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회정책패러다임을 향하여
월간 복지동향/2007 :
2007/03/01 00:00
새로운 사회정책패러다임을 향하여
전병유/노동연구원, 양재진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1. 세계화시대, 국가의 역할은 축소되어야 하는가?
우리나라는 국가 정책을 통해서 경제를 발전시켰고 분배까지 개선하는 데 성공한 예외적인 경우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간 이러한 평가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다가서고 있고, 우리 경제가 글로벌화와 기술혁신의 격랑 속이 깊숙이 들어가고 있음에도 국가의 정책 역량은 이에 맞추어 발전하고 혁신되지 못하고 있고 국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크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작지 않다.
그리고 글로벌화가 심화하고 기술혁신이 빠르게 진전될수록 국가 정책의 역할과 기능이 강화될 필요성은 커진다. 국가의 정책적 역량이 커질수록 글로벌화와 기술혁신이 제공하는 기회는 더 커지고 부작용은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 정책은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더 정교해지고 더 치밀해져야 할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성장률 하락과 양극화 심화라는 커다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시장혁신 못지않게 사회정책의 혁신이 필요하다. 공공정책은 주기적인 선거와 여론을 통해서 검증받기는 하지만 글로벌 시장으로부터의 직접적으로 압력은 받지 않는다. 당연히 시장혁신보다 사회정책의 혁신은 지체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아일랜드, 덴마크 등 정책혁신을 통해 국가 역량을 신속하게 강화한 많은 국가들이 글로벌화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글로벌화의 기회를 살려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다.
우리는 현재, 과거에는 경험해보지 못하였으나 풀어내야만 하는 많은 경제사회적 쟁점들을 안고 있다. 성장과 분배의 조화, 양극화와 고용 없는 성장, 노후소득보장과 연금개혁, 학력격차 및 세대내ㆍ세대간 불평등, 증세와 감세, 제도 개혁과 이해집단간 갈등ㆍ대립, 사회적 신뢰의 위기 등 국민의 삶의 질과 관련된 수많은 사회적 쟁점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이슈들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 정책의 영역도 확대되고 다양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책 역량은 이러한 첨예한 사회경제적 이슈들을 소화하여 국가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만큼 향상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미시적으로 정교한 대응을 마련해나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러한 쟁점들을 큰 틀에서 이해・해석하고 정책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가 정책의 큰 방향과 전략, 목표를 갖출 필요가 있다.
2. 새로운 정책패러다임이 필요한가?
우리는 과거의 정책패러다임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환경 및 경제사회 시스템의 변화에 직면해있다. 우선 외환위기를 전후로 하여 우리 경제가 움직이는 방식이 크게 바뀌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나타나고 있는 경제사회적 시스템의 변화는 기존의 박정희체제나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87년체제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도전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87년체제가 우리의 긴 역사에서 볼 때 매우 의미있는 역사적 성과를 달성하였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87년체제가 시장중심주의라는 97년체제를 극복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민주화의 덫’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고, 여기에 이른바 2000년체제 여기서 2000년 체제라고 함은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학적 위기가 우리사회에서 전면화되면서 사회적 쟁점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시점이 2000년 경이라는 의미에서 붙인 표현이다.
라고 명명할 수 있는 저출산고령화라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의 문제가 덧붙여지고 있다.
과거 국가주도의 자원 동원에 의한 고도성장메커니즘이 한계를 보인 시점에 97년 외환위기로 시장중심주의가 단순 접목되었다. 그 결과 경제성장률은 외환위기 직후 일시적인 반등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5%대 미만의 정체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를 위해 국가가 자원을 인위적으로 동원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환경변화에 따른 불확실성 및 위험을 시장이 자율적으로 분산ㆍ완화하는 메커니즘이 확립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민간의 자원은 성장을 위해 움직이지 않고 있다. 기업은 경영 불안으로 투자를 꺼리고 있고 노동자는 고용불안으로 소비를 꺼리고 인적자원에 대한 장기적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적 신뢰 수준도 높아지지 않고 있다.
