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 개정안의 본질과 정부의 진정한 의도
월간 복지동향/2007 :
2007/04/01 00:00
의료법 개정안의 본질과 정부의 진정한 의도
변혜진(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국장)
1. 정부는 왜 의료법을 개정하려고 하는가?
정부는 2월 24일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였다. 정부가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내세운 입법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환자의 편의 증진, 둘째,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 혁파, 셋째,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법 체계 마련이 그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입법 목적과 더불어 이번 의료법 개정으로 인해 국민이 편리해지는 10가지 이유 등을 적극 홍보하면서 이번 개정안이 국민을 위한 것인 양 포장하고 있다.
의료법 개정안의 내용이 공표되자 의료계는 이를 강력히 반대했다. 의료계는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의사, 간호사, 약사, 유사의료인 등 의료인 및 보건의료 종사자의 역할 규정에 혼선이 발생하고, 정부에 의한 의료 행위 통제가 더욱 강화된다는 것을 주된 이유로 내세워 반대하였다.
정부는 좋은 것인 양 홍보하고 있는데 반해 의료인들은 적극 반대하는 현재의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국민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국민들은 국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개정안에 반대하는 의료인들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려워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간 의료인들이 보여 왔던 행태로 인해 의료인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정부의 개정안이 올바른 방향인 것으로 아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이번 개정안으로 국민이 편해진다고 광고하는 부분들은 의사/환자 관계에서 환자의 권리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이루어진 것들이라, ‘정부가 국민들을 위해 의사들을 더 적극적으로 규제하려고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정부 편을 드는 국민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이번 개정안이 국민들을 위한 것일까? 의료인들이 싫다고 해서 의료인들이 반대하는 법률은 국민을 위해서는 이로울 것이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 있을까?
2. 의료법 개정의 진정한 의도
우리나라의 의료법은 1973년 전면 개정된 이후 부분적인 개정만을 되풀이 하여 ‘누더기법’으로 불릴 정도로 체계가 없고, 변화된 의료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으로 지적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의료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는 몇 년 전부터 지속되어 왔으나 정부는 이에 대해 별 의지를 보이지 않아 왔다. 그런데 왜 이런 정부가 갑자기 의료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을까? 정말 환자들의 권리 증진과 편의 증진을 위해 이제 더 이상 현재의 의료법을 그대로 놔두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진작에 개정했을 일이지 왜 지금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의료법을 개정한다고 정력적으로 나섰을까?
정부의 의도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이번 개정안이 담고 있는 조항들을 자세히 살펴 보면 명확해 진다. 정부가 환자의 권리와 국민 편의를 위해 개정하겠다고 나선 조항들을 보면 대부분이 현재도 다른 법률에 의해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것을 의료법에 명시한 것에 불과한 것들이다. 의료인의 환자에 대한 질병ㆍ치료방법 설명의무 신설, 거동불편환자의 처방전 대리수령권 인정 등 환자의 권리를 위해 대단한 것을 개정한 것인 양 홍보하는 조항들은 이미 민법등을 통해 일반화된 것들이고, 법률로 명시만 안되었다 뿐이지 현실에서는 일반화된 규율들이다. 오히려 그간 시민사회에서 끊임없이 요청해왔던 ‘선택진료비’ 폐지와 같은 전향적인 내용들은 아예 제외되었다. 정부의 적극적 홍보 내용과는 달리 알맹이가 없는 개정안인 것이다.
한편, 의료 체계를 다시 세우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 조항들도 엉성하기 짝이 없다. 이 부분은 의료인들이 주로 반발하고 있는 내용인데,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간호사 등이 어떻게 역할을 분담하여 국민 건강을 위해 노력하도록 할 것인가를 규정하는 조항들이다. 이러한 내용들이 제대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현재의 의료 시스템을 평가하고 향후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어떻게 끌고 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청사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청사진에 근거하여 교통 정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안은 그러한 청사진도 없이 논란의 가능성이 많은 조항들을 포함함으로써 의료 직역간에 갈들의 불씨만 지펴 놓은 꼴이 되었다. ‘유사의료인’과 같이 논쟁적인 개념을 신설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대표적 예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 역시 졸속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번 개정안의 핵심 의도는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핵심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들러리 세운 조항들이 위의 두 가지 관련 조항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인가? 의료계의 결사 반대 표명에도 불구하고 법안을 밀어붙이려는 정부의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정부가 이번 개정안을 통해 이루려는 진정한 목적은 의료의 상업화를 위해 필요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이번 의료법 개정을 통해 그간 의료의 상업화 추진에 장애가 되었던 몇 가지 규제를 완화하고 철폐하려는 것이 정부의 진정한 의도인 것이다.
이는 그간 정부의 행보를 보면 명확해 진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많은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더디기만 했던 의료법 개정이 급물살을 탄 것은 2006년 말부터였다. 이는 재정경제부를 중심으로 범정부가 나서서 마련한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에 의료를 상업화하여 돈벌이 수단으로 삼으려는 정책이 포함된 것과 그 괘를 같이 한다. 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환자의 주머니를 털어 ‘국가 성장 동력’으로 삼으려고 하는 현 정부는 그것을 위해 필요한 법제도적 틀거리를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이라는 형태로 정리하였고, 그 안에 담긴 내용이 고스란히 의료법 개정안에 반영된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오랜 기간 동안 병원협회와 민간보험회사가 정부를 상대로 벌여온 로비의 결과이기도 하다.
3. 이번 개정안은 병원자본만을 살찌우기 위한 것이다.
