싶고, 어쩌면 신자유주의적인 복지축소론도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복지정책의 방향을 둘러싼 담론 투쟁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연명 : 최근 사회복지계의 동향 중에 주목할 부분은 과거에는 별개의 영역으로 보였던 노동시장정책, 교육정책, 여성정책 그리고 보건복지정책의 융합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사회정책이란 말이 자주 회자되는 측면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발전단계는 복지정책 하나만 중심에 놓고 정책을 구상하거나 토론을 할수 없습니다. 하나의 복지정책은 다른 정책과 너무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문제를 종합적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때문에 사회복지위원회도 노동, 여성, 교육정책 등의 동향을 면밀히 파악할 필요성이 있고 정책의 연계성과 통합성을 높일 수 있는 대안들을 개발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주요한 담론으로 떠오르고 있는 사회투자국가에 대한 이해를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복지국가를 경험하지 못한 한국이 사회투자전략에 집중하는 것이 문제가 발생될 수 있으나 전체적인 경제사회적 구조변화가 사회투자전략의 필요성을 높여가고 있다고 봅니다. 정책방향도 사회투자적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고요.
윤찬영 : 2007년은 다 아시다시피, 대선이 있는 해이고 정책의 시장화가 절정을 이룰 시기입니다. 사회 양극화가 워낙 심하기 때문에 사회복지 정책에 대한 발전 기류도 많고 기대도 크지만, 구체적인 생각과 의견은 상이한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지 정책에 대한 논란이 상당히 많을 것이라고 봅니다. 사회복지계 내적으로는 정부가 사회복지사업법을 입법예고를 했고, 주요 내용이 민간 사회복지 시설의 투명화, 공공성 강화를 의도하고 있기 때문에 민간 사회복지계와 정부의 충돌이 있을것으로 보입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활동하려면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서로의 의견이 달라 어려움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합니다.
김종해 : 금년은 아무래도 대선이 있는 해라 대선 정국에 복지에 대한 논의가 묻혀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아무래도 구체적인 제도보다는 전체적인 복지의 지향점 내지 복지담론에 대한 논의가 많을 듯 합니다. 사회복지위원회 역시 구체적인 개별 제도에 대한 대처보다는 (물론 필요가 있으면 이에 따라야 하겠지만) 새로운 아젠다의 세팅이나 복지담론 형성에 주력할 생각입니다.
이인재 : 이번 좌담회의 마지막 질문입니다. 100호를 맞이하는 ‘복지동향’에 대한 당부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윤찬영 교수님부터 시작하시죠.
윤찬영 : 잘 만들라는 당부를 드립니다. 2004년도에 편집위원장으로 있으면서도 고민을 했지만, 매체의 본질적인 역할은 소통입니다. 특히, 쌍방향의 소통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복지동향을 보면 한쪽편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그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소통의 의미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매체의 성격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문지인지, 대중지인지 그 구분에 따라 달라집니다. 저는 적어도 복지동향이 사회복지계에 종사하는 활동가들, 공부하는 학생들, 사회복지계 관심있는 시민들과 함께 나아가는 것이 저희가 활동하는 큰 원동력이 된다고 봅니다. 그것을 보면 대중지 성격이어야 하는데,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들이 그러한 성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복지동향이 어렵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대중지의 성격은 매우 중요하므로, 대중지와 전문지간의 비율을 적절하게 나누어서 편집을 해나갈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백종만 : 윤교수가 복지동향에 대해 상세히 당부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창간 준비호를 만들때는 내가 의원장이었던 1998년도이니 그때의 발간 의도는 복지정보의 제공과 복지에 대한 대중지, 계몽지에 대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워낙 복지에 대한 시민의 의식이 없었으니까요. 지금의 사안을 가지고도 이러한 시도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참여연대가 그러한 이슈를 고른 이유나 입장들을 알려야 할 것입니다. 제도가 발전하면서 제도의 내용들이 전문화 되고 복잡해 지면서 대중들이 이를 읽고 얼마나 소회해 내느냐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쉬운 언어로 관점을 해석해 내고, 그것들이 시민들의 삶에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 알렸으면 합니다.
조흥식 : 100호까지 나오기까지 복지동향이 잘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좀 더 독자층을 확보하는 잡지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한 방법으로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시민활동가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지동향이 우리사회의 복지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을 담아내야 합니다. 지금은 현안을 좇아가기 바빠 보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장기적 전망을 내놓고 이를 위해 한국 사회가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를 조망해 보는 잡지가 되었으면 합니다.
김연명 : 진보세력의 위기론에 대해 동의하지는 않지만 진보의 여러 가치가 예전만큼 주목을 받지 못하는 측면은 있습니다. 그 중 핵심은 미래 사회에 대한 진보진영의 전망이 확실치 않다는 것입니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이 없다고 표현해도 좋을 듯 합니다. 개별 정책 대안은 물론 사회부분 전체의 진보적 대안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만들어가는 잡지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좀 더 논쟁적인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회정책 분야에 대한 언론비평도 좋습니다. 진보진영 내부의 논쟁을 다루는 것도 한 방법이고요. 사회복지위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도 좋지만 진보진영 내의 대안 프로그램에 대한 토론을 활성화시키는 역할도 복지동향이 떠맡아야 하는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김종해 : 소박하게 제 임기동안 무사히 발간되었으면 하고요, 바라는 게 있다면 사회복지위원회의 기관지 성격을 갖는다면 편집계획을 장기적으로 수립해서 지향점을 명확히 보여줄 수 있다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영환 : 첫째는 어렵게 어렵게 100호를 냈는데, 앞으로도 죽~ 계속 냈으면 좋겠습니다. 200호 아니라 100년 가는 잡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둘째는, 앞으로 전개될 담론투쟁에서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모색함은 물론 진보적인 복지세력의 목소리를 보다 폭넓게 담아내는 공론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셋째는 젋은 세대들이 공감하는 잡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인터넷을 좀 더 활용해서, 출간즉시 인터넷에 공개하고 댓글도 수용하는 등 보다 많은 투자를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인재 : 장시간 수고하셨습니다. 100호를 맞이하는 복지동향의 새로운 출발을 기원하면서 이것으로 오늘의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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