동시에 글로벌화에 따른 대내적 연관관계의 약화로 인하여 성장과 고용 분배간의 고리가 상실되면서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노동시장이 비정규직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완전고용에 기초한 전통적인 케인즈주의적 복지패러다임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워 양극화 해결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경제시스템의 변화는 완전고용, 사회적 안정, 평등, 상향이동 등 우리가 사회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들의 실현을 어렵게 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고 느끼고 있으며, 일자리가 있어도 고용은 불안하다고 생각한다. 일을 통해 소득을 확보해도 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장기적으로 더 나은 위치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전망도 약해졌다.
다른 한편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또 하나의 커다란 문제는 인구 및 가족 구조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2016년에는 생산가능인구가 절대적으로 줄어들고 2020년대 초에는 인구 자체가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빠른 고령화는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다. 한편으로는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고령화가 달려오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재정 압박을 심하게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우리에게 남아 있는 기간이 10여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렇게 국가 경제의 외부 환경은 대단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정책 패러다임은 과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경제사회적 쟁점들은 정책의 목표를 둘러싼 이념적 충돌로 그치거나, 정책 간의 정합성이 결여되거나, 정책을 둘러싼 이해집단의 개입과 갈등이 지속되는 결과만을 초래하고 있다.
우리의 경제사회시스템이 지향해야 하는 것은 유연하면서도 안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불확실성과 위험을 관리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 구축을 위한 제도 개혁의 요구가 커져가고 있지만 현재와 같이 경제주체들이 집단행동의 덫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는 국가의 선도적이고 혁신적인 정책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미래의 국가는 과거의 국가와 달리 경제주체의 행위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규제하기보다는 국민들에게 서비스하고, 이해집단들 간의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며, 시장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며, 동시에 국가 발전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특히, 국가의 정책은 개별 경제주체들과 국민들에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행동할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이 때의 비전은 정책보고서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의 내용과 정책 집행 능력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3. 새로운 사회정책패러다임의 내용은 무엇인가?
우리는 경제의 개방화와 기술변화 등으로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경제적 변동성과 사회적 위험에 대해서 유연하고 안전하게 대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자본시장의 자유화로 더욱 커진 거시경제의 변동성을 줄이며 개방과 기술ㆍ산업구조의 변화가 초래한 양극화를 완화하며, 실직과 같은 전통적인 위험에 대한 사회적 보호체계도 강화하면서도, 가족구조의 변화와 고령화 등에 따른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도 적절하게 대응해야 하고, 이러한 과제들을 정책 수단으로 구체화하고,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효율적인 정책거버넌스도 구축해야 하는 이중삼중의 부담을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정책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비정규직 및 영세자영업 등 전근대적 고용 영역을 사회정책의 틀 속에 끌어들여 사회적 보호를 강화하면서도, 영유아나 여성 관련 정책들을 새로 도입하고 인적자원투자를 강화하며 고용률을 높이는 사회투자형 정책패키지를 구성해야 하며, 개방에 따른 제도개혁과 이에 따른 시장 이해관계자 집단 간의 갈등 구조를 제도적ㆍ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중삼중의 과제이자 부담이다.
특히 사회적 보호체계의 구축, 사회투자적 사회정책의 강화, 효율적인 정책거버넌스의 구축 모두 모두 막대한 재정 투자를 필요로 하는 과제들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사회정책 패러다임은 매우 정교하교 치밀하게 설계되고 추진되지 않으면, 시대적 필요성과 정책의 목표를 쉽게 달성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나라의 사회정책이 추구해야 할 정책적 방향이나 원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유연안전성 모델의 구축