1) 병원의 부대사업 범위를 무한대로 열어주는 의료법 개정안
현재 한국의 병원들이 자본 조달의 경쟁에 빠져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일부 대형병원이 시작한 병상 확장과 고가 의료기기 확충 드라이브는 이제 거의 전병원에 보편화되었다. 가능하면 병상을 늘리고 고가의 새로운 의료기기를 들여오려고 하는 경쟁은 가속화되고 있고, 이에 필요한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강구되고 있다. 환자를 진료하여 벌이들일 수 있는 수입은 한정되어 있고, 시설 투자를 위한 자본은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상황 속에서 병원이 손쉽게 선택한 방법은 ‘부대사업’ 늘리기이다. 부대사업이란 병원 진료를 위해 방문한 환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진료 외의 상품을 파는 돈벌이 사업이다. 이러한 부대사업의 일환으로 병원이 운영하기 시작한 장례식장, 주차장이 웬만한 병원의 주수입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일부 병원에서 시작된 장례식장의 고급화, 주차장 증설 등의 전략은 순식간에 대부분의 병원으로 퍼져 나갔고, 그 결과 병원의 장례비와 주차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렇게 부대사업으로 돈 맛을 본 병원들은 호시탐탐 법적으로 제한된 부대사업 범위를 확장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를 위해 병원협회는 늘 엄청난 로비를 해왔으나 아직까지는 국민 정서가 병원의 부대사업의 대폭 확장하는 데에 부정적이었기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서 이러한 병원의 부대사업 범위의 제한을 완전히 풀어버렸다.
지금까지는 병원의 부대사업 범위가 의료법에 명시되어 있어 추가적인 부대사업이 합법화되기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만큼 그 절차와 과정이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서는 부대사업의 범위를 보건복지부령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되면 병원은 부대사업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다. 병원협회의 로비에 약한 보건복지부는 병원협회가 요구하는 거의 모든 사업을 부대사업으로 승인해 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개정안 통과시 그간 병원협회가 지속적으로 로비를 펼쳐온 사업들이 바로 부대사업으로 승인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것은 여행업, 관광숙박업, 관광객이용시설업, 관광편의시설업, 사회복지시설업, 병원체인사업 등이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당장 병원은 지하에 온천장이나 목욕탕을 만들고 숙박시설을 만들어 여관업을 하려고 하게 될 것이다. 특히 관광지역의 경우 일부 공간만 진료를 담당하고 대부분의 시설 공간은 온천, 마사지, 피부 미용, 숙박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무늬만 병원’인 병원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대부분의 병원이 이러한 사업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병원을 구조 조정할 가능성이 많다. 현재에도 돈이 안된다고 필수 진료 업무를 외주화하거나 과를 폐쇄시켜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돈벌이 수단이 늘어난 마당에 그런 업무나 과를 굳이 둘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대형병원의 경우는 좀 다르겠으나 대부분의 중소병원들은 전체 병원 구조를 조정하여 부대사업 위주의 틀로 다시 짜려는 경향이 일반화될 것이다.
이러한 구조 조정의 영향은 1차적으로 병원 노동자에게 나타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국민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현재에도 돈벌이에만 치중하는 병원 경영 방침으로 인해 돈벌이가 되지 않는 진료과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데, 이것이 더 가속화되면 나에게 필요한 진료를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병원에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대부분의 중소병원이 비급여 중심의 진료와 부대사업 위주로 병원을 재편하면, 환자들은 외과 수술이나 분만을 위해서 멀리 있는 대형병원으로 가야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진료 대시 시간도 늘어나게 되어 환자가 져야 할 시간적 비용이 증가할 뿐더러 의료비도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다.
2) 병원의 돈벌이 기관화를 촉진시킬 ‘병원경영지원회사’를 합법화한 의료법 개정안
이와 같이 병원이 본격적으로 돈벌이에 나서기 위해서는 사업 범위의 확대와 더불어 주식회사 형태의 경영이 가능하도록 하는 구조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병원으로 자본이 투자되는 방식을 보다 단순화할 필요가 있고, 그것을 위해서는 병원에서 난 이익을 투자자에게 배분하여 투자자가 지속적으로 더 큰 돈을 투자할 마음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의 법 체계 내에서 의료기관은 비영리법인으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것은 불가능하다. 비영리법인은 사업 수익을 모두 자신의 법인에 재투자하도록 되어 있고 과실 송금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서는 이러한 규제를 교묘히 빠져나갈 방안을 마련했다. 그것이 바로 ‘병원경영지원회사’라는 새로운 주식회사의 활성화 방안이다. 병원경영지원회사는 의료행위와 관계없는 병원경영 전반(구매, 인력관리, 진료비 청구, 마케팅 등)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이다. 이러한 회사는 현재에도 ‘병원경영 컨설팅’업체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서는 이러한 병원경영지원회사에 병원이 자본을 투자하고 그 이윤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였다. 다시 말해 병원의 부대사업 범위에 병원경영지원회사 지원도 포함시킨 것이다. 이것이 합법화될 경우 이러한 병원경영지원회사를 지주회사로 한 광범위한 병의원 네트워크가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 재벌 병원이 출자한 병원경영지원회사를 정점으로 그 밑에 다양한 규모의 전국적 병의원들이 네트워크화 되어 돈벌이 병원의 카르텔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병원이 병원경영지원회사에 투자가 가능해지게 되면, 병원경영지원회사는 온갖 돈벌이 수단을 개발하고 유포하는 진원지가 될 것이다. 병원은 그러한 경영 기법을 적극적으로 전수받아 돈벌이 행위에 전념하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얻은 수익은 병원으로 재투자되어 노동자와 환자를 위해 쓰이지 않고 다시 병원경영지원회사로 재투자되어 자본 투자자들에게 배분되고, 그 과정 속에서 병원경영지원회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다. 병원경영지원회사의 투자자들은 병원의 경영진들과 병원 자본일 것이므로 이들 일부에게 환자의 쌈지돈과 병원 노동자의 노동의 대가가 착취당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병원경영지원회사에서 퍼뜨릴 적극적 영리 추구 행위가 병원 노동자 및 환자에게 미칠 영향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병원경영지원회사는 노무관리 기법 등을 전수하여 병원이 노동 탄압의 천국이 되도록 할 것이다. 지금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인력 파견을 더욱 확장할 것이 뻔하다. 그리고 교묘한 수법으로 부당, 허위 청구를 하는 방식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 먹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마케팅 기법이라는 명목으로 병원 노동자들에게 환자들을 ‘벗겨 먹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교육하고 전수시킬 것이다. 지금도 존재하는 병원경영 컨설팅 회사 중 일부는 자신 고용하고 있는 직원을 파견할 경우, 파견하는 병원에 몇 개월만에 두세 배 이상의 매출을 장담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주로 쓰는 방법은 ‘끼워 팔기’와 ‘불려 팔기’이다. 하나의 문제를 위해 방문한 환자에게 별 치료가 필요 없는 두세 가지 문제를 덮어씌워 더 치료받도록 하거나, 급여 범위내에서 해결 가능한 치료에 비급여 시술을 끼워 넣어 돈을 더 받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병원경영지원회사가 활성화되면 이러한 부도덕한 상술이 의료 영역에 일반화되는 끔찍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3) 병원을 적대적 인수, 합병의 먹이로 만드는 의료법 개정안
