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간에서 따로 살아가기
월간 복지동향/2001 :
2001/02/10 00:00
내가 쪽방을 처음 알게 된 건 새천년의 흥분이 채가시지 않았을 무렵, 어느 신문에서였다. '쪽방을 아시나요'란 제목의 기사였는데, 쪽방에 대해 방크기는 길이 2m, 폭 1.2m 안팎, 숙박료는 일세 평균 6000~7000원, 개별 화장실·부엌·욕실은 없으며 극빈층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 곳이라 소개하고 있었다. 서울시가 극빈층 일용 노동자가 대부분인 쪽방 이용자들을 ‘잠재적 노숙자’로 분류해, 일부 밀집지역에 쪽방상담센터를 만들어 취업과 복지서비스 이용들을 돕고, 공동 화장실과 샤워장 및 세탁장 등도 설치해 다소 나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덧붙여졌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사회문제에 예민한 편인 나는 쪽방에 대해 즉각적인 관심을 보였었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어느새 잊고 지냈던 것이다. 그러다 겨울 문턱에 다다른 11월의 첫 날, 영등포지역의 한 화재사건을 접하게 되었다.
한 건물에 십수가구가 모여사는 쪽방지역에서 발생한 화재였다. 화재를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소화기조차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이번만큼은 하늘이 도운 탓인지 한 명의 인명 피해만 있었다. 노인이나 장애인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과 화재에 대비한 아무런 장치없이 따닥따닥 조밀하게 붙어있는 방들과 두사람이 마주 지나가기 어려운 좁은 골목 등을 생각하면 쪽방지역의 화재는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를 통해 쪽방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000년 10월 1일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되었지만, 최저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빈곤자이나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가 존재했고, 쪽방 주민들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해 있었다. 쪽방 주민들의 20% 정도만이 수급을 받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제도에 대한 정보부족, 문맹으로 인한 무지, 그리고 주민등록 말소를 이유로 수급권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세대별 주민등록표, 즉 주민등록을 수급권의 기본 자격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신청조차 할 수 없었다. 사회복지위원회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권찾기운동의 일환으로 주민등록이 말소된 쪽방 주민들의 재주민등록과 기초법 수급권 신청을 도와주기로 했다.
영등포역 부근의 쪽방지역부터 시작했다. 지역의 노숙자 및 쪽방 주민 편의시설(햇살 보금자리)의 공간을 빌어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생활이 어려움에도 기초법 수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쪽방 주민들과의 만남을 시작했다. 쪽방지역의 수급권찾기운동은 이렇게 쪽방 주민들을 만나 상담하고 같이 동사무소를 다니면서 주민등록 재등록과 수급권신청 등의 행정업무를 행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지난 12월과 1월, 두달 동안 만난 노숙자 및 쪽방 주민들은 한결같이 힘들고 어려운 삶의 고비고비를 간신히 넘어가며 살아오신 분들이었다.
95년부터 벌써 5년 이상을 이 곳, 영등포 쪽방에서 살아오신 임모씨(58세). 위, 허파 등에 갖은 질병으로 서너차례나 대수술을 받았고 이같은 건강상태로 제대로된 가장 노릇을 할 수 없었던 그에게 95년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다. 당시 임씨 가족은 생활보호대상으로 영구임대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아파트의 보증금 100만원은 찾아 아내가 갖고 이혼 후, 딸 둘과 아내 그리고 임씨는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역, 영등포역 등지에서 노숙을 전전하다 이곳 영등포 쪽방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지금은 소행상으로 면봉, 수세미 등을 팔아 한달에 11만원하는 쪽방의 월세를 간신히 메워나가고 있다. 95년 집을 나와서는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았고 쪽방에 들어온 뒤에도 거주지 이전신고를 한 적이 없어 주민등록이 말소되었다고 하셨다. 다시 주민등록을 해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권을 신청해 급여를 받게 되어 쪽방의 월세만이라도 덜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셨다. 일하시기에 건강도 너무 안좋은데다 요즘 경기까지 더 나빠져 행상으로 버는 수입으론 쪽방 월세를 제때 내기도 벅차다고 하셨다. 자기 일에 공연히 수고가 많다며 연신 미안해 마지않던 그리고 추운데 잠시라도 내가 먼저와 기다리게 할 순 없다며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씩이나 일찍 나와 기다리시던, 만나면 언제나 밝게 웃으시던 그 모습을 쉽게 잊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30년전 아버지의 재혼과 새어머니와의 갈등 때문에 집을 나온 것으로 이 끝나지 않는 노숙과 쪽방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김모씨(48세). 집을 나와 상경한 후 젊은 시절에는 여러 공장을 전전하며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프레스 공장에서 일할 때 기계에 손을 다쳐 손가락 두 개를 잃었다. 그나마 있던 일자리에서 쫓겨나 더 힘든 생활을 해야했고 건강도 잃었다. 아주 단순한 일 외에는 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돈을 벌지 못하는 김씨에게 친구들이 가끔 돈을 모아 쪽방에 묵도록 도와줬다고 한다. 이번에 힘들게 쪽방을 얻어 주민등록 신청을 하고 거주지 이전신고도 했다.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으면 제일 먼저 쪽방 월세부터 내겠다며, 급여를 받기 위해서 태어나 처음으로 만든 자기명의로 된 통장을 들고 미소 지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심한 천식으로 조금만 걸어도 숨을 헐떡이셨고 척추 이상으로 오래 걷는데 무리가 있어 목발에 의지해 다니셨음에도 내 시간을 덜 쓰게 하겠다고, 힘들면 쉬었다 가자고 해도 늘 막무가내셨다. 또 매번 미안해 하시며 나에게 뭔가 주지 못해 안달하셨는데 한번은 자신은 바쁠 것 없으니 천천히 걸어가겠다며 장애인용 지하철 무료승차권을 내게 건내기도 하셨고, 신속대출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인 메모장을 건네시며 '난 필요없어서..'하시기도 했다. 내가 이때껏 받아본 그 어떤 것들보다 값진 선물이요 마음이었다.