변화하는 환경 하에서 개방과 혁신을 위해서는 대내적인 경제와 사회 조직의 유연화는 필수적이다. 유연안전성의 대표적 모델은 네델란드의 단시간근로와 비례보호의 교환이나 덴마크의 노동시장유연화와 사회보장 및 평생교육시스템 확충간의 교환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유연안전성 모델은 단순히 노동시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경제의 다양한 차원에서 검토해볼 수 있다. 금융시장과 노동시장에서의 유연성과 안전성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에서의 기초보장과 재정안정 및 고용촉진, 건강보험에서의 보장성과 재정안정성, 공적부조에서의 욕구별 지원과 복지의존해소 등 서로 상충하는 듯이 보이는 가치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 요구된다. 이러한 유연안전성이 가능하려면, 유연성과 안전성, 시장성과 공공성간의 전략적 거래와 사회적 타협에 기초한 제도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국가가 사회구성원의 경제적 안전성을 보장하는 안전망을 확립하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주요 선진국의 경험을 보면 유연성은 안전성의 기초 하에서만 효과적, 효율적으로 구축되었다. 한 사회 구성원이 직면하고 있는 위험의 사회화를 통해서 경제적 안전성을 높여주어야만, 시장의 유연성도 가능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인 틀을 갖추어가고 있는 사회정책들이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선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위험의 사회화를 통해 경제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대안의 하나로 들 수 있는 것은 외환위기 이후 증대된 일자리 상실이 초래하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실업급여 제도가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소득상실의 위험에 대응하여 빈곤정책 및 공공부조 정책을 개혁하는 것, 이를 통해 복지정책의 사각지대를 축소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2) 경제정책의 사회적 성격을 강화
현재 경제영역에서의 변화는 사회적으로 과도한 부담을 사회정책 쪽으로 전가하고 있다. 높은 비정규직 및 자영업 비율과 그에 따른 광범위한 정책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고,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한 국가의 정책 능력이나 정책거버넌스가 여전히 취약하다. 따라서 경제 영역에서 빅뱅형 개방과 시장화를 추진하고 이때 발생하는 부담을 사회정책이나 재정정책이 다 받아내는 방식은 현재 우리의 초기조건을 고려할 때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경제정책이 먼저 경제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완화하고 사회적 양극화를 유발하지 않음으로써 잠재성장률 제고와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는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정책과 산업정책의 사회적 성격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먼저 거시경제정책의 선진화를 통해서 경제의 과도한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완화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과도하게 변동성이 커져가고 그에 따라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규제수단에 의존하는 거시경제관리방식을 줄이고, 성장과 고용을 고려하여 금리와 환율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조세재정정책의 자동안정화 기능 및 재분배기능을 강화하는 선진적인 거시경제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고용을 동반하는 성장을 통해 경제의 양극화를 완화하면서 인적자원에 기초한 혁신이 가능하도록 하는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하이테크숙련뿐만 아니라 중간숙련에 기초한 제품혁신과 공정혁신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혁신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다. 소위 복지확산형 혁신국가(welfare spreading innovation state)가 필요한 시점이다.
3) 사회적 위험에 대한 공적인 보호체제의 구축.
장기적으로 사회적 위험의 보호 체계는 민간시장에 대한 규제를 통해 달성하려 하기보다는 공적이고 사회적인 보호의 틀을 확산하는 방향에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이는 앞에서 검토한 유연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사회정책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의미도 있고, 급격한 고령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고용친화적인 사회정책의 구축이라는 의미도 가진다. 예를 들어 고용보호나 최저임금과 같이 고용에 친화적이지 않을 수 있는 시장개입적이고 시장규제적인 정책에 대한 의존도는 가능한 한 낮추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하는 대신, 시장임금보다는 사회적 임금을 늘림으로써 사적비용과 거래비용을 낮추어줄 수 있는 정책 대안을 모색한다거나, 사회정책 재원조달 방식도 직접적으로 노동비용을 상승시켜 고용에 친화적이지 못한 보험료 징수방식보다는 일반조세체계에 기초한 정책으로 설계하는 방향을 설계하는 것 등이다.
4) 사회정책의 생산적 성격을 높이는 사회투자형 정책 패키지의 확대
높은 수준의 개방ㆍ혁신과 높은 수준의 사회적 보호가 결합하는 모델로의 이행을 원활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고용 및 인적자원 친화적이며 예방적인 사회정책 패키지를 구성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매우 낮은 수준이고 고령화의 속도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개방에 따른 기존의 사회적 위험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겹쳐서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불안정은 더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급속한 인구 고령화는 공적연금제도에 큰 압박을 준다. 연금지급액의 축소로 대응할 수도 있으나 이는 은퇴자의 노후 생활수준을 낮춘다는 문제도 있고 장기적인 대안이 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가능하면 중ㆍ고령자들이 노동시장에 오래 남아서 소득을 수취하고 조세를 부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근본적 대안이다. 따라서 중ㆍ고령자의 생애취업기간을 연장하는 방향으로 사회정책이 설계될 필요가 있다. 물론 사회정책의 생산적ㆍ투자적 성격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사회적 보호 체계, 정책 추진을 위한 인프라, 경제주체들 간의 사회적 갈등을 원활하게 조정하고 타협시킬 수 있는 능력 등이 전제가 되는 것을 두말할 필요가 없다. 소위 ‘사회투자형 복지국가’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4. 새로운 사회정책패러다임의 실천은 가능한가?