현재 병원은 비영리법인이기 때문에 병원이 망한 경우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아 ‘청산’만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망한 법인은 재산을 지방자치단체에 귀속시켜야 한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지방자체단체의 자산으로 소유하거나 가능한 경우 다른 법인에게 이를 되팔아 다른 의료법인이 의료업을 지속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병원이 적대적 인수, 합병의 먹이가 될 가능성이 없다. 그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서는 병원의 해산 이유로 합병을 명시하고 합병을 시도지사뿐 아니라 시장, 군수, 구청장도 인가할 수 있도록 하여 그 조건을 더욱 완화하였다. 이는 인수, 합병과 관련된 절차를 법제화하고 단순화하여 병원의 인수, 합병을 유도하고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병원의 인수, 합병 절차가 까다롭도록 한 것은 병원은 사회적 공익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윤 논리에 따라 좌우되는 인수, 합병 절차가 일반화될 경우 지역에 따라서는 의료 공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리병원에 대해서는 인수, 합병이 자유로운 미국의 경우, 순전히 이윤 추구를 위해 인근 지역의 잘나가는 병원을 적대적으로 인수, 합병한 다음 폐쇄하여 그 지역 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멀리까지 인수, 합병을 한 병원으로 가야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렇게 되면 최악의 경우에 적대적 인수, 합병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경영지원회사가 타나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인수, 합병 절차의 간소화는 의료 자원의 지역 불균형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병원 노동자의 고용도 위협할 가능성이 많다. 특정 병원이 다른 병원을 인수, 합병한 경우 합병 직후에는 고용이 보장되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합병된 병원의 노동자들을 구조 조정할 가능성이 많다. 시세 차익을 노린 인수, 합병이 이루어질 경우에는 억울한 대량 해고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4) 병원의 이윤을 위해 의료전달체계를 무너뜨리는 의료법 개정안
이번 개정안을 통해 병원급이나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에 의원급 의료기관을 동시에 개설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현행 제도에서는 병원은 의료인을 고용하여 진료과를 개설하는 것만 허용되었지, 특정 과를 독자적인 의원 형태로 동시 개설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1, 2, 3차로 이어지는 의료전달체계를 허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는 계속 있어왔다. 중소병원급에서는 돈이 잘되는 성형외과, 피부과 등의 의사들을 고용하여 병원 수익을 창출하고 싶어 하지만, 이러한 의사들은 병원에 고용되어 있기보다는 의원 형태를 고수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보니 병원은 아예 의원을 통째로 자신의 공간에 유치함으로써 유발 수요를 창출하고 공간에 대한 임대료라도 챙기려는 동기가 강하게 작용하고, 의원은 병원에 들어감으로써 마찬가지로 타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작용하여 이러한 요구가 강화되어 왔다. 한편 대형병원 입장에서는 현행 의료전달체계 내에서는 일부 과를 제외하고는 의원급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은 환자를 유치할 수 없다는 것을 타계하기 위해 병원내에 의원을 개설하여 그곳을 창구로 1차 환자까지 독식하려는 욕구가 이러한 조항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이번 개정안에서 그 규제가 대폭 완화된 ‘프리랜서 의사’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병원 네트워크안에서 유명 의료인이 지역과 병원의 경계 없이 진료하게 되는 경우 환자 몰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고, 이는 의료전달체계를 파괴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러한 조항으로 인해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진다면 그 폐해는 이루말할 수 없다. 의료전달체계를 두는 까닭은 의사의 판단에 의해 적절한 환자 배분이 이루어져서 상급 의료기관으로 환자가 몰려 진료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의료인력이 낭비되며, 의료비가 상승하는 악영향을 막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져 병원 네트워크와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몰리게 된다면 1차 의료기관인 동네 의원은 다 망하고 이러한 병원 네트워크와 대형병원만 남게 될 것이다. 유통업계에 규모의 경제 바람이 불어 동네 구멍가게가 다 망하고 대형 할인업체 혹은 편의점만이 살아남은 것이 국민경제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는 말들도 많은데, 하물며 상품이 아니라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마저 동네의원이 다 망하고 대형병원과 네트워크 병원만이 살아남는다면 그 폐해는 경제적인 피해를 넘어서는 것이다.
4. 이번 개정안은 민간보험회사만 살찌우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보험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은 거의 정설이다. 그간 보험회사는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은 것을 이용하여, 암 보험, 뇌심혈관계질환 보장 보험 등 다양한 형태의 질병보험을 출시하여 시장을 공략해 왔다. 그 결과 대부분의 한국 성인이 하나 이상의 민간의료보험을 가지고 있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렇게 되니까 민간의료보험 시장도 포화 상태가 되었다. 최근 보험회사들이 앞다투어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질병보험 광고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적극적 광고를 통해 새로운 구매 계층을 창출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광고만으로는 새로운 구매 욕구를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광고와 더불어 함께 마련되어야 하는 것은 새로운 상품의 출시이다.