쪽방 지역 수급권찾기운동을 두 달 가량 이어가면서 힘들 때도 많았지만 몇 몇 쪽방 주민들의 따뜻한 맘에 힘을 더 낼 수 있었다. 게다가 일을 정리하면서 좋은 소식도 들려와 아주 반가웠다.
쪽방 주민들의 주민등록 재등록을 보다 쉽도록 하기 위해, 1월 16일 이후부터 말소지까지 갈 필요 없이 거주지에서 재등록이 가능하도록 하고, 재등록시 내는 과태료 10만원 중 절반을 깎아주고 나머지도 나중에 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주민등록증 재발급 수수료 1만원과 주민등록 등·초본 발급수수료도 면제되었다.
신문이나 텔레비젼을 통해서 보던 문제의 현장에 직접 들어가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면서 활자와 화면으로는 미처 볼 수 없었던 많은 걸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깨진 보도블럭과 골목길 바닥에 고여 있던 썩은 물,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쓰레기 더미, 좁고 어두운 골목, 방문을 열었을 때에 밀려오는 방안의 온갖 것들이 찌든 것 같은 쾌쾌한 냄새, 방안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낡은 냄비와 버너.. 와락 쏟아져 내리려는 눈물을 참으려 무진 애를 써야 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사시는 분들이 아직은 더 많은데, 이분들을 내가 더 초라하게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괜히 죄스런 마음도 들었다.
영등포 쪽방은 백화점이 들어선 영등포역사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높다란 빌딩들과 화려한 불빛 사이에 가려진 쪽방.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곳, 쪽방엔 누가 사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무심히 그 길을 오간다. 같은 공간에서 따로 살아가는 세상, 이것이 바로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한 건물에 십수가구가 모여사는 쪽방지역에서 발생한 화재였다. 화재를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소화기조차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이번만큼은 하늘이 도운 탓인지 한 명의 인명 피해만 있었다. 노인이나 장애인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과 화재에 대비한 아무런 장치없이 따닥따닥 조밀하게 붙어있는 방들과 두사람이 마주 지나가기 어려운 좁은 골목 등을 생각하면 쪽방지역의 화재는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를 통해 쪽방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000년 10월 1일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되었지만, 최저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빈곤자이나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가 존재했고, 쪽방 주민들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해 있었다. 쪽방 주민들의 20% 정도만이 수급을 받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제도에 대한 정보부족, 문맹으로 인한 무지, 그리고 주민등록 말소를 이유로 수급권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세대별 주민등록표, 즉 주민등록을 수급권의 기본 자격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신청조차 할 수 없었다. 사회복지위원회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권찾기운동의 일환으로 주민등록이 말소된 쪽방 주민들의 재주민등록과 기초법 수급권 신청을 도와주기로 했다.
영등포역 부근의 쪽방지역부터 시작했다. 지역의 노숙자 및 쪽방 주민 편의시설(햇살 보금자리)의 공간을 빌어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생활이 어려움에도 기초법 수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쪽방 주민들과의 만남을 시작했다. 쪽방지역의 수급권찾기운동은 이렇게 쪽방 주민들을 만나 상담하고 같이 동사무소를 다니면서 주민등록 재등록과 수급권신청 등의 행정업무를 행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지난 12월과 1월, 두달 동안 만난 노숙자 및 쪽방 주민들은 한결같이 힘들고 어려운 삶의 고비고비를 간신히 넘어가며 살아오신 분들이었다.