앞에서 검토한 사회적 보호시스템 구축, 유연성과 안전성, 공공성과 시장성간의 전략적 거래와 타협을 통한 제도 개혁, 사회정책의 투자적 성격의 강화 등을 위해서는 국가의 능력이 더 높아져야 하고, 국가의 기능이 혁신적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특히, 개방의 확대는 기존 제도와 관행과 충돌하면서 많은 이해관계의 대립과 갈등을 초래할 것이다. 국가는 공공선의 대변자로서 이러한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 사회는 공적인 실체로서의 국가의 힘이 약화되어 공공성에 기초한 제도 개혁이 어려워지는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잘 설계된 공공정책이 사회적으로 실현가능하도록 할 수 있도록 정책의 물리적 인프라와 사회적 신뢰가 요구되고 있다. 정책의 설계가 정교하게 이루어지고 예산이 책정되는 경우에도 이를 국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정책적 인프라가 부족하고 이해관계자들의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고 공공선이 달성되는 선택이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정책은 원래의 의도를 달성하지 못한다. 특히, 사회정책의 확충과 관련하여 정부의 선도적 역할이 요구되기 때문에 이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서구 복지국가의 형성ㆍ발전과정에서는 노동자의 복지 요구와 복지 정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조직화된 노동자의 비중이 낮고, 그 절대적 규모도 줄어들고 있으며 노동시장이 분절화하면서 통일된 이해관계가 형성되지 않음으로 인해서 사회정책의 추진 동력이 약화되어 있는 상태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복지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관철할 수 있는 사회세력이 형성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가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사회구성원들을 설득하고 사회정책과 관련하여 사회구성원간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할 필요성이 한층 더 커진 상황이다.
공공정책은 다양한 외부성을 가지지만 그 중에서도 사회적 신뢰라는 외부효과를 창출한다. 특히 사회정책은 사회구성원 간의 협력과 신뢰 수준을 높여줌으로써 긍정적 외부성 또는 외부경제를 촉진할 수 있다. 즉 사회정책은 경쟁 규칙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다양한 사회적 차별을 시정하고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사회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사회구성원 간 관계구조를 더 협력적인 방향으로 형성해갈 수 있다. 정부는 이러한 사회적 자본의 외부성을 창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과거와 같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공공선이라고 가정하고 추진하는 것은 외부효과를 창출할 수 없다. 결사체 민주주의와 사회적 합의 모델을 바탕으로 하여 시민들이 국가 정책 결정에 참여하여 새로운 정책적 지향에 대한 동의와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적 합의모델이 가능했던 덴마크나 네델란드 등 강소국들과는 달리 인구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고 산업구조가 다차원적이고, 자영업이나 영세기업근로자 등 전근대적인 영역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전국 규모의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지역이나 업종 단위로, 또는 정책 아이템 단위로 중층적인 사회적 합의의 사례를 축적해가는 모델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형해화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를 활성화시키는 노력, 여.야 정당간 정책협의체를 가동하여 정치권의 리더십을 강화하는 노력, 주요 의제별로 사회적 협의기구를 구성하여 되도록 이해관계자들의 이해를 높이고 동의를 구하는 노력, 예를 들어, 2006년에 저출산고령화 추세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이해관계자들 간의 사회적 합의를 추구하는 노력 등의 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동계의 산별화가 소모적이고 경쟁적인 기업별 교섭체제를 넘어 산별교섭체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노력, 그리고 지역별 사회적 협의체들이 구성되어 지역경제와 고용, 그리고 훈련문제를 풀어나가는 노력 울산, 순천, 부천 등 지역 차원의 사회적 합의모델의 출현은 중범위 차원에서 이해관계자간의 협력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등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 때 이러한 다방면의 노력과 이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하나의 패러다임 속에 응축해 낼 수 있는 새로운 정치리더십이 형성된다면, 새로운 사회정책패러다임의 실현은 보다 빠른 속도로 우리곁에 다가올 것이다.