이러한 시장 상황을 반영하여 현재 보험회사들이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상품이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상품이다. 현재의 민간의료보험 상품은 ‘정액형’ 민간의료보험이다. 어떤 질병에 걸리면 얼마 하는 식으로 보상의 액수가 질병별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상품은 환자가 병원에 가서 본인이 부담한 돈을 그 액수만큼 보상해 주는 상품으로서 국민들에게 보다 매력적인 상품이다. 그래서 보험회사는 이러한 신상품을 출시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의 원활한 출시를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었다. 현재의 제도로도 출시 자체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으나, 몇 가지 제도가 더 갖추어져야 보다 위험성이 낮은 상태에서 신상품을 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험회사들이 그간 요구해왔던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개인 건강정보를 보험회사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환자가 제출하는 건강 정보만을 가지고는 상품 설계도 어려울뿐더러 향후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병원의 의료 행위에 대한 가격을 투명하게 공개하자고 요구해 왔다. 실손형으로 보상하기 위해서는 병원의 의료 행위 가격에 기반하여 상품을 설계하고 보상하여야 하는데, 현재 비급여 부분의 진료비는 표준화도 안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가격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상품 출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병원과 보험회사간에 가격 계약이 허용되어야 하고, 보험회사의 환자 알선 행위가 합법화되어야 한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출시하였을 경우, 보험회사의 설계에 따라 지출 구조를 맞추어 주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강요하고 요청할 수 있는 병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병원이 선정되었을 경우 가입자에게 그 병원으로 가도록 권유하고 유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행 의료법에는 그 누구도 특정 의료기관으로 유인하거나 알선 행위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조항의 개정이 필요했다.
이번 의료법에는 건강정보 공유만 빼고 나머지 요구가 모두 포함되었다. 건강정보 공유는 법체계상 보험업법 개정 사안이라고 판단해서 그 쪽에서 작업이 진행 중이므로 사실상 그간의 요구가 모두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는 병원이 비급여 진료비의 가격에 대해 공시하도록 하였고, 비급여 항목에 대해서는 의료기관과 보험회사가 가격 계약을 통해 할인을 할 수도 있게 하였다. 더불어 이와 같이 병원과 보험회사간의 가격 계약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보험회사가 그 병원으로 가입자를 유인하고 알선하는 행위를 합법화하였다.
이는 정부가 비급여 의료 행위는 일반 상품과 다름없다는 주장을 한 것과 같다. 현행 의료법에서는 의료 행위를 상품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가격 계약 등의 형태로 할인을 해서 환자를 유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의료 행위는 사회가 제공하는 서비스이기에 정부가 그 서비스의 공급과 질을 책임지고, 이것에 대해 적절한 ‘수가’를 매겨 공급자에게 보상하는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행 비급여 의료 행위는 이 틀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병원들이 돈벌이를 위해 이러한 비급여 항목을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상품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의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의학적으로 그 필요가 입증된 서비스는 모두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것이 맞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재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그러한 것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이런 쪽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의료법 개정안은 이러한 원칙과 정반대의 방향을 택했다. 비급여 의료 행위는 이제 더 이상 사회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시장에 맡겨 버리겠다고 포기한 것이다.
이러한 선언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매우 크다. 정부가 비급여 의료 행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포기하고 이것을 시장에 맡김에 따라 이어질 사회적 파장은 가공할 만한 것이다. 일차적으로 그나마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려 하고 있는 건강보험이 파탄날 것이다. 10여년 전만해도 ‘반쪽짜리’ 보험이라고 불리던 건강보험이 최근의 개혁을 통해 그나마 보장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건강보험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점차 회복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비급여 부문을 민간의료보험 시장에 떼어 준다면, 국민들은 다시 건강보험을 외면하게 될 것이다. 돈벌이 수단화된 병원이 적극적으로 비급여 시장을 개척하려고 하는 마당에 이러한 비급여 의료 행위를 아무런 규제 없이 시장에 던져 놓는다면 비급여 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될 것이고, 이를 감당하기 힘든 건강보험은 다시 ‘반쪽짜리’ 보험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유층은 아예 건강보험에서 탈퇴하고자 하는 요구가 거세어져서 건강보험 체계 자체가 아예 깨져버릴 가능성도 있다.
한편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법 개정을 통해 보험회사-의료기관-병원경영지원회사 네크워크가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주고 있다. 그야말로 환자의 주머니를 털기 위한 ‘환상의 삼각편대’가 구축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병원경영지원회사는 대형병원을 정점으로 전국의 병의원을 묶어 병의원 네트워크를 만들어 비급여와 부대사업을 중심으로 돈벌이를 한다. 이 네트워크에 보험회사는 가격 계약을 통해 참여하고 자기 회사 민간의료보험 상품에 가입한 환자들을 이러한 병의원 네트워크로 유인, 알선하여 이속을 챙긴다. 보험회사가 국민을 대상으로 호객 행위를 해서 잠재적 환자 풀로 조성한 다음, 병의원 네트워크가 이들을 대상으로 적극적 환자 만들기와 환자 유치 행위를 통해 주머니를 털어 그 이득을 나누어 갖는 ‘환자 착취의 카르텔’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비급여 행위의 가격이 공시되고, 그것에 대해 가격 계약을 통한 할인이 가능하게 되면 비급여 진료비가 낮아져서 국민들이 이득을 볼 것처럼 선전하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다. 이것은 의료 정보의 독점성과 그로 인한 시장 실패를 간과한 것에서 오는 착각이다. 의료는 정보가 공급자에게 집중되어 있고 독점적 성격이 강해 가격 결정을 시장에 맡겨 두었을 때, 수요와 공급에 의한 ‘합리적’ 시장 가격을 형성하기는커녕 가격 상승을 불러온다는 사실은 경제학의 기초이다. 비급여 의료 행위가 시장에서 ‘합리적’ 가격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인 환자들이 각 병원의 의료서비스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정보를 충분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격 대비 서비스 질에 따라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공급 주체도 다양하게 선택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의료는 그렇지 않다. 가격이 공시된다고 하여도 병원의 서비스 질을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정보가 환자에게는 없다. 그리고 몇몇 대도시와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면 병원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도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험회사-의료기관-병원경영지원회사 네트워크가 담합하여 결정하는 가격이 곧 시장 가격이 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가격 상승을 초래한다. 독점 시장의 비합리적 가격 상승으로 인한 국민 피해는 이미 많이 경험하고 있는 바가 아닌가?