95년부터 벌써 5년 이상을 이 곳, 영등포 쪽방에서 살아오신 임모씨(58세). 위, 허파 등에 갖은 질병으로 서너차례나 대수술을 받았고 이같은 건강상태로 제대로된 가장 노릇을 할 수 없었던 그에게 95년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다. 당시 임씨 가족은 생활보호대상으로 영구임대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아파트의 보증금 100만원은 찾아 아내가 갖고 이혼 후, 딸 둘과 아내 그리고 임씨는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역, 영등포역 등지에서 노숙을 전전하다 이곳 영등포 쪽방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지금은 소행상으로 면봉, 수세미 등을 팔아 한달에 11만원하는 쪽방의 월세를 간신히 메워나가고 있다. 95년 집을 나와서는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았고 쪽방에 들어온 뒤에도 거주지 이전신고를 한 적이 없어 주민등록이 말소되었다고 하셨다. 다시 주민등록을 해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권을 신청해 급여를 받게 되어 쪽방의 월세만이라도 덜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셨다. 일하시기에 건강도 너무 안좋은데다 요즘 경기까지 더 나빠져 행상으로 버는 수입으론 쪽방 월세를 제때 내기도 벅차다고 하셨다. 자기 일에 공연히 수고가 많다며 연신 미안해 마지않던 그리고 추운데 잠시라도 내가 먼저와 기다리게 할 순 없다며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씩이나 일찍 나와 기다리시던, 만나면 언제나 밝게 웃으시던 그 모습을 쉽게 잊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30년전 아버지의 재혼과 새어머니와의 갈등 때문에 집을 나온 것으로 이 끝나지 않는 노숙과 쪽방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김모씨(48세). 집을 나와 상경한 후 젊은 시절에는 여러 공장을 전전하며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프레스 공장에서 일할 때 기계에 손을 다쳐 손가락 두 개를 잃었다. 그나마 있던 일자리에서 쫓겨나 더 힘든 생활을 해야했고 건강도 잃었다. 아주 단순한 일 외에는 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돈을 벌지 못하는 김씨에게 친구들이 가끔 돈을 모아 쪽방에 묵도록 도와줬다고 한다. 이번에 힘들게 쪽방을 얻어 주민등록 신청을 하고 거주지 이전신고도 했다.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으면 제일 먼저 쪽방 월세부터 내겠다며, 급여를 받기 위해서 태어나 처음으로 만든 자기명의로 된 통장을 들고 미소 지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심한 천식으로 조금만 걸어도 숨을 헐떡이셨고 척추 이상으로 오래 걷는데 무리가 있어 목발에 의지해 다니셨음에도 내 시간을 덜 쓰게 하겠다고, 힘들면 쉬었다 가자고 해도 늘 막무가내셨다. 또 매번 미안해 하시며 나에게 뭔가 주지 못해 안달하셨는데 한번은 자신은 바쁠 것 없으니 천천히 걸어가겠다며 장애인용 지하철 무료승차권을 내게 건내기도 하셨고, 신속대출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인 메모장을 건네시며 '난 필요없어서..'하시기도 했다. 내가 이때껏 받아본 그 어떤 것들보다 값진 선물이요 마음이었다.
쪽방 지역 수급권찾기운동을 두 달 가량 이어가면서 힘들 때도 많았지만 몇 몇 쪽방 주민들의 따뜻한 맘에 힘을 더 낼 수 있었다. 게다가 일을 정리하면서 좋은 소식도 들려와 아주 반가웠다.
쪽방 주민들의 주민등록 재등록을 보다 쉽도록 하기 위해, 1월 16일 이후부터 말소지까지 갈 필요 없이 거주지에서 재등록이 가능하도록 하고, 재등록시 내는 과태료 10만원 중 절반을 깎아주고 나머지도 나중에 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주민등록증 재발급 수수료 1만원과 주민등록 등·초본 발급수수료도 면제되었다.
신문이나 텔레비젼을 통해서 보던 문제의 현장에 직접 들어가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면서 활자와 화면으로는 미처 볼 수 없었던 많은 걸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깨진 보도블럭과 골목길 바닥에 고여 있던 썩은 물,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쓰레기 더미, 좁고 어두운 골목, 방문을 열었을 때에 밀려오는 방안의 온갖 것들이 찌든 것 같은 쾌쾌한 냄새, 방안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낡은 냄비와 버너.. 와락 쏟아져 내리려는 눈물을 참으려 무진 애를 써야 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사시는 분들이 아직은 더 많은데, 이분들을 내가 더 초라하게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괜히 죄스런 마음도 들었다.
영등포 쪽방은 백화점이 들어선 영등포역사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높다란 빌딩들과 화려한 불빛 사이에 가려진 쪽방.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곳, 쪽방엔 누가 사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무심히 그 길을 오간다. 같은 공간에서 따로 살아가는 세상, 이것이 바로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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