전병유/노동연구원, 양재진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1. 세계화시대, 국가의 역할은 축소되어야 하는가?
우리나라는 국가 정책을 통해서 경제를 발전시켰고 분배까지 개선하는 데 성공한 예외적인 경우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간 이러한 평가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다가서고 있고, 우리 경제가 글로벌화와 기술혁신의 격랑 속이 깊숙이 들어가고 있음에도 국가의 정책 역량은 이에 맞추어 발전하고 혁신되지 못하고 있고 국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크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작지 않다.
그리고 글로벌화가 심화하고 기술혁신이 빠르게 진전될수록 국가 정책의 역할과 기능이 강화될 필요성은 커진다. 국가의 정책적 역량이 커질수록 글로벌화와 기술혁신이 제공하는 기회는 더 커지고 부작용은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 정책은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더 정교해지고 더 치밀해져야 할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성장률 하락과 양극화 심화라는 커다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시장혁신 못지않게 사회정책의 혁신이 필요하다. 공공정책은 주기적인 선거와 여론을 통해서 검증받기는 하지만 글로벌 시장으로부터의 직접적으로 압력은 받지 않는다. 당연히 시장혁신보다 사회정책의 혁신은 지체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아일랜드, 덴마크 등 정책혁신을 통해 국가 역량을 신속하게 강화한 많은 국가들이 글로벌화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글로벌화의 기회를 살려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다.
우리는 현재, 과거에는 경험해보지 못하였으나 풀어내야만 하는 많은 경제사회적 쟁점들을 안고 있다. 성장과 분배의 조화, 양극화와 고용 없는 성장, 노후소득보장과 연금개혁, 학력격차 및 세대내ㆍ세대간 불평등, 증세와 감세, 제도 개혁과 이해집단간 갈등ㆍ대립, 사회적 신뢰의 위기 등 국민의 삶의 질과 관련된 수많은 사회적 쟁점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이슈들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 정책의 영역도 확대되고 다양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책 역량은 이러한 첨예한 사회경제적 이슈들을 소화하여 국가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만큼 향상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미시적으로 정교한 대응을 마련해나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러한 쟁점들을 큰 틀에서 이해・해석하고 정책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가 정책의 큰 방향과 전략, 목표를 갖출 필요가 있다.
2. 새로운 정책패러다임이 필요한가?
우리는 과거의 정책패러다임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환경 및 경제사회 시스템의 변화에 직면해있다. 우선 외환위기를 전후로 하여 우리 경제가 움직이는 방식이 크게 바뀌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나타나고 있는 경제사회적 시스템의 변화는 기존의 박정희체제나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87년체제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도전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87년체제가 우리의 긴 역사에서 볼 때 매우 의미있는 역사적 성과를 달성하였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87년체제가 시장중심주의라는 97년체제를 극복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민주화의 덫’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고, 여기에 이른바 2000년체제 여기서 2000년 체제라고 함은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학적 위기가 우리사회에서 전면화되면서 사회적 쟁점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시점이 2000년 경이라는 의미에서 붙인 표현이다.
라고 명명할 수 있는 저출산고령화라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의 문제가 덧붙여지고 있다.
과거 국가주도의 자원 동원에 의한 고도성장메커니즘이 한계를 보인 시점에 97년 외환위기로 시장중심주의가 단순 접목되었다. 그 결과 경제성장률은 외환위기 직후 일시적인 반등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5%대 미만의 정체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를 위해 국가가 자원을 인위적으로 동원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환경변화에 따른 불확실성 및 위험을 시장이 자율적으로 분산ㆍ완화하는 메커니즘이 확립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민간의 자원은 성장을 위해 움직이지 않고 있다. 기업은 경영 불안으로 투자를 꺼리고 있고 노동자는 고용불안으로 소비를 꺼리고 인적자원에 대한 장기적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적 신뢰 수준도 높아지지 않고 있다.