변혜진(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국장)
1. 정부는 왜 의료법을 개정하려고 하는가?
정부는 2월 24일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였다. 정부가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내세운 입법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환자의 편의 증진, 둘째,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 혁파, 셋째,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법 체계 마련이 그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입법 목적과 더불어 이번 의료법 개정으로 인해 국민이 편리해지는 10가지 이유 등을 적극 홍보하면서 이번 개정안이 국민을 위한 것인 양 포장하고 있다.
의료법 개정안의 내용이 공표되자 의료계는 이를 강력히 반대했다. 의료계는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의사, 간호사, 약사, 유사의료인 등 의료인 및 보건의료 종사자의 역할 규정에 혼선이 발생하고, 정부에 의한 의료 행위 통제가 더욱 강화된다는 것을 주된 이유로 내세워 반대하였다.
정부는 좋은 것인 양 홍보하고 있는데 반해 의료인들은 적극 반대하는 현재의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국민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국민들은 국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개정안에 반대하는 의료인들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려워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간 의료인들이 보여 왔던 행태로 인해 의료인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정부의 개정안이 올바른 방향인 것으로 아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이번 개정안으로 국민이 편해진다고 광고하는 부분들은 의사/환자 관계에서 환자의 권리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이루어진 것들이라, ‘정부가 국민들을 위해 의사들을 더 적극적으로 규제하려고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정부 편을 드는 국민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이번 개정안이 국민들을 위한 것일까? 의료인들이 싫다고 해서 의료인들이 반대하는 법률은 국민을 위해서는 이로울 것이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 있을까?
2. 의료법 개정의 진정한 의도
우리나라의 의료법은 1973년 전면 개정된 이후 부분적인 개정만을 되풀이 하여 ‘누더기법’으로 불릴 정도로 체계가 없고, 변화된 의료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으로 지적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의료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는 몇 년 전부터 지속되어 왔으나 정부는 이에 대해 별 의지를 보이지 않아 왔다. 그런데 왜 이런 정부가 갑자기 의료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을까? 정말 환자들의 권리 증진과 편의 증진을 위해 이제 더 이상 현재의 의료법을 그대로 놔두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진작에 개정했을 일이지 왜 지금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의료법을 개정한다고 정력적으로 나섰을까?
정부의 의도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이번 개정안이 담고 있는 조항들을 자세히 살펴 보면 명확해 진다. 정부가 환자의 권리와 국민 편의를 위해 개정하겠다고 나선 조항들을 보면 대부분이 현재도 다른 법률에 의해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것을 의료법에 명시한 것에 불과한 것들이다. 의료인의 환자에 대한 질병ㆍ치료방법 설명의무 신설, 거동불편환자의 처방전 대리수령권 인정 등 환자의 권리를 위해 대단한 것을 개정한 것인 양 홍보하는 조항들은 이미 민법등을 통해 일반화된 것들이고, 법률로 명시만 안되었다 뿐이지 현실에서는 일반화된 규율들이다. 오히려 그간 시민사회에서 끊임없이 요청해왔던 ‘선택진료비’ 폐지와 같은 전향적인 내용들은 아예 제외되었다. 정부의 적극적 홍보 내용과는 달리 알맹이가 없는 개정안인 것이다.
한편, 의료 체계를 다시 세우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 조항들도 엉성하기 짝이 없다. 이 부분은 의료인들이 주로 반발하고 있는 내용인데,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간호사 등이 어떻게 역할을 분담하여 국민 건강을 위해 노력하도록 할 것인가를 규정하는 조항들이다. 이러한 내용들이 제대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현재의 의료 시스템을 평가하고 향후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어떻게 끌고 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청사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청사진에 근거하여 교통 정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안은 그러한 청사진도 없이 논란의 가능성이 많은 조항들을 포함함으로써 의료 직역간에 갈들의 불씨만 지펴 놓은 꼴이 되었다. ‘유사의료인’과 같이 논쟁적인 개념을 신설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대표적 예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 역시 졸속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번 개정안의 핵심 의도는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핵심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들러리 세운 조항들이 위의 두 가지 관련 조항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인가? 의료계의 결사 반대 표명에도 불구하고 법안을 밀어붙이려는 정부의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정부가 이번 개정안을 통해 이루려는 진정한 목적은 의료의 상업화를 위해 필요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이번 의료법 개정을 통해 그간 의료의 상업화 추진에 장애가 되었던 몇 가지 규제를 완화하고 철폐하려는 것이 정부의 진정한 의도인 것이다.
이는 그간 정부의 행보를 보면 명확해 진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많은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더디기만 했던 의료법 개정이 급물살을 탄 것은 2006년 말부터였다. 이는 재정경제부를 중심으로 범정부가 나서서 마련한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에 의료를 상업화하여 돈벌이 수단으로 삼으려는 정책이 포함된 것과 그 괘를 같이 한다. 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환자의 주머니를 털어 ‘국가 성장 동력’으로 삼으려고 하는 현 정부는 그것을 위해 필요한 법제도적 틀거리를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이라는 형태로 정리하였고, 그 안에 담긴 내용이 고스란히 의료법 개정안에 반영된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오랜 기간 동안 병원협회와 민간보험회사가 정부를 상대로 벌여온 로비의 결과이기도 하다.
3. 이번 개정안은 병원자본만을 살찌우기 위한 것이다.
