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와 효율, 그리고 경쟁. 아마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한 설득력(?)을 가진 말들일 것이다. 아니 설득의 차원을 넘어 이제는 감히 누구도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할 국가운영의 지표이자 시대정신이 된 듯하다. 이 정도면 단순한 논리 차원을 넘어 '권력'을 획득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한편에 "생산적 복지"가 초라하게 자리잡고 있기는 하나 솔직히 볼품 없는 형색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하루이틀된 일은 아니지만, 시장의 논리는 일반 산업부문을 정복하고 복지와 삶의 질의 영역에서조차 독점적 지위를 누리려 하고 있다.

최근 규제개혁위원회가 취하고 있는 일련의 권고와 결정은 시장논리가 사회보장과 복지, 보건의 영역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단적인 증거이다. 사회보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관심도 표한 적이 없는 터에 용감하게 민간의료보험 도입을 검토하고, 개인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렇지 않아도 어설픈 의료전달체계를 아예 없애자는 주장을 서슴없이 내놓고 있다.

비단 규제개혁위원회만이 아니다. 소위 시장 논리가 우리 삶의 질과 복지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예는 최근 더욱 많아지고 있다. 겨우 첫걸음을 뗀 기초생활보장법 시행을 연기하자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언론의 지원을 받고 있고(월간조선의 대담!), 한편에서는 직장의보의 적립금에 대한 헌법소원이 원고에게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믿지 못할 소문도 있다(안타깝게도 이 글을 쓰는 시점은 헌법재판소의 최종판결이 있기 이전이다).

언뜻 이러한 예는 실제적인 문제, 예를 들어 의료전달체계로 의료이용에 제약을 가할 것인가 여부나 적립금 처리 문제 등에 관한 다툼으로 보이지만, 그 배후에는 의심할 바 없이 시장 이데올로기가 자리잡고 있다. 사회 구성원 각자가 능력(?)에 따라 효용을 추구하는 것이 보장되어야 하고, 이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사회구성원리라는 이념이야말로 이러한 사태를 빚어내는 근본적인 이유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논의는 이제 진부하다. 사실 말이지만, 우리 사회 어디에 시장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곳이 있던가. 시장의 전형이라 불리는 금융부문에서조차 시장실패의 예를 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복지가 시장이라니. 규범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복지에서의 시장논리는 성립 불가능하다.

민간의료보험만 해도 그렇다. 나는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제도 중에서 민간의료보험과 가장 비슷한 것이 자동차보험이라고 생각한다(물론 그 중에 사람과 관련된 보험부분을 뜻한다). 가입자가 보험회사를 선택할 수 있고, 의료기관과 보험이 계약을 맺어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민간의료보험과 비슷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자동차보험에는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자동차보험 전체의 가장 큰 부실원인으로 지목될 정도로 시장은 '실패'했다. 민간보험에서 시장이 성립할 것이라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시장의 논리는 여전히 발언권을 가지고 있고, 자주 권력의 형태로 우리에게 나타나는가. 그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바로 '시장'이기 때문이다. 시장이 주류로 남아 있는 한 복지가 시장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제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역전시킬 것인가가 문제이다. 첫째, 지식의 생산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재편이 필요하다. 한국의 지식생산구조는 압도적으로 미국 의존적이다. 주지하듯이 미국이야말로 극도로 왜곡된 복지의식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대부분의 지식인, 교수, 지식생산자가 미국에서 훈련받거나 직간접적으로 그 영향권 안에 있다. '미국적' 지식에 포위되어 있는 한, 한국에서 생산되거나 유포되는 지식이 시장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둘째, '복지운동'의 조직이 시급하다. 복지가 국민 대중의 삶의 현장에서 그 삶의 질을 문제삼는 것이라면, 삶과 유리될 수 없고 국민과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복지이념은 그야말로 추상적인 이념의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 마땅히 의견을 가지고 필요하면 요구를 제기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지역에서, 각 영역에서 복지를 '운동'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비현실적인 공론(空論)으로서의 반복지 이념을 막아내는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다. 이는 동시에 끊임없이 시도되는 반복지 이념의 오염에 대한 국민의 저항력을 키울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셋째, 우리나라 복지의 참담한 현실을 폭로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 일이다. 대부분의 국민, 지식인, 정책참여자들이 복지현실을 알지 못한다. 혹여 안다고 해도 그것은 일시적이고 피상적이다. 지속적으로 복지현실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조간신문에는 정신질환자 이야기는 일부러 안 싣는다는 소리가 전혀 우스개 소리가 아니다. 시설수용자의 인권, 방치되고 있는 노인과 어린이의 문제, 비정규 노동자의 복지문제 등 사회적 관심에서 떨어져 있는 문제에 대한 조명이 간단없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넷째, 더욱 풍부한 대안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흔히 복지에 대한 공격은 '현실성'의 형태로 제기된다. 물론 배후에는 이데올로기를 숨기고 있지만. 이런 공격에 대해 최선의 방어가 필요하다. 실무적 대안에 빠져 허우적거릴 일은 아니지만, 실무적 공격에 넘어지는 일은 더더욱 피해야 한다.

김창엽 /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
2000/07/10 00:00 2000/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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