동시에 글로벌화에 따른 대내적 연관관계의 약화로 인하여 성장과 고용 분배간의 고리가 상실되면서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노동시장이 비정규직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완전고용에 기초한 전통적인 케인즈주의적 복지패러다임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워 양극화 해결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경제시스템의 변화는 완전고용, 사회적 안정, 평등, 상향이동 등 우리가 사회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들의 실현을 어렵게 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고 느끼고 있으며, 일자리가 있어도 고용은 불안하다고 생각한다. 일을 통해 소득을 확보해도 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장기적으로 더 나은 위치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전망도 약해졌다.
다른 한편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또 하나의 커다란 문제는 인구 및 가족 구조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2016년에는 생산가능인구가 절대적으로 줄어들고 2020년대 초에는 인구 자체가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빠른 고령화는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다. 한편으로는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고령화가 달려오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재정 압박을 심하게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우리에게 남아 있는 기간이 10여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렇게 국가 경제의 외부 환경은 대단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정책 패러다임은 과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경제사회적 쟁점들은 정책의 목표를 둘러싼 이념적 충돌로 그치거나, 정책 간의 정합성이 결여되거나, 정책을 둘러싼 이해집단의 개입과 갈등이 지속되는 결과만을 초래하고 있다.
우리의 경제사회시스템이 지향해야 하는 것은 유연하면서도 안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불확실성과 위험을 관리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 구축을 위한 제도 개혁의 요구가 커져가고 있지만 현재와 같이 경제주체들이 집단행동의 덫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는 국가의 선도적이고 혁신적인 정책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미래의 국가는 과거의 국가와 달리 경제주체의 행위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규제하기보다는 국민들에게 서비스하고, 이해집단들 간의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며, 시장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며, 동시에 국가 발전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특히, 국가의 정책은 개별 경제주체들과 국민들에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행동할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이 때의 비전은 정책보고서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의 내용과 정책 집행 능력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3. 새로운 사회정책패러다임의 내용은 무엇인가?
우리는 경제의 개방화와 기술변화 등으로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경제적 변동성과 사회적 위험에 대해서 유연하고 안전하게 대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자본시장의 자유화로 더욱 커진 거시경제의 변동성을 줄이며 개방과 기술ㆍ산업구조의 변화가 초래한 양극화를 완화하며, 실직과 같은 전통적인 위험에 대한 사회적 보호체계도 강화하면서도, 가족구조의 변화와 고령화 등에 따른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도 적절하게 대응해야 하고, 이러한 과제들을 정책 수단으로 구체화하고,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효율적인 정책거버넌스도 구축해야 하는 이중삼중의 부담을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정책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비정규직 및 영세자영업 등 전근대적 고용 영역을 사회정책의 틀 속에 끌어들여 사회적 보호를 강화하면서도, 영유아나 여성 관련 정책들을 새로 도입하고 인적자원투자를 강화하며 고용률을 높이는 사회투자형 정책패키지를 구성해야 하며, 개방에 따른 제도개혁과 이에 따른 시장 이해관계자 집단 간의 갈등 구조를 제도적ㆍ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중삼중의 과제이자 부담이다.
특히 사회적 보호체계의 구축, 사회투자적 사회정책의 강화, 효율적인 정책거버넌스의 구축 모두 모두 막대한 재정 투자를 필요로 하는 과제들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사회정책 패러다임은 매우 정교하교 치밀하게 설계되고 추진되지 않으면, 시대적 필요성과 정책의 목표를 쉽게 달성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나라의 사회정책이 추구해야 할 정책적 방향이나 원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유연안전성 모델의 구축