1) 병원의 부대사업 범위를 무한대로 열어주는 의료법 개정안
현재 한국의 병원들이 자본 조달의 경쟁에 빠져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일부 대형병원이 시작한 병상 확장과 고가 의료기기 확충 드라이브는 이제 거의 전병원에 보편화되었다. 가능하면 병상을 늘리고 고가의 새로운 의료기기를 들여오려고 하는 경쟁은 가속화되고 있고, 이에 필요한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강구되고 있다. 환자를 진료하여 벌이들일 수 있는 수입은 한정되어 있고, 시설 투자를 위한 자본은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상황 속에서 병원이 손쉽게 선택한 방법은 ‘부대사업’ 늘리기이다. 부대사업이란 병원 진료를 위해 방문한 환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진료 외의 상품을 파는 돈벌이 사업이다. 이러한 부대사업의 일환으로 병원이 운영하기 시작한 장례식장, 주차장이 웬만한 병원의 주수입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일부 병원에서 시작된 장례식장의 고급화, 주차장 증설 등의 전략은 순식간에 대부분의 병원으로 퍼져 나갔고, 그 결과 병원의 장례비와 주차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렇게 부대사업으로 돈 맛을 본 병원들은 호시탐탐 법적으로 제한된 부대사업 범위를 확장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를 위해 병원협회는 늘 엄청난 로비를 해왔으나 아직까지는 국민 정서가 병원의 부대사업의 대폭 확장하는 데에 부정적이었기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서 이러한 병원의 부대사업 범위의 제한을 완전히 풀어버렸다.
지금까지는 병원의 부대사업 범위가 의료법에 명시되어 있어 추가적인 부대사업이 합법화되기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만큼 그 절차와 과정이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서는 부대사업의 범위를 보건복지부령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되면 병원은 부대사업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다. 병원협회의 로비에 약한 보건복지부는 병원협회가 요구하는 거의 모든 사업을 부대사업으로 승인해 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개정안 통과시 그간 병원협회가 지속적으로 로비를 펼쳐온 사업들이 바로 부대사업으로 승인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것은 여행업, 관광숙박업, 관광객이용시설업, 관광편의시설업, 사회복지시설업, 병원체인사업 등이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당장 병원은 지하에 온천장이나 목욕탕을 만들고 숙박시설을 만들어 여관업을 하려고 하게 될 것이다. 특히 관광지역의 경우 일부 공간만 진료를 담당하고 대부분의 시설 공간은 온천, 마사지, 피부 미용, 숙박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무늬만 병원’인 병원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대부분의 병원이 이러한 사업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병원을 구조 조정할 가능성이 많다. 현재에도 돈이 안된다고 필수 진료 업무를 외주화하거나 과를 폐쇄시켜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돈벌이 수단이 늘어난 마당에 그런 업무나 과를 굳이 둘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대형병원의 경우는 좀 다르겠으나 대부분의 중소병원들은 전체 병원 구조를 조정하여 부대사업 위주의 틀로 다시 짜려는 경향이 일반화될 것이다.
이러한 구조 조정의 영향은 1차적으로 병원 노동자에게 나타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국민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현재에도 돈벌이에만 치중하는 병원 경영 방침으로 인해 돈벌이가 되지 않는 진료과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데, 이것이 더 가속화되면 나에게 필요한 진료를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병원에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대부분의 중소병원이 비급여 중심의 진료와 부대사업 위주로 병원을 재편하면, 환자들은 외과 수술이나 분만을 위해서 멀리 있는 대형병원으로 가야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진료 대시 시간도 늘어나게 되어 환자가 져야 할 시간적 비용이 증가할 뿐더러 의료비도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다.
2) 병원의 돈벌이 기관화를 촉진시킬 ‘병원경영지원회사’를 합법화한 의료법 개정안
이와 같이 병원이 본격적으로 돈벌이에 나서기 위해서는 사업 범위의 확대와 더불어 주식회사 형태의 경영이 가능하도록 하는 구조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병원으로 자본이 투자되는 방식을 보다 단순화할 필요가 있고, 그것을 위해서는 병원에서 난 이익을 투자자에게 배분하여 투자자가 지속적으로 더 큰 돈을 투자할 마음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의 법 체계 내에서 의료기관은 비영리법인으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것은 불가능하다. 비영리법인은 사업 수익을 모두 자신의 법인에 재투자하도록 되어 있고 과실 송금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서는 이러한 규제를 교묘히 빠져나갈 방안을 마련했다. 그것이 바로 ‘병원경영지원회사’라는 새로운 주식회사의 활성화 방안이다. 병원경영지원회사는 의료행위와 관계없는 병원경영 전반(구매, 인력관리, 진료비 청구, 마케팅 등)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이다. 이러한 회사는 현재에도 ‘병원경영 컨설팅’업체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서는 이러한 병원경영지원회사에 병원이 자본을 투자하고 그 이윤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였다. 다시 말해 병원의 부대사업 범위에 병원경영지원회사 지원도 포함시킨 것이다. 이것이 합법화될 경우 이러한 병원경영지원회사를 지주회사로 한 광범위한 병의원 네트워크가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 재벌 병원이 출자한 병원경영지원회사를 정점으로 그 밑에 다양한 규모의 전국적 병의원들이 네트워크화 되어 돈벌이 병원의 카르텔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병원이 병원경영지원회사에 투자가 가능해지게 되면, 병원경영지원회사는 온갖 돈벌이 수단을 개발하고 유포하는 진원지가 될 것이다. 병원은 그러한 경영 기법을 적극적으로 전수받아 돈벌이 행위에 전념하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얻은 수익은 병원으로 재투자되어 노동자와 환자를 위해 쓰이지 않고 다시 병원경영지원회사로 재투자되어 자본 투자자들에게 배분되고, 그 과정 속에서 병원경영지원회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다. 병원경영지원회사의 투자자들은 병원의 경영진들과 병원 자본일 것이므로 이들 일부에게 환자의 쌈지돈과 병원 노동자의 노동의 대가가 착취당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병원경영지원회사에서 퍼뜨릴 적극적 영리 추구 행위가 병원 노동자 및 환자에게 미칠 영향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병원경영지원회사는 노무관리 기법 등을 전수하여 병원이 노동 탄압의 천국이 되도록 할 것이다. 지금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인력 파견을 더욱 확장할 것이 뻔하다. 그리고 교묘한 수법으로 부당, 허위 청구를 하는 방식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 먹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마케팅 기법이라는 명목으로 병원 노동자들에게 환자들을 ‘벗겨 먹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교육하고 전수시킬 것이다. 지금도 존재하는 병원경영 컨설팅 회사 중 일부는 자신 고용하고 있는 직원을 파견할 경우, 파견하는 병원에 몇 개월만에 두세 배 이상의 매출을 장담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주로 쓰는 방법은 ‘끼워 팔기’와 ‘불려 팔기’이다. 하나의 문제를 위해 방문한 환자에게 별 치료가 필요 없는 두세 가지 문제를 덮어씌워 더 치료받도록 하거나, 급여 범위내에서 해결 가능한 치료에 비급여 시술을 끼워 넣어 돈을 더 받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병원경영지원회사가 활성화되면 이러한 부도덕한 상술이 의료 영역에 일반화되는 끔찍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3) 병원을 적대적 인수, 합병의 먹이로 만드는 의료법 개정안
현재 병원은 비영리법인이기 때문에 병원이 망한 경우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아 ‘청산’만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망한 법인은 재산을 지방자치단체에 귀속시켜야 한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지방자체단체의 자산으로 소유하거나 가능한 경우 다른 법인에게 이를 되팔아 다른 의료법인이 의료업을 지속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병원이 적대적 인수, 합병의 먹이가 될 가능성이 없다. 그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서는 병원의 해산 이유로 합병을 명시하고 합병을 시도지사뿐 아니라 시장, 군수, 구청장도 인가할 수 있도록 하여 그 조건을 더욱 완화하였다. 이는 인수, 합병과 관련된 절차를 법제화하고 단순화하여 병원의 인수, 합병을 유도하고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병원의 인수, 합병 절차가 까다롭도록 한 것은 병원은 사회적 공익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윤 논리에 따라 좌우되는 인수, 합병 절차가 일반화될 경우 지역에 따라서는 의료 공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리병원에 대해서는 인수, 합병이 자유로운 미국의 경우, 순전히 이윤 추구를 위해 인근 지역의 잘나가는 병원을 적대적으로 인수, 합병한 다음 폐쇄하여 그 지역 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멀리까지 인수, 합병을 한 병원으로 가야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렇게 되면 최악의 경우에 적대적 인수, 합병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경영지원회사가 타나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인수, 합병 절차의 간소화는 의료 자원의 지역 불균형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병원 노동자의 고용도 위협할 가능성이 많다. 특정 병원이 다른 병원을 인수, 합병한 경우 합병 직후에는 고용이 보장되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합병된 병원의 노동자들을 구조 조정할 가능성이 많다. 시세 차익을 노린 인수, 합병이 이루어질 경우에는 억울한 대량 해고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4) 병원의 이윤을 위해 의료전달체계를 무너뜨리는 의료법 개정안
이번 개정안을 통해 병원급이나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에 의원급 의료기관을 동시에 개설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현행 제도에서는 병원은 의료인을 고용하여 진료과를 개설하는 것만 허용되었지, 특정 과를 독자적인 의원 형태로 동시 개설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1, 2, 3차로 이어지는 의료전달체계를 허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는 계속 있어왔다. 중소병원급에서는 돈이 잘되는 성형외과, 피부과 등의 의사들을 고용하여 병원 수익을 창출하고 싶어 하지만, 이러한 의사들은 병원에 고용되어 있기보다는 의원 형태를 고수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보니 병원은 아예 의원을 통째로 자신의 공간에 유치함으로써 유발 수요를 창출하고 공간에 대한 임대료라도 챙기려는 동기가 강하게 작용하고, 의원은 병원에 들어감으로써 마찬가지로 타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작용하여 이러한 요구가 강화되어 왔다. 한편 대형병원 입장에서는 현행 의료전달체계 내에서는 일부 과를 제외하고는 의원급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은 환자를 유치할 수 없다는 것을 타계하기 위해 병원내에 의원을 개설하여 그곳을 창구로 1차 환자까지 독식하려는 욕구가 이러한 조항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이번 개정안에서 그 규제가 대폭 완화된 ‘프리랜서 의사’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병원 네트워크안에서 유명 의료인이 지역과 병원의 경계 없이 진료하게 되는 경우 환자 몰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고, 이는 의료전달체계를 파괴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러한 조항으로 인해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진다면 그 폐해는 이루말할 수 없다. 의료전달체계를 두는 까닭은 의사의 판단에 의해 적절한 환자 배분이 이루어져서 상급 의료기관으로 환자가 몰려 진료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의료인력이 낭비되며, 의료비가 상승하는 악영향을 막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져 병원 네트워크와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몰리게 된다면 1차 의료기관인 동네 의원은 다 망하고 이러한 병원 네트워크와 대형병원만 남게 될 것이다. 유통업계에 규모의 경제 바람이 불어 동네 구멍가게가 다 망하고 대형 할인업체 혹은 편의점만이 살아남은 것이 국민경제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는 말들도 많은데, 하물며 상품이 아니라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마저 동네의원이 다 망하고 대형병원과 네트워크 병원만이 살아남는다면 그 폐해는 경제적인 피해를 넘어서는 것이다.
4. 이번 개정안은 민간보험회사만 살찌우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보험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은 거의 정설이다. 그간 보험회사는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은 것을 이용하여, 암 보험, 뇌심혈관계질환 보장 보험 등 다양한 형태의 질병보험을 출시하여 시장을 공략해 왔다. 그 결과 대부분의 한국 성인이 하나 이상의 민간의료보험을 가지고 있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렇게 되니까 민간의료보험 시장도 포화 상태가 되었다. 최근 보험회사들이 앞다투어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질병보험 광고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적극적 광고를 통해 새로운 구매 계층을 창출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광고만으로는 새로운 구매 욕구를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광고와 더불어 함께 마련되어야 하는 것은 새로운 상품의 출시이다.