변화하는 환경 하에서 개방과 혁신을 위해서는 대내적인 경제와 사회 조직의 유연화는 필수적이다. 유연안전성의 대표적 모델은 네델란드의 단시간근로와 비례보호의 교환이나 덴마크의 노동시장유연화와 사회보장 및 평생교육시스템 확충간의 교환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유연안전성 모델은 단순히 노동시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경제의 다양한 차원에서 검토해볼 수 있다. 금융시장과 노동시장에서의 유연성과 안전성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에서의 기초보장과 재정안정 및 고용촉진, 건강보험에서의 보장성과 재정안정성, 공적부조에서의 욕구별 지원과 복지의존해소 등 서로 상충하는 듯이 보이는 가치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 요구된다. 이러한 유연안전성이 가능하려면, 유연성과 안전성, 시장성과 공공성간의 전략적 거래와 사회적 타협에 기초한 제도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국가가 사회구성원의 경제적 안전성을 보장하는 안전망을 확립하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주요 선진국의 경험을 보면 유연성은 안전성의 기초 하에서만 효과적, 효율적으로 구축되었다. 한 사회 구성원이 직면하고 있는 위험의 사회화를 통해서 경제적 안전성을 높여주어야만, 시장의 유연성도 가능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인 틀을 갖추어가고 있는 사회정책들이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선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위험의 사회화를 통해 경제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대안의 하나로 들 수 있는 것은 외환위기 이후 증대된 일자리 상실이 초래하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실업급여 제도가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소득상실의 위험에 대응하여 빈곤정책 및 공공부조 정책을 개혁하는 것, 이를 통해 복지정책의 사각지대를 축소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2) 경제정책의 사회적 성격을 강화
현재 경제영역에서의 변화는 사회적으로 과도한 부담을 사회정책 쪽으로 전가하고 있다. 높은 비정규직 및 자영업 비율과 그에 따른 광범위한 정책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고,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한 국가의 정책 능력이나 정책거버넌스가 여전히 취약하다. 따라서 경제 영역에서 빅뱅형 개방과 시장화를 추진하고 이때 발생하는 부담을 사회정책이나 재정정책이 다 받아내는 방식은 현재 우리의 초기조건을 고려할 때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경제정책이 먼저 경제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완화하고 사회적 양극화를 유발하지 않음으로써 잠재성장률 제고와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는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정책과 산업정책의 사회적 성격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먼저 거시경제정책의 선진화를 통해서 경제의 과도한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완화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과도하게 변동성이 커져가고 그에 따라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규제수단에 의존하는 거시경제관리방식을 줄이고, 성장과 고용을 고려하여 금리와 환율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조세재정정책의 자동안정화 기능 및 재분배기능을 강화하는 선진적인 거시경제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고용을 동반하는 성장을 통해 경제의 양극화를 완화하면서 인적자원에 기초한 혁신이 가능하도록 하는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하이테크숙련뿐만 아니라 중간숙련에 기초한 제품혁신과 공정혁신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혁신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다. 소위 복지확산형 혁신국가(welfare spreading innovation state)가 필요한 시점이다.
3) 사회적 위험에 대한 공적인 보호체제의 구축.
장기적으로 사회적 위험의 보호 체계는 민간시장에 대한 규제를 통해 달성하려 하기보다는 공적이고 사회적인 보호의 틀을 확산하는 방향에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이는 앞에서 검토한 유연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사회정책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의미도 있고, 급격한 고령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고용친화적인 사회정책의 구축이라는 의미도 가진다. 예를 들어 고용보호나 최저임금과 같이 고용에 친화적이지 않을 수 있는 시장개입적이고 시장규제적인 정책에 대한 의존도는 가능한 한 낮추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하는 대신, 시장임금보다는 사회적 임금을 늘림으로써 사적비용과 거래비용을 낮추어줄 수 있는 정책 대안을 모색한다거나, 사회정책 재원조달 방식도 직접적으로 노동비용을 상승시켜 고용에 친화적이지 못한 보험료 징수방식보다는 일반조세체계에 기초한 정책으로 설계하는 방향을 설계하는 것 등이다.
4) 사회정책의 생산적 성격을 높이는 사회투자형 정책 패키지의 확대
높은 수준의 개방ㆍ혁신과 높은 수준의 사회적 보호가 결합하는 모델로의 이행을 원활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고용 및 인적자원 친화적이며 예방적인 사회정책 패키지를 구성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매우 낮은 수준이고 고령화의 속도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개방에 따른 기존의 사회적 위험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겹쳐서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불안정은 더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급속한 인구 고령화는 공적연금제도에 큰 압박을 준다. 연금지급액의 축소로 대응할 수도 있으나 이는 은퇴자의 노후 생활수준을 낮춘다는 문제도 있고 장기적인 대안이 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가능하면 중ㆍ고령자들이 노동시장에 오래 남아서 소득을 수취하고 조세를 부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근본적 대안이다. 따라서 중ㆍ고령자의 생애취업기간을 연장하는 방향으로 사회정책이 설계될 필요가 있다. 물론 사회정책의 생산적ㆍ투자적 성격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사회적 보호 체계, 정책 추진을 위한 인프라, 경제주체들 간의 사회적 갈등을 원활하게 조정하고 타협시킬 수 있는 능력 등이 전제가 되는 것을 두말할 필요가 없다. 소위 ‘사회투자형 복지국가’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4. 새로운 사회정책패러다임의 실천은 가능한가?
앞에서 검토한 사회적 보호시스템 구축, 유연성과 안전성, 공공성과 시장성간의 전략적 거래와 타협을 통한 제도 개혁, 사회정책의 투자적 성격의 강화 등을 위해서는 국가의 능력이 더 높아져야 하고, 국가의 기능이 혁신적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특히, 개방의 확대는 기존 제도와 관행과 충돌하면서 많은 이해관계의 대립과 갈등을 초래할 것이다. 국가는 공공선의 대변자로서 이러한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 사회는 공적인 실체로서의 국가의 힘이 약화되어 공공성에 기초한 제도 개혁이 어려워지는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잘 설계된 공공정책이 사회적으로 실현가능하도록 할 수 있도록 정책의 물리적 인프라와 사회적 신뢰가 요구되고 있다. 정책의 설계가 정교하게 이루어지고 예산이 책정되는 경우에도 이를 국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정책적 인프라가 부족하고 이해관계자들의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고 공공선이 달성되는 선택이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정책은 원래의 의도를 달성하지 못한다. 특히, 사회정책의 확충과 관련하여 정부의 선도적 역할이 요구되기 때문에 이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서구 복지국가의 형성ㆍ발전과정에서는 노동자의 복지 요구와 복지 정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조직화된 노동자의 비중이 낮고, 그 절대적 규모도 줄어들고 있으며 노동시장이 분절화하면서 통일된 이해관계가 형성되지 않음으로 인해서 사회정책의 추진 동력이 약화되어 있는 상태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복지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관철할 수 있는 사회세력이 형성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가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사회구성원들을 설득하고 사회정책과 관련하여 사회구성원간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할 필요성이 한층 더 커진 상황이다.
공공정책은 다양한 외부성을 가지지만 그 중에서도 사회적 신뢰라는 외부효과를 창출한다. 특히 사회정책은 사회구성원 간의 협력과 신뢰 수준을 높여줌으로써 긍정적 외부성 또는 외부경제를 촉진할 수 있다. 즉 사회정책은 경쟁 규칙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다양한 사회적 차별을 시정하고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사회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사회구성원 간 관계구조를 더 협력적인 방향으로 형성해갈 수 있다. 정부는 이러한 사회적 자본의 외부성을 창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과거와 같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공공선이라고 가정하고 추진하는 것은 외부효과를 창출할 수 없다. 결사체 민주주의와 사회적 합의 모델을 바탕으로 하여 시민들이 국가 정책 결정에 참여하여 새로운 정책적 지향에 대한 동의와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적 합의모델이 가능했던 덴마크나 네델란드 등 강소국들과는 달리 인구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고 산업구조가 다차원적이고, 자영업이나 영세기업근로자 등 전근대적인 영역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전국 규모의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지역이나 업종 단위로, 또는 정책 아이템 단위로 중층적인 사회적 합의의 사례를 축적해가는 모델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형해화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를 활성화시키는 노력, 여.야 정당간 정책협의체를 가동하여 정치권의 리더십을 강화하는 노력, 주요 의제별로 사회적 협의기구를 구성하여 되도록 이해관계자들의 이해를 높이고 동의를 구하는 노력, 예를 들어, 2006년에 저출산고령화 추세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이해관계자들 간의 사회적 합의를 추구하는 노력 등의 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동계의 산별화가 소모적이고 경쟁적인 기업별 교섭체제를 넘어 산별교섭체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노력, 그리고 지역별 사회적 협의체들이 구성되어 지역경제와 고용, 그리고 훈련문제를 풀어나가는 노력 울산, 순천, 부천 등 지역 차원의 사회적 합의모델의 출현은 중범위 차원에서 이해관계자간의 협력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등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 때 이러한 다방면의 노력과 이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하나의 패러다임 속에 응축해 낼 수 있는 새로운 정치리더십이 형성된다면, 새로운 사회정책패러다임의 실현은 보다 빠른 속도로 우리곁에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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