이러한 시장 상황을 반영하여 현재 보험회사들이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상품이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상품이다. 현재의 민간의료보험 상품은 ‘정액형’ 민간의료보험이다. 어떤 질병에 걸리면 얼마 하는 식으로 보상의 액수가 질병별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상품은 환자가 병원에 가서 본인이 부담한 돈을 그 액수만큼 보상해 주는 상품으로서 국민들에게 보다 매력적인 상품이다. 그래서 보험회사는 이러한 신상품을 출시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의 원활한 출시를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었다. 현재의 제도로도 출시 자체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으나, 몇 가지 제도가 더 갖추어져야 보다 위험성이 낮은 상태에서 신상품을 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험회사들이 그간 요구해왔던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개인 건강정보를 보험회사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환자가 제출하는 건강 정보만을 가지고는 상품 설계도 어려울뿐더러 향후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병원의 의료 행위에 대한 가격을 투명하게 공개하자고 요구해 왔다. 실손형으로 보상하기 위해서는 병원의 의료 행위 가격에 기반하여 상품을 설계하고 보상하여야 하는데, 현재 비급여 부분의 진료비는 표준화도 안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가격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상품 출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병원과 보험회사간에 가격 계약이 허용되어야 하고, 보험회사의 환자 알선 행위가 합법화되어야 한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출시하였을 경우, 보험회사의 설계에 따라 지출 구조를 맞추어 주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강요하고 요청할 수 있는 병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병원이 선정되었을 경우 가입자에게 그 병원으로 가도록 권유하고 유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행 의료법에는 그 누구도 특정 의료기관으로 유인하거나 알선 행위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조항의 개정이 필요했다.
이번 의료법에는 건강정보 공유만 빼고 나머지 요구가 모두 포함되었다. 건강정보 공유는 법체계상 보험업법 개정 사안이라고 판단해서 그 쪽에서 작업이 진행 중이므로 사실상 그간의 요구가 모두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는 병원이 비급여 진료비의 가격에 대해 공시하도록 하였고, 비급여 항목에 대해서는 의료기관과 보험회사가 가격 계약을 통해 할인을 할 수도 있게 하였다. 더불어 이와 같이 병원과 보험회사간의 가격 계약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보험회사가 그 병원으로 가입자를 유인하고 알선하는 행위를 합법화하였다.
이는 정부가 비급여 의료 행위는 일반 상품과 다름없다는 주장을 한 것과 같다. 현행 의료법에서는 의료 행위를 상품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가격 계약 등의 형태로 할인을 해서 환자를 유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의료 행위는 사회가 제공하는 서비스이기에 정부가 그 서비스의 공급과 질을 책임지고, 이것에 대해 적절한 ‘수가’를 매겨 공급자에게 보상하는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행 비급여 의료 행위는 이 틀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병원들이 돈벌이를 위해 이러한 비급여 항목을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상품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의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의학적으로 그 필요가 입증된 서비스는 모두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것이 맞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재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그러한 것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이런 쪽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의료법 개정안은 이러한 원칙과 정반대의 방향을 택했다. 비급여 의료 행위는 이제 더 이상 사회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시장에 맡겨 버리겠다고 포기한 것이다.
이러한 선언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매우 크다. 정부가 비급여 의료 행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포기하고 이것을 시장에 맡김에 따라 이어질 사회적 파장은 가공할 만한 것이다. 일차적으로 그나마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려 하고 있는 건강보험이 파탄날 것이다. 10여년 전만해도 ‘반쪽짜리’ 보험이라고 불리던 건강보험이 최근의 개혁을 통해 그나마 보장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건강보험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점차 회복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비급여 부문을 민간의료보험 시장에 떼어 준다면, 국민들은 다시 건강보험을 외면하게 될 것이다. 돈벌이 수단화된 병원이 적극적으로 비급여 시장을 개척하려고 하는 마당에 이러한 비급여 의료 행위를 아무런 규제 없이 시장에 던져 놓는다면 비급여 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될 것이고, 이를 감당하기 힘든 건강보험은 다시 ‘반쪽짜리’ 보험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유층은 아예 건강보험에서 탈퇴하고자 하는 요구가 거세어져서 건강보험 체계 자체가 아예 깨져버릴 가능성도 있다.
한편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법 개정을 통해 보험회사-의료기관-병원경영지원회사 네크워크가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주고 있다. 그야말로 환자의 주머니를 털기 위한 ‘환상의 삼각편대’가 구축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병원경영지원회사는 대형병원을 정점으로 전국의 병의원을 묶어 병의원 네트워크를 만들어 비급여와 부대사업을 중심으로 돈벌이를 한다. 이 네트워크에 보험회사는 가격 계약을 통해 참여하고 자기 회사 민간의료보험 상품에 가입한 환자들을 이러한 병의원 네트워크로 유인, 알선하여 이속을 챙긴다. 보험회사가 국민을 대상으로 호객 행위를 해서 잠재적 환자 풀로 조성한 다음, 병의원 네트워크가 이들을 대상으로 적극적 환자 만들기와 환자 유치 행위를 통해 주머니를 털어 그 이득을 나누어 갖는 ‘환자 착취의 카르텔’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비급여 행위의 가격이 공시되고, 그것에 대해 가격 계약을 통한 할인이 가능하게 되면 비급여 진료비가 낮아져서 국민들이 이득을 볼 것처럼 선전하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다. 이것은 의료 정보의 독점성과 그로 인한 시장 실패를 간과한 것에서 오는 착각이다. 의료는 정보가 공급자에게 집중되어 있고 독점적 성격이 강해 가격 결정을 시장에 맡겨 두었을 때, 수요와 공급에 의한 ‘합리적’ 시장 가격을 형성하기는커녕 가격 상승을 불러온다는 사실은 경제학의 기초이다. 비급여 의료 행위가 시장에서 ‘합리적’ 가격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인 환자들이 각 병원의 의료서비스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정보를 충분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격 대비 서비스 질에 따라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공급 주체도 다양하게 선택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의료는 그렇지 않다. 가격이 공시된다고 하여도 병원의 서비스 질을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정보가 환자에게는 없다. 그리고 몇몇 대도시와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면 병원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도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험회사-의료기관-병원경영지원회사 네트워크가 담합하여 결정하는 가격이 곧 시장 가격이 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가격 상승을 초래한다. 독점 시장의 비합리적 가격 상승으로 인한 국민 피해는 이미 많이 경험하고 있는